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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9화 (2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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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9화

하프 타임,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전반 내내 공격다운 공격도 못하다가 끝내 골까지 먹혔으니 기운이 빠질 만도 했다.

이 중 투지를 불태우는 것은 오솔과 여민국뿐이었다. 우주원은 그나마 힘내서 후반전을 준비하자는 쪽이었지만, 고영주는 전반전에 펼친 형편없는 플레이를 자책하기 바빴다.

“벤치만 지키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주전과 후보로 괜히 나눠놨겠어?”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가 꽤 시끄럽다. 문이 열려있고, 대화를 하며 들어오는 통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명확히 들렸다.

울컥한 몇몇 선수들이 고개를 들었으나 성지훈의 얼굴을 보곤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그나마 다행히 성지훈도 라커룸에 들어와선 조용해졌다. 아무리 그가 개차반이라고 해도 차마 선수들 면전에서 웃고 떠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여전히 수다는 떨고 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최악은 아니야.’

여민국은 선수들을 앞에 서서 박수를 쳤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벌써부터 다 끝난 사람처럼 기죽을 필요 없어. 이제 겨우 한 골 차이일 뿐이라고! 전반전에는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후반전에는 조금 더 힘 내보자.”

여민국은 이후 수비수 한 명, 한 명을 짚어가며 서로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의 지시는 감독이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이렇듯 여민국이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 최주혁 감독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술적인 변화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팀에 대해, 보다 정확히는 성지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날 실망시키다니…….’

전반전이 끝난 직후, 이충호 코치가 다가와했던 말이 떠올랐다.

‘감독님. 오늘 지훈이는 교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까 전부터 발목이 좀 불편한 모양입니다. 혹시나 부상 위험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쉬게 하는 게 어떨까요?’

곱씹을수록 기가 막힌 말이었다. 발목이 아프다? 그런 선수가 웃고 떠들 정신은 있단 말인가!

애초부터 교체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성지훈을 쓰기 싫어졌다. 아니, 그의 속셈이 뻔히 보여서 역겹기까지 했다.

‘상대 수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괜히 망신당하기 싫다는 거잖아.’

성지훈은 매번 오솔을 후보라고 무시했으나, 그가 얼마나 위력적인 선수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직접적인 포지션 경쟁자이기도 했고,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계속 주시했기 때문이다.

몸싸움도, 헤딩도, 심지어 이제는 달리기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오솔을 꽁꽁 묶는 선수가 상대팀에 있다. 자신이라고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 결과가 꾀병이었다. 괜히 교체되었다가 비교되기도 싫었고, 지금처럼 오솔이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경기가 끝나면 자신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두터워진다.

심지어 감독조차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하니 이번에 졸전을 펼칠수록 자신의 선발은 더 확실시된다. 그로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 감독은 얼굴을 굳혔다.

‘일단은 선수들을 다독이자.’

성지훈을 어찌할지는 나중이고 당장은 눈앞의 경기가 우선이었다. 라커룸에 들어서자 입구에 앉아있는 성지훈이 보였다. 가볍게 무시하고 전술판 앞에 섰다.

서로 의견을 개진하던 선수들의 입이 뚝 멎었다. 그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최 감독은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선수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경기에선 큰 부상이나 체력 부족이 아닌 이상 교체하지 않을 생각이다. 각자 ‘내가 주전이다.’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뛰어주길 바란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선수들의 눈동자에 힘이 실렸다. 감독이 신뢰를 보낸 만큼 의욕이 솟아난 것이다. 끝까지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그들을 불타오르게 했다. 그중 오솔의 얼굴은 유독 밝았다.

‘풀타임 출장인가? 좋았어.’

자신의 장점을 십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역시 교체보다는 선발로 뛰어야 했고, 중간에 교체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뛰는 편이 더 좋았다.

몸싸움이나 헤딩, 점프력 같은 것도 물론 오솔의 강점이었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능력은 90까지 오른 지구력이었다.

본래는 각종 페널티를 이겨내고 90분 내내 뛰려고 올린 능력이었는데, 페널티가 하나 둘 벗겨지면서 지금에 와서는 남들과 차원이 다른 체력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각종 페널티를 모두 감안해도 오솔의 지구력 수치는 무려 62에 달했다. 이는 유럽 빅 리그의 선수들의 평균 수준이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기회가 더 많이 생길 거야.’

