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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3화 (1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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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3화

“참, 너 오빠랑 같이 수비수로 뛴다며?”

“응.”

“역시 내 안목도 괜찮지? 내가 처음부터 야프 스탐이라고 했잖아. 딱 보니까 수비도 잘 할 것 같더라고.”

“……난 이번 경기만 뛰고 다시 공격수로 돌아갈 거야.”

“왜? 수비수가 어때서? 우리 오빠도 중학교 때까지는 공격수였어. 수비수로 전환한 것은 청송고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제 겨우 2년이 지난 거지.”

확실히 여민국의 재능도 보통이 아니었다. 수준급 공격수에서 단 2년 만에 도내 최고 수준의 수비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감독님이 매일 같이 개인 연습도 도와주시고, 전술 자료도 많이 구해다 주셨다고 하더라고. 요즘에는 감독님의 사랑을 너한테 다 뺏겼다고 서운해 하던데?”

“그거 미안하네.”

“됐어. 오빠가 서운한 건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에게도 재능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감독님이 매일 새벽 훈련을 시키는 거 아니겠어?”

재능이야 당연히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재능이…….

“그러니까 공격수로 안 뛴다고 서운해 하지 말고 열심히 해. 헤헤. 그리고 난 수비수도 좋아. 터프하고 멋있잖아.”

“너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 아닌데?”

“새침하긴!”

여민주는 코끝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오솔은 그녀의 장난스러운 타박이 싫지 않았다. 간지러운 웃음소리는 요정의 장난 같고, 입가의 미소는 달빛을 머금은 듯 포근했다. 맑고 고운 눈동자가 지금처럼 자신만을 바라볼 때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의 시선을 느껴서일까?

여민주는 한동안 눈을 맞추더니 서서히 두 눈을 감았다. 영롱한 눈빛이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밤하늘의 별빛이 구름 뒤로 숨듯이, 황록색 반딧불이가 숲 속 깊이 들어가듯이 그렇게…….

오솔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소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살며시 실눈이 떠졌다. 그녀는 오솔의 멍한 표정을 슬쩍 보더니 입을 달싹였다. 작고 동그란 입술이 시선을 끌었다. 그 와중에 앵두를 연상케 하는 붉은 빛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안 해?”

“어?”

“어…… 그러니까 안 하냐고.”

결국 그녀의 한 마디에 오솔의 인내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거리를 둔다느니 나를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느니 따위의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오솔이 다가오는 걸 본 여민주는 실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뒷목을 감싸 안았다.

‘아!’

분명 처음이었는데도 무언가 그립고도 반가운 기분이었다.

* * *

“진짜 처음 맞아?”

“진짜라니까?”

“그런 것치곤 너무 잘하던데? 흐으음. 의심스러워.”

이번 생은 처음이 맞았다.

‘이거 너무 잘해버렸나?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전력을 다해버렸네.’

다행히 이쪽 스킬은 페널티가 없었는지 본래의 실력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덕분에 여민주는 키스가 끝난 직후, 봄날 피어오르는 새싹처럼 웃었다. 분명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렇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진짜 아니야. 맹세할게."

“알았어. 믿어줄게.”

여민주는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의심을 털어내고 환하게 웃었다.

오솔은 그녀의 입술을 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아까는 생각 없이 입술을 부딪쳤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미성년자였다.

물론 오솔도 지금은 고1이었지만 정신은 서른둘의 아저씨였다. 회귀를 한 탓에 동갑이던 두 사람이 순식간에 띠동갑보다 더 많은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정신연령이 비슷하겠지.’

여민주의 사려 깊은 행동과 말투는 서른둘의 오솔보다 더 성숙하다고 느껴졌다. 어찌 보면 이제야 더 말이 잘 통하는 듯했다.

‘그래, 19금만 조심하자.’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혀나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민주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오솔은 혹시나 전생처럼 실수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입맞춤 이상은 하지 않고 일부러 거리를 뒀다.

여민주는 그럴수록 그가 더 좋아졌다. 스킨십에 집착하는 다른 애들과 달리 의외로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솔이 쑥맥도 아닌 게 일단 했다하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했다.

‘이건 뭐지? 연애 만렙이 경험을 숨김도 아니고.’

어쨌든 그와 함께 있으면 자꾸만 안심이 된다. 든든하고 듬직하다. 그래서일까. 여민주는 만날 때마다 괜히 그를 놀리고 싶어졌다.

“어제 체력 훈련했다더니 진짜 근육이 딱딱하게 뭉쳤네. 이 팔뚝 좀 봐.”

“아니, 어제는 하체 위주로 했는데.”

“어머 정말?”

허벅지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게 영 수상쩍다. 오솔은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그래도 몸이 전체적으로 굳은 거 같아. 내가 안마해줄까? 나 진짜 잘하는데.”

“아, 아니.”

여민주는 거절은 거절한다는 태도로 오솔을 자리에 앉혔다. 널따란 등판으로 돌아간 그녀는 완만한 구릉처럼 솟아오른 어깨선을 따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오솔은 간질간질한 느낌을 참느라 입술을 다물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시스템창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속 스킬, '스타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에 변동이 생깁니다. 컨디션이 D+등급(77%)로 상향 조정됩니다.

‘커, 컨디션이 올랐다고?’

그것도 소수점 몇 퍼센트가 올라간 게 아니라 한 번에 몇 퍼센트가 올라가 버렸다.

오솔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랐다.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으로 꾸준히 컨디션을 올리긴 했지만 이렇게 급성장하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뭐지, 어떤 것 때문에 오른 거야? 서, 설마 안마 때문인가?’

오솔은 여민주가 안 보는 틈에 제 허벅지를 잡고 이리저리 주물러댔다.

