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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의 신-148화 (148/150)

148화: 타승법, 승타법

물론, 이 역시 문제는 존재했다.

백성호가 답을 찾기를 성현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련 중에 성장하기 위한 ‘길’을 보여주고 이끌지만, 그걸 위해 승리를 미루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더불어 지금은 아예 진심으로 때려 부수러 오는 상황이기도 했고.

‘일단 어떻게든, 버텨야 해.’

백성호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조이고, 다시금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아아앗-!”

타악-! 하고 죽도와 죽도가 맞부딪쳤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거리를 한순간에 좁혀 버리는 타돌.

손에 담긴 묵직함에 백성호가 잇새로 혀를 찼다.

여전히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기에 반격은 시도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어지는 몸 받음.

마주 내민 두 주먹으로부터 시작된 짜르르한 충격이 몸을 통과하는 게 느껴졌다.

숨통이 턱 막히고, 허리가 저릿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것만으로 다리가 풀려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백성호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자신이 알고 있다면, 상대도 안다는 것 또한.

이를 바드득 갈며 다음 공격을 대비하는 그에게 곧바로 자세를 낮추며 손목 치기를 시도하는 성현의 모습이 보였다.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충격을 떨쳐내는 것과 동시에 손목 치기를 피한다.

그러자 스치고 지나간 죽도가 곧바로 궤적을 꺾으며 드러난 허리를 두드리려고 덤벼왔다.

원래 그리하려 했다는 듯이.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의 기술적 완성도!

‘얼마나 단련해야, 이 정도까지···!’

백성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착실히 죽도를 세워 허리 치기를 막았다.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성큼 다가서는 성현.

벌려 걷기로 피할 길을 먼저 점한 채 한 손 찌르기가 이어졌다.

아래에서 위로 용오름처럼 솟구쳐오르는 죽도!

이를 악문 백성호가 몸을 비틀었고- 곧 타악, 하는 소리와 함께 죽도가 목을 스쳐 지나갔다.

백성호의 시야에 심판들이 팔을 움찔거리는 게 언뜻 보였다.

자칫하면 득점으로 인정될 수도 있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가장 위험한 거리에서의 난타전.

하지만 명백히 우위에 서 있는 건 성현이다.

수 싸움에서 압도당하고 있는 만큼 백성호가 짜낼 방법이 적은 데다가, 기술적 완성도까지 밀리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윽!”

성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본래 ‘작은 머리치기’는 상대의 목을 찌르듯이 들어감으로써 칼끝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위협적인 기세로 상대의 칼을 열고 머리를 내리치는 것이야말로 ‘작은 머리치기’의 정석적인 운용이었다.

하나 근간은 서로의 칼끝을 열어두고 치고받기에 가장 위험하다 일컬어지는 곳.

앞선 과정 없이 머리를 내려치는 게 가능하다.

전조가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치명적인 격자.

성현은 거기에 수 싸움에서의 속임수를 더했다.

수 싸움이란 결국 동작의 전조를 읽어내 다음 수를 예측하여 막아내는 것.

머리치기와 손목치기, 두 동작의 전조를 끝의 끝까지 일치시키면 상대의 예측을 어지럽혀 방어를 어긋나게 만들 수 있다.

백성호를 물러나게 만든 것도 같은 이치였다.

찌르기에 이어 남은 동작들로 꾸며낸 전조가 있을 수 없는 연속 공격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오직 성현이기에 가능한 속임수!

이것이 바로 성현이 도달한 경지였다.

자신의 동작 하나까지도 절묘하게 제어해 상대의 예측을 어지럽힐 수 있고, 이를 통해 수 싸움에서 큰 이득을 가져가는게 가능한.

재능 있는 이가 한평생을 바쳐 올라선 경지란 그런 것이다.

성현의 죽도가 정확하게 머리를 두들긴다.

······분명히, 그랬어야 했는데.

‘이걸 피해?’

성현의 눈이 쌀짝 커졌다.

거의 몸을 바닥에 굴리다시피 했지만, 어쨌든 회피는 회피.

