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10화
“야! 1학년 너, 일로 와봐.”
그 날 저녁, 오솔은 식사 후 일단의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학교 뒤편 으슥한 공간, 일부 학생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는 곳으로 유명한 장소. 그곳에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무리를 짓고 서 있었다.
오솔은 무시하고 가려했으나 몇몇 낯이 익은 얼굴을 보고 걸음을 돌렸다. 오늘 하루 동안 훈련하면서 한 번쯤은 봤던 얼굴들이었다. 축구부 선배들이 분명했다.
‘다섯인가? 꽤나 많네.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나 본데…….’
건장한 덩치의 2학년 선수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오솔을 째려봤다. 물론 그래 봐야 오솔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솔직히 작다리를 짚고 바닥에 침을 뱉는 모습이 위협은커녕 우습기만 했다.
‘한심하긴, 그걸 위협이라고 하는 거냐?’
오솔은 전생에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 사이에 끼어서 원톱으로 뛴 적도 있었다. 190㎝에 가까운 두 거구와의 몸싸움에도 기죽지 않았던 그가 겨우 180㎝ 남짓한 소년들에게 겁을 먹을 리 없었다.
‘어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볼까?’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고개를 까닥거리자 놈들의 눈썹이 꿈틀댔다. 역시나, 곧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너 이 새끼, 미쳤구나? 주머니에 손 안 빼?”
“햐~ 이거 듣던 대로 싸가지가 바가지네.”
“이 새끼가 선배님 말씀하시는데…… 눈깔 안 깔아? 확! 그냥.”
“풉! 크큭.”
오솔은 끝까지 참으려고 했으나 너무 구수한 욕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우, 웃어?”
노골적인 비웃음에 앉아있던 이들까지 모두 일어나 오솔을 감쌌다. 정면에는 전술 훈련 때 오솔에게 비웃음을 당했던 공격수가 섰다. 그는 압도적인 숫자에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오솔의 발 앞에 침을 찍하고 뱉었다.
“너 아까 낮에 뭐라고 했냐? 응?”
“낮에? 글쎄, 기억이 안 나네. 내가 뭐라고 했는데?”
대놓고 한 반말에 선배들의 말문이 막혔다. 하늘 같은 선배들이고, 인원도 많았다. 보통은 바짝 졸아야 정상인데, 오히려 반말을 찍찍 뱉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실력 형편없다고 한 거?”
“그래, 이 새끼야.”
“하지만 그게 팩트잖아. 아, 팩트가 뭔지 모르려나?”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 참! 어이가 없네. 너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냐?”
“어떤 상황인데?”
오솔이 팔을 들어 올리자 주위에서 흠칫하며 물러났다. 오솔은 ‘왜 그래?’라는 표정으로 한 차례 기지개를 켰다. 놀림을 당했다는 생각에 몇몇이 얼굴을 붉혔다.
뚜둑! 뚝!
오솔은 가볍게 손목을 풀었다. 먼저 힘을 쓰진 않겠지만 상대가 먼저 덤벼든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칠 생각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이들의 시선이 그의 팔뚝으로 향했다. 웬만한 어린아이 얼굴만 한 주먹이 붕붕 돌아가고 있었다.
‘이 새끼 주먹이 왜 이렇게 커.’
‘5 대 1인데 안 무섭다는 거야? 아니, 지가 무슨 표도르야? 진짜 붙자고?’
‘이런 씨! 무섭잖아!’
“이, 이게 선배님 말씀하시는데 꼬박꼬박 말대꾸하네.”
“난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 따위 듣지 않는다.”
오솔은 어디선가 들어온 대사를 치며 선배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성급한 놈 하나가 지레 겁을 먹고 달려들었다.
퍼억!
아악!
놈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왔던 것보다 더 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대자로 뻗은 놈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렸다.
“기, 기절했잖아? 이런 미친놈. 선배를 쳐?”
“먼저 달려들어 놓고 뭔 소리야? 그리고 저것도 봐준 거다. 내가 진짜로 치면 저 정도로 안 끝나.”
“윽…….”
“뭐해? 안 덤벼?”
선배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하나 나서지 못했다.
