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20화
각지의 스카우트들은 백운고를 꺾고 올라온 청송고를 주목했다.
“고등학생이 리베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다니 정말 놀라운 걸? 게다가 공수 밸런스도 좋은데?”
스카우트의 평가대로 대회 초반에는 여민국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공수에 걸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팀을 이끄는 모습에서 고등학생답지 않은 카리스마가 엿보였다. 흔히 말하는 보스 기질이 있는 선수였다.
“아직은 좀 부족하지만 잘만 다듬으면 괜찮은 수비 자원이 되겠어. 마침 내년에 졸업이라니 대회가 끝나고 한번 접촉해봐야겠군.”
그러나 여민국을 쫓아 경기를 보러 온 스카우트들은 32강과 16강을 거치면서 조금씩 오솔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지날 때마다 눈에 띄게 발전하는 선수가 눈에 밟히지 않는다면 스카우트라는 명함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스카우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저런 선수가 왜 이제야 보이는 거지?’
사실 오솔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덩치만 유달리 크고 많이 뛰는 선수에 불과했었다. 그나마 돋보이는 건 공중 볼 경합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심 정도랄까?
아니, 투쟁심이라기엔 좀 이상했다. 하는 행동만 봐서는 오히려 위험한 경합을 즐기는 듯했다.
‘방금 머리끼리 부딪히지 않았나?’ 싶어서 보면 오솔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히 일어나 실실 웃어댔다. 상대는 부딪힌 곳에 볼록하니 혹이 나 있는데 말이다.
스카우트는 메모지에 ‘투쟁적이며 몸싸움을 즐김. 그러나 부상의 위험이 있는 플레이는 지양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적어 넣었다.
오솔을 단순히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평가한 것이다. 하긴 아무리 눈이 날카로운 이라고 해도 오솔이 왜 웃는지는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헤딩이 32% 확률로 부정확해집니다.
헤딩 페널티는 경합 과정에서 과도한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1%씩 감소했는데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2에서 5%가량 감소하기도 했다.
오솔은 바로바로 들어오는 보상에 눈이 멀어 높은 공만 보면 반드시 따내겠다는 각오로 몸을 날렸다.
연습 경기 이후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낮은 공에는 머리를 대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Level Up!]
꾸준한 전국대회 출장으로 경험치도 많이 쌓여서 그 사이 레벨이 세 계단이나 상승했다.
오솔은 때가 왔다고 느끼고 그렇게 얻은 포인트를 모두 헤딩에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41로 상승한 헤딩 능력치. 게다가 페널티는 20%대까지 떨어졌다.
이 정도면 실전에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헤딩할 때마다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는 거 같지만, 어쩔 수 없지. 죽는 수만큼 자고 있던 뇌세포가 깨어나길 기대해보자.’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맞이한 8강전, 오솔은 상대팀의 영공(領空)을 시종일관 장악하며 융단폭격에 들어갔다.
가끔가다 공이 엉뚱한 곳으로 튀기도 했으나 그 횟수는 처음 헤딩 연습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많지 않았다.
오솔의 득점이 시작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확실한 무기 하나가 생긴 덕분이었다. 그렇게 넣은 골은 더 많은 경험치를 불러왔고, 레벨은 다시 한번 상승했다.
선순환의 시작이었다.
‘너무 쉽다.’
한번 탄력을 받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페널티를 걷어내자 1회 차에서 계승한 능력치가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오솔은 전생에는 2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밟았던 고지를 이번에는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타고난 몸싸움 능력에 공간을 읽는 눈 그리고 헤딩 능력이 합쳐지자 오솔은 순식간에 고교 최고 수준의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헤딩도 하다 보니까 재밌네. 이런 걸 왜 그리 싫어했는지…….’
신이 나서 그런지 아무리 뛰어도 힘들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그리고 돈을 위해 억지로 했었던 축구가 지금은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주력 감소량이 49%로 변합니다.