방금 격자로 끝을 내려 했던 계획이 뭉그러진 상황 앞에서 성현은 도리어 웃었다.

백성호는 발전하고 있었다.

아주 급격하게.

이 시합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시합이 시작될 당시에는 피하지도 못했을 격자를 어떻게든 피해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좋아. 계속해보자고.’

성현이 느낀 건 기꺼움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강한 상대를 제 손으로 만들어내고 있던 그다.

백성호의 급격한 발전은 그에게 있어 환영할 일일 뿐, 배척하거나 분노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궁금했다.

계속 몰아붙이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

그렇기에 그가 다음에 내지른 격자는 정말 조금의 가감도 없었다.

후웅-!

누군가 말했었다.

중단세를 사용하는 성현이 바다와 같다고.

그렇다면, 지금의 그는 분명 모든 걸 휩쓰는 해일이었다,

‘-무, 슨!’

머리를 노리는 죽도를 간신히 막아낸 백성호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납게 휘도는 죽도가 그를 창과 같이 꿰뚫으려 들었으므로.

허공을 찢어 그 자리에 궤적을 남기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찌르기에 백성호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늦지 않은 움직임에 어깨를 살짝 스쳤을 뿐인데, 저릿한 충격이 느껴졌다.

방심은 곧 패배.

성현의 기술은 그만큼 위험했다.

‘······!’

바닥을 강하게 쥐어짜듯 박찼다.

상대가 있는 앞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뒤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후퇴였지만 백성호에게 부끄러움은 없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러하리라.

지금 성현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택하는 건, 곧장 점수를 내어주고 두 번째 판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의미일 테니.

그만큼 성현의 격자는 날카롭고 치명적이었다.

기본적인 기량부터, 속도와 힘, 기술적 완성도, 무게 중심의 이동까지 모든 부분에서 성현은 백성호를 압도하고 있었다.

도리어 지금까지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장담컨대, 이 자리에 선 게 백성호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해일과 같은 첫 일격이 몰아쳤을 때 패배하여 무릎 꿇었으리라.

이성현이라는 괴물은 하늘이 내린 재능이 아니고서야 맞서싸울 수도 없다는 뜻이다.

사악-!

그야말로 빛살과 같은 찌르기가 이어진다.

재차 스친 어깨로부터 욱신거림이 느껴졌다.

한 번만 더 비켜 맞았다가는 왼팔을 쓰는데 지장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아마 지금도-

탓!

백성호는 몸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무시하며 오른발을 크게 내디뎠다.

그 상태로 성현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무게 중심을 적절히 이동하여 왼발을 빠르게 끌어들였다.

상대의 오른쪽으로 벌리는 ‘벌려 걷기’였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곳을 죽도가 꿰뚫는 걸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벌려 걷기’에 이은 ‘허리 치기’.

교과서적인 연계다.

이에 성현은 뒤로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내찔렀던 죽도를 잡아 당겼다.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튕겨나가는 그의 앞에 도달한 죽도는 허리를 노리던 백성호의 죽도를 코등이로 받아냈다.

노린 것 같은 모양새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

“──”

죽도가 교차한 성현과 백성호,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하아아압-!”

백성호가 기합을 내지르며 성현을 밀어냈다.

자세가 흐트러져 있던 성현은 순순히 밀려났고, 두 사람 사이로 아주 약간의 공간이 생겨났다.

들어서기에는 좁은, 그러나 격자하기에 충분한.

안광을 반뜩인 백성호가 다시금 죽도를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는 내찔렀다.

성현이 여태까지 했던 찌르기를 되갚기라도 하듯, 번개같이 내지르는 두 손 찌르기였다.

그러나 한없이 치명적으로 보이는 궤적을 타고 쏘아진 찌르기는─

“흐읍!”

성현이 올려붙인 죽도에 부딪쳐 빗나갔다.

그래도 이어지는 반격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그제야 관객들로부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긴장감 넘치는 수 싸움에서 폭풍 같던 난타전까지 숨죽인 채 지켜보던 이들이 소강상태에 들어서자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있었던 어느 경기와 비교해봐도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는 환호성!

