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4화
“흐흐흐.”
오솔은 ‘이 미친놈은 뭐야?’라는 표정으로 최도영을 바라봤다. 놈은 아까부터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따금씩 혼잣말로 ‘많이 즐겨둬라.’라든지 ‘역시 돈 없는 놈들은 남한테 빈대 붙는 거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다니까.’ 따위의 말을 뱉고 있었다.
무시하려 했으나 자꾸만 말을 걸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한편으로는 과연 저러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 모기도 아니고 왜 이리 얼쩡얼쩡 거려?”
역시나 놈은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모기, 얼쩡얼쩡…… 하아. 넌 방금 축구부에 붙어있을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찬 거야, 인마.”
“뭐?”
“우리 엄마가 벌써 행정실에서 따지고 있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엄마? 너 무슨 마마보이냐?”
“흐흐흐. 마음대로 지껄여라. 어차피 이제 다 끝났으니까. 너 같이 돈도 없는 놈이 무슨 축구냐, 축구가. 재능? 하하. 재능이고 뭐고 한국에서 선수로 뛰려면 돈부터 있어야지.”
“…….”
“아직도 모르겠냐? 네가 받는 장학금, 그게 누구 주머니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해? 쯧! 건방진 놈. 남의 고혈이나 빼먹는 주제에 잘난 척 설교나 하고 말이야. 흐흐흐. 그래도 몸뚱이 하나만큼은 튼튼하니 다행이다. 나중에 막일이라도 하려면 그거라도 좋아야겠지.”
장학금이란 말에 오솔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아직까지 남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 그가 받는 장학금은 온전히 이탁수 감독의 재량에 따른 선택이었고,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띠리리링!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흐흐. 여보세요. 응. 엄마, 어떻게 됐어?”
오솔은 바짝 긴장해서 귀를 기울였다. 마음 같아서는 최도영의 웃는 면상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일단은 결과를 확인한 다음에 손을 쓰기로 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을 들었는지 최도영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모습에서 그가 지금 얼마나 당황했는지 느껴졌다.
“엄마, 그게 말이 돼요? 장학금이 없다니?”
“행정실에 확인해 보니까 여기에는 축구 장학생 제도 같은 건 없다는데? 도내에 장학금을 주는 곳은 백운고 밖에 없대.”
“어라? 그럼 어떻게…….”
오솔은 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최도영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핸드폰을 끌어당겼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뭐야, 당신 누구야? 도영아?”
“방금 뭐라고 했냐고요? 장학금이 뭐라고요?”
“자, 장학금이 없다고…… 아니, 그보다 넌 뭔데 우리 아들…….”
오솔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행정실로 뛰어 들어갔다.
벌컥!
작은 사무실 안에는 행정실 직원과 오솔의 담임, 김영은 선생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 선생은 갑자기 나타난 오솔을 보고 당황한 듯 큰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솔아. 여긴 어쩐 일이니?”
“하아. 하아.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뭐, 뭘…….”
“제가 뭘 좀 잘못 들은 거 같아서 확인 좀 하려고요. 우리 학교에 축구 장학생 제도 있죠? 그, 왜 학생에게 축구부 회비나 대회 출전비 같은 거 지원해주는 거 있잖아요.”
“…….”
김 선생이 대답을 못하자 오솔은 행정실 직원을 바라봤다. 직원은 잠시 김 선생의 눈치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나인-테일드 폭스에서 지원하는 곳은 백운고뿐이고, 우리 학교는 따로 지원받는 곳이 없어. 당연히 축구 장학금 같은 것도 없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K리그도 조금씩 지역 초중고와 연계하여 유소년 팀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각 구단에서는 유소년 팀 선수를 위해 레슨 지원도 해주고 잘한다 싶으면 해외 유학도 보내주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있었고, 장학금 지원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보통은 초중고 한 곳씩만 유스팀으로 지정해서 지원을 해줬고, 동시에 두 곳을 지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오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장학금이 없다니 말이나 되는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이미 전생에도 3년이나 장학금을 받으며 축구를 해왔는데.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김 선생이 오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솔아…….”
