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4화 (4/213)

 # 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04화

“막아!”

수비수들이 재빨리 따라붙었지만 태클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오솔의 발이 공의 좌우를 번갈아가며 언제든지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줬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아이스하키 선수가 스틱으로 퍽의 좌우를 번갈아가며 컨트롤하는 듯했다.

‘희한하군. 볼터치는 투박한데, 드리블 자체는 묘하게 익숙해 보여.’

이탁수 감독은 아리송한 얼굴로 오솔의 돌파를 바라봤다. 초보자의 볼터치이자 드리블이었지만 또 사용하는 기술만 보면 상당히 고급 기술들이다.

지금도 오솔은 인사이드 & 아웃사이드 (Inside & Outside)로 상대 미드필더 두 사람을 차례대로 돌파하고 있었다.

이 기술은 빠른 방향 전환으로 수비수들을 현혹하는 기술로 오솔이 회귀하기 전에는 메시가 자주 사용하는 기술로 유명했다.

물론 지금은 아직 메시가 데뷔하기 전이라 이탁수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1번, 라이언 긱스를 먼저 떠올렸다.

‘긱스라니…… 정말 알 수 없는 녀석이군.’

“뭐해? 막으라니까!”

오솔은 어설프게 공을 몰았지만, 그럼에도 특유의 몸싸움 능력을 앞세워 돌파에 성공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위험지역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파워풀한 전진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벌써 시간은 후반 70분에 이르렀고 체력도 많이 떨어져있었던 것이다.

‘제길. 지구력에 걸린 페널티만 아니었으면 90분 내내 뛰어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이 급해진 오솔은 순간적으로 상대 수비수를 속인 후 슛 동작을 취했다. 다행히 이번엔 전방에 아무도 없었다.

뻐엉!

발등을 떠난 공은 곧게 뻗어나가 빠르게 골대 모서리를 향했다. 그의 덩치만큼이나 무겁고 빠른 공이었다. 골키퍼는 힘껏 몸을 던졌으나 막을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는 표정이었다.

텅!

애석하게도 공은 골대를 맞고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오솔은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감싸 안았다. 손바닥 틈 사이로 뜨거운 숨과 함께 욕설이 흘러나왔고,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살짝 빗맞았다.’

달라진 몸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바로 경기를 뛴 탓일까. 자꾸만 플레이가 엇나갔다. 방금 슈팅도 그가 원래 노렸던 곳보다 조금 밑에 맞았다.

‘하아. 큰일이네.’

능력치 하락도 문제였으나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아까부터 혼자 뛰어다닌 탓에 체력이 평소보다 더 빨리 소모됐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두어 번의 전력질주면 체력이 몽땅 바닥나게 생겼다. 별 수 없이 오솔은 페널티 아크에 머문 채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10분 뒤.

“어휴, 씨! 힘들어 죽겠네.”

후반 내내 오솔을 따돌림 했던 선수도 마침내 푸념을 내뱉었다. 경기 종반, 대부분의 선수들이 잔뜩 지쳐있었다. 그중에서도 압박이랍시고 쉼 없이 뛰어다녔던 미드필더들의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이게 다 저 이국동 같은 놈 때문이야!”

낯익은 이름에 오솔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찔끔하여 시선을 피하는 선수가 보였다.

‘이국동이라…… 이게 욕인가? 하하. 지금은 욕이겠네.’

이국동은 이번 월드컵 전만 하더라도 차세대 한국 대표팀을 이끌 정통파 스트라이커로 인기가 많았으나 본선 23인 로스터(선발)에 탈락한 선수였다. 덕분에 그는 월드컵 멤버들이 군 면제 혜택을 받을 때 홀로 상무에 입대해야 했다.

‘가만 이거 나도 군대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잖아?’

인생 1회 차에서는 솔직히 승승장구했었다. 21세의 나이로 참가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매 경기 득점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군 복무는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과 프로팀 활동으로 해결했다. 이른 나이에 받은 군 면제 혜택은 그가 유럽에 진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약 축구선수로 성공하는 게 늦어지면 어떻게 될까? 스물한 살의 나이에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면? 그래서 베이징에 못 가고, 군 면제도 받지 못하면?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농담이 아니라 이대로라면 국가대표는커녕 프로선수가 되는 것도 힘들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건데.’

‘레전드 플레이어’는 훈련과 일반 경기, 대회 등에서 경험치를 얻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은 경험치를 주는 건 대회였다. 그것도 유명한 대회일수록, 그리고 개인상을 많이 수상 할수록 더 많은 경험치를 얻었다.

전생의 빠른 성장도 모두 전국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득점왕을 딴 덕분이었다. 전국대회에서 레벨 업 한 것을 바탕으로 프로무대에서 데뷔할 수 있었고, 프로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가대표가 되었다.

일종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도 그렇게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었다. 당장 페널티가 너무 심해서 입부 테스트조차 헤매고 있지 않은가.

‘설마 입부조차 못하는 건 아니겠지?’

불안해진 오솔은 운동장 한쪽에 앉아있는 감독을 바라봤다.

이탁수 감독은 흰색 운동회 모자에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얼핏 보면 감독이 아니라 그냥 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보일법한 차림이었다.

오솔은 재빨리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누렇게 때가 탄 모자 아래로 호선을 그리는 입술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왜 웃는 거지? 젠장, 저 양반은 뭔 생각을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어.’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건 저번 생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탁수 감독은 최대한 빨리 많은 골을 넣고 싶었던 오솔을 근 1년간 봉인하다시피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얄팍한 입술을 보자 그 당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다시!”

“기초부터 다시!”

“좋았어, 다시!”

‘그놈의 다시, 진짜.’