그럴만한 경기였다.

대체 어디서 이런 정신 나간 천재들이 맞붙는 경기를 볼 수 있겠는가.

하늘이 내린 재능을 지닌 백성호와 한때 검도의 전설이었다가 과거로 돌아온 성현의 대결은 ‘전’에도 성사된 적 없는 시합이었으니···.

물론 그때는 백성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꽈아악-

“이성현, 백성호-”

관객석에서 결승을 지켜보고 있던 김규호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지 않고는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열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감정을.

‘겨우 조금이나마 따라잡았나 했는데···.’

어느새 저 둘은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까마득히 앞서 나가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천재들의 영역에 들어선 그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수 싸움과 난타전에 담겨 있는 수많은 검리(劍理), 주고받는 합에 담긴 강인한 의지까지도.

그것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관객석을 뛰쳐 내려가고 싶은 충동까지 일 정도였다.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자신도 검을 주고받으며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 싶었기에.

“젠장.”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김규호는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패배했으니까.

4강에서 성현을 만나 다시 꺾여버린 그에게 저곳에 나설 자격은 없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분했다.

분명 4강이 끝나며 미련을 털어버렸다고 생각했건만, 결승전을 보고 있으니 스멀스멀 그의 마음속에 열기가 번지고 있었다.

이대로 만족할 것인지를 묻는 것처럼.

‘다음에는, 내가-!’

포기를 모르는 추적자에게 다시금 불이 붙은 순간이었다.

“하아아앗-!”

잠시동안 경기장에 내려앉았던 적막을 찢은 것은 성현이 내지른 기부림이었다.

기부림의 목적대로, 자신을 북돋고 상대는 위축시키는 힘이 담긴 외침!

동시에 바닥을 강하게 박찬 그가 벌어졌던 거리를 좁히며 백성호를 향해 나아갔고, 백성호는 피하지 않고 그에게 맞섰다.

흉포한 궤적을 그려낸 죽도와 죽도가 맞붙었다.

주고받는 칼에 담긴 힘이 묵직했다.

사납고 매서운 난타전이 이어졌다.

이전의 성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의아한 장면이기도 했다.

본래 성현은 치면서 승리를 구하는 타승법(打勝法)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비로소 기술을 내어 결정짓는 승타법(勝打法)을 추구했었다.

압도적 공세와 완벽한 기술.

이 두 가지야말로 성현을 상징하는 검도였다는 이야기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흉악하고, 포악한, 맹렬하면서도 거친 격자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백성호에게 성현이 휘말려서 난타전을 펼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도 썩 이상하지 않은 모습!

‘그래, 분명 그럴 텐데-’

백성호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벌써 도복은 축축하게 젖은지 오래였다.

어떻게든 버텨내려 아등바등하며 체력을 쏟아부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백성호에게 중요한 건 이 시합 뿐이었으니.

입술을 짓씹은 그가 자신의 앞에 있는 흉악한 귀신을 노려보았다.

‘뭐가 이렇게, 센 거야!’

전혀 다른 승리의 추구법일진대.

이성현은 여전히 이성현이었다.

백성호에게는 되려 지금의 성현이 이전보다 더욱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전’의 성현이 상단세를 선택하기 전, 추구했던 검도의 모습이 바로 지금과 같았음을.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함에 따라 타승법에서 승타법으로 나아간 그였지만 그렇다 해서 전자의 방법을 잊은 건 절대로 아니었다는 걸.

"하아아앗-!"

타아악!

"백색, 머리!"

그렇게, 첫 번째 판이 결정지어졌다.

난타전 끝에 성현이 백성호의 머리를 두들기며 승리를 거머쥔 것!

하지만 정작 패배하게 된 백성호는 흐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단순한, 의미없는 패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버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수 싸움의 맹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알았다.'

그걸 알았으니, 이번 패배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두 번째 판을 앞둔 백성호가 흐릿한 미소나마 머금을 수 있는 이유였다.

검도의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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