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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2화 (2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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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2화

성지훈은 오솔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계속 건들거렸다.

“리버풀 알지? 거기 유스팀에서 1년을 구르고 왔더니 영 피로가 쌓여서 말이야. 이미 선수 등록도 끝나서 출전도 불가능하고, 그리고 내가 나름 해외판데 이런 국내 대회에까지 나가는 건 뭔가 형평성이 안 맞잖아? 흐흐.”

그는 꼭 자랑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아이 같았다.

“아무튼 한여름에 뛴다고 고생했다. 파주에는 처음 왔을 텐데, 천천히 구경하다 가.”

느긋한 말투에서 두 사람을 무시하는 뉘앙스가 가득 담겨있었다. 동시에 은연중 자신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오만이 엿보였다.

‘성지훈이라…… 그럭저럭 만능에 가까운 선수지.’

성지훈의 능력치를 육각형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거의 원에 가깝게 나온다. 공격수에게 필요한 기술력, 체력, 신체적 능력치가 고루 뛰어나고 성격은 좀 거만해도 나름 열심히 훈련했기에 정신적인 면도 문제 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통할만큼 큰 원이 아니라서 나중에 망하지만…….’

재능의 한계랄까? 아니면 특출 난 장기가 없어서?

국가대표 팀에서의 준수한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에 진출한 성지훈은 커리어 내내 벤치만 달구다가 별다른 활약 없이 다시 K리그로 돌아오게 된다. 대충 무난무난 열매를 먹은 능력자라 할 수 있겠다.

“그래, 반갑다.”

여민국은 비꼬는 말투를 인지했음에도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성지훈은 ‘생뚱맞게 무슨 악수야.’라고 중얼거리더니 무리와 함께 떠났다.

여민국은 내민 손이 민망했는지 팔을 그대로 들어 올려 목을 긁적거렸다.

오솔은 한 숨을 내쉬었다.

“진짜 나이 속인 거 아니에요? 요즘 10대 중에 첫인사로 악수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시합하기 전에 매번 하잖아.”

“그건 상대팀이랑 말 섞기 싫어서 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면 서로 악력을 겨뤄보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네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대충 알 것 같다.”

“방금 그건 왠지 욕 같은데요?”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진짜 종잡을 수가 없구나.”

역시나 욕이었다.

* * *

오솔은 짐을 마저 풀면서도 계속 인상을 썼다. 미운 놈이 싫은 짓만 한다고, 성지훈은 말투부터 표정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팀을 분열시키기나 하고 말이야.’

파벌이 달리 파벌인가. 저들끼리 뭉쳐서 밀어주고 끌어주면 그게 파벌이지. 게다가 성지훈 패거리에 합류하는 조건은 너무도 비정상적이었다.

만약 일반적인 경우처럼 아는 사이여서, 친해져서, 잘 통해서 뭉쳐 다닌다고 하면 그래도 좀 이해해줄 텐데…… 성지훈, 이 또라이 같은 놈은 유소년 팀에 속한 선수 혹은 프로 데뷔를 약속받은 선수 따위를 기준 삼아 소위 잘 나가는 엘리트 집단을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파벌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오솔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처음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이질감을, 그 이질감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하는 것까지…….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주전 선수들과 백업 선수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얼마나 분위기가 안 좋았냐면 같이 훈련을 진행하면서도 말을 안 섞을 정도였다.

그때 당시 병역 문제가 코앞에 닥쳤던 오솔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성지훈의 파벌을 깨트렸다.

‘다시는 내 앞에서 주전이니 백업이니 하며 편 가르지 마라. 어차피 내 기준에서 보면 니들은 다 쩌리거든? 어디서 한 시즌에 스무 골도 못 넣는 것들이 나대고 있어? 허튼짓 말고 나한테 패스나 잘해라. 그럼 내가 알아서 메달까지 다 따줄 테니까.’

바로 자기 외의 모든 선수들을 깔아뭉개는 것이었다. 그 발언 이후 성지훈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자존심은 완전히 구겨졌다.