진짜 3년간 다시라는 말을 이름보다 더 많이 들었다. 오죽하면 그 튼튼한 오솔이 ‘다시!’라는 환청이 자꾸만 들려서 이비인후과에 가봐야 하나 고민할 지경일까.

하지만 기초를 중시한 이탁수 감독 덕분에 오솔은 3년간 드리블과 패스, 볼트래핑 등 꼭 필요한 기초들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었다.

1년간 출전 금지라는 요구와 질리도록 반복된 기초 훈련에도 오솔이 도망치지 않은 건, 자신을 축구부 장학생으로 밀어준 사람이 이탁수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3년 내내 편안히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이때는 설마 축구하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줄 몰랐었지.’

축구는 돈 먹는 귀신이었다. 일단 기숙사비에 축구화와 유니폼 등 개인용품 구입비, 저녁에 먹는 부식비는 기본이었다. 거기에 방학 동안 진행되는 훈련비와 감독에게 주는 지도비는 물론이고 대회 참가비까지 따로 내야했다.

자잘한 것들까지 다 합하면 1년에 들어가는 돈만해도 기백을 훌쩍 넘겼다. 만약 이런 상황을 미리 알았다면, 오솔은 축구가 아니라 돈이 많이 필요 없는 다른 종목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거 큰일이네, 이러다가 장학생으로 못 뽑히면 완전히 망하는 건데…….’

장승처럼 멀뚱히 서있던 오솔은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다시’와 ‘기초’를 좋아하는 양반에게 찍히지 않으려면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더불어 골도 하나 정도는 넣어야 했다.

‘빨리 레벨을 올려서 남들보다 성장이 빠르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해.’

마침 이승훈이 공을 몰고 돌파를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측으로 공을 옮기더니 미드필더와 2 대 1 패스를 주고받았다. 경기 막판인 것치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기회다!’

오솔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20분 동안 가만히 있었던 덕분일까, 중앙 수비수 두 사람의 경계가 많이 무뎌진 상태였다. 게다가 그들도 90분 가까이 뛰느라 상당히 지쳐 보였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야. 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돼.’

오솔이 느려지고 약해진 만큼 수비수들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집중력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득점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 사이 이승훈은 측면 수비수를 어렵사리 제치고 코너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는 공을 따라가면서 고개를 들어 크로스할 곳을 살폈다.

하필이면 전방에 콕 틀어박혀 있던 오솔과 눈이 마주쳤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이 패스를 주지 않았다간 이승을 패스하게 될 것 같았다.

‘죽기 싫으면 패스해!’

오솔은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아보내고 곧장 전방으로 쇄도했다. 그의 바람대로 이승훈의 발을 떠난 공이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오솔은 좌우에서 엉겨 붙는 손들을 거추장스럽다는 듯 떼어냈다.

“귀찮게 하지 마!”

오솔은 수비수 둘을 질질 끌고 달렸다. 비록 주력이 낮고 체력이 떨어졌어도 아직 순발력과 힘은 건재했다. 그렇게 골 에어리어까지 접근한 오솔. 고개를 드니 공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너무 높잖아! 발리는 불가능 해. 어떡하지, 헤딩을 해야 하나?’

오솔은 잠시 망설였다. 헤딩을 대체 언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게다가 지금 그는 헤딩 시 50% 확률로 부정확해지는 스킬까지 갖고 있었다. 이대로는 머리를 갖다 댄다 해도 제대로 맞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솔은 일단 타이밍에 맞춰 몸을 띄웠다. 뒤에서 수비수가 살짝 몸을 밀치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몸의 균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명백한 반칙이었다. 그러나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플레이를 멈춰선 안 된다.

오솔은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도 공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공이 이마에 닿는 순간, 최대한 고개를 틀어 공을 골문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공은 그가 원래 목표로 했던 지점보다 살짝 아래에 맞고 말았다. 공이 위로 붕 뜨는 게 느껴졌다.

‘빗나갔나?’

한데 그때, 공중으로 높이 뜰 것 같던 공이 역회전에 의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묘한 포물선을 그리던 공은 멍청히 바라보는 골키퍼와 수비수를 비웃으며 먼 쪽 골대로 향했다. 골키퍼가 급히 몸을 날렸지만 야속한 공은 골대 모서리와 골키퍼 장갑 사이로 쏙 하고 빨려 들어갔다.

“꼬오오오올!”

그물이 출렁이는 걸 확인한 오솔이 괴성을 지르며 코너로 달려갔다. 그는 열심히 달려가서 팔다리를 대(大) 자로 뻗으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나 서 있기도 힘들었다.

상대편은 물론이고 같은 편조차도 그런 오솔을 희한하다는 듯 바라봤다.

“뭐야. 지가 무슨 안태환이야? 골든골 넣었어?”

“참나, 백퍼 뽀록이구만. 엄청 좋아하네.”

“그러게 누가 보면 엄청 잘해서 넣은 줄 알겠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오솔은 두 눈을 감고 상태창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골을 넣은 덕분에 경험치가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80.6…… 84.7…… 89.2…… 95.1%

“아오, 이게 여기서 멈추다니.”

오솔의 입에서 한탄 섞인 불평이 터져 나왔다. 빠르게 차오르던 경험치는 레벨 업의 끝자락에 닿지 못하고 95.1%에서 멈췄다.

“후우. 괜찮아. 경기가 끝나면 또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땐 확실히 레벨이 오르겠지.”

힘이 다 빠진 오솔은 비척거리며 일어나 센터 라인으로 복귀했다. 겨우 1~2분 남은 시간이었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잖아.’

이탁수 감독은 오솔의 집념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은 생각보다 안 좋았지만, 승부욕과 투쟁심은 합격점을 줘도 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