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1화
3장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최도영은 친한 일진들과 모여 담배 피우고 있었다.
“진짜야?”
“그래, 중학교 때 나름 유명한 놈이었다네. 힘이 얼마나 센지 사람을 양손으로 들어서 던진다더라.”
“그래서 싸우다가 소년원에 갔다 온 거야?”
“아니?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뭐 1년 꿇어다느니 그런 얘기는 없었어?”
“어. 제 나이 맞대. 흐흐흐. 그게 더 웃기지 않냐? 그 얼굴로 고1이라니.”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사이 몇 명이 더 합류했다. 최도영은 담배를 건네주며 물었다.
“왔냐? 뭐래?”
“1학년들한테 물어봤는데 친구들이랑 문제없이 어울린다고 하더라. 장난 같은 것도 잘 받아주고, 생각보다 착하다는데?”
“이거 뭐야, 우리 설마 뻥카에 당한 거냐?”
친구 중 하나가 아직 할 얘기가 남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참, 그리고 누가 그 녀석이 새벽에 신문 배달하는 걸 봤다고 하더라?”
“신문 배달?”
“응, 공을 차면서 배달하는 게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대. 얼굴 보여주니까 확실하다더라.”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한다고?”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카악. 퉤!”
일진 중 하나가 가래침을 거하게 뱉으며 한쪽 입꼬리만 슬그머니 올렸다. 최도영은 급히 물었다.
“무슨 소문?”
“아니, 그 새끼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소문이 있었거든. 초등학교 동창이 들었다는데 걔네 아빠 집에 처박혀서 술만 마시고, 집은 엄마가 식당 일하면서 먹여 살린다더라.”
“그래?”
몇몇 축구부 선배들은 오솔의 가정사를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으나 최도영은 달랐다.
최도영은 집안이 부유했다. 그 덕분에 축구부에 많은 지원금을 내며 주전 자리를 확보한 그는 이미 어린 나이에 돈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 꼿꼿한 감독 새끼도 돈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 하잖아.’
나이가 어릴 때는 잘 모른다. 당장은 돈보다는 주먹이 더 먹히는 시기니까. 그러나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돈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곧 힘이 된다.
고등학생은 소년이자 청년인 시기였다. 최도영은 치기 어린 어린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추악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X도 없는 놈이 감히 날 가지고 놀았다 이거지?’
그는 아버지의 재력, 힘이 곧 그의 것인 양 행동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인 오솔은 그야말로 뭣도 없는 병신일 뿐이었다. 게다가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완전 막 나가는 인생도 아니었다. 이러면 더 무서울 게 없었다.
‘가만, 돈도 없다는 새끼가 무슨 수로 축구부에 들어왔지? 축구부 회비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최도영은 이번 주에 집에 가면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후우. 역시 식후땡이 최고다. 존나 달다.”
“갑자기 기분 좋아 보인다?”
“어. 별거 없는 놈이란 걸 알았으니까 이제 어떻게 괴롭혀야 할지 고민할 일만 남았잖아. 흐흐.”
“가만 보면 이 새끼 완전 악마라니까?”
“진짜, 나중에 이런 놈이 군대 선임이면 어떻게 하지?”
“그럼 니들은 나한테 다 죽는 거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난 군대 빠질 거니까.”
최도영은 낄낄대는 무리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날의 치욕을 갚을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댔다.
* * *
일주일 후, 이탁수 감독은 오솔과 여민국을 함께 불렀다. 이제는 오솔도 어느 정도 수비의 기초를 익힌 상태였으니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어서들 와라. 너희 둘을 같이 부른 이유를 알겠니?”
“최근에 솔이가 수비 훈련을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같이 훈련하라는 뜻 아닙니까?”
“맞다. 곧 백운고와 연습경기를 할 생각인데 거기서 솔이를 포함한 수비진을 꾸리고 싶다.”
오솔을 주전으로 기용한다는 말에 여민국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비록 연습경기였지만, 백운고와 고영주는 그가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상대였다. 그런 상대에게 최상의 전력으로 붙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아쉬워할 것 없다. 연습경기는 말 그대로 연습경기일 뿐이니까.”
