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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7화 (7/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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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7화

고영주를 입에 담는 여민국의 두 눈에는 씁쓸함이 어려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은 한 때 같은 축구교실에서 수학(受學)하며 함께 공격진을 이끌던 사이였다.

어렸을 때는 여민국이 더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그 나이 대에 한 살은 결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기에 그만큼 앞서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약간의 차이는 고영주가 브라질에 축구 유학을 갔다 온 다음부터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했다.

여민국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신체적인 차이가 좁혀지면서 실력 역시 빠르게 따라 잡혔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고영주는 마침내 중학교 레벨을 뛰어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는 나름 잘한다 하는 여민국조차 상대가 안 되었다. 그가 고교에 올라와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도 고영주를 보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랬었는데 이제는 내가 영주를 막아야 하니 이것 참 상황이 고약하게 되었어.’

확실히 고영주는 천재였고, 차세대 한국 공격의 핵심이 될 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여민국은 그를 막을 자신이 있었다.

공격수의 길을 접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포지션 변경 그리고 1년간의 담금질까지 고교에 올라와서 한시도 노력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덕분에 그는 이제 도내 첫 손에 꼽히는 수비수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래도 수비라는 게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호흡을 맞춰왔으니까. 이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라고.”

“그럼 이번에는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거야?”

“……공격만 잘 풀린다면 말이지.”

여민국은 현재의 공격진이 마음에 차지 않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일주일 전에 치러졌던 입부 테스트가 떠올랐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무식한 돌파였지만 효과는 괜찮았지. 그래, 마치 파르마의 아드리아누를 보는 듯했어.’

아드리아누는 올해 만 스무 살의 브라질 축구 선수로 지난 시즌, 세리에A를 누비며 17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친바 있다.

‘그러고 보니 덩치도 그렇고 플레이 스타일도 많이 닮았네. 수비 가담도 활발히 하고 좀 더 열심히 뛴다면 우리 학교의 아드리아누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여민국은 그가 축구부가 되지 못했다는 소식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됐어. 지나간 일에 마음 쓰지 말자.’

여민국은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침 조깅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달려서 그런지 살짝 힘에 부치는 게 느껴졌다.

‘후우. 릴랙스 하자. 긴장 풀고, 릴랙스!’

지난주 금요일에 체력훈련을 했었기에 오늘까지는 초과 회복(Super Compensation)을 위해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이탁수 감독은 주중에는 테크닉과 연습경기를 위주로 훈련을 진행했고 주말을 앞두고는 체력 훈련을 진행하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절하곤 했다.

그는 중증의 피지컬 신봉자답게 체력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고, 덕분에 청송고 선수들은 한 학년이 올라갈수록 몸이 점점 더 우람해지곤 했다.

“다시!”

서둘러 도착한 운동장에는 벌써 누군가 나와있었다. 여민국은 2년간 질리도록 들은 ‘다시!’라는 말에 몸을 잘게 떨었다.

이 감독은 가능성이 보이는 제자일수록 잡아두고 더 오래 더 반복적으로 훈련을 시키곤 했는데, 오솔이 오기 전까지 지난 2년간은 여민국이 그 주요 대상이었다.

‘감독님? 아니, 감독님이 이 시간에 무슨 일로…….’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아 하늘은 온통 쪽빛 어둠으로 가득했다.

파앙! 파아앙!

사람의 얼굴조차 안 보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이 감독과 두 명의 임시 부원이 공을 차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여민국은 오솔을 알아봤다. 운동장을 거칠게 뛰어다니는 검은 그림자에서 아드리아누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수비수를 질질 끌고 다니며 긴 팔을 좌우로 뻗어 접근을 불허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전차 같았다.

뻐엉!

긴 다리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공을 때렸고, 곧 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대포알 같은 슈팅이 그물망을 갈랐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강한 슛이었다.

* * *

“후. 힘드네.”

오솔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오늘따라 뛰는 게 버거웠다. 간신히 골은 집어넣었으나 덕분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개인기가 25에서 26으로 상승합니다.

-드리블이 18에서 20으로 상승합니다.

-볼터치가 24에서 25로 상승합니다.

-슈팅이 23에서 24로 상승합니다.

-경험치 상승 0.4%…… 6.4%

이미 상당히 높은 신체 능력에 비해 기술 쪽은 초보자 수준이라 조금만 훈련해도 금방 상승했다.

훈련을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 만에 1씩 올랐으니 이 정도면 하드 모드라는 걸 감안하면 꽤나 빠른 성장이었다. 심지어 드리블은 18에서 20으로 한 번에 두 개나 올랐다.

“왜 그래 벌써 지친 거야?”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솔을 대답을 하며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현재 컨디션은 F+등급입니다. 전체 능력치 중 55%까지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바뀐 생활 패턴에 부족한 수면, 거기에 과도한 훈련이 합쳐져 컨디션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안 좋았다.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이제 주위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밝았다. 이탁수 감독은 오솔의 안색을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녀석,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마무리하자.”

“아니요. 더 할 수 있습니다.”

“잔말 말고 빨리 스트레칭하고 마무리 운동 들어가. 너뿐만이 아니라 태곤이도 힘들어 보이니까.”

돌아보니 태곤도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솔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도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피곤해 보였다.

이래서야 더는 무리였다. 혼자 훈련할 수도 있었지만 여럿이서 실전처럼 하는 훈련보다는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지금은 혼자 훈련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쉬는 게 더 낫겠지.’

