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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6화 (2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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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6화

6장 세계 무대로!

이후에 경기는 너무도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성지훈의 흥분으로 그나마 기대할만했던 투톱의 호흡도 어그러진 것이다.

전방에서 힘없이 공을 뺏겨대자 후방의 선수들도 급격히 페이스를 잃었다. 기계라 할지라도 잠시 쉬며 기름칠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지금 A팀 선수들은 벌써 몇 십 분간 수비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연히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또 골이 들어갔다.

“완전히 무너졌군.”

벌써 세 번째 득점이었다.

오솔의 헤딩으로 한 골, 여민국의 중거리 슈팅이 튀어나온 걸 우주원이 마무리해서 또 한 골, 마지막으로 코너킥 상황에서 여민국의 러닝 점프 헤딩골까지…….

경기가 끝났을 때 A팀의 수비진은 그야말로 영혼까지 갈린 듯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반면 B팀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사실상 오솔과 우주원, 여민국의 활약 덕분에 이긴 것이었지만, 꼴도 보기 싫은 성지훈 일당이 탈탈 털리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낀 것이다.

팀 케미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최주혁 감독의 쓰게 웃으며 자축을 하는 B팀 선수들을 훑어봤다.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소득만 있던 건 아니었어.’

그의 시선은 특히 고영주에게 닿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고영주는 이번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단순히 기회가 없었다는 게 아니었다. 측면에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헤맸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중앙과 측면을 쉼 없이 오갔던 선수가 측면에서 뛸 줄 모른다니 말이다.

단순히 한 칸 옆으로 이동하면 되는데 그게 어렵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에서 측면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것은 단순히 운동의 방향만 바뀌는 게 아니었다.

플레이의 목적부터 방향까지 모든 것이 반대였고, 이를 능수능란하게 적용하는 건 웬만한 전술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힘들었다.

‘결국 영주는 영락없이 지훈이 백업으로만 써야 하는 건가?’

계륵(鷄肋),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당장의 분위기로 봐서는 오솔과 성지훈은 동시에 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 4-4-2 포메이션을 들고나간다면 투톱은 무조건 이상현-성지훈이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오솔과 고영주의 투톱을 쓰는 것도 메리트가 없었다. 그보다는 여민국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고 오솔을 원톱으로 세우는 편이 더 나았다.

안정적인 수비력과 다채롭고 파괴적인 공격력을 둘 다 얻게 되는 길이니 굳이 고영주를 쓴다고 기존의 4-4-2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고영주는 성지훈의 백업 이상의 쓰임은 없게 된다.

‘영주의 발재간이 아깝긴 하지만…….’

발재간은 고영주가 더 뛰어날지 몰라도 공격수로서 갖고 있는 득점력은 성지훈 쪽이 더 좋았다.

성지훈은 체격이 더 크기도 했고, 거기다 드리블 실력이 아주 엉망인 것도 아니었다.

‘당분간은 이것저것 시험을 해봐야겠군.’

최주혁 감독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고민은 차라리 행복한 일이었다. 이전처럼 꽉 막힌 변기 마냥 답답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 * *

2003년은 빠르게 지나갔다. 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다시 그 눈이 녹아갈 때쯤 청송고 축구부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민국이 그들의 주장이 떠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네가 주장이라니 세상 말세다.”

“감독님이 내 리더십을 주의 깊게 보신 거지. 네 지랄 맞은 성격까지 다 받아주는 넓은 마음은 덤이고.”

새로운 주장, 이승훈이 콧대를 높였다. 이제는 주장이니 오솔도 함부로 하지 못하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천방지축 날뛰던 오솔이 여민국에게는 유독 약했기에 하게 된 추측이었다.

“그래? 그럼 어디까지 받아주나 한번 제대로 지랄해 볼까?”

“……님아. 자제 좀요.”

“짜식, 까불고 있어.”

“그나저나 대표팀은 그 후로 어떻게 됐어? 개학 전에도 소집했었다면서.”

오솔은 벌써 두 번째 소집 요청을 받고 갔다 온 길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우주원과 여민국도 함께 있었다.

A팀에서는 오솔에게 탈탈 털렸던 수비수 하나가 탈락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는 이제 K리그 팀 FC 도깨비(Goblin)에 입단한 여민국이 들어갔다.

