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2화 (12/213)

 # 1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2화

“바, 반칙이잖아! 이 새끼 이거 아주 죽으라는 듯이 박네. 야, 너희들도 봤지?”

그러나 심판을 보고 있던 3학년 선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칙 아니니까 어서 일어나.”

“반칙이 아니라고요?”

“응, 심지어 손도 안 쓰더라. 방금 너 저 녀석 가슴으로 부딪힌 거에 당해서 나가떨어진 거야.”

최도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정하고 몸을 날린 느낌이었는데, 그냥 와서 몸만 붙인 거였다니……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뭐야, 너무 쉽잖아?’

오솔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흙먼지를 먹으며 멍하니 앉아있는 최도영의 모습이 볼만했다. 이놈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몸싸움 능력이 영 별로였다.

다 같은 훈련을 받았음에도 개인 능력에 이만한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가 방심을 했다거나 혹은 그만큼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뜻이었다.

열이 받은 최도영이 다시 덤벼들었으나 오솔은 이번에도 역시 쉽게 그를 막아섰다.

‘뭐지? 수비하기 너무 쉬운데?’

오솔은 왜 이리 수비하기 쉬운지 생각하다가 마침내 손바닥을 짝! 하고 부딪쳤다.

‘이 자식…… 거의 안 뛰잖아?’

이승훈이 사이드로도 갔다가 거의 미드필더까지 내려가는 둥 바쁘게 움직였다.

달리 최도영은 오솔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공을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이 오면 오솔과 부딪쳐 바닥을 뒹굴기를 반복했다.

오솔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대처하기가 너무나도 수월했다.

‘가만, 이거 어째…….’

뭔가 익숙한 스타일이었다. 오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딱 나잖아?'

최도영은 공간 침투 능력이 거의 없고 몸싸움이 형편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딱 오솔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오솔의 마이너 버전이랄까?

‘그럼 나도 이렇게 수비하기 쉬웠다는 건가?’

오솔은 자신의 공격 스타일이 얼마나 허접한 것인지 깨닫고는 할 말을 잃었다. 만약 그에게 전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리고 시스템이 없었다면 그도 최도영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불쑥 위기감이 느껴졌다. 1회 차 인생에서는 이런 스타일로도 세계무대에서 먹혔기에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이번 생은 하드 모드라 레벨 업도 느리고 포인트도 줄어들었어. 심지어 페널티 때문에 백 퍼센트 전력을 내지도 못해.’

느려진 달리기 속도 때문에 상대 뒷공간을 파고드는 것도 힘들고, 드리블 실력도 수비수를 제치기에는 부족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까지의 플레이 스타일로는 주전을 확보하기 힘들어 보였다.

‘제기랄. 어떻게 해야 하지?’

10년의 경험, 그것을 바탕으로 갖게 된 절정의 공간 침투 능력. 그러나 느려진 발과 투박해진 발재간 때문에 그 모든 걸 제대로 써먹질 못하고 있었다.

“크헉! 이런 괴물 같은 놈.”

그 와중에 최도영은 어깨를 세우고 들어오다가 도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덤비더니 종내에는 제풀에 지쳐서 주저앉는다.

오솔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런 스타일은 몸싸움에서 밀렸을 때 자신의 플레이를 선보이기 힘들었다. 언젠가 오솔도 몸싸움에서 대등한 상대를 만나게 되면, 이것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게 분명했다.

“이 새끼가…….”

최도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오솔이 대놓고 딴 생각을 하는 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돌파가 통하지 않아 답답해 죽겠는데, 거기에 무시까지 당하자 겨우 유지하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거지새끼가 감히 날 무시해?”

거지새끼라는 말에 오솔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알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가난하단 걸 알고 하는 말 같았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돈 가지고 사람을 무시하네?’

오솔은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축구를 하다보면 이보다 심한 말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는 그를 흔들 수 없었다.

‘그리고 돈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거든.’

학창 시절에는 그저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돈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후에 프로가 되고 광고를 찍다 보면 부(富)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전생에 두고 온 돈만 해도 수백억이었다. 당장 돈이 없다고 해서 움츠려들 거나 창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력의 유무였다.

“나야 돈이 없을 뿐이지만 너는 실력이…… 아니지, 이건 재능이라고 해야겠네. 넌 재능이 없잖아.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매번 노가리만 까니 실력이 그 모양이지. 쯧쯧.”