그러나 아무도 오솔을 어찌하지 못했다. 오솔은 당시 K리그를 그야말로 씹어 먹고 다녔다. 그를 뺀 공격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오솔이 속한 후보팀이 그 외의 베스트 11과 싸워도 5 대 0으로 이길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쓰기 힘든 방법이지.’

그때야 이미 실력도 보여줬고, 인지도도 있었으니 ‘니들이 뭐 어쩔 건데?’라며 막 나갈 수 있었다.

오솔의 입지가 워낙 확고해서 감독도 쉽게 자르지 못하는 시절이라 가능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는 이제 막 첫 소집된 애송이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 살이나 어렸다. 실력을 보인 것도 겨우 전국대회 다섯 경기가 전부였다.

아직은 검증이 더 필요했다. 전생의 경험은 남들이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오솔의 경험이 적다고 여길 것이다.

공식적으로 오솔은 축구를 시작한 지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이건 좋지 않아.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전력으로 부딪쳐도 모자란 상대인데 팀이 분열된 상태에서 만난다? 그랬다간 참패밖에 남지 않을 거야.’

어쩌면 전생처럼 16강에 가기도 전에 주저앉을지 몰랐다.

‘눈꼴시지만 일단은 내버려두고, 감독 눈에 드는 것에 집중하자.’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꾹 참으며 입지를 다지는 것 외에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여민국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참, 아침에 민주가 너 잘 부탁한다고 하던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 너희 둘이 뭐 있어? 혹시 사귀냐?”

“컥! 커험.”

“뭐야, 이 반응은? 둘이 진짜 사귀어?”

오늘 아침, 여민주는 갑자기 오솔을 챙기라는 말을 했고, 여민국의 ‘왜?’라는 물음에 ‘남자 친구니까!’라고 아주 당당히 대답했단다.

여민국은 당시에는 동생의 헛소리 병이 다시 도졌다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오솔과 같이 방에 있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헛소리치곤 좀 심하다 싶더니, 진짜일 줄이야.”

“장난으로 만나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민주를 아프게 하는 일도, 슬프게 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오솔은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의 진심을 보일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여민국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됐어. 나보고 무슨 악수냐고 하더니, 너야말로 오그라들게 뭐 하는 거야. 너희들 연애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난 참견할 생각 없으니까.”

“엥?”

오솔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생에는 무조건 헤어지라며 딴지를 놓았으면서, 이번에는 갑자기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니?

실상은 여민국도 내심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오솔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진 못했다. 다만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여민국의 응원은 거기까지였다.

여민국의 여행가방 안쪽에서 ‘솔이♡에게’라고 적힌 비닐 팩이 나온 것이다. 그곳에는 아버지께서 드시는 피로 회복제를 비롯한 비타민 그리고 견과류 등 각종 먹을거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더불어 여민국이 챙겨놨던 옷가지 몇 벌이 보이지 않았다. 공간이 없다고 멋대로 빼버린 모양이다.

“뭐 이런 어이없는…….”

“어? 이거 제 꺼 맞죠? 하하. 형님, 배달 감사합니다.”

오솔은 은근슬쩍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여버리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물건을 쏙 빼갔다. 그러곤 쪽지에 적힌 대로 당장 견과류부터 챙겨 먹었다.

“딸은 나중에 커서 다 도둑이 된다더니…….”

여민국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 * *

다음날은 훈련에 앞서 체력 점검이 있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점검 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준비 운동을 하며 선수들 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긴장한 얼굴로 몸을 푸는 신입들과 달리 성지훈 패거리는 한 곳에 모여서 밝은 얼굴로 떠들어 댔다. 그들 무리 중엔 고영주가 제일 어려 보였다.

‘87년생은 나 혼자고, 86년생은 고영주를 포함해서 고작 8명.’

팀의 주축은 85년생 선수들이었고, 성지훈 패거리는 이미 주전으로서 입지를 다진 상태였다.

성지훈 일당은 그까지 총 5명이었는데, 그들 모두가 이미 프로 구단과 구두 계약을 끝낸 이들이었다.