“……이렇게 갑자기 팀을 짜면 호흡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여민국은 조심스럽게 호흡 문제를 거론했다. 오솔의 수비력이나 기초적인 체력도 걱정이었지만, 그는 수비진의 리더로서 팀워크를 맞추는 것에 먼저 생각이 갔다.
중앙 지역은 골이 터지기 쉬운, 소위 위험 지역이라 조금이라도 커버가 늦거나 마크를 놓치면 적에게 실점의 기회를 내주고 만다. 이를 막으려면 수비진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수비진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프로 선수들도 최소한 두 달은 투자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고, 고등학교 레벨에서는 적어도 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훈련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상대해야 하는 팀은 도내 1순위 팀이었다. 여민국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탁수 감독은 차분히 설득에 들어갔다.
“민국아. 넌 프로에 도전할 생각이지?”
“그렇습니다.”
“지금의 넌 축구부 최고참이지만 1년 뒤 프로 팀에 들어가면 다시 막내가 되는 거야. 게다가 지금은 지난 2년간 호흡을 맞춰온 동료들이 있지만, 프로팀에서는 널 뺀 나머지 수비수들이 몇 년간 호흡을 맞춰온 상태겠지.”
“……그렇겠죠.”
“프로의 세계에선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 같은 건 통하지 않아. 무조건 실력이다. 기존의 수비수들보다 널 넣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해.”
여민국은 어린 나이임에도 커맨더 수비수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빠른 상황 판단과 예측력으로 발휘하는 커버 능력은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러나 프로에 올라가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한 수비수들이 즐비했다. 적어도 10년은 더 뛴 존재들인데 상식적으로 그들의 판단력이 여민국보다 못할까?
결국 판단력 같은 것들은 프로가 된 후에는 더 이상 장점이 되지 못한다. 신인 시절에는 경험보다는 젊음을 바탕으로 한 체력 그리고 힘을 내세워야 했다.
‘혹은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판단력을 보이거나.’
이 감독은 여민국이 자신의 장점을 보다 날카롭게 갈고 닦았으면 했다. 구멍이나 다름없는 오솔을 커버하려면 지금까지 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해야 했고 더 빠른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솔의 수비 합류는 여민국에게도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네, 알겠습니다.”
여민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에도 감독의 판단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여민국은 오솔과 같이 훈련장으로 돌아가며 물었다.
“우리 팀전술에 대해 알고 있니?”
오솔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어떤 포메이션을 쓰는지 각각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지 훤히 꿰고 있었지만 함부로 그런 티를 낼 수 없었다.
“현재 우리 팀은 3-4-3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지난번 월드컵에서 대표팀 전술과 흡사하다고 보면 돼.”
‘알지. 당신이 딱 홍명문 역할이잖아.’
3백의 중앙에서 서서 두 명의 스토퍼(Stopper, 저지하는 자) 뒤를 받치는 게 여민국의 역할이었다. 그는 스루패스 차단과 협력 수비, 수비 지휘 등에 능해 몇 년 후 포스트 홍명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너는 내 오른쪽에 서서 수비를 하게 될 거야. 상대 공격수에게 붙어서 적극적으로 몸싸움하고 라인을 올리지 못하게 막는 역할이지.”
수비 조정은 여민국이 도맡아 한다. 덕분에 오솔은 생각이란 걸 접어두고 상대 공격수만 쫓아다니면 되었다.
복잡한 스위칭 플레이나 2 대 1 패스 같은 걸 당하면 금방 돌파되겠지만, 이후의 상황은 모두 여민국이 커버할 것이다.
“사실 너는 한 사람만 제 힘을 못 내게 하면 돼.”
“고영주 말이군요.”
“그래, 백운고의 에이스.”
오솔에게 주어진 역할은 간단했다. 고영주에게 바짝 붙어서 그가 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 혹은 공을 받더라도 쉽게 돌아서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충분히 통할만한 작전이었다. 이미 오솔의 몸싸움 능력은 고등학교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고영주라고 해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백운고는 전통적으로 4-4-2 시스템을 사용하지. 아마 고영주는 투톱 중 하나로 출전할 거야.”
4-4-2와 3-4-3이 붙었을 때 관건은 누가 주도권을 잡고 몰아치느냐에 있었다.
