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161
빅시티에서 헌터들의 영결식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일찍 스승과 함께 그라니트 용역에 방문한 키드는 단말기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12분. 식사 시간에 와버렸군.’
그는 스승을 돌아봤다.
“이곳 사람들의 볼일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승님.”
딸기코 스승은 대단히 긴장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스승님?”
“음, 내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 같구나.”
그는 데스디아에게 얻어맞고 바지가 벗겨진 채 쫓겨난 사건을 말하고 있었다.
“부사장은 무례하지요.”
“넌 그분께 제대로 얻어맞은 적이 한 번도 없지? 그래서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거란다.”
스승이 데스디아를 ‘그분’이라 부르자 키드는 속이 상했다.
하지만 스승의 복수랍시고 데스디아에게 대놓고 도전하거나 시비를 걸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화나게 한 자들이 어떻게 박살 나는지를 수없이 목격한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회사의 공기가 서늘하구나.”
“그라니트 행성은 일교차가 큽니다.”
“흠… 아, 그 워치프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 말씀하십시오, 스승님.”
“그분의 헌터 랭크가 궁금하구나. 난 단말기도 구식이고 헌터 면허도 없어서 우주연합 헌터관리국에 접속을 못하거든.”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키드는 단말기로 관리국에 접속한 후 데스디아 브라토레를 검색했다.
그러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아예 명단에도 없었다.
당황한 키드는 한참 고민하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뎃디라고 검색하지 않은 게 다행이군.’
그는 ‘데스디아리아 헤이파 알타이르 브라토레’라는 그녀의 본명을 정확히 기입한 후 다시 검색했다.
결과를 본 키드는 움찔했다.
“6만 3,334위? 이럴 리가?”
“너무 높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스승님. 제 랭크가 680위입니다. 그런데 부사장의 순위가 저보다 낮다니…….”
그는 그라니트 용역의 다른 이들도 검색해봤다.
사만다는 21,687위, 젝스는 7,650위, 포프는 42,581위였다.
그들과 함께 수없이 많은 환상종을 쓰러뜨린 키드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순위였다.
“포프 베르자르 외엔 전부 비현실적인 랭크입니다.”
“랭크라뇨?”
키드가 포프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했다.
더벅머리에 연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 소녀는 모래색의 두툼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뒤편에는 수송용 로봇이 있었고, 그 로봇의 굵직한 기계손에는 스카이보드가 들려 있었다.
“아, 포프 베르자르. 헌터관리국에서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랭크에 대한 얘기였어.”
그는 포프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대했다.
“흠,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오늘은 쉬는 날이라 부사장님 외에는 다들 늦게 나오실 텐데요.”
“스승님께서 치프 사장과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하셨거든.”
“약속은 하고 오셨나요?”
“…아니.”
“그럼 사장님께서 일어나실 때까지 기숙사 식당에서 기다리세요. 괜히 부사장님께 시비 걸리지 마시고요.”
포프는 한숨을 푹 쉬며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아, 잠깐.”
아까부터 포프 외에도 스카이보드에 시선을 두고 있던 키드가 그녀를 불렀다.
“왜요?”
포프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키드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 스카이보드 말인데, 한번 볼 수 있을까?”
“…어쩌려고요?”
“가게에서 파는 물건이 아닌 것 같거든. 특별히 제작된 게 분명해.”
“스카이보드에 대해서 좀 아세요?”
“응. 만들고 타보는 게 취미였어. 손을 놓은 지는 꽤 오래됐지만.”
“흠…….”
포프는 못미덥다는 표정으로 키드를 쳐다봤다. 그녀의 성별을 착각하기도 했고 부친에 대한 얘기를 함부로 한 것도 있었기에 키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봐주세요. 하지만 망가뜨리지는 마세요.”
“그럴게.”
키드는 로봇이 들고 있는 스카이보드를 살폈다. 물건을 보는 그의 표정과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에 포프는 제법 놀랐다.
‘저런 면도 있었네?’
키드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보드의 엔진 덮개를 벗기고 부품들을 살폈다. 각 부품의 상태를 확인하고 제작 소재 등을 중얼거리는 모습이 정말 전문가처럼 보였다.