“후우. 싱거운 놈들. 앞으로는 나 귀찮게 하지 마라. 안 그래도 고등학교 다시 다니느라 짜증나 죽겠으니까.”
오솔은 충분히 겁을 줬다는 판단을 하고 몸을 돌렸다. 덤벼드는 놈에게는 본 떼를 보여주겠지만, 저렇게 겁에 질려있는 놈들을 상대로는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새끼들이 어딜 주제도 모르고 덤벼? 전생에 내 별명이 벌꿀 오소리(Honey Badger)였다. 이놈들아.’
벌꿀 오소리는 오솔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보고, 한국 네티즌들이 지은 별명이었다. 그의 이름과 발음도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별명으로 굳어졌다.
벌꿀 오소리는 족제비과 동물로 지구에서 가장 겁 없는 동물로 유명했다. 안하무인격인 오솔에게 딱 맞는 별명이었다.
* * *
한편 오솔이 떠나간 자리에는 일을 주도했던 최도영을 비롯한 친구들이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선배라는 위치와 숫자로 기를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오솔 한 사람에게 당하고 말았다.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다시 다닌다는 게 무슨 뜻일까?”
“헉! 설마, 소년원?”
“맞네. 사고 친 거 아니면 고등학교를 다시 다닐 이유가 뭐가 있겠어.”
“서, 설마. 유학을 갔다 왔을 수도 있잖아.”
“네 눈엔 쟤가 외국에서 공부했을 놈으로 보이냐?”
“절대 아니지. 배웠어도 야쿠자들한테 살인 기술 같은 거나 배웠을 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최도영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방금 전 오솔의 눈빛을 보고 겁에 질린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더해 알 수 없는 과거까지 존재하니 더욱더 무서웠다.
“그거 확실해?”
“우리야 모르지. 그렇지만 학교를 다시 다닌다는 건 그 두 가지 경우 외엔 없지 않나?”
“가만 그럼 우리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겠다.”
“아! 그래서 아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한 건가?”
여러모로 오해가 쌓이고 있었다.
* * *
“아우 씨. 야, 좀 그만 뛰어라. 넌 힘들지도 않냐?”
오솔은 이승훈을 따라붙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수비 훈련을 시작한 지 벌써 사흘 째,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이승훈의 체력이 상당히 좋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입부 테스트에서 막판까지 빠른 몸놀림을 보여줬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뭐 여기까지는 좋았다. 앞으로 3년 동안 호흡을 맞춰야 할 사이였으니, 동료가 체력이 좋다는 건 오솔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은 오솔이 이 녀석을 마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원톱처럼 움직여. 상황을 봐서 밑으로 내려와서 미드필더와 연계하거나 아니면 사이드로 빠져서 공간을 만들어라.’
이승훈은 이탁수 감독의 지시를 떠올리며 쉼 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오솔의 마크가 소홀해지면 곧바로 공을 받아 돌파를 시도했다. 이제 막 수비의 기초를 익히는 중인 오솔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에잇! 또 놓쳤네.”
훈련은 매일 같은 식으로 반복되었다.
초반에는 오솔이 이승훈을 힘으로 몰아붙여서 공은 털끝 하나 못 만지게 하다가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상황이 역전되는 것이다.
오솔의 걸음은 느려지고 점점 이승훈을 제때 마크하는 게 힘들어졌다. 이때부터는 이승훈의 꽁지를 쫓기에 바빠진다.
“헥헥. 야! 이 미친놈아. 너처럼 뛰었다간 전반전 끝나기도 전에 바로 퍼지겠다. 페이스 조절 좀 해.”
“후우. 후우. 나는 괜찮으니까 네 걱정이나 해. 너는 그러다가 숨이 넘어가겠다. 그래 가지고 풀타임 출장을 할 수 있겠어? 설마 중앙 수비수인데 교체로 들어가려고?”
“망할 미끼 주제에…….”
“그럼 미끼를 쫓는 넌 물고기겠네? 나 잡아 봐라~ 하하하!”
이승훈은 농담과 함께 통쾌하게 웃어 재꼈다. 두 사람은 같이 훈련을 하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상태였다. 둘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서로 쫓고 쫓기며 구수한 욕을 주고받는 모습은 ‘친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헥헥. 잠깐, 이러다 진짜 죽겠다. 잠깐만 쉬었다가 하자.”
