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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9화 (1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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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9화

후반전에 들어서 거세게 공격하는 청송고와는 달리 백운고는 공격이 시들시들해졌다. 공격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고영주가 설렁설렁 뛰고 있기 때문이다.

‘골도 하나 넣었고, 굳이 이런 흙바닥에서 민국이 형이랑 엎치락뒤치락할 필요는 없겠지.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손해니까 말이야.’

고영주는 혹시나 공이 오더라도 무리한 개인 돌파보다는 패스를 돌리며 틈을 찾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는 주로 1학년들이 많이 있는 좌측을 공략했다.

이에 맞서 청송고는 더 많이 뛰는 걸로 응수했다. 중원의 미드필더는 물론이고 이제는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는 여민국이 특히 많은 활동량을 선보였다.

오솔도 수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주로 최전방에서 공을 좌측으로 모는 역할을 했다. 공격 전개 단계에서부터 고영주와 먼 쪽으로 공을 유도하는 것이다.

비록 전반부터 수비수로 뛰느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당장은 팀에 기여하려면 이것밖에 없었다. 오솔의 이런 움직임은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수비가 안정화됐어. 슬슬 올라가라, 민국아!’

이탁수 감독과 뜻이 통했는지 여민국은 슬그머니 공을 몰고 미드필드 지역으로 올라갔다.

고영주는 여민국을 따라가지 않고 전방에 남았다. 미약한 수비력을 보태느니 역습을 준비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덕분에 청송고는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여민국이 우측으로 향하자 좌측 미드필더가 수비로 내려앉으며 공수 밸런스를 맞췄다. 그렇다고 해도 공격에 가담한 선수가 일곱이고 수비는 겨우 세 명이었다.

꽤나 공격적인 배분이었다. 만약 공격이 막히면 여민국을 제외한 3명의 수비수로 고영주를 포함한 두 공격수를 막아야 했다. 여민국은 침착하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했다.

‘중간에 인터셉트를 당해선 절대로 안 돼. 골라인을 나가더라도 일단은 마무리까지 가져가자.’

공격의 끝을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상대의 역습을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무척 중요했다. 골킥이든 골키퍼 키핑이든 상관없이 상대가 주춤하는 사이 공격을 했던 팀에서는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턴제 RPG 게임에서 공격을 마치고 턴을 넘기기 전, 캐릭터를 방어 태세로 전환하는 행위와 같았다. 실컷 때리고 마지막에 가드까지 올리는 것이다.

‘그럼 강펀치를 한 방 날려 보자고.’

여민국이 센터 라인을 넘어서자 오솔과 이승훈, 황태곤의 1학년 트리오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비수를 끌고 우측 아래로 내려오는 오솔과 중앙의 빈틈으로 파고드는 이승훈, 마지막으로 우측 사이드 깊숙이 파고드는 황태곤. 세 개의 패스 코스가 모두 전진 패스였다.

‘녀석들, 의욕 만땅이구나.’

신입생이라 좋은 점도 있었다. 바로 백운고라는 이름에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것. 이런 모습을 혹자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백운고의 주전 선수들과 청송고 1학년들은 호랑이과 강아지만큼의 실력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강아지가 꼭 호랑이에게 진다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생존과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강아지가 호랑이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야생의 들개에서 어느덧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친구로 그 위치가 격상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호랑이는 대부분-야생의 호랑이들을 제외하면- 사냥 본능을 잃고 동물원 구경거리로 전락한 신세였다.

이걸 두고 강아지가 호랑이를 이겼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글쎄 비약인지 삐약인지는 대보면 알겠지. 그러니 너희들의 패기를 보여줘 봐, 병아리들아.’

여민국은 힘껏 공을 걷어찼다.

오솔은 수비수를 끌고 나오기 직전, 이승훈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찡긋하고 온몸에 닭살이 돋을법한 윙크를 선보였다. 이승훈의 얼굴이 구겨진 신문지처럼 변했다.

‘윽. 눈 버렸다.’

이승훈은 차라리 인상을 팍팍 쓰던 시절의 오솔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빈 공간으로 침투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연습 때 주고받았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너도 내 미끼 해주면 되잖아. 아까 연습한 것처럼 말이야.’

‘그럼. 언제든지 해줄게. 이제 우리는 한 팀이잖아.’

‘좋아. 그럼 작전을 짜보자.’

당시 둘이 한참을 고민해서 나온 작전 신호가 저렇게 윙크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비위가 상하잖아!’

뻥! 하는 공을 차는 소리가 잡념을 뚫고 뇌리에 박혀 들었다.

이승훈은 달리면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여민국의 패스가 두 사람 사이의 공간으로 낮고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오솔은 중간에 공을 잡아채려는 것처럼 빠르게 내달렸다. 중앙 수비수는 습관처럼 급히 따라붙었다. 그 뒤로 마치 개기일식처럼 이승훈의 모습이 겹쳐졌다.

‘패스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그럼 아예 패스를 안 하면 되지!’

오솔은 공을 받는 척만 하고 가랑이 사이로 공을 흘려보냈다.

공은 빠르게 그를 지나쳤고, 뒤에서 달리고 있던 이승훈은 불쑥 튀어나온 공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냈다.

부드러운 볼터치 덕분에 공이 슈팅하기 딱 알맞은 위치에 놓였다. 공이 반드시 온다고 믿었기에 가능한 컨트롤이었다.

뻐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공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반 24분, 간신히 동점골이 터졌다.

“나이스 슛!”

“패스 죽였어요, 선배.”

“내 센스 있는 플레이도 좋았지?”

오솔의 자화자찬에 이승훈은 순간적으로 속이 불편한 티를 냈다.

