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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5화 (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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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5화

쏴아아!

뜨끈한 온수가 쏟아지는 좁은 샤워장, 뿌연 김으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곳에서 오솔은 한쪽 귀를 막은 채 실실 웃고 있었다.

‘좋아. 레벨이 하나 올랐다.’

[Level Up!]

-보유 포인트 : 3 (포인트를 투자해서 능력치를 올리세요.)

‘그런데 뭘 올리지?’

일단 가장 필요한 능력은 주력과 지구력이었다. 그중에서도 90분을 뛸 수 있게 해주는 지구력 쪽이 시급했다.

패스와 헤딩도 문제였지만, 이건 아무리 높여봐야 50%확률로 빗나가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처럼만 뛸 수 있으면 공격 기술 쪽에 투자하는 편이 더 좋을 텐데. 후우. 하지만 그 양반이 가만두지 않겠지.’

이탁수 감독을 떠올리자 어디선가 ‘다시’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으으. 역시 체력이 국력이다. 지구력에 투자해야겠어.’

지구력에 투자하면 경기 시 체력도 소폭 상승하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능력치 하락도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 : 지구력 69(48.2%↓)

‘오오! 페널티도 떨어졌잖아? 능력치가 오를 때마다 차등해서 떨어진다더니 이런 뜻이었구나.’

오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레벨만 꾸준히 올릴 수 있다면 이깟 페널티 따위는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들어오는 경험치도 줄긴 했구나. 시합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를 생각하면 레벨이 하나 정도는 더 올라야 정상인데.’

1회 차에는 골을 넣었을 때 한번, 경기가 끝나고 또 한 번 레벨 업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 2회 차에서는 하드 모드인 탓에 1레벨만 오르고 끝이었다.

‘흐음. 이제는 훈련으로 능력치도 잘 안 오르는데, 큰일이네.’

‘레전드 플레이어’에서는 반복되는 훈련만으로도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 전생에 처음 축구를 시작하고 3년 동안, 이탁수 감독의 훈련으로 꽤나 많은 효과를 봤었다. 특히 아예 문외한 수준이던 볼터치와 드리블 같은 것들은 조금만 배워도 능력치가 빠르게 올랐었다.

‘그때는 무슨 게임 캐릭터 키우는 기분으로 연습했었는데.’

실력 향상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 수치로 표시되기까지 하니 고된 연습도 즐거웠다. 그러나 초반 3년을 너무 힘들게 구른 탓일까, 오솔은 프로로 데뷔하고 나서는 이전처럼 열성적인 훈련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포인트의 맛을 본 상태라 훈련으로 얻는 경험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솔직히 한 달을 훈련해봤자 한 경기 뛰는 것만 못한데 누가 훈련을 하겠어.’

말 그대로 오솔은 시합을 치를수록 강해졌다. 축구 신동이 축구 천재가 되었고, 나아가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이 되었다. 그쯤 되자 누구도 오솔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는 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을 비웃으면서 정작 본인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가 그에게 우월감을 심어줬다. 그러나 이러한 가파른 상승세는 금방 끝이 나고 말았다. 능력치가 90에 이르렀을 때 떠오른 알림창은 오솔로 하여금 한계에 봉착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90 이상은 포인트로 올릴 수 없습니다. 이 이상은 연습과 실전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겨우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오솔은 자신의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제 연습을 해서 더 위를 노리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될 리가 없잖아.’

오솔은 레벨과 포인트,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고등학교 3년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상급 선수들처럼 훈련하라니……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오르지 못하면 추락할 뿐이었다. 목표를 잃고 나태해진 오솔은 통제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누구라도 그를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 텐데 그 당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짝! 짝!

오솔은 과거의 후회를 떨치고자 두 볼을 강하게 두들겼다. 정신이 번쩍 돌았다.

‘그래,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돌아온 거잖아. 꾸준히 노력한다면 이번에는 90 이상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거야.’

* * *

연습 경기가 끝나고 3일 후, 오솔은 감독의 연락을 받고 축구부를 찾았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숙소는 텅 비어있었다.

‘여기는 진짜 오랜만이네.’

오솔은 퀴퀴한 냄새에서 그리운 추억을 읽으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이전 생에서 뻔질나게 돌아다녔던 공간이라 감독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훤히 꿰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손잡이를 잡고 돌리던 오솔은 문을 열기 직전, 가까스로 노크를 할 수 있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 하나와 의자, 작은 세면대와 구석의 침대가 전부인 황량한 공간이 나타났다. 오솔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탁수 감독과의 일대일 면담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서 와라. 뭐라도 마실래? 주스랑 음료수 있는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넵!”

오솔의 두 눈에 기대감이 가득 들어찼다. 체력에서 약점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골까지 넣었으니, 이번에도 장학 헤택을 받을지 몰랐다. 한데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아무래도 널 정식 부원으로 받기는 힘들 것 같다.”

“네?”

오솔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입부에 실패할 가능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양반은 실력보다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갑자기 왜 이러지?’

빠른 성장과 가능성을 보고 전액 장학금까지 추천했던 양반이 이번에는 입부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니?

오솔은 기가 막혀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러니까 제가 입부 테스트에서 떨어졌다는 뜻인가요?”

“그래, 솔직히 기본기가 부족한 것은 상관없는데 90분을 뛸만한 체력이 없다는 건 문제가 있다. 내가 계산을 해보니까 경기에서 50분이 넘게 걷거나 서 있었더구나.”

“그게…… 저는 공격수니까 아무래도 골을 노려야 하잖아요.”