86년생인 고영주를 제외한 4명이 주로 몰려다녔는데, 그중에서도 성지훈과 타깃형 스트라이커인 이상현은 특히 친해 보였다.

사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높은 공이나 크로스가 오면 이상현이 머리로 받아 성지훈에게 패스하는 것이 대표팀의 주요 전술이기 때문이다.

‘주요 전술이라기보단 사실상 그 방법밖에 못쓴다는 쪽에 더 가깝지만…….’

현재 청소년 대표팀의 전술은 4-4-2 플랫(flat, 미드필더 네 사람이 일자로 길게 서는 형태)이었다.

전술의 특성상 두 명의 미드필더만으로 중원을 장악해야 했기에,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로 많은 활동량을 선보이는 선수들을 선발했다.

문제는 이들이 활동량과 체력은 남달리 뛰어났지만, 반대로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은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결국 경기가 진행될수록 중앙에서 풀어가는 모습은 사라지고 양 측면을 돌파해서 공을 올리는 식으로 공격이 단순화되곤 했다.

‘당장은 꾸역꾸역 이기고 있지만 글쎄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아시아에서 성적이 나온 이유는 바로 이상현, 성지훈 투톱이 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꽤나 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높은 공이 오면 193㎝의 큰 키를 자랑하는 이상현이 헤딩으로 공을 따낸다. 그러면 성지훈이 그 공을 받아서 어떻게든 마무리한다가 현재 청소년 대표팀의 전술이었다.

상당히 허술한 계획이었다. 일단 전술 중간에 ‘어떻게든’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벌써 불안했다.

‘이제 겨우 1년 남았는데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 처참하네.’

전술 자체는 처참했지만 어찌 되었든 AFC U-19에서는 먹힐 법한 전략이었다. 단순하다고 해서 위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아시아권에서 193㎝의 장신 공격수라는 건 존재만으로 전술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니 FIFA 대회에 가서 죽을 쑤지.’

타 대륙 선수들과 붙는 순간 장신이라는 점은 큰 장점이 되지 못했다. 그쪽에는 만만치 않은 키를 가진 수비수가 널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깃형 스트라이커라면 최소한 그런 선수들과의 경합에서 이겨낼 수 있는 몸싸움 능력과 점프력, 위치 선정 그리고 헤딩 능력을 갖춰야 했다.

그러나 이상현은 그나마 키와 덩치는 아시아에서 수위권에 드는 수준이었으나, 헤딩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 선정 능력은 절망적이었다.

지금은 일부러 공을 높이 찼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 공 속도가 더 빨라지면 낙하지점을 못 찾고 헤매다가 공을 놓치곤 했다.

‘결국 높이라는 장점을 뺏기는 순간 끝나는 거지. 경쟁자가 허접한 걸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청소년 대표팀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인 걸 아쉬워해야 하나?’

오솔은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체력 점검에 들어갔다. 30미터, 50미터에 이어 100미터 달리기까지 마치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최주혁 감독은 기록지에 적힌 수치를 보고 오솔의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30미터는 그나마 괜찮은데, 50미터 100미터는 너무 느리군. 역시 다리보단 타이밍을 읽는 눈이 뛰어난 거였어.’

다리가 느린 건 이미 전국대회 경기 영상을 보며 확인했던 사항이었으나 직접 눈으로 보자 또 느낌이 색달랐다.

경기를 보면 오솔은 순간적으로 노마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의 뒤로 돌아가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저 큰 덩치가 일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경험이 많을 리는 없고, 타고난 감인가?’

최주혁 감독은 오솔이 타이밍을 읽는 감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뭐, 달리기는 느려도 상관없지. 중요한 건 몸싸움과 점프력이니까.’

어차피 현재 전술에서도 역습을 나가는 건 성지훈과 양 날개뿐이었다.

현재 청소년 팀에서 타깃형 스트라이커는 달리기 속도보다는 헤딩과 수비 가담이 중요했고, 오솔은 그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는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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