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4화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크로스-헤더 훈련을 시작했다.
우주원은 이전보다 나아진 돌파를 선보이며 우측면을 내달렸다. 반인반신 드립 때문에 약간의 실망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솔의 진심 어린 충고가 마음에 와닿은 덕분이었다.
거의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따뜻한 말을 해준 덕에 용기가 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크로스는 1차 소집 때처럼 최선을 다했다.
뻐엉!
골대보다 살짝 높이 뜬 공은 중앙에 가까워짐에 따라 날카로운 각도를 보이며 뚝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노마크 상태로 몸을 띄운 오솔이 있었다.
파앗!
흑표범처럼 날렵하게 튀어 오른 오솔, 그는 독수리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순식간에 공을 따냈다. 실로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지속 스킬, ‘모난 머리가 공 맞는다’가 발동합니다. 헤딩이 28.2% 확률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때애앵!
정말 멋진 장면이었으나 아쉽게도 공은 골대에 맞고 라인을 나가고 말았다. 멋지게 질러 놨는데, 정작 헤딩이 빗나간 것이다.
“자, 잘했어!”
오솔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러다 곧 자신이 말을 더듬었다는 걸 깨닫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주원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한국에 와서 거의 처음으로 웃는 것이었다. 내내 꽉 막혀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아!’
최주혁 감독은 우주원의 표정을 보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이들은 아직은 어린 선수들이었다. 그렇기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 쉽고, 그에 따라 실력도 천차만별로 변화한다.
‘내 불찰이구나.’
다행히 이번 훈련을 통해 우주원이라는 우측 날개를 되찾았고, 동시에 오솔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뛰어난 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의 경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수비수의 시선을 피해 움직이는 센스도 발군이었다. 무엇보다 달리는 타이밍을 잡는 능력이 기가 막혔다.
오솔은 간신히 공에 닿을 수 있는 타이밍에 움직였다. 덕분에 수비수는 뒤꽁무니만 보다가 헤더를 내주기 일쑤였다.
오솔을 막기 위해서는 그와 대등한 수준의 예측력이 필요해 보였다.
‘보면 볼수록 타이밍 읽는 센스가 돋보인다. 이 정도면 라인 브레이킹(오프사이드 선상에서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것)도 잘 하겠는데?’
최주혁 감독이 제대로 보았다. 지난 10년간 오솔의 주특기가 바로 이 라인 브레이킹이었다.
비록 순간 속도, 주력, 볼터치 같은 능력치는 회귀와 동시에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이 타이밍을 읽는 능력만큼은 시스템이 아닌 오솔이 몸으로 익힌 기술이었다.
뻥! 파앗! 철썩!
이윽고 재개된 훈련에서 오솔은 아까와 같은 코스로 들어온 크로스를 멋들어지게 골로 연결했다. 단순한 연습이었음에도 절로 시선이 갔다. 그만큼 파괴적인 모습이었다. 오솔도 오솔이지만 똑같은 코스로 공을 보낸 우주원의 능력도 돋보였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공은 없어?”
그러나 오솔은 만족하지 못한 듯 우주원을 몰아붙였다.
“같은 코스로만 차지 말고, 내 움직임이랑 수비수의 위치를 보면서 차란 말이야. 공 컨트롤은 되면서 머리를 못 써서 B급 선수 취급을 받고 싶어?”
오솔의 요구는 간단했다. 수비수와 골키퍼가 없는 지역 그러면서 공격수만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공을 올리라는 것.
‘말로는 진짜 간단하네.’
그게 쉽게 되면 우주원이 지금 J2리그에 있겠는가, 유럽에서 뛰고 있지. 그러나 오솔은 이해하질 못했다.
“그게 뭐가 어려워? 아니, 어려워도 계속해봐야지 미리 포기하고 고개만 젓고 있을 거야?”
훈련이라서 좋은 점은 그래도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주원은 미리 수비수와 골키퍼 위치를 기억하고 돌파에 들어갔다. 다행히 수비수가 한 명뿐이라 빈 공간이 많이 보였다.
‘별명이 청송고의 클로제라고 했지?’
그는 아예 상대를 월드클래스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공을 찼다. 난해하고 엉뚱한 공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오솔은 그 모든 공에 어떻게든 머리와 발을 갖다 댔다. 우주원은 상대가 조금은 무리다 싶은 공까지 모두 받아내자 슬슬 신나기 시작했다.
‘어디 이것도 받아낼 수 있어? 이것도?’
훈련이 진행될수록 우주원의 입가에 맺힌 웃음은 점점 더 짙어졌다.