“아니, 그건 잘못된 플레이였다. 움직임이 없는 공격수는 수비수 입장에서는 막기 너무 쉽거든. 너는 몇 번의 위협적인 돌파를 보여줬지만, 결국 골은 동료의 크로스 덕분에 넣을 수 있었어. 그렇지?”

“……네.”

“결국에는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잖아, 맞지?”

오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체력은 운동선수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요소였다. 90분도 뛰지 못하는 선수는 한 사람 몫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널 받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내 생각인데, 한두 달 정도 임시 부원으로 활동하는 건 어떻겠니?”

“네? 임시 부원이요?”

“그래, 임시 부원.”

“무슨 차이가 있죠?”

"자잘한 차이야 많이 있지,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임시 부원은 시합에 나가지 못한다는 거다.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대회나 타 학교와의 시합에는 나갈 수 없지.”

시합에 나갈 수 없다는 소리에 오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신 정식 부원은 아니니까, 회비는 받지 않는단다.”

회비라는 말에 오솔은 반쯤 감겼던 눈을 번쩍 떴다.

‘설마 이번에는 장학금을 못 받는 건가?’

하긴 어느 누가 실력도 부족한 이에게 장학금을 주겠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오솔의 위치는 예비 임시 부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래도 당장 회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좋네.’

“혹시 회비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회비는 매 달 50만 원 정도다. 합숙 훈련이나 대회 참가비는 나중에 계획이 나오면 알려주마.”

‘세상에 축구부 회비가 그렇게 비쌌었나?’

단순 계산해서 회비로만 1년에 600만 원이었다. 게다가 이것도 숙소비나, 다른 부대비용은 제외한 값이었다. 새파랗게 질린 오솔을 보며 이탁수 감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회비가 부담이 된다면 내 일을 좀 돕는 조건으로 깎아줄 수도 있다. 아침에 나와서 훈련장을 청소하거나 정리하면 20만 원까지 줄여주마.”

“저어, 장학금은 받을 수 없나요?”

이 감독은 오솔의 질문에 당황한 듯 말문을 잃었다. 그는 간절하게 바라보는 오솔을 보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어제 오후, 이탁수 감독은 점심식사를 막 마치고 교무실을 찾았다. 마침 식사를 마치고 휴식 중인 김영은 선생이 보였다. 이 감독의 남자다운 얼굴 위로 긴장감이 흘렀다.

‘후우. 침착하자. 다른 일도 아니고 학생 때문에 대화하자는 거니까, 문제 될 것 없어. 그래, 이건 공적인 일이야.’

그러나 애써 가라앉힌 긴장도 소용없었다. 저 작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보니 도로 심장이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큰 눈이 이 감독을 발견했다.

“어머, 감독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실로폰 소리처럼 맑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흙먼지를 잔뜩 먹어 거칠어진 그의 목소리와는 너무 달랐다. 이 감독은 잠시 감격에 젖었다가 간신히 숨을 내쉬며 호흡을 조절했다.

“아,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참 날씨가 좋네요.”

“네. 봄이라 그런지 햇살이 참 따사롭네요.”

“괜찮으시면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시간이요?”

“아니,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 반 학생에 대해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아…… 네, 누구 말씀이시죠?”

김영은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지만, 이 감독은 눈치채지 못했다. 설령 알아차렸다 한들 눈치 없는 그는 단순히 ‘학생에 관한 이야기라 그렇겠지.’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김 선생님은 목소리도 참 예쁘구나.’

“감독님?”

“예? 아, 그렇죠. 다름이 아니오라 오솔 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서요.”

“솔이가 왜요? 혹시 솔이가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이제 축구부에 들일 아이니까 간단하게 이것저것 알아볼까 해서요.”

김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솔이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김 선생은 오솔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커다란 덩치와 반항적인 눈초리,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허무함과 슬픔.

오솔은 또래 아이들과 달리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 그것이 이상했던 김 선생은 그의 중학교에 연락해서 그 당시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근방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감독의 눈썹이 꿈틀댔다. 폭력이라니, 그가 가장 용납할 수 없는 행위가 바로 폭력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었대요.”

“아니, 왜 싸웠답니까?”

“상대 애들이 솔이의 가정사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고 했어요.”

“가정사요?”

“솔이네 아버님에게 문제가 있어요. 알코올 중독에 도박 중독까지 있다고…….”

“으음.”

“가계(家計)는 어머님이 식당 아르바이트 같은 걸로 꾸려나가신대요.”

“하아. 그렇다면 집안 분위기도 좋지 않겠네요.”

김 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조금만 지도하면, 솔이가 금방 바른 길로 가리라고 생각해요.”

“녀석을 좋게 보시는군요.”

“애정이 필요한 아이예요.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속에는 상처가 많고 여린 아이죠.”

“……여리다고요?”

김 선생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학기 초에 솔이가 먼저 저를 찾아왔었어요. 무슨 일인가 했는데 대뜸 묻더라고요,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냐고.”

“…….”

“태권도나 유도가 먼저 떠올랐어요. 잘은 모르지만 테니스 부 같은 것보단 돈이 적게 들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건 배우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원 없이 뛰고 온몸의 힘이 소진되도록 달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축구부를 권했어요.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축구부에는 이 감독님이 계시니까, 분명 솔이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김영은의 맑은 눈망울이 이탁수를 가득 담았다. 신뢰가 가득한 눈빛에 그는 차마 ‘축구를 하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듭니다.’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짐짓 목소리를 깔며 답했다.

“예, 저만 믿으세요. 저, 이탁숩니다. 제가 그놈, 멋진 축구선수로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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