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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5화 (1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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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5화

한편 그 시각, 이탁수 감독은 오랜 숙적인 백운고의 오영진 감독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달칵!

“감독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긴, 새로 들어온 애들 가르친다고 정신없어. 이 감독도 그렇지?”

“하하. 괜찮은 선수가 많이 들어왔나 보네요.”

“매년 똑같지, 뭐. 그나저나 나는 이 감독만 보면 부러워 죽겠어. 아! 나는 언제쯤 내 마음대로 팀을 운영할 수 있을까?”

“저는 오히려 감독님이 부러운데요. 프로 구단 유스 팀이라 지원도 빵빵하고, 성적에 대한 압박감도 덜하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확실히 프로 구단 유스 팀은 다른 고등학교 축구부와 달리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덜했다. 팀의 성적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성장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래서야 내가 감독인지 유소년 축구교실 선생인지 구분이 안 간다니까.”

“제 앞에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매번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시지만 그래도 해마다 전국대회 본선에는 진출하시잖아요.”

“이크, 쏘리 쏘리! 그런데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

“새 피를 수혈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잖아요. 슬슬 연습 게임이나 한번 하자는 거죠.”

“연습 게임? 흐흐. 그거 좋지.”

오영진 감독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탁수 감독은 대충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벌써부터 고영주를 자랑할 생각에 웃음이 나오시나 봐요?”

“이 감독. 내가 봤을 때 자네는 감독 말고 점쟁이를 했어야 해. 어쩜 사람 마음을 그리 잘 꿰뚫어 보나?”

“감독님은 도박 같은 건 절대 하지 마세요. 왜 지는지도 모르고 계속 돈을 잃을 타입이십니다.”

“나한테 축구만 한 도박이 어디 있겠어. 난 이걸로도 충분히 즐거우니 걱정 마시게.”

“아무튼 조만간 한 게임하는 겁니다.”

“오케이. 구체적인 날짜를 고민해 보자고.”

오솔은 등교를 서둘렀다. 오늘은 그토록 고대하던 백운고와의 연습경기 날이었다.

“오늘 시합이 끝나면 또 레벨이 오르겠지?”

오솔은 중얼거림과 함께 오른쪽 귀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상태창을 부르자 익숙한, 그러나 변화된 능력치들이 보였다.

-오솔(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13%)

-신체 : 균형감각 66/ 힘 73(+5)/ 반응속도 63/ 순간속도 60/ 주력 68(50%↓)/ 점프력 50/ 지구력 78(43%↓)/ 강인함 90(+5)

-기술 : 개인기 29/ 드리블 26/ 볼터치 28/ 슈팅 28/ 크로스 13/ 패스 31(36.1%↓)/ 헤딩 31(47.7%↓)/ 스로인 14/ 태클 31/ 일대일 마크 32

-‘스타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컨디션이 B등급(90%)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컨디션의 상승이 눈에 띄었다. 여민주와 다시 만나면서 80%까지 회복했던 컨디션은 이탁수 감독과의 일을 계기로 80%의 고지를 깨고 순식간에 90%에 이르렀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전술을 익히거나 훈련에 매진할 때마다 1%씩 빠르게 상승했던 것이다. 어찌나 빠른 변화였는지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했던 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제는 다시 90%에 막혀서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지만 처음 회귀했을 때를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전체 능력치의 90%면 평상시에 컨디션 조절만 잘 하면 경기에서 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패스 관련 스킬도 많이 변했어.”

오솔의 태도가 바뀌면서 동시에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점점 변화했다. 그는 1학년들끼리 자율 훈련을 할 때는 공격수로 뛰었는데, 이제는 이전처럼 게을리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압박도 가하기도 했고,

이승훈이나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를 하거나 스스로 미끼가 되는 등 미래에 완전체 원톱이 해야 할 역할들을 하나둘 익혀나갔다.

그렇게 달라진 플레이 스타일 때문일까 아니면 팀워크가 상승했기 때문일까? 그날부터 패스 관련 페널티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정확히 10%를 끝으로 멈췄다. 그 이상은 다른 조건이 더 필요해 보였다.

“어쨌든 이제야 비로소 내 몸 같네.”

전력의 90%를 회복한 덕분에 온몸에 힘이 흘러넘쳤다. 원래부터 사기적인 몸싸움 능력은 더욱더 강해졌다. 이제는 무려 유럽의 선수들과 대등한 수준이었다.

그 외에 다른 능력치도 눈부시게 빠른 성장을 보였다. 정상적인 성장으로는 불가능한, 막말로 약이라도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속도였다.

* * *

청송고 축구부는 시합에 앞서 몸을 풀고 간단히 호흡을 맞추는데 집중했다. 시합 전에는 너무 과격한 훈련은 피하는 게 상식이었다.

훈련이 지속되는 동안 최도영은 오솔을 피해 슬쩍슬쩍 자리를 옮겼다. 지난번에 오솔의 손아귀 힘을 맛본 후 계속 저런 상태였다.

오솔은 축구부 내에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얌전히 넘어가 주기로 했다. 당장 들이받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으나 그랬다간 자비를 선뜻 내준 감독님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두고 보자고 내년에 돈으로는 막지 못할 활약을 보여줄 테니까.’

최도영이 얼마나 많은 돈을 학교에 내든 상관없다. 내년에 전국대회 본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면 아무도 오솔을 빼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축구 선수에게 대회에서 입상하는 건 그 자체로 좋은 경력이 된다. 같이 뛰는 다른 동료들은 최도영이 아닌 보다 실력 있는 선수가 같이 뛰길 원할 것이다.