잠시 후, 키드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오랫동안 가동하지 않아서 내장 기관이 전부 엉망이야. 윤활제는 텅텅 비었고 중력 조절식 안전장치도 재조정이 필요해. 추진제도 다 떨어졌어. 게다가 원격조정장치의 센서가 이 보드의 성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저질이라고. 센서의 제작 브랜드도 없어.”
“센서가요?”
포프가 의아해했다.
“허, 꼬마.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마침 근처를 지나던 롸켓이 보드 쪽으로 걸어왔다. 쪽을 지어 뒤로 넘긴 그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원래 내가 살펴보려고 했는데 나보다 먼저 엔진 덮개를 벗기다니… 이거 원, 애인이 다른 남자와 자는 모습을 목격한 기분이군.”
“아저씨, 애인 있었어요?”
포프가 놀라자 롸켓이 피식 웃었다.
“그냥 아저씨들의 저질 농담이야.”
보드에 바짝 다가선 롸켓은 키드가 얘기했던 센서 부위를 살폈다.
그는 단말기의 카메라와 화면을 돋보기 대신 사용하여 센서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러고는 손으로 그 센서를 가볍게 분리해 냈다.
“저질 센서라.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이건 군용이야. 게다가 단순한 센서가 아니라 무인정찰기에 쓰이는 통제모듈이지.”
“예?”
“이 스카이보드는 회사에서 출발해서 빅시티의 고철 처리장까지 날아갔어.”
롸켓은 분리했던 센서를 다시 설치한 후 팔찌 모양의 스카이보드 제어장치를 들었다.
“잘 보라고.”
그는 제어장치의 전원을 올렸다. 엔진 덮개가 벗겨지고 부품들이 분해됐지만 스카이보드 역시 불빛을 반짝이며 자신에게도 전원이 들어왔음을 알렸다.
“보드와 제어장치의 연결 및 스타트업 시퀀스는 다른 센서들의 일이라서 문제없어. 그런데…….”
롸켓은 제어장치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할 스카이보드의 방향타와 추진기의 노즐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작해도 꼼짝 않지? 이 통제모듈과 제어장치가 전혀 안 맞는다는 뜻이야. 사장 말대로 누군가가 다른 장치를 통해서 이 스카이보드를 움직인 게 분명해.”
롸켓은 전원을 완전히 끄고 문제의 통제모듈을 분리했다.
“그리고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더 있어.”
“뭔가요?”
포프가 물었다.
“이건 ‘원 오프 타입’ 물건이야.”
“원 오프 타입? 제작회사 이름인가요?”
“아니, 그냥 딱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란 뜻이지. 주문제작품이라고 하면 말이 통하겠군.”
롸켓은 껄껄 웃으며 스카이보드를 만졌다.
“보드의 디자인, 골격과 외장의 소재, 도료, 그리고 각종 특수기능을 위한 장치와 엔진까지. 전부 누군가가 직접 깎고 다듬어서 만든 거야. 우주에서 딱 하나밖에 없을걸?”
롸켓은 엔진의 한쪽 구석을 손가락으로 훑은 후 냄새를 맡았다.
“반영구적으로 쓰이는 냉각제조차 기성품과는 혼합 비율이 달라. 과부하를 걸었을 때 나올 출력과 RPM이 끝내주겠군. 윤활제와 추진제처럼 자주 갈아줘야 하는 녀석들만 기성품으로 해놨어. 설계구조를 보니 그것조차도 불쾌했나 보군.”
“그럼 못 고친다는 소립니까?”
키드가 물었다.
롸켓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호환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서 기성 부품들을 끼워 넣어 고치는 건 가능해. 하지만 진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제작자에게 의뢰해야겠지. 제작자의 사인과 제작 순번이 엔진룸 안에 각인되어 있어. 그걸 보면 알 거야. 우리 회사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이거든.”
키드와 포프가 서로 머리를 부딪칠 만큼 경쟁적으로 엔진룸 안을 봤다.