이제 문제는 왼쪽 날개인 고영주가 살아나느냐 마느냐였다. 고영주를 보니 여전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책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거기서 더 끄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이런 생각하고 있죠?”

고영주의 고개가 불쑥 들렸다. 그는 속마음을 제대로 들킨 듯 움찔했다. 오솔은 계속 말했다.

“설마 제일 잘하는 걸 하라고 했던 말을, 주구장창 드리블 돌파만 시도하라는 말로 알아들은 건 아니죠?”

“하지만 내가 맡은 역할이 그거잖아. 중앙에서 드리블로 흔들어 놓는 거.”

“그건 맞지만, 방식이 잘못됐어.”

지켜보던 여민국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공격수로 있을 때는 수비수 한둘만 제치면 바로 골대 앞이지만, 지금 네가 있는 곳은 미드필드 지역이잖아. 적어도 두 사람, 혹은 서너 사람을 연달아 상대해야 하는데, 그렇게 계속 드리블만 친다고 돌파할 수 있겠어?”

“형은 마라도나가 아니잖아요. 세밀한 드리블이 형의 장점이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드리블만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

그런 건 고영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꾸 중앙에 있을 때의 습관이 나온다고 해야 할까?

오솔은 고영주와 눈을 맞췄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빛이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는 너무 복잡한 조언은 오히려 독이 되기 쉬웠다.

“호나우도가 인테르에서 뛰던 모습을 생각해봐요. 몇십 미터를 달려도 수비수들이 전혀 제지하지 못하잖아요. 왜 그럴까요?”

“그야 달리기도 빠르고, 드리블도 뛰어나고, 방향 전환도 자유롭고…… 그밖에도 이유는 많지.”

“다 맞는 말인데 가장 중요한 게 빠졌네요.”

“가장 중요한 거? 개인기?”

“아니요. 이거요, 이거.”

오솔은 두 눈을 가리키며 한 번 더 강조했다.

“호나우도는 최고 속도로 달리면서도 시선은 항상 주변을 향해 있었어요. 혼자서도 수비진을 파괴할 수 있는 선수가 동시에 동료들도 이용할 줄 알았다는 거죠. 호나우도의 돌파가 위력적인 것은 언제든지 날카로운 패스나 슈팅을 날릴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전성기 시절 호나우도의 무서운 점은 전력으로 달리면서도 공에 함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선은 공이 아니라 항상 그라운드를 향했고, 그럼에도 공은 발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드리블 감각이 절정에 달했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지금 형은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에요. 형보다 위에 저도 있고, 주원이나 다른 선수들이 올라올 수도 있어요. 드리블은 공을 뺏기지 않는 정도면 충분해요. 그러니까…… 공이 아니라 우리를 보세요.”

축구는 전쟁이었다. 갖고 있는 무기를 모두 꺼내 싸워도 모자란데, 그 와중에 가장 강력한 무기 하나만 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고영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모습 때문에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는 부담감을 잘 못 넘기는 타입이야. 재작년에 일대 일 찬스를 놓친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어쨌든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줬다. 나머지는 고영주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몫이다.

* * *

후반전이 시작되자 양 팀 선수들은 다시금 치열하게 붙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한국 선수들의 투지가 돋보였고, 그중 제일은 오솔이었다.

오솔은 중앙과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가끔은 밑으로 내려와 공을 연결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다른 능력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연결고리만 되는 수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공격 작업이 훨씬 원활해졌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

오솔은 후방에서 길게 날아오는 공을 보며 몸을 날렸다. 바로 뒤에 고딘이 있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바짝 붙으며 힘 싸움을 벌였다.

당연히 고딘의 방해로 헤딩은 부정확해졌고, 공은 우루과이 측에 넘어갔다. 그러나 전반과 달라진 점도 있었다. 바로 내내 편안한 표정으로 뛰던 고딘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놈은 지치지도 않나?’

전반전에는 노마크 찬스를 잡으려고 수비를 피해 다니던 오솔이 후반전에는 작정하고 부딪쳐왔다. 덕분에 공을 쫓던 운동 에너지가 그대로 고딘에게 향했다.

당연히 마른 체형의 고딘으로선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수비수가 공격수를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상대가 언제 헤더를 따낼지 몰랐다.

현재 우루과이 선수 중에는 디에고 고딘보다 맨마크가 뛰어난 수비수가 없었다. 오솔은 무조건 그가 맡아야 했다.