실제로 전생에 이탁수 감독이 오솔을 빼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반대한 것은 학교가 아닌 학부모 측이었다.

그들은 아들이 더 좋은 경력을 바탕으로 프로나 대학 축구에 진출하길 바랐다.

‘3학년이 되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2학년 때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소용없다. 설혹 이후에 몇 경기 뛴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솔과 비교되어 더 초라해질 뿐이었다.

* * *

충분히 몸을 풀고 맞이한 오후. 백운고의 선수들이 작은 버스 두 대에 나눠 타서 학교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선수들의 검은색 체육복 위로 꼬리 7개 달린 여우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자신들이 나인 테일드 폭스의 유소년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시커먼 남정네들 사이로 희고 고운 피부의 청년 하나가 내려섰다. 외모가 너무 곱상해서 귀공자 느낌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한 번도 흙바닥을 뒹굴어본 적 없을 것 같았다.

곧 양 팀의 감독이 악수를 나눴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저희 쪽에서 갔어야 했는데.”

“아니야. 멀어봐야 얼마나 멀다고. 버스가 있는 쪽이 왔다 갔다 하는 편이 낫지.”

프로 구단의 유스팀답게 버스도 있고 여러모로 지원받는 게 많아 보였다. 이탁수 감독은 잠시 부럽다는 표정을 짓다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자, 여기는 오늘 우리와 연습 게임을 할 백운고의 오영진 감독님이시다. 인사드려라.”

“안녕하십니까.”

“오, 그래. 다들 신수가 훤하니 잘생겼네. 아이고. 민국이도 보이네. 이젠 3학년이겠구나?”

“네, 강녕하셨습니까?”

“오냐. 잘 지낸다. 흐흐. 어째 민국이가 우리보다 더 어른스럽다. 대화하다 보면 헷갈려.”

“저도 민국이한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래? 올해도 쉽지 않겠구먼. 자 그럼 우리 애들도 인사해야지. 얘들아!”

백운고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워크맨을 들으며 딴 곳을 보고 있던 고영주만 홀로 떨어져 있었는데, 선배에게 꿀밤을 맞고 뒤늦게 끌려왔다. 그 모습이 영 허술해 보였다.

백운고 선수들도 이탁수 감독에게 인사를 건네고 슬슬 흩어져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오전에 따로 준비 운동을 했겠지만 버스를 타고 오면서 몸이 조금씩 굳었을 것이다.

오솔도 괜히 한 번 더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과 긴장을 풀었다.

“수비수는 처음이라 그런지 좀 떨리네.”

각성 이후 오솔은 서서히 팀원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를 인정한 것은 같은 라인에서 리드하던 여민국이었다. 아무래도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입장이다 보니 변화를 눈치채기 쉬웠다.

‘뒤는 나한테 맡겨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커버해줄 테니까, 믿어!’

이전에는 오솔을 그저 돌봐줘야 할 갓난아기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한 사람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 팀이라는 유대감이 생긴 것 같았다.

‘민주랑 사귀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거품을 물며 반대하려나?’

전생에는 여민국이 졸업한 이후에 사귀었기 때문에 직접 부딪힌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솔과 만난다는 소식에 질겁하며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축구 실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엉망이라며 악평을 쏟았다나?

이후에 오솔이 실수를 저지르고 여민주 곁을 떠나갔으니 그의 평가는 생각보다 정확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국가대표에서 만날 때마다 나한테 이를 갈았었지.’

오솔은 자신보다는 작은, 그러나 제법 굳건한 여민국의 등을 보며 약속했다.

‘이번에는 도망도 실망도 시키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 시작은 이번 연습 시합이 될 것이다.

* * *

양 팀은 시작 전 마주 서서 악수를 주고받았다. 마침 오솔의 상대는 고영주였다.

고영주는 눈을 맞추기 위해 한참 고개를 올려야 했다.

“우와. 키 진짜 크시네요.”

“딱히 키만 큰 건 아닌데…….”

“음?”

고영주는 진영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무슨 뜻인지 깨닫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삐익!

전반전 시작과 동시에 선수들은 제 포지션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라이벌 팀답게 공은 중원에서 왔다 갔다 할 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아직은 서로 탐색전만 벌일 시기였다.

고영주는 잠깐의 여유를 틈타 여민국에게 물었다.

“아, 빵 터졌네. 형, 저 사람 누구예요? 작년에 못 본 것 같은데…….”

“솔이? 이번에 들어왔어. 1학년.”

“엥? 진짜 1학년이에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놀랍네요.”

“오늘, 네 전담 마크맨이니까 자주 마주치게 될 거다.”

여민국은 그 말을 끝으로 수비진으로 물러났다. 그리곤 오솔과 다른 수비수 사이에 서서 수비 간격과 라인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여민국이 라인을 끌어올리자 청송고의 압박이 강해졌다.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청송고가 서서히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헛!”

고영주는 그 모습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다가 누군가 뒤에 붙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키 말고도 여러 가지가-손이나 발, 덩치 등이- 큰 오솔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네가 내 전담 마크맨이라면서? 어디 그만큼 실력도 따라주는지 볼까?”

마침 백운고에서 공을 뺏어 고영주에게 패스했다.

오솔은 온몸으로 고영주를 압박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영주도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공을 잡고선 곧장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러나 좌우 어디로 방향을 틀어도 오솔의 단단한 근육에 가로막혔다. 조금의 공간만 있다면 재껴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오솔은 그 작은 틈조차 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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