이번 소집에서 최주혁 감독은 여민국에게 많은 힘을 실어줬다. 팀의 중심을 성지훈에서 여민국으로 바꾸려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4-3-3을 A팀에도 적용해서 오솔, 성지훈, 이상현 세 공격수를 번갈아 기용하기도 했다.

리그 개막을 기다리는 K리그 팀, 대학팀, 실업축구팀 세 곳과 연습 경기를 가졌는데, 오직 오솔만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자연히 성지훈은 불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감독이 미쳤나? 4-4-2로 잘 나가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4-3-3으로 바꿔서 이 난리를 치는 거지?’

원톱에 서게 되면서 성지훈의 파괴력은 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만다.

이상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냥 걸어 다니는 백보드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성지훈은 이충호 코치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선배님, 이건 문제가 좀 있는 거 아닙니까? 쪽발이 새끼가 계속 발탁되는 건 그렇다고 쳐도 갑자기 원톱이라니요. 이건 대놓고 절 쳐내겠다는 뜻이잖아요.”

“음.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 단순히 연습을 하는 걸 가지고 태클을 걸 수는 없으니까.”

“만약 제가 선발에서 제외되면요?”

“걱정마라. 만약 그렇게 되면 보다 확실하게 압박할 테니까.”

그러나 우려대로 최주혁 감독은 오솔을 원톱으로 기용해서 평가전에 들어갔고, 오솔은 그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충호 코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폰을 꺼내 ‘위원장님’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꾹 눌렀다.

“예, 선배님.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예? 아, 벌써 연락을 받으셨군요. 아닙니다. 저야 물론 우리 대(大) 영신고(高) 후배를 챙겨주고 싶었죠. 그런데 이 감독 놈이 말을 안 듣습니다. 갑자기 무슨 고집이 생겼는지 이상한 놈들을 싸고도는데, 진짜 말이 안 통합니다.”

“·…….”

“예, 예. 그럼 제가 언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편하실 때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학연으로 얼룩진 끈끈한 대화가 오간 결과, 최주혁 감독은 늦은 밤 달갑지 않은 전화를 받게 되었다.

“예, 기술위원장님.”

“어, 최 감독. 잘 지냈는가?”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거두절미하고…… 내, 듣자 하니 최근에 전술에 다양성을 좀 주고 있다면서?”

“그것이…….”

“아니,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네. 전술이나 선수 선발은 감독의 재량인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다양한 전술을 시험하는 거 좋지.”

“네.”

“다만, 조금 더 멀리 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말이야.”

“…….”

최주혁 감독은 왠지 뒷말을 알 것 같았다.

“물론 감독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대회도 중요하겠지, 그게 다 성과 아닌가. 하지만! 유소년 축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유소년 축구의 목적이 뭔가, 차기 국가대표 감을 길러내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자네 힘든 거, 내가 다 알아. 나도 예전에 3년 정도 청소년 대표 맡았던 적이 있었어. 위에서는 당장 성적을 내라고 난리지, 한편에서는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선수들의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해대지. 아주 정신없었지. 쯧쯧.”

모 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떠오르는 멋진 꼰대 짓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는가? ‘아, 그때 내가 좀 더 멀리 봤어야 했는데, 내 소견이 너무 좁았구나.’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어.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 그때 선수들을 믿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여기서 그가 언급한 ‘선수들’은 그의 까마득한 고교 후배 ‘성지훈’과 K리그 구단에서 차기 선발로 키우는 유망주들을 뜻했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허허. 이거 늙은이가 너무 말을 많이 했군. 나이 먹으면 괜히 걱정만 늘어서 말이야. 들어주느라 고생했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구먼.”

“아닙니다.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다 자네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언제까지 유소년만 할 건 아니지 않은가. 멀리 봐야지. 멀리.”

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의 통화는, 그렇게 당근 끄트머리를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최주혁 감독에게는 당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직전에 날아온 채찍질에 온몸이 쓰라렸기 때문이다.

그는 솟구치는 모멸감을 내리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공격에 오솔, 수비에 여민국을 중심으로 한 베스트 일레븐이 한순간에 물에 녹은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젠장…….”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종이 뭉치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기술위원회에서 정리해서 준 선수 정보지였다. 그 최상단에는 성지훈의 얼굴과 정보가 기입되어 있었다.