“됐고, 윙크 당장 그만둬. 나 진짜로 속이 불편해서 중간에 토 나올 뻔했어.”

“그럴 때는 한번 토하고 나면 괜찮아지는데, 어떻게…… 좀 도와줄까?”

“……그냥 지금처럼 하자.”

두 친구는 농담과 함께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득점을 기뻐했다. 하나둘 몰려든 청송고 선수들 덕분에 그들의 주변에는 어느덧 네댓 명의 선수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오솔은 주변을 둘러싼 시큼한 땀 냄새와 후끈한 열기에 살며시 미소 지었다.

‘하하. 이것도 나쁘지 않네.’

오솔이 코끝이 시큰한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이제는 너무도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패스가 부정확해질 확률이 35.1%로 줄어듭니다.

패스 페널티가 또 1% 줄어들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거야.’ 스킬을 극복하는 방법은 동료들과의 팀워크 상승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스킬명에서 벌써 스포일러가 있었네. 이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나도 참 눈치 없다.’

오솔은 조만간 다른 스킬도 분석하기로 다짐하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있는 이탁수 감독이 보였다. 크게 박수를 치는 은사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일렁이고 있었다. 스승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온몸의 피로가 싹 가셨다.

방금까지는 죽어라 뛰어다닌 탓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어느덧 가슴 곳곳에는 뻐근함 대신 뿌듯함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즐거운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구력 감소량이 42%로 변합니다.

‘역시 지구력은 죽어라 뛰는 수밖에 없구나.’

정확히는 페널티 박스 밖의 활동량이 높을 때 감소하는 거였지만, 오솔로서는 대충 때려 맞출 수밖에 없었다.

[Level Up!]

-보유 포인트 : 3 (포인트를 투자해서 능력치를 올리세요.)

‘오늘, 완전히 날이구나. 이렇게 연달아 대박이 터지다니.’

그야말로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방심하기는 일렀다.

“아직도 20분 넘게 남았어! 다들 긴장 풀지 마!”

여민국은 긴장이 풀어진 선수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려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능력치 상승과 페널티 감소에 살짝 정신이 나가 있던 오솔도 다시 경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풀어진 분위기는 쉽게 조여지지 않았다. 아직 1학년이자 직접 골을 넣은 이승훈은 특히 붕붕 떠 있었다.

“헉!”

그래서일까, 백운고의 측면 수비수는 너무도 쉽게 이승훈을 제쳐냈다. 뒤늦게 달라붙는 황태곤도 2 대 1 패스로 농락하다시피 지나쳤다.

백운고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팀이라 이처럼 청송고가 한순간이라도 조직력을 잃으면 지금처럼 금방 위기를 맞이하곤 했다.

“젠장!”

여민국은 급히 커버에 나섰다. 이대로 상대를 내버려두면 아무런 저항 없이 골라인까지 올라오고 말 것이다. 그건 고영주를 프리로 놓는 것 못지않게 위험했다.

그러나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당장 수 싸움부터 밀리고 있었다. 네 명의 공격수를 여민국을 포함한 단 세 사람의 수비가 막아야 했다.

황태곤이 뒤늦게 따라붙었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이미 공은 여민국 마저 농락하며 중앙의 고영주에게 굴러가고 있었다.

고영주는 막 달라붙는 수비수 하나를 너무도 수월히 지나치더니 20여 미터 남짓한 공간을 노마크 상태로 내달렸다.

“막아!”

누군가의 간절한 음성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 * *

그리고 한 달 후…….

“달려, 영주야!”

전국대회 본선 진출을 결정짓는 청송고와 백운고의 경기에서 모두의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이 나왔다.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단독 돌파를 이어가는 고영주의 모습과 바짝 긴장한 채 앞으로 튀어나오는 청송고의 골키퍼.

이날 백운고의 마지막 역습은 연습 경기에서 봤던 고영주의 쐐기골을 꼭 닮아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건 스코어였다.

3 대 2.

오늘은 연습 경기 때와 달리 청송고가 3 대 2로 백운고를 앞서고 있었다.

“넣어!”

백운고 감독의 입에서 애끓는 소리가 나왔다. 본선 진출이 걸린 너무도 중요한 경기였다.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뻥!

그러나 애석하게도 고영주가 찬 공은 골키퍼는 물론이고 골대까지 가뿐히 넘어갔다.

골라인 아웃이었다.

“아!”

경기장 곳곳에서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백운고의 에이스, 고영주는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고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봤다.

이는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그러나 연습 경기가 아닌 본선 진출전, 동점 상황이 아닌 1점 뒤진 상황이 문제였다. 지나친 부담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고 말았다.

“마, 마지막 기회가…….”

삑, 삑! 삐이이익!

결국 경기가 종료되도록 스코어는 변하지 않았다. 오영진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졌다. 변명의 여지없이 지고 말았어.”

“수고하셨습니다, 감독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참 만만치가 않네요.”

“그래, 이 감독도 수고했어. 그리고…… 참 좋은 선수를 길러냈어. 아니, 좋은 선수들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는 이탁수 감독의 메모지에 적혀 있었다.

청송고 VS 백운고

오솔 – 7 / 61

고영주 – 23 / 68

여민국 – 43(PK)

그리고 그해 여름.

청송고는 마침내 백운고를 꺾고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고영주를 품은 백운고는 우승 후보라고 불러도 무방했는데, 그런 그들을 청송고의 전사들이 무찌른 것이다.

모두들 다윗이 골리앗을 꺾고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우승 후보가 하나 줄었다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팀도 있었다.

그들은 내심 고영주도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청송고와의 대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로 백운고보다 더한 상대가 튀어나왔다.

바로 오솔을 위시한 청송고 선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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