“뭐? 이런 개새…….”

“재능은 돈으로 살 수 없어. 그리고 그건 노력도 마찬가지지.”

어째 자문자답하는 느낌이었다. 오솔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기술을 배우든지 아니면 공부라도 해라. 아, 공부도 안 되려나? 에이, 됐다. 넌 그냥 대충 살아라. 어차피 집에 돈도 많다며?”

“가, 감히 나한테 그따위 말을 지껄였단 말이지?”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들어. 지금처럼 괜히 축구한답시고 주전 자리 하나 차지해서 민폐 부리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집가서 푹 자라. 그게 우릴 도와주는 거다. 솔직히 너 제대로 할 마음도 없잖아. 그러면서 뭘 얻겠다고 굳이 이 뙤약볕에 나와서 고생을 하고 있냐?”

“……두고 보자. 언젠가 오늘 일을 후회할 거다.”

“후후. 후회라면 이미 질리도록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할 일 없으니 걱정마라.”

오솔은 그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끊었다. 이 이상 영양가 없는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실력과 경험치를 늘려놔야 했다.

‘너무 형편없이 당하면 쪽팔리잖아. 적어도 출장하기로 한 이상 기본은 해야지.’

* * *

“거지같은 놈! 버러지 같은 새끼!”

최도영은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며 두 눈을 번뜩였다.

“어떻게 하려고?”

“몰라. 납작 엎드리면 적당히 하다가 봐주려고 했는데, 이젠 안 되겠어. 다시는 축구부에 발을 못 딛게 해야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무시를 당한 것도 그렇고, 상대의 말에 제대로 반박조차 못했다는 사실도 견디기 힘들었다.

“야. 저녁 훈련 째라. 그 기분으로 무슨 훈련이냐. 오늘 같은 날에는 나가서 한 잔 해야지.”

“야 이 새끼야. 이 와중에 또 술을 찾냐? 그리고 네가 사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한 잔 이야? 어차피 얻어먹을 놈이.”

“새끼, 기분 풀자고 해도 말이 많아.”

최도영의 막말에도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성격은 더러워도 그는 이 무리의 물주였다. 아무래도 대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케이, 가자! 오늘은 훈련이고 뭐고 안 되겠다. 일단 스트레스부터 풀고, 내일부터 그 새끼 완전히 조져버릴 거야.”

“그래, 그래.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빨리 가서 술이나 빨자.”

최도영은 무리를 이끌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행인들은 그들에게서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기분이 좀 풀렸다. 그가 웃는 걸 본 친구 하나가 앞서 가는 여자 하나를 가리켰다.

“야. 저 앞에 괜찮지 않냐? 저기 3시 방향.”

“진작부터 보고 있었어, 인마. 캬~ 다리 죽인다.”

“한번 작업 걸어볼까?”

“좋아. 피부도 하얀 게 딱 내 타입이다.”

일행 중 그나마 번듯하고 가장 말발이 되는 이가 후다닥 뛰어가 말을 걸었다.

최도영은 오늘은 어느 술집을 뚫을까 고민하며 여성의 뒤태를 감상했다. 여자는 키가 제법 커서 얼핏 모델 느낌이 났다.

‘그래, 어차피 오솔 그 새끼는 평생 여자도 못 만날 거야. 얼굴도 무슨 범죄자처럼 생긴데다가 땡전 한 푼 없으니까. 흐흐흐. 돈도 없는 놈이 무슨 여자를 만나겠어.’

한데 작업이 순탄치 않았는지 여자가 친구 놈을 피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야!”

여자는 반가운 인사말과 함께 막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사람에게 팔짱을 꼈다.

“쳇! 임자 있는 년인가 본데?”

“야. 우리가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잠깐 놀자는 건데 임자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흐흐. 하긴, 상관없지.”

불량한 무리들이 여자와 새로 나타난 남자를 둘러쌌다. 그들은 적당히 위협을 하고, 그게 안 통하면 무력행사까지 할 생각으로 손목을 풀었다. 그러나 정작 여자를 데려오라던 최도영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우뚝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이놈 졸라 크잖아?”

“그러게 이거 사람 맞아? 꼭 프로틴을 먹인 소처럼 생겼는데?”

오늘 최도영과 같이 나온 무리는 축구부가 아니었다. 단순히 최도영에게 기생해서 유흥을 즐기려는 녀석들뿐이었다. 그래서 눈앞의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몰랐다. 여자가 남자의 팔뚝을 잡고 말했다.