“선생님, 이게 무슨 소리죠?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장학금이 없다니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나왔다는 거죠? 혹시 저만 면제를 받은 건가요?”
“…….”
“일단 선수로 등록되면 면제는 안돼요. 어떻게든 입금은 되어야 하죠.”
이번에도 대답은 행정실 직원이 대신했다.
* * *
“하아. 하아.”
운동장에서 행정실로 그리고 다시 감독실로 전력으로 달린 덕에 숨이 헐떡였다. 그러나 오솔은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네 사정을 알고 감독님께서 자비로 감당하셨어. 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결국 이렇게 한 달 만에 들키고 말았네…….’
“젠장! 어째서, 어째서!”
‘혹시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하지 않으신 거야. 동정하는 걸로 오해할까 걱정도 되고, 무엇보다 네가 축구에만 집중하길 바라셨어.’
‘그래도…… 그래도 전생에는 말해줄 수 있었잖아요!’
오솔은 금방이라도 울부짖을 것 같은 얼굴로 내달렸다. 문득 전생에 봤던 이탁수 감독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몸 건강해라. 솔아. 항상 부상 조심하고.’
이탁수 감독은 그 말을 끝으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모두 오솔의 잘못이었다.
그가 감독님을 쫓아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송고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팀 전체가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필드 전 구역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팀의 에이스가 된 오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상대를 압박하는 대신 골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그가 빠진 자리는 나머지 열 명의 선수가 힘겹게 메워야했다.
자연히 다른 선수들의 부담이 심해졌다.
이탁수 감독은 몇 번이고 오솔을 설득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는 말로는 알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감독은 지역예선에서 오솔을 빼는 초강수를 놓기에 이르렀고, 당연히 오솔은 반발했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목말라했던 학교 측과 학부모들은 오솔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감독은 오솔이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결코 출전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감독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오솔에게는 힘든 일도 아니었다. 마음만 달리 먹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솔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시스템이라는 ‘재능’ 때문에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 정도 ‘배려’는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결국 팀을 떠난 것은 이탁수 감독이었다. 최후의 순간 그는 마지막 변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쫓겨나듯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는 떠나면서 ‘장학금’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건강해라 라는 말. 그것뿐이었다.
오솔이 회귀한 이후에도 장학금 제도가 있다고 확신한 것은 그러한 사연이 있었다.
타탓!
감독실 근처까지 오니 마침 밖에 나와 있는 이탁수 감독이 보였다.
“흐아암!”
길게 찢어지는 입과 나른한 하품, 가늘게 접힌 눈가에는 살짝 눈물도 맺혀있었다. 영락없이 동네 백수의 몰골이었다.
“헉, 헉.”
“오, 솔이야. 오솔! 흐흐. 왜 그렇게 뛰어와. 무슨 급한 일 있냐?”
이름을 갖고 말장난을 하는 걸 보니 아재는 아재였다.
“헉. 허억.”
“일단 숨 좀 돌려라. 물 한 잔 줄까?”
“어째서…….”
“응?”
오솔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기다시피 엎드렸다. 무릎이고 손바닥이고 온통 엉망이 되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왜…… 왜 그러셨어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 왜 그러니?”
오솔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강건한 육체에 어울리지 않게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울컥 흘러넘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목이 잠겨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절규는 그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어요? 왜?’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제가 정말 어리석었어요.’
오솔은 그간의 사정도 모르고 이탁수 감독이 쫓겨났을 때 일말의 후련함을 느꼈었다. 아니,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좋아했었다.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까맣게 잊고 그저 시스템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편협하고 오만한 플레이 스타일을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건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고 아꼈던 은사님을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습게도 회귀하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오솔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시스템의 힘이 아닌 그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축구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제가 어리석었어요. 진짜 중요한 걸 모르고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습니다.’