한참을 쫓아가던 오솔이 결국 앓는 소리를 냈다. 벌써 훈련을 3세트나 끝냈다. 중간에 1분씩 쉬었다고 해도 근 27분가량을 죽어라 뛰어다닌 셈이다. 덕분에 체력이 금방 바닥나버렸다.
오솔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심장이 갓 잡아 올린 물고기 마냥 펄떡거려서 고통스러웠다.
‘하아. 하아. 이거 몇 번만 더 반복하면 지구력이 또 오르겠다.’
사실 축구 선수라고 90분 내내 달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걷거나 서서 보낸다.
통계에 따르면 걷는 게 37분 48초, 서 있는 게 17분 6초다. 조깅하듯 뛰는 15분 18초까지 합치면 가볍게 움직이는 시간이 약 70분이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시간은 고작 20분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이 중에서 전력으로 달리는 시간은 고작 54초…… 1분도 안됐다.
오솔이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도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여기에 있었다. 그는 뛰어난 예측력으로 미리 공간을 선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수비수로 뛰게 된 이상 방법이 없었다. 공격수가 뛰면 마크하기 위해 죽자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똥개 훈련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내가 이거 보고 참는다.’
-레벨 업! 포인트를 투자하세요!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능력치가 올랐는지 훈련 중간 레벨 업 소식이 들렸다. 만약 이런 가시적인 성과조차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것이다.
‘한번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해볼까?’
-[Level Up!]
-오솔(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7%)
-지구력 74(45.8%↓)
-패스 25(48.2%↓)/ 헤딩 23(49.4%↓)/ 태클 27/ 일대일 마크 29
-컨디션이 D+등급(73.4%)
-경험치 17.4%
왼발 숙련도 증가가 유독 돋보였다.
오솔은 전생에 왼발 숙련도를 90%까지 올려서 사실상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었다. 그가 가진 득점력의 비밀 중 하나가 바로 능숙한 양발 사용이었다.
양발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선수는 플레이에 여유가 생긴다. 단순히 생각해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었고, 공을 처리하는 속도도 배로 빨라진다.
한쪽 발만 쓰는 건 싸울 때 한 손만 사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무협 소설도 아니고 실제로 그런 짓을 했다간 뒤지게 맞기 십상이다.
물론 아르옌 로벤처럼 달인의 수준에 오른 선수들은 예외로 둬야 한다. 속칭 월드클래스는 한쪽 발만 가지고도 상대를 농락할 수 있었다.
‘발은 두 개니까, 둘 다 잘 쓰면 좋지. 굳이 하나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
오솔은 약발의 숙련도를 머릿속에 새기며 레벨 업으로 얻은 포인트 3개를 모두 지구력에 투자했다.
-지구력 77(43.7%↓)
이제부터는 90분 게임도 충분히 뛸 수 있었다. 마침내 체력이 고등학교 선수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다.
“후우. 이제야 비로소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것인가.”
오솔은 구슬땀을 닦아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훈련으로 성과를 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까마득했었는데…… 후후. 이게 노력의 참맛이구나.’
시스템의 도움이 없다곤 못하겠으나, 그래도 단순히 포인트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직접 뛰고 기술을 익히는 데에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는데 이승훈이 다가와 다시 슬슬 성질을 긁어댔다.
“뭐해? 벌써 퍼졌어? 한 세트 더 남았는데 벌써 포기하는 거야?”
“내가 힘들어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너는 죽이고 간다.”
약이 바짝 오른 오솔이 이승훈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 정도로는 날 못 잡아요. 조금 더 힘내 봐.”
“그 입 좀 다물고 훈련하면 안 될까? 인간적으로 심장보다 귀가 더 아플 지경이다.”
“왜, 때릴 꼬야? 한번 때려 봐! 때료 봐!”
“안 되겠다. 오늘 그 혀를 뽑아야겠다.”
“하하하. 어디 한번 해보라고.”
이승훈은 술래잡기하듯 도망치며 쉼 없이 떠들어댔고, 덕분에 오솔은 악으로 깡으로 1세트를 더 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