결국 오솔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무리에 앞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뛰며 몸을 풀었다.

운동을 갑자기 멈추면 혈류가 심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근육에 남아있게 돼 피로가 심해진다. 그렇기에 신체가 혈류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3분 이상 강도가 낮은 운동으로 마무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몸을 풀고 있을 때, 오솔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속 스킬, '스타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에 변동이 생깁니다. 컨디션이 D등급(70.1%)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커, 컨디션이 올랐다?”

오솔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컨디션만 회복된다면 레벨을 수십 개 올리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설마 스트레칭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그날부터 오솔은 스트레칭 시간을 배 이상 늘렸고, 느리지만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 * *

우드득!

오솔은 배달을 마치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잠이 부족해서 그런지 요즘 들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후우. 그래도 지구력에 걸린 페널티는 꾸준히 떨어지고 있네. 그나마 다행이다.”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레벨을 올려서 프로 선수가 되어야 했다.

‘가만, 드리블까지 같이 하면서 배달할까? 그냥 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사고의 위험성만 배제한다면 상당히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체력 훈련을 할 때 항상 공을 대동하도록 했다. ‘육상 선수도 아니고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걸 굳이 훈련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자 상식이었다.

오솔도 거기에 동의했다.

‘축구 선수라면 달리기 연습도 공을 몰면서 해야지. 후후. 기술 쪽은 능력치가 워낙 낮아서 조금만 훈련하면 금방 오를 거야.’

그로부터 일주일, 오솔은 충분히 익숙해졌다는 판단에 축구공을 갖고 신문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통통!

이른 새벽부터 축구공 튕기는 소리가 골목을 가로질렀지만, 가볍게 드리블을 하는 수준이라 주민들의 잠을 깨울 정도는 아니었다.

“후후. 공기가 참 좋네.”

아직은 미세먼지가 없는, 아니 일반인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를 시대였다. 비록 봄마다 황사 때문에 고생을 하긴 해도 2019년의 봄에 비하면 살만했다.

“씁~ 하! 씁~ 하! 하하하. 좋다.”

오솔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던 길인데 이제는 제법 수월히 올라가졌다. 모두가 컨디션 회복 덕분이었다.

-컨디션이 D등급(71.8%) 이상 높아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고작 1.8%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오솔에게는 레벨을 하나 올리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이크! 이러다가 오늘도 늦겠는데?’

드리블에 열중하다 보니 배달이 조금씩 늦어졌다. 마음이 급해진 오솔은 걸음을 빨리했다. 덕분에 공을 모는 소리도 조금씩 커져갔다.

통토통!

“응? 무슨 소리지?”

여민주는 익숙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스르륵 일어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소리를 쫓아 창문으로 향했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골목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여민주는 처음에 보고 멧돼지인 줄 알았다. 가끔 뉴스에서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도심에 출몰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멧돼지라기엔 필요 이상으로 컸고, 두 발로 서서 달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정상이었지만, 저 덩치를 보고 있으자니 자꾸만 반달가슴곰이 떠올랐다. 다행히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 보니 사람이 맞았다. 그리고 민주도 이미 아는 몸이었다.

“아! 그 사람이다! 야프 스탐!”

야프 스탐은 네덜란드 국가대표 수비수로 키가 190㎝ 넘는 거구의 축구 선수였다. 우람한 덩치와 깨끗한 민머리,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민주는 AC 밀란의 광팬으로서 세리에A의 경기를 자주 챙겨봤기에 덩치 큰 사람 하면 곧바로 야프 스탐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등짝남에게 멋대로 야프 스탐이라는 별명을 붙인 상태였다.

“어? 오늘은 축구공을 차고 있네?”

그녀는 단잠을 방해받았다는 사실도 잊고 남자에게 집중했다. 자세히 보니 아직은 발밑의 공을 다루는 모습이나 신문을 던져 넣는 모습 모두 어설픈 감이 있었다.

‘실업축구 선수인가?’

남자는 프로 선수라고 보기에는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프로 선수였다면 이 시간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얼굴은 상당히 앳돼 보이는데.’

여민주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뒷모습을 머릿속에 담았다.

* * *

축구부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토요일 오후, 오솔은 훈련 도구를 챙겨 한편에 마련된 풋살장으로 몰래 들어갔다.

현재는 시합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연습으로 모자란 경험치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오솔이 이곳에 몰래 숨어 들어온 이유였다.

뻥!

철썩!

혼자 하는 훈련이라 패스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가상의 적을 생각하며 드리블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훈련 중 효율이 나오는 건 프리킥 같은 세트 피스뿐이었다.

-슈팅이 24에서 25로 증가합니다.

-경험치 상승 33.7%…… 34.7%

“후우. 드디어 슈팅도 25까지 찍었네.”

오솔은 새롭게 오른 능력치를 확인했다.

-신체 : 힘 73(+5)

-기술 : 드리블 21

무거운 신문뭉치를 들고 다녔더니 힘이 하나 올랐고, 공을 차며 다녔더니 드리블도 올랐다. 시합에 비하면 연습으로 능력치가 오르는 건 너무 효율이 떨어졌다. 하지만 당장은 이 쥐꼬리만 한 능력치 상승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좋아. 일단은 잡다한 스킬부터 빠르게 30까지 올려놓자.”

그렇게 오솔이 한참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맑고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혹시 아침에 골목에서 드리블 하던 분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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