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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9화 (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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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9화

며칠 후, 정식 부원이 된 오솔과 태곤은 수업 시간에도 훈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연습 시간이 거의 세 배가량 늘어난 덕분에 오솔의 능력치도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음…….’

이탁수 감독은 제자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메모를 하고 있었다. 주저 없이 움직이던 펜이 멈춘 건 오솔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이 감독은 펜은 살짝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오솔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에는 갖가지 장단점과 함께 그의 버릇부터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까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성장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테크닉도 꾸준히 늘고 있고, 놀랍게도 신체 능력도 점점 나아지고 있어.’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상승했고, 그 모습은 얼핏 ‘오솔이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활동량을 늘리는 훈련이었다. 그러나 팀워크는 의식을 바꾸거나 동료의식을 길러야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익히긴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필드에서 어슬렁거리는 습관 역시 단번에 고치기 어려워 보였다.

“팀워크와 활동량이라……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 * *

이탁수 감독은 호각을 길게 불어 선수들을 모았다.

“자, 모두 집중! 슬슬 몸도 다 풀었을 테니 이제부터 전술 훈련을 진행하겠다. 유효 슈팅을 기록하거나 골을 넣으면 공격 측이 1점, 반대로 공을 빼앗거나 일정 시간 동안 막아내면 수비 측이 1점을 얻는다. 공격은 자유롭게 진행하면 되고, 코너킥이나 프리킥, 스로인 등은 없다.”

삑!

짧은 호각소리와 함께 전술 훈련이 시작되었다.

중앙에서 공을 잡고 선 미드필더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을 패스할 곳을 찾았고, 중앙과 측면 공격수는 공간을 향해 뛰며 패스 루트를 만들었다.

한참을 뛴 끝에 공격수에게 공이 닿았다. 그러나 수비진의 빠른 압박과 커버로 안쪽으로 파고들진 못했다. 결국 공격수는 빗자루에 쓸려나가듯 외곽으로 밀려났다.

삐익!

“방금 같이 하면 수비 측이 1점을 얻는 거야. 자 이제 각자 연습을 시작하자.”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냥 플레이를 한 번만 보여주고 끝이었다. 2·3학년들은 이 같은 훈련이 익숙했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1학년들은 생소한 훈련법에 곤란해 하고 있었다. 황태곤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승훈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글쎄. 그냥 재주껏 뛰라는 뜻 아닐까?”

“2 대 1 패스나, 측면 돌파 같은 것도 되나?”

“제한은 없다고 하셨잖아. 되겠지.”

오솔은 남몰래 슬쩍 웃었다. 확실히 같은 장소에서 연습을 하니, 슬슬 10년 전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전술 훈련에 대한 것도 있었다. 수 없이 반복한 훈련이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전진 패스와 마무리 훈련이네.’

미드필더는 압박을 벗어나서 적절한 패스 루트를 선택해야 하고, 공격수들은 공간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미드필더는 탈압박 능력과 시야를 기를 수 있고, 공격수도 역시 공간을 찾는 넓은 시야와 오프 더 볼 움직임을 기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수비수들은 일대일 마크와 압박, 커버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 같은 훈련은 수비수 숫자를 늘리면 공격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반대로 동수가 되면 수비 난이도가 올라간다. 때문에 인원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훈련은 공격에 더 주안점을 뒀는지 동수로 진행되었다.

‘동수로 훈련하면 각각의 기량에 따라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가 결정되지.’

숫자가 같다는 말은 항상 일대일 상황이 전개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가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시범을 보였던 선수들 중 공격수의 실수가 두드러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방금은 정면을 고집할 게 아니라 측면으로 주고 수비 뒷공간으로 돌아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미드필더에게 빠르게 리턴 패스를 하고 다른 공간을 찾아갔어야 했다.

방금처럼 이도 저도 못하고 공을 질질 끌다가 기회를 날려버리는 건 실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다음은 이승훈, 공격수 자리에 서라.”

“네!”

“그리고 황태곤, 넌 중앙 미드필더다.”

“네!”

감독은 빠르게 공격 팀을 짜고 곧바로 수비 팀을 불렀다.

“오솔!”

“네!”

“중앙 수비수다.”

“네?”

“빨리 자리로 이동해.”

“하하. 농담이시죠? 아, 오늘이 만우절이던가?”

“만우절은 어제고 농담 아니다. 어서 자리로 들어가.”

이 감독의 단호한 태도에는 장난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전신에서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가 흘러나왔다.

“설마 진짜로 절 수비수로 쓰겠다는 거예요?”

“그래. 당분간은 수비수로서 훈련을 할 거다.”

“아니, 어째서…….”

“이유는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거다. 잔말 말고 어서 훈련 시작해.”

오솔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감독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심지어 학교와 틀어졌을 때도 자신 뜻대로 밀고 나갔던 양반이었다. 자신의 요구쯤 묵살하고도 남았다. 오솔은 이승훈의 뒤에 바짝 붙어 속삭였다.

“야. 네가 대신 수비하겠다고 해. 원래부터 꿈이 수비수였다고, 홍명문처럼 되는 게 네 소원이라고 말해 봐.”

“말도 안 돼. 그런 말을 믿으실 리 없잖아. 괜한 짓 하지 말고 감독님 말 들어.”

“오솔! 훈련에 집중해!”

딴짓을 하고 있으니 대번에 감독의 호통이 떨어졌다. 결국 오솔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비수로 뛰어야 했다.