경기 중 뛰는 시간이 걷는 시간 대비 일정 비율을 넘어섰을 때, 마침내 주력에 걸려있던 페널티가 1%씩 감소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오솔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도 위력적인데 여기에 속도까지 돌아온다?
이는 그야말로 달리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한층 강해진 오솔은 8강에서도 그리고 4강에서도 골을 넣었다.
그리하여 도달한 대통령금배 결승전, 이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사는 오솔이 어떤 퍼포먼스를 보일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당장 수비수가 급한 구단에서는 오솔보다 여민국에 더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스카우팅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니, 실패라기보다는 여민국의 수비 능력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정확히는 ‘수비’ 능력만 볼 수 없었다.
철썩!
골망이 흔들리는 소리에 골키퍼의 멘탈도 과자 마냥 바사삭 깨져나갔다.
“제기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4 대 0.
같은 결승팀끼리 하는 시합이라고는 믿기 힘든 스코어와 경기력이었다.
속도가 붙은 오솔은 보다 빠르게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공중 볼 경합에서 승리를 거뒀다. 심지어 이제는 달리기도 제법 빨라져서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도 종종 선보였다.
이런 선수가 이제 겨우 1학년이라니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결국 결승전 MOM(Man of the match, 한 경기에서 가장 좋은 플레이를 펼친 선수에게 주는 상)도 오솔의 차지가 되었다.
공수 조율에 중원에 올라와 중거리 슛까지 성공시킨 여민국도 돋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트트릭(Hat-trick,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세 골 이상을 넣는 일)을 터트린 공격수에 비하면 빛이 바랬다.
그날 저녁 올라온 스포츠 기사의 제목은 ‘청송고의 클로제, 오솔. 고교 축구를 제패하다!’였다.
오솔은 헤딩으로 8강과 4강에서 한 골씩, 그리고 결승에서 머리로 두 골, 오른발로 한 골을 넣었다.
기자는 총 다섯 골로 득점왕과 우승 트로피를 모두 차지한 오솔을 독일팀의 ‘고공 폭격기’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빗댄 것이다.
클로제는 1년 전에 있었던 한·일 월드컵에서 머리로만 5골을 넣으며 팀을 결승전까지 끌어올린 사내였으니 참으로 절묘한 비유였다.
* * *
“이야. 우리 클로제 성님 오셨네.”
“까분다, 진짜.”
오솔은 이승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1학년들 틈에 끼어 앉았다.
오늘은 청송고 축구부가 전국을 제패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모름지기 이런 날에는 먹고, 마시고, 즐겨야 했다.
“그래서 빌린 곳이 삼겹살집이라니…….”
난이도에 비해 보상이 너무 짰으나 정작 선수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심지어 후보 명단에도 못 들었던 녀석조차 싱글벙글했다.
오솔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우승의 주역은커녕 조연도 될 수 없었는데 무엇이 그리 즐거울까.
‘단순히 같은 팀이라서? 흐음…… 동료라 이건가?’
물론 찌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하는 최도영 같은 이도 있었다.
만약 오솔의 기용이 실패로 돌아가고, 전국대회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무슨 소리를 지껄였을지 훤히 보였다.
‘됐다. 이제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놈인데 괜히 귀찮기만 하지.’
오솔은 말 그대로 최도영을 무시했다.
이미 대회를 치르기도 전에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그 보상으로 막대한 경험치까지 얻었으니, 그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솔은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깃덩이를 보며 상태창을 띄웠다.
-오솔(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16%)
-신체 : 균형감각 67/ 힘 73(+5)/ 반응속도 64/ 순간속도 61/ 주력 70(45.2%↓)/ 점프력 52/ 지구력 90(30.3%↓)/ 강인함 90(+5)
-기술 : 개인기 36/ 드리블 34/ 볼터치 36/ 슈팅 34/ 패스 36(21.6%↓)/ 헤딩 44(27.4%↓)/ 스로인 14/ 태클 32/ 일대일 마크 34
우승 보상으로 전체 능력치가 1씩 추가로 올랐다. 그러나 이미 90에 다다른 강인함 수치에는 변함이 없었다. 역시 90이상은 훈련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듯했다.