김영은 선생은 뒤늦게 도착해 이 감독에게 사실이 밝혀졌음을 알렸다. 이탁수 감독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오솔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끄응! 버티지 말고 일어나 이놈아. 팔 아파 죽겠다.”
이탁수 감독도 상당한 근육질이었음에도 산만한 덩치의 오솔을 들어 올리는 건 힘들었다. 계속된 재촉에 오솔은 머뭇거리며 일어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한층 더 엉망이 된 얼굴이 보였다.
“감독님…….”
“왜? 축구가 하고 싶으냐?”
“예?”
“슬램덩크 몰라?”
분위기를 깨는 농담에 김영은 선생의 손바닥이 감독의 등짝을 후려쳤다.
이탁수 감독은 멋쩍은 표정을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지금의 분위기가 간지러워서 억지로 농담을 던진 모양이다. 그래도 농담이 한차례 지나간 덕분에 두 남자의 얼굴에서 어색함이 많이 가셨다.
오솔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감독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잘못하긴 뭘 잘못해. 됐어, 넌 지금 잘하고 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미리 말을 했어야 했는데…….”
“제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러셨다는 거 다 압니다. 저 그렇게 어리지 않습니다.”
“짜식. 알면 그냥 모른 척 축구나 하지 뭘 이렇게 오두방정을 떨어?”
“앞으로 달라질 거예요. 이제야 비로소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오버 하기는…….”
오솔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 * *
며칠이 지나고 오솔을 비롯한 1학년들만의 훈련 시간, 감독도 선배들도 없는 탓에 모두들 설렁설렁 몸을 풀고 있었다. 물론 여러 의미로 새로 태어난 오솔만은 예외였다.
“방금은 나한테 주고 이 뒷공간으로 파고들어 갔어야지. 내가 중앙 수비수를 끌고 나왔잖아.”
“그런가? 그런데 여기서 패스가 올까?”
오솔은 입부 테스트에서 이승훈의 크로스를 믿고 뛰었던 것을 떠올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믿고 뛰어야지. 로빙 스루가 올 수도 있고, 내가 중간에서 방향만 바꿀 수도 있잖아.”
“좋아. 다시 한번 해보자.”
원톱으로 있던 오솔이 밑으로 내려오거나 사이드로 빠지고, 그렇게 생긴 공간으로 이승훈이 파고들었다.
비록 이승훈이 우려했던 대로 패스가 이어지진 않았으나 나쁘지 않았다.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을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원하는 플레이를 펼쳤는가?’였다.
“후우. 잠깐 쉬었다가 하자. 저기 미끼…… 아니지, 승훈아. 가서 스포츠 음료 좀 사 오자.”
“……이젠 이름으로 부르네?”
“뭘 그리 놀라?”
“근 한 달 만에 듣는 이름인데 그럼 안 놀라겠냐?”
“내가 그랬나?”
“그래.”
오솔은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뒤늦게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미안하다. 입부 테스트 때부터 내가 실수를 많이 했지?”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해. 됐어. 다 지난 일인데.”
“고맙다, 진짜.”
나이가 어릴 때는 작은 일 하나에도 쉽게 토라지고 싸우기 쉬웠지만, 반대로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한층 더 친해지기도 쉬웠다.
이승훈 역시 오솔의 진심을 느꼈고,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모두 잊었다.
“어우 닭살.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너도 내 미끼 해줘. 아까 연습한 것처럼.”
“그럼. 언제든지 해줄게. 이제 우리는 한 팀이잖아.”
“너 진짜…… 어디서 닭살 멘트만 공부하다 왔냐? 연애하더니 애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됐네.”
“확! 이게 진지하게 말해줘도 지랄이네 아주.”
“음~ 이제 한결 낫다.”
“크크, 병신.”
“뭐, 병신아. 흐흐.”
욕설이 오고 가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