“솔아. 미안해. 너무 무서워서.”

“괜찮아.”

두 사람은 오솔과 여민주였다. 그들은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이고도 태연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솔이야 그렇다고 쳐도 여민주는 정말 대단한 깡이었다.

‘하긴 그러니 전생에서도 먼저 다가온 거겠지.’

오솔의 인생에서 먼저 다가와준 여자는 여민주가 유일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지 못했다. 정식으로 사귀고 나서 물어봤을 때도 그녀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은 힘을 좀 쓰기로 했다. 돈이 없다고 무시당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누군가 그녀를 괴롭히는 꼴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 우리 무시하는 거냐?”

“와. 대놓고 연애하네? 이거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어?”

“운동 좀 했나 본데, 그런 프로틴 근육이랑 실전 근육은 다르다. 아가야. 괜히 여자 앞이라고 폼 재지 말고 꺼져라.”

"풋!"

오솔은 최근 들어 많이 웃는다고 생각했다. 개그맨 시험장도 아니고 어디서 자꾸 이런 놈들이 튀어나와 웃기려 드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 웃어? 허허. 겁나 어이없네. 야, 웃기냐? 웃겨?”

오솔이 실소를 터트리자 무리 중 하나가 그에게 손바닥을 날렸다. 아마도 뺨을 치려는 의도 같았다.

오솔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곤 천천히 들어 올렸다. 상대는 그리 마른 몸도 아니었는데 너무도 쉽게 떠올랐다.

“아아악! 이거 놔, 이 새끼야!”

“잘못하면 어깨 빠진다. 힘 바짝 줘라.”

“뭘 보고만 있어 이 새끼들아!”

멍하니 보고만 있던 놈들이 발작적으로 달려들었다. 한 놈은 오솔의 옆구리를 노리고 발을 들어 올렸고, 다른 놈은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오솔은 쥐고 있던 손목을 놓고 고개를 살짝 숙여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옆구리에 닿은 발은 그대로 겨드랑이에 끼워 속박했다. 그러곤 손을 뻗어 주먹질한 놈의 머리를 잡고 옆으로 내던져 버렸다.

쿠당탕!

놈은 발길질을 한 녀석과 한 몸이 되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돌아보니 뒤늦게 달려들려다가 주춤거리는 녀석이 둘이나 보였다. 그중 하나는 슬쩍 여민주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얘 건들면 진짜 어디 하나 부러진다고 생각해라. 그땐 진짜 안 봐준다.”

여민주를 보던 놈이 급히 눈알을 바닥에 깔았다. 넘어진 놈들이 감싸 쥔 부위들이 벌겋게 변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손가락 자국,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었다.

'이게 봐준 거야?'

도저히 덤빌 생각이 안 들었다.

“빨리 꺼져. 다시 얼쩡거리면 진짜 다 죽는다. 참, 그리고 너!”

오솔은 무리 중 한 사람을 가리켰다. 지적당한 놈은 총구에 겨눠진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오솔은 놈의 길게 늘어진 노란 머리카락을 보고, 짧게 명령했다.

“머리 좀 깎아라, 새끼야. 네가 무슨 요크셔테리어냐? 에휴. 개는 귀엽기라도 하지.”

오솔에게 외모를 지적당한 놈이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으나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떠났다. 상황이 끝나고, 여민주는 오솔의 옆구리를 슬슬 만지며 물었다.

“솔아. 괜찮아?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아, 아니. 괜찮…… 그, 그만 좀 만져.”

“어머 미안. 혹시나 멍들진 않았나 싶어서. 잠깐 벗어볼래? 내가 확인해줄게.”

“뭘 벗어? 됐어, 멀쩡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심판 몰래 옆구리에 팔꿈치를 찍어대는 놈도 있는 게 축구판이었다. 이 정도 타격이야 애교 수준이었다. 그래도 여민주의 입장에선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 사람들 같던데 괜찮을까?”

“혹시나 학교에서 귀찮게 하면 말해. 안 그래도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것 같던데 좀 도와주지, 뭐.”

“헤헤. 박력 터진다, 야.”

‘하아. 이게 아닌데. 왜 자꾸 친해지고 있는 거야?’

오솔은 자꾸만 거리를 좁혀오는 여민주를 밀어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