“주장! 어서 오세요. 감독님은요?”
“응, 누굴 좀 만나고 오신다네. 우리 먼저 먹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어.”
여민국은 탁자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간단한 축배사를 읊었다. 그동안 고생했다느니, 너희가 자랑스럽다느니 따위의 말들을 하고는 곧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재밌게도 그들의 잔에는 소주나 맥주 같은 주류가 아닌 사이다가 담겨 있었다.
이런 사이다 중독자들!
오솔은 질색한 표정으로 콜라를 찾았다. 콜라를 챙긴 후 은근슬쩍 여민국 옆에 앉았다.
“참,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예요?”
“갑자기 누가 찾아와서…….”
“혹시 그 찾아왔다는 사람이 구단 관계자인가요?”
여민국의 활약과 그가 3학년이라는 사실, 결승전 직후 누군가 찾았다는 걸 종합하면 구단 관계자 외에는 답이 없었다.
“맞아. K리그 팀이었어.”
“진짜예요, 주장?”
“우와, 대박!”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다 들린 모양이다. 프로 구단에서 사람이 찾아왔다는 말에 1, 2학년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여민국은 순식간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프로 선수, 그것도 K리거가 된다는 건 모든 축구 선수들의 소망이었다.
흔히 K리그 수준을 낮춰 보기 쉬운데, 실상은 같은 나이대의 선수 중 오직 1% 정도만 K리그에 입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입단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서 주전을 따내고 성공하는 게 입단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프로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곧 졸업을 앞둔 3학년 선수들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들도 친구라고 웃는 낯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이 들 것이다.
‘설마 했는데, 이게 이렇게 되나?’
어쩌다 보니 고영주와 백운고가 누렸어야 할 영광을 오솔과 청송고가 다 채가게 되었다.
‘전생에는 분명히 대학에 진학했었는데 말이야.’
여민국은 그곳에서 경력을 이어가며 K리그로의 진출을 모색했었다.
‘지름길로 가게 된 셈인가?’
오솔은 나름대로 전생의 속죄를 했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속이 편안해졌다.
‘뭐 고영주는 1년 더 남았으니 상관없겠지. 게다가 프로팀 유스니까 완전히 나가리 되진 않을 거야.’
다른 곳은 몰라도 나인 테일드 폭스는 고영주를 특별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브라질로 유학까지 보내준 자원을 잊어먹고 있을 리 없었다.
“전부 몇 군데에서 연락 왔어요?”
“두 곳 정도가 꽤 길게 얘기를 했었어. 다른 곳도 있긴 했는데 그냥 연락처만 받아가더라.”
지금 K리그는 드래프트제가 폐지되어 자유선발을 실시하던 시기였다.
이 빌어먹을 드래프트제는 오솔이 졸업할 시기인 2006년에 다시 부활했다가 2015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폐지된다.
‘흥. 나를 겨우 연봉 5천에 부려먹다니. 못된 놈들 같으니.’
오솔이 한참 이를 갈고 있을 때 이탁수 감독이 식당에 들어왔다. 그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중간에 김영은 선생님이라도 만났나 싶을 정도였다.
이후 즐거운 회식이 이어졌다.
이승훈과 황태곤은 누가 더 많이 먹느냐를 두고 겨루기 시작했고, 여민국은 구단 관계자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하나 썰을 풀었다.
“솔아.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
이탁수 감독이 작게 속삭였다. 오솔도 마침 바람을 쐬고 싶었기에 기꺼이 따라나섰다.
“오늘 네 경기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분이 계셨다.”
이탁수 감독은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곤 곧장 결론을 향해 나아갔다.
“협회에서 나왔다고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