‘이거 슬슬 부담스러운데…….’

후반전을 시작한 지 35분을 넘어가자 고딘의 몸도 조금씩 둔해지기 시작했다. 과도한 힘을 쓴 탓에 평소보다 체력이 빨리 떨어진 것이다.

그때쯤 중앙으로 공이 굴러왔다. 오솔은 고딘을 등진 채 공을 잡았다. 고딘은 상대가 돌지 못하도록 바짝 붙어서 힘을 겨뤘다.

‘으윽!’

고딘이 조금씩 밀렸다. 계속해서 저 덩치와 붙느라 힘도,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오솔은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헤이, 고딘!”

“……?”

“두 유 노우 부비부비?”

“Qu??(뭐?)”

오솔은 엉덩이를 이리저리 씰룩거리다가 재빨리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고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 말고 급히 그를 쫓았다.

그러나 공은 이미 오솔을 떠나고 없었다. 공은 어느새 중앙으로 파고드는 고영주의 발밑에 가 있었다.

고영주는 측면에서 달라붙는 수비수를 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벌써 우루과이 선수들로 우글우글했다.

‘항상 주변 선수들을 확인하는 거야.’

아마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고영주는 공을 몰고 들어가는 잠깐의 시간 동안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곤 패스 코스가 막히기 직전에야 간신히 공을 찰 수 있었다.

“주원아, 받아!”

공은 우주원 앞에 떨어졌다. 수비수 하나가 그의 옷가지를 잡고 늘어졌다. 드리블을 한다고 시간을 끌었다간 금방 수비진이 갖춰질 것이다.

그래서 우주원은 지난번처럼 논스톱으로 공을 올렸다. 공이 조금 거칠게 들어가더라도 오솔이라면 어떻게든 따줄 거라 믿었다.

뻥!

“아!”

공을 찬 것과 동시에 우주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공이 평소보다 더 거칠고, 조금 덜 감겼다. 논스톱 크로스 자체도 난이도가 높았는데 거기에 상대 수비수 때문에 균형까지 흐트러진 탓이다.

그가 찬 공은 얼핏 슈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예상하고 있다고 해도 섣불리 따라잡기 힘든 스피드였다.

‘반드시 잡는다!’

하지만 오솔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골 에어리어 끄트머리에 닿을 정도로 깊이 들어간 크로스라 아슬아슬해 보였으나, 일단은 전력을 다했다.

사실 경기가 막판에 가까워진 탓에 그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발에 힘을 더했다. 그가 힘든 만큼 상대도 지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젠장! 다시는 다이빙 헤딩 안 하려고 했는데!’

파앗!

오솔은 홈 플레이트를 향해 질주하는 주자처럼 그라운드 위로 몸을 날렸다. 디에고 고딘은 뒤늦게 따라오다 말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친 고딘으로서는 도저히 끝까지 뛸 수 없었다.

뚝!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반대쪽 골대로 날아갔다. 골키퍼가 손과 발을 같이 뻗어 보였으나 공은 약올리듯 그 사이로 쏙 빠져들어갔다.

와아아아!

“봤냐! 봤냐고!”

오솔은 골을 넣고 곧장 코너로 달려 나갔다. 그는 기뻐서 달라붙는 고영주와 우주원을 가볍게 제치곤 기자단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마음껏 찍으란 뜻이었다.

이유리의 카메라는 그런 오솔의 모습을 정신없이 담아냈다.

“저기도 찍어!”

선배의 지시에 카메라가 한국팀 벤치로 향했다. 환호하는 최주혁 감독과 선수들 사이로 손톱을 물어뜯는 성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이걸 언젠가 써먹을 날이 있을까?’

이유리는 일단은 찍어 놓자는 생각에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세리머니가 끝나고 오솔은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며 고영주의 엉덩이를 톡 하고 쳤다.

“잘했어요!”

한 살 어린 동생의 칭찬에 고영주의 얼굴이 환해진다. 확실히 우유부단하고 심성이 여린 게 문제였으나, 그래도 성지훈에 비하면 훨씬 더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 오솔에게 성지훈보다 더 나쁜 사람이 있겠냐마는.

‘평가전이라고 해도 골까지 넣었으니, 경험치가 많이 들어왔겠지?’

습관적으로 상태창을 확인하는데 뜻밖의 문구가 보였다.

-[New Skills!]

‘뭐야, 이거. 새로운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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