‘어라? 이번에는 왜 컨디션이 오르지 않지?’

“아, 뭐야. 거기도 내가 해주려고 했는데 왜 벌써 시작해?”

“여, 여기까지 하려고 했단 말이야?”

“뭐 어때, 순수한 의도로 도와주려는 건데.”

“눈빛은 전혀 순수하지 않다만…….”

“흐음. 뭔가를 기대하셨나요?”

“아니거든!”

-컨디션이 D+등급(78%)로 상향 조정됩니다.

컨디션이 또 올랐다. 이번에는 안마가 아니라 그냥 여민주와 대화만 했는데 오른 것이다. 자세한 이유를 알지는 못했으나 여민주가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민주랑 같이 있을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네.’

여민주는 여러모로 인생의 길잡이 같은 여자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가득 채웠던 미안함이 그녀를 향한 애정으로 변해갔다.

‘이번 생에는 꼭 같이 있자.’

-컨디션이 D+등급(79%)로 상향 조정됩니다.

사실 컨디션에 걸린 페널티는 전생에 술과 파티 등 방탕한 생활과 더불어 피폐해진 정신 상태의 영향이 컸다.

축구 선수들은 훈련을 통해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 못지않게 축구 외적인 환경을 컨트롤하는 것도 중요했다.

만약 연인과 헤어지거나, 빚에 시달린다면 제 컨디션으로 뛰기 불가능할 것이다. 의욕도 줄어들고 맥이 탁 풀리는 느낌 때문에 열정을 불태우기도 힘들다.

반대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면 컨디션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컨디션이 C등급(80%)로 상향 조정됩니다.

여민주와 만나고 단 며칠 만에 오솔의 컨디션은 C등급까지 회복했다.

* * *

최도영은 교실 뒷자리에 틀어박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지난주, 오솔에게 패거리 전체가 당하고 나선 늘 이런 상태였다.

기세에서 한 번, 축구 실력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싸움에서 진 것까지 총 세 번이나 패배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

그 분노의 근원에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상대의 압도적인 힘에서 무력감이 느껴지고, 그런 상대와 벌써 몇 차례나 부딪친 상황이 걱정이었다.

“천하의 최도영이 이게 무슨 꼴이람.”

덕분에 축구 훈련을 할 때마다 그놈의 눈치를 보느라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었다. 그의 18년 인생에서 이처럼 답답한 생활은 처음이었다.

"우라질!"

그러나 개차반 같은 성격은 꾹꾹 누른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었다. 눈치를 보기 시작한 지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최도영은 슬슬 뭉개졌던 자존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답답해서 죽을 거 같아. 그놈을 쫓아내든지 아니면 내가 나가든지 결단을 봐야겠어.”

그러나 힘으로는 오솔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축구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때 급식소 앞에서 대기 중인 여자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희고 고운 피부에 크고 동글동글한 눈이 유독 눈에 띄는 아이였다.

일전에 오솔과 같이 있었던 여자가 분명했다. 얼굴이 예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었다. 조심스럽게 근처에 다가가니 그녀가 친구들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주야. 너 진짜 걔랑 사귀어?”

“누구? 헉! 설마 오솔?”

“응, 정식으로 ‘이제부터 1일이다!’ 이런 건 없었는데, 같이 밥 먹고 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

사실은 키스부터 시작했으나-그것도 본인이 재촉해서-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우, 좀. 그렇지 않니?”

“맞아, 네가 너무 아깝다.”

최도영도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여자와 오솔은 전혀 안 어울렸다. 이 둘보다는 차라리 미녀와 야수 쪽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무섭지 않아?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인상이 좀…… 다가가기 어렵잖아.”

“아니야. 우리 솔이가 얼마나 순둥인데.”

“순둥이라고?”

“내가 손만 잡아도 막 허둥지둥 대면서 부끄러워한다니까. 후훗. 귀여워.”

“귀여워?”

여민주와 대화하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몰래 듣던 최도영도 제 귀를 의심해야 했다.

‘순둥이에다 귀엽다니, 그 로랜드 고릴라 같이 생긴 놈이?’

최도영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여자도 정상은 아니었다.

“걔가 또 얼마나 성실한지 몰라. 매일같이 운동에 신문…… 아니, 시간을 쪼개서 알바도 하고, 공부는 별로 안 하지만 아무튼 착해. 잘하는 것도 많고. 그러니까 니들도 괜히 안 좋은 소문 같은 거 함부로 퍼트리고 다니지 말아줘.”

“진짜 좋은가 보다. 완전히 푹 빠졌네. 그런데 걔 축구 잘해?”

“응, 엄청 잘해. 오죽하면 장학금 받으면서 다닌다니까.”

‘장학금? 무슨 장학금?’

여학생들은 이후로도 계속 수다를 떨었으나 최도영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는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는 온통 신경이 그리로 쏠린 탓이다.

‘어떻게 그딴 실력으로 장학금을 받는다는 거지?’

최도영의 집에서는 매달 축구부에 많은 지원금을 주고 있었다. 축구부의 발전을 위해서 내는 자발적인 지원금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를 주전으로 꽂기 위한 뇌물이었다.

이탁수 감독은 받을 수 없다고 극구 거절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그들의 지원금을 기꺼이 받았다. 그래서 감독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낸 지원금이 장학금으로 바뀌어 꼴도 보기 싫은 놈에게 가고 있었다니,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최도영은 놈이 공짜로 부활동을 한다는 점도 싫었고, 그걸 자신이 도와주고 있다는 건 더 싫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점을 물고 늘어지면 놈을 축구부에서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거 사이즈가 나오는데?”

그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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