“젠장. 이게 다 뭔 짓이람.”

그렇게 시작된 전술 훈련, 오솔은 이승훈을 쫓아 정신없이 뛰어야 했다. 그러나 매 번 빛보다 빠르게 돌파당해 슛을 허용하곤 했다.

10년의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해도 수비수로 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비수로 뛰는 동안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삑!

그나마 다행히 체력적인 문제는 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설픈 플레이나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마다 감독이 호각을 울려 플레이를 멈췄기 때문이다. 이때 감독은 실수하기 직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선수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는지를 살피게 했다.

“그렇게 바짝 붙을 거면 아예 상대방이 돌 생각을 못하도록 강하게 밀어붙여야지!”

“일단 상대가 돌아서면 적절히 거리를 조절해. 명심해 항상 공격수가 한 발짝 먼저 움직인다!”

“마크가 비었잖아. 놓치지 마!”

“마크하는 선수만 신경 쓰면 어떻게 해. 앞에서 돌파당할 때를 대비해서 커버할 준비도 해야지.”

-태클 22/ 일대일 마크 21

-경험치 58.7%

수비 능력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진짜 수비수가 되는 거 아니야? 이거 불안한데.’

오솔은 수비수로 뛰고 싶지 않았다.

남들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하고, 항상 상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하는 포지션. 89분을 잘 뛰어도 1분을 실수하면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포지션. 그게 수비수였다.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솔직히 공격수에 비하면 몸값도 낮았다.

최대한 빨리 성공하고 싶은 오솔 입장에서는 별로 걷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이미 10년이나 되는 공격수의 경험이 있었다. 수비수가 되면 이전의 경험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결국 오솔은 훈련 중간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뛰면서 생각해 봤는데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뭐가 아니라는 거냐?”

“완전히 재능 낭비라고요. 솔직히 여기 있는 누구보다 제가 더 공간을 잘 찾는 거 아시잖아요. 저라면 아까 시범 보인 선수처럼 형편없이 밀려나지는 않았을 걸요?”

옆에서 한창 연습에 매진하던 최도영이 오솔을 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그는 방금 오솔이 지적했던 시범 중에 형편없이 밀려난 공격수였다.

이를 눈치 챈 이탁수 감독은 다른 선수들에게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오솔을 끌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오솔은 불퉁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유를 알려주세요. 무작정 수비수로 뛰라고 하는 건 단순히 괴롭히는 걸로밖에 안 느껴져요.”

“흠…… 이건 나중에 확실할 때 말해주려고 했는데, 미리 알려주마. 조만간 백운고와 연습 시합을 잡을 예정이다.”

“그런데요?”

“현재 백운고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은 2학년 고영주지. 누군지 알고 있니?”

“네.”

“고영주를 너와 민국이가 같이 막게 할 생각이다. 지금 이 훈련은 네가 수비수로서 얼마나 뛸 수 있는지 보는 것이고.”

“그 말은…….”

“네가 수비수로 뛰겠다면 다음 연습경기의 선발 출장을 보장하겠다는 뜻이지.”

“…….”

오솔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수비수로 뛰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경기에 출장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시합에 나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두 배 혹은 세 배는 더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 양반이 무슨 꿍꿍이지? 원래는 1학년에게 기회를 안 주던 양반인데.’

이탁수 감독에게 1학년은 기초 훈련과 체력 훈련을 병행하며 전술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여린 소년에서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는 시기인 만큼 조심했던 것이다.

혹시나 기회를 준다고 해도 전국대회가 끝나고 가을쯤 연습 경기에 투입했다. 3학년이 졸업할 때쯤에야 1,2학년으로 세대교체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학년에게 출전 기회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럼 제 포지션은 완전히 수비로 굳혀지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나도 네 최적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해. 하지만 당분간은 수비수로 뛸 필요가 있어.”

딱딱하게 굳었던 오솔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수비수로 완전히 변경하는 게 아니라면 한두 달 수비 훈련으로 경기에 출장을 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었다.

“날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다. 수비수로 뛰다보면 배우는 게 많이 있을 거야.”

“경기에 내보낸다는 약속은 확실한 거죠?”

“당연하지.”

이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공격수를 따라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활동량도 늘어날 거야. 일단은 이렇게라도 해서 필드에서 어슬렁거리는 습관을 고쳐야 해.’

필드 위에서 오솔은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미리 공격의 흐름을 읽고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빈 공간을 찾아낸 덕분에 적게 뛰고도 더 많은 찬스를 잡곤 했다.

하지만 이런 정적인 모습은 상위 레벨로 갈수록 좋지 않았다. 지금의 플레이가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억지로라도 오솔의 두 다리를 바쁘게 만들어야했다.

이 감독은 오솔의 퀭한 눈가를 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슬슬 신문 배달도 그만둬라. 회비라면 내가 감독 재량으로 면제해줄 테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 숨 더 자도록 해.”

“회비 면제요? 전 아직 보여준 것도 없는데 진짜 면제가 됩니까?”

“그래, 그…… 뭐더라? 그래, 장학금. 내가 널 추천했으니까 돈 걱정은 말고 열심히 뛸 생각만 해라.”

“아!”

“그럼 이제 수비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했겠지?”

납득하지 않았어도 어쩔 것인가. 시합 출전과 장학금 혜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준다는 데.

“네, 열심히 할게요.”

결국 오솔은 일시적인 포지션 변경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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