* * *

그렇다고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들의 요구대로 하는 수밖에…….

청소년 대표팀의 전술은 다시 4-4-2 플랫으로 돌아갔고, 선발은 이상현과 성지훈의 것이 되었다.

최주혁 감독이 오솔 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을 계속 대표팀에 부르는 것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민국 역시 구단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비진에 들어온 여민국의 존재는 수비의 안정감과 기습적인 스루패스를 더해줬다. 아주 약간이나마 팀 전력이 상승했다.

‘제기랄! 분명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팀인데…….’

그러는 사이 2004년도 대통령금배 전국대회가 열었다. 오솔은 다시금 청송고의 전사들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번에도 득점왕에 이어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주장으로 출전한 이승훈은 결승전에서 멋진 크로스로 오솔의 헤딩골을 돕고 외쳤다.

“어때? 그 우주원인지 우주 깽깽이인지 하는 애보다 내가 낫지?”

오솔이 우주원의 크로스와 비교하며 쉼 없이 그를 갈군 게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어쨌든 덕분에 오솔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그는 이미 작년의 성지훈, 이번 해의 고영주를 능가하는 고교 최대어로 각광받고 있었다. 그러나 고교에서의 성공과는 달리 청소년 대표팀에서 오솔은 쓸쓸히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다.

‘이번 대회까지 뛰었으면 못해도 레벨이 한두 개는 더 올랐을 텐데, 아쉽네.’

대한민국 19세 이하 대표팀은 9월 말, 태국에서 열린 AFC U-19 대회에서 내내 4-4-2 전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퍽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승에서 중국을 만나 가뿐히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대회전까지만 해도 이상현 대신 오솔을 써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으나, 성지훈이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터트린 이후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는 언론이고, 네티즌이고 모두 같은 의견을 쏟아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오솔보다는 대학 축구를 씹어 먹고 있는 성지훈을 위해 팀을 짜야한다고 말이다.

이에 대한 축구 커뮤니티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고교 대회랑 성인 대회는 레벨이 달라. 뭐, 오솔이가 고교를 평정했다고? 그래서 뭐? 성지훈은 역대 연령별 대회를 전부 제패하고 올라온 놈이야. 그리고 지금은 대학 리그까지 뼈 채 씹어 먹고 있다고! 무엇보다 결승전에서 해트트릭 터트리는 거 안 봤냐?]

[맞는 말이야. 솔직히 오솔은 거품이라고 본다. 완전히 보글보글이라고! 이놈의 거품 때문에 이 차가 티콘지 벤츤지 분간이 안 가! 내 생각에 오솔이는 잘 쳐봐야 써니타 수준이다.]

[ㅇㅇ. 얼굴은 확실히 흉기차더라.]

[솔직히 87년생들이 심각하긴 하지. 거의 인재 절벽 수준이라니까. 메시가 태어날 때 87년생들의 재능을 다 가져간 게 분명해. 아니면 이렇게까지 인재가 없을 수 있겠냐?]

여민주는 관련 글에 하나씩 비추를 박고, 오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남자친구를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응. 솔아, 뭐해?”

“나? 지금 상태ㅊ…… 모, 몸 상태를 좀 확인하고 있었어.”

“몸 상태는 왜?”

“별거 아니야. 그냥 일상적인 거야.”

여민주는 오솔의 목소리가 밝은 걸 느끼고 배시시 웃었다. 겨우 18살,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을 나이임에도 그녀의 남자친구는 흔들림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신념에 찬 모습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악동 같은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듬직한 것도 멋있어.’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였지만 그녀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럼 컨디션은 어때? 괜찮아?”

“응, 현재 89.6퍼센트 정도야.”

“묘하게 구체적인 수치네? 그런데 뭐 피곤한 일 있었어? 왜 100프로가 아니야?”

“어? 내가 89퍼센트라고 했나? 하하……. 잘못 말했어. 99.6퍼센트야. 거의 100퍼센트지. 그러니까 걱정 마.”

“……알았어. 그건 그렇고 언제 시간 돼? 내가 보러 갈게.”

여민주는 고기라도 좀 사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약속을 잡았다. 오솔의 집이 풍족하지 않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이처럼 용돈을 모아서 가끔씩 고기를 먹으러 가곤 했다. 그녀 나름의 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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