* * *
그날 밤, 우주원의 방에 성지훈 패거리가 쳐들어왔다.
“야. 쪽발이! 너 잠깐 나와 봐.”
우주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오솔이 그의 어깨를 누르곤 대신 일어났다.
“야. 쪽팔리니까, 좀 적당히 해라. 우리 지금 재밌게 놀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뭐, 쪽팔려?”
87년생의 건방진 언행에 성지훈 일행의 눈초리가 살벌하게 변했다. 덕분에 우주원은 타깃에서 벗어났지만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우주원은 괜히 자신 때문에 오솔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그래, 이 새끼들아.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쪽발이 타령이야.”
“이 새끼가 안 되겠네. 막내라고 봐줬더니 정신 못 차리고 막 기어오르는구나?”
성지훈의 말에 이상현이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족히 7㎝는 더 큰 인간이 내려다보니 확실히 위압적이었다.
“왜?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어볼까? 억울하면 나가든가. 뭣하면 4 대 1로 붙어도 괜찮아.”
“이런 미친놈!”
이상현은 큰 발을 들어 앞발차기를 시도했다. 사람 좀 차 본 듯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오솔은 옆으로 살짝 피하며 발을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고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한쪽 발로 버티려던 이상현은 금방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너는 원피스도 안 봤냐? 발로 먹고사는 놈이 발길질을 함부로 하면 쓰겠어?”
오솔은 이상현의 발등에 난 털을 한 움큼 잡고 뜯어냈다.
“아악!”
“조용히 해, 자식아. 누가 보면 발목이라도 비트는 줄 알겠네.”
이상현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 했으나 오솔에게 걸린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성지훈 패거리는 주춤거렸다. 힘이 가장 센 이상현이 너무도 쉽게 제압당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더욱더 당황스러웠다.
“건방진 놈 같으니, 선배들한테 이러고도 멀쩡할 줄 알아?”
“실제로 난 멀쩡하잖아? 내 생각에는 앞으로도 멀쩡할 것 같은데?”
“너 따위를 담가버릴 방법은 많아!”
“그럼 후환을 없앨 겸 지금 당장 니들 병실로 보내버려야겠네.”
“이런 미친놈.”
성지훈 일당은 한차례 달려들었으나 오솔은 가볍게 날린 손바닥으로 그들을 모두 넘어뜨렸다.
‘주먹까지 썼다간 진짜로 큰일 나니까, 조심해야지.’
너무도 쉽게 제압당하자 그들은 쉽게 덤비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들이 비록 다년간의 운동으로 다져진 몸들이었으나, 실전 싸움을 겪은 적은 거의 없었다. 반면 오솔은 이런 상황에 꽤나 익숙해 보였다.
‘젠장. 설마 반항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진심으로 치고받으면 아무리 성지훈이라고 해도 문제가 될 공산이 컸다. 그는 오솔에 비해 잃을 것이 많은 처지라 아무래도 일을 키우기가 꺼려졌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작전상 후퇴였다.
“건방진 놈! 두고 보자!”
“너무 싸구려 악당처럼 말하는 거 아니냐?”
우주원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
“괜찮아. 오늘 감독님 얼굴 못 봤어? 웃느라 광대까지 떨리셨잖아. 우리에게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기회를 주실 거야.”
“그럴까?”
“그럼. 이제는 진짜 축구 실력으로 붙으면 되는 거야. 실력으로 붙으면 우리가 저들에게 꿇릴 것 없잖아?”
실력으로만 붙는다면 우주원도 자신이 있었다. 현재 주전으로 뛰는 우측 미드필더는 발만 좀 빠르다 뿐이지 크로스 실력은 영 어설펐기 때문이다.
오솔은 다시 앉으며 물었다.
“그보다 구할 수는 있는 거야?”
“그, 그거? 안 돼. 아무리 일본이라도 성인 확인은 칼같이 한다고.”
“내가 두 번이나 도와줬는데 그거 하나 못 구해 주냐?”
“설사 산다고 해도 공항에서 걸릴걸? 그럼 무슨 쪽이야. 절대 안 돼.”
“으으. 악키의 초기작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도대체 나도 모르는 av배우를 어떻게 아는 거야. 게다가 막 데뷔한 신인을…….”
오솔은 한참을 더 조르다가 잘 시간이 되어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 * *
파주 NFC에 입소한 지 사흘이 지나고, 이제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은 둘로 나뉘어 훈련을 시작했다. 최주혁 감독의 입에서 각각의 명단이 밝혀졌다.