3-4-3은 수비에 몰리게 되면 측면 미드필더가 밑으로 내려와 사실상 5백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격으로 전환할 때 스피드나 파괴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물론 4-4-2도 수세에 몰리면 괴로워지는 건 마찬가지다. 3-4-3은 진형의 특성상 4-4-2보다 패스 코스를 만들기 쉬웠다.
그래서 4-4-2 시스템에서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선수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뛰어야 한다. 자연히 체력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물고 물리는 싸움이었다.
이탁수 감독은 선수들의 체력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백운고 감독은 선수들의 기술 훈련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전술에서도 갈려서 청송고는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데에 반해 백운고는 선수 개개인의 개인기가 뛰어나 전체적으로 탈압박에 능했다.
압박과 탈압박의 싸움에서는 결국 더 잘하는 놈이 이기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백운고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양 팀의 역대 전적을 보면 약 4 대 6 정도로 청송고가 살짝 밀리는 형국이었다.
“올해부터 고영주가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할 테니, 이전보다 더 막기 힘들어질 거야.”
“쳇! 수비할 생각만 하니까 안 되는 거죠. 내가 공격수로 뛰면 다 해결될 일인데, 너무 뺑 돌아가네요.”
전생에 백운고는 오솔 한 사람 때문에 완전히 박살이 났었다. 오솔같은 전천후 공격수에게 4-4-2 전술은 구멍이 송송 뚫린 치즈와 같았다.
라인을 올린 탓에 넓게 펼쳐진 수비 뒷공간은 냅다 달리기 좋았고,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1.5선)은 공을 갖고 재주를 부리기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비만 해야 하니 자연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으으. 그래도 이번만 수비로 뛰면 되니까 참자.’
그날부터 오솔은 3백의 일원이 되어 호흡을 맞춰나갔다. 이전 생에 ‘다시!’라는 말이 딱지가 되어 앉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여민국의 ‘나가! 들어와!’가 귓가에 윙윙 맴돌았다.
“공을 잡고 돌지 못하게 막아!”
“일단 공을 줬으면 섣불리 달라붙지 말고 저지만 해!”
“상대방을 사이드로 몰아. 중앙에는 공격수가 하나 더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수비 훈련 중에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상대를 자연스럽게 사이드로 모는 행위였다.
고영주가 양발을 두루 잘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오른발잡이다 보니 왼발 사용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중앙으로 파고들지만 못하게 막으면 투톱의 연계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부정확한 컨트롤에 따른 실수까지 유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측면 미드필더가 협력 수비를 하러 내려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때 상대 측면 미드필더는 우측 공격수가 내려와서 맡는다.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가중되지만 꾸준히 해왔던 피지컬 트레이닝 덕분에 이 같은 활동량은 후반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오솔이 막 훈련을 시작할 때였다.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야! 1학년!”
“…….”
오솔은 마주 선 공격수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말을 걸지?’라는 표정이 아니라 ‘누구지?’에 더 가까운 얼굴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잊은 버린 것이다.
“그 얼굴은 뭐야? 설마 내 얼굴을 잊은 거냐?”
“아아. 이제 생각났다. 그때 날 귀찮게 한 녀석이군.”
“녀, 녀석? 귀찮게 해?”
“왜 뭐 할 말이라도 있냐?”
“이런 건방진 새끼…….”
최도영은 이를 악물고 오솔을 노려봤다. 그러나 곧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오솔이 분노 조절을 도와줬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젠장! 어디 나한테 탈탈 털리고 나서도 그따위 태도가 계속되는지 보자.’
“패스해!”
최도영은 오솔의 수비가 형편없는 걸 알고 패스를 요구했다. 힘으로는 상대하기 힘들었지만 축구 실력이라면 자신이 월등히 높다고 생각했다.
오솔과 직접 부딪힌 적이 없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쉬웠다. 겉으로 보기에 오솔은 패스도 형편없고, 헤딩도 엉망인 데다 스피드나 체력도 안 좋은 편이었다.
‘축구는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이 곰탱아.’
최도영은 오솔을 비웃으며 공을 잡았다. 역시나 오솔은 한 걸음 늦게 따라붙었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상체를 한차례 흔들었다. 상체 페인팅으로 방향 전환을 속이고 돌파하려는 속셈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쿠웅!
“억!”
최도영은 덤프트럭에 치인 듯한 충격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돌아보니 공은 어느새 오솔의 발밑에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