그 안에는 롸켓의 말대로 제작자의 사인이 음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라이트스톤? 라이트스톤 사장님이 이걸 만든 거예요?”
“모델 78이라고 되어 있으니 일흔여덟 번째… 내지는 일흔아홉 번째로 만든 물건이겠지. 노예랑 마약 빼곤 다 취급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인 데다가 손 기술이 대단하다는 소문도 있으니 스카이보드 정도야 뭐.”
롸켓이 포프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근데 이게 네 어머님의 유품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네.”
“혹시 이걸 다룰 생각이니?”
포프는 의지가 보이는 눈빛으로 롸켓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제 걸로 만들 거예요.”
“그래, 어머님의 유품이니 소유하는 거야 문제는 없지만… 이건 황당할 정도의 고성능 보드야. 전 우주 그랑프리 경기에서 쓰는 최고 성능의 스카이보드들도 이거 보단 못해. 취미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물건이란 뜻이지.”
롸켓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다룰 수 있겠니?”
“다뤄내야만 그 자에게 맞설 수 있어요.”
“흠…….”
수염을 만지며 고민을 한 끝에, 롸켓이 키드를 봤다.
“어이, 꼬마. 보드에 대한 얘기를 하는 꼴을 보니 탈 줄도 아는 것 같은데, 맞나?”
“그렇습니다만.”
“그럼 네가 책임지고 포프를 가르쳐 주도록 해.”
그의 말에 키드가 펄쩍 뛰었다.
“곤란합니다! 전 나이트 스토커로서…….”
“조셉이 누구를 도우려다가 죽었는지 들었을 텐데?”
죠니, 조셉, 딕슨과 좋은 술친구였던 롸켓은 자못 무서운 눈으로 키드를 봤다.
“조셉의 시신이 이 행성을 떠날 때도 넌 여기에 오지 않았어. 왜 오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네 가랑이 사이에 달려 있는 물건이 진짜라면 그 일에 대한 세금 정도는 내야 하지 않을까?”
“…….”
“작년에 사장이 준 선금을 먹고 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잘 생각해 봐.”
롸켓은 포프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칠 수 있는 데까지 고쳐볼 테니 나랑 함께 정비창으로 가자꾸나.”
“네, 아저씨.”
포프는 롸켓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키드는 착잡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의 스승은 묵묵히 제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키드를 지켜보는 눈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사장실에서 밤을 샌 치프였다.
잠을 쫓기 위해 카페인 정제를 하나 삼킨 그는 맑은 물로 알약을 넘긴 후 뒷머리를 긁었다.
“저 녀석까지 우리랑 제대로 엮이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스낵바에 앉아 TV를 보던 죠니가 그를 봤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키드.”
“그 병신 쌍놈이요?”
“음.”
죠니가 아직도 키드에게 화가 나 있음을 아는 치프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치프는 사장실 내의 벽시계를 봤다.
“좀 있으면 아침 식사를 해야 하니 슬슬 시작해 볼까? 저 친구도 적당히 달아오른 것 같고 말이야.”
“그러죠, 원사님. 오늘은 정말 피곤하군요.”
죠니는 TV를 끄고 일어났다.
사장실의 한가운데에는 어제 붙잡힌 정체불명 부대의 지휘관이 완전 나체로 철제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가 걸친 것이라고는 머리에 씌워진 검은색의 비닐봉투뿐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와 그가 앉은 의자가 사장실 바닥이 아니라 유아용 간이욕조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치프가 그의 머리를 손으로 툭 치자 지휘관이 반사적으로 흠칫하고는 덜덜 떨었다.
“아, 죠니. 물 주는 걸 잊었나 보네. 이 친구, 오줌을 못 싸잖아?”
의자를 받치고 있는 욕조 바닥엔 주황색의 물이 약간 차 있었다. 바로 지휘관이 밤새 흘려댄 오줌이었다.
“죄송합니다, 원사님. 졸려서 깜박했습니다.”
죠니는 생리식염수가 잔뜩 든 링거 주사를 준비했다.
주삿바늘이 아랫배, 즉 방광 위쪽에 닿자 지휘관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동물에 가까운 신음만이 사장실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