“A팀은 성지훈, 이상현, 오웅수…… 이상 14명이고, B팀은 여민국, 고영주, 우주원…… 그리고 오솔까지 마찬가지로 14명이다.”
선수들의 얼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A팀에 속한 이들은 명백히 밝은 얼굴이었고, B팀이 된 선수들은 실망한 티를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선수 구성상 A팀에는 85년생 주축 선수들이 많았고, 86년생인 고영주를 제외한 성지훈 패거리가 모두 속해있었다.
반면 B팀은 기존의 85년생 후보 선수들과 86년생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A팀이 1군이었고, B팀이 2군이었다.
우주원은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가 역시나 하며 실망했다. 하긴 겨우 하루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주전이 되길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A팀은 기존 전술대로 여기 이충호 코치가 훈련을 감독할 예정이고, B팀은 내가 맡아서 새로운 전술을 훈련할 생각이다. 일주일 뒤에 연습 시합을 해서 평가할 예정이니까 열심히 훈련하길 바란다.”
주전 선수들은 기존의 전술에 익숙할 테니 백업 선수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전술을 테스트해보겠다는 뜻 같았다.
좋게 보면 팀 전술을 시험하고 새로운 선수를 찾고자 하는 의미였지만, 나쁘게 인식하면 단순히 주전팀의 연습 상대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주전과 비주전의 차이 때문에 B팀이 경기력에서 밀릴 게 분명했다.
성지훈은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충호 코치를 쫓아가며 물었다.
“선, 아니지, 코치님.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어제 갑자기 감독이 팀을 나누더니 연습 시합을 하자고 하더라고. 뭔가 새로운 전술을 훈련해보고 싶다나?”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겠죠?”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하지만 설령 어떤 의도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기면 해결될 일이야. 저쪽은 후보들에 급조된 전술이니까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다.”
확실히 전술을 몸에 익히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한 팀으로 오래 활동한 선수들도 아니고, 대표팀 소집으로 방금 모인 선수들에게 전술을 가르치는 건 더 어려웠다.
실력과 전술 숙련도 등을 고려하면 A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성지훈도 잔인하게 웃을 수 있었다.
‘흐흐. 그 건방진 놈을 깔아뭉갤 좋은 기회구나.’
그는 천지분간 못하는 신입에게 레벨의 차이를 보여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 * *
한편 최주혁 감독을 따라온 B팀 선수들은 새로운 전술과 포메이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번에 최 감독은 기존의 4-4-2가 아닌 4-3-3을 꺼냈다. 원톱 자리에 오솔을 넣고, 우측 날개로 우주원을, 좌측 날개는 고영주를 낙점했다.
“솔이는 중앙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펼치도록 하고, 주원이는 클래식 윙어로서 측면을 파고드는 플레이를 펼쳐라. 그리고 영주는…….”
사실 고영주는 윙어로 뛴 적이 거의 없었다. 소속팀에서 투톱 중 세컨드 스트라이커처럼 뛰면서 자유롭게 움직이긴 했지만, 제대로 된 측면 자원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영주는 측면에서 이렇게 중앙으로 들어오는 역할이다. 전방에서의 플레이메이킹은 네가 도맡는다. 여기서 뛰는 게 영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익숙해지면 기존의 자리보다 더 편할 거다.”
한 마디로 바르셀로나의 호나우지뉴처럼 뛰라는 주문이었다. 적응만 할 수 있으면 확실히 고영주 같은 타입이 더 힘을 쓸 수 있는 위치였다.
“그리고 민국이는…….”
최 감독의 말이 진행될수록 여민국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민국 역시 포지션 변경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이번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줬으면 좋겠다.”
사실상 새로 구상하는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여민국이었다.
물론 전방에서 공격을 전개하며 찬스를 만들어내는 고영주나 우주원도 중요했다. 그리고 훌륭한 마무리를 선보여야 하는 오솔의 존재도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후방에서 수비를 보호하고, 동시에 공격의 토대를 쌓아야 하는 여민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공수에 걸쳐서 팀의 균형을 잡고, 수적 우위를 점하는 역할이다. B팀의 주장이자 전체적인 전술의 핵심이고, 이걸 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여민국은 본래 공격수였다가 수비수로 전환했기에 공수에 두루 능했다. 라인 컨트롤이나 커버하는 걸 보면 전술 이해도도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이만하면 패스도 준수하고, 체력적으로도 준비된 선수야. 포지션에 조금만 익숙해져도 지금의 A팀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여민국은 감독의 확신에 찬 눈빛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역할 그리고 중심을 잡고 팀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 있는 자리였다. 이것은 그가 너무도 잘하는 일이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최 감독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팀을 만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