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47화 (147/150)

147화: 수 싸움

짧게 이루어진 격돌.

단 한 번 맞붙었다 떨어졌을 뿐이지만, 그것은 관객들을 전율케 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비록 득점은 물론이요, 유효하게 들어간 격자는 없었더라도 성공해야만 그 안에 담긴 위력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찰나를 잘게 쪼개며 시도된 백성호의 격자, 그리고 그것을 더욱 위협적인 찌르기로 파쇄한 성현의 반격!

검도 팬이라 자처하는 이라면 이들이 선보인 기술의 극의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과연 현 한국 검도 선수 중에서 저걸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

““······.””

관객들이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부릅뜨고 경기장을 주시하는 건 바로 그래서였다.

이번 시합이 향후 한국 검도에 미칠 파장을 진즉 예감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관객들은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이들이 검도로 맞부딪치는 지금, 이 순간을.

그들은 검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실업 검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고교 검도 대회까지 찾아온 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검도라이프에서 검맨이라는 이름으로 네임드 유저가 된 김동안도 마찬가지였다.

“······하.”

무어라 말하려는 듯이 입술을 들썩이던 김동안이 끝내 내뱉은 건 짧은 웃음이었다.

어떠한 단어도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절반도 표현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되려 헛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만한 전율이 느껴진 까닭이다.

단 한 번, 득점도 나지 않는 격돌에서 말이다.

검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더 많은 것을 보는 이일수록 그건 더했다.

‘진짜 괴물만 둘이군.’

유망주를 알아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바로 검도를 보는 눈이 뛰어나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잘하는지, 누가 못하는지를 구별할 수 없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검도를 보는 눈이 뒷받침해주고, 거기에 더해서 선수의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어야 비로소 유망주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가능하리라.

따라서, 김동안이 검도 보는 눈은 굉장히 탁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성현과 백성호의 격돌이 얼마나 대단한지, 속된 말로 ‘쩔어주는’ 건지 이해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학생 검도 수준이 아냐.’

만약 학생 검도 선수가 전부 저들과 같은 수준이라면, 실업 검도부터는 검기(劍氣)를 죽죽 뿜어내고 다녀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것도 나름 재밌긴 하겠다만 지난 몇 년간 검도계를 지켜봐온 김동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하튼, 확실한 건 하나다.

이성현과 백성호는 그들을 제외한 누구와도 완벽하게 다른, 어나더 레벨이라는 것.

말인즉, 학생 검도 카테고리에도, 실업 검도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괴물들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천재(天才).

혹은 천재(天災)라고 불릴.

‘누가 이길까.’

‘이번에야말로 진짜 백성호가-’

‘방금 격돌에서 이득을 본 게 이성현인데?’

‘절대 눈을 떼면 안 돼!’

김동안을 비롯한 관객들이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성현과 백성호는 오직 서로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더해서 이성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다른 곳을 보게 되는 순간, 그대로 상대가 자신을 베고 점수를 앗아갈 것을.

세상에 상대와 자신, 둘밖에 없는 것처럼 집중해야 했다.

그게 가능한지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 않으면 패배하게 될 테니.

“······.”

“······.”

아까의 흉포한 격돌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고요하게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차분한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지금도 지독하게 맞붙는 중이었다.

감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이들만이 들어서는 게 가능한 ‘수 싸움’의 영역에서.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보다도 훨씬 더 치열하고, 매섭고, 또 고도의 경지에 이른 싸움!

“──!”

“──”

어깨가 얼마나 열리는지, 발을 어느 정도 틀었는지, 팔에 준 힘과 몸의 무게 중심이 기운 방향, 호면 속에 비치는 눈빛까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흔적’들로부터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

성현과 백성호는 그게 가능했다.

물론, 두 사람이 똑같은 수단으로 그게 가능한 건 아니었다.

성현은 상대를 꿰뚫어 보는 ‘눈’을 통해 그것이 가능했고, 백성호는 극한으로 이루어진 집중을 통해 한발 먼저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으니.

그러나 방법이야 어찌 되었건 그들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가능했고, 그게 가능했기에 가상의 수 싸움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눈앞으로 수많은 궤적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며 서로를 노렸다.

무엇 하나 가벼이 볼 수 없는 건, 저 중 하나라도 제대로 맞닿을 수 있다면 상대에게서 득점을 빼앗아 오는 게 가능한 까닭이다.

단순히 격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득점에 까지 이를 수 있는 ‘길’.

저 수많은 궤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벌써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이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뻗어오는 궤적을 뭉갠 성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대회는 정말이지, 그조차도 깜짝 놀랄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을 뛰어넘은 발전을 한 김규호, 각오를 확고히 하면서 성장한 백지호,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백성호까지.

하나같이 그가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 성장한 모습은 놀라우면서도- 흡족했다.

‘새싹 밟기’를 시작한 지 어언 일 년.

마침내 새싹들이 하나둘씩 화려하게 피어나 그에게 맞서려는 모습은 눈이 부셨으니까.

‘예상했던 것 이상이야.’

특히나 백성호는 대단했다.

괜히 천재라고 불린 게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성현도 벌써 수 싸움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는 ‘전’에 만났던 모든 선수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으니 말이다.

반백 년에 가까운 검도 경력 중 그가 만난 수많은 선수 중에서 겨우 열 명.

심지어 그것도 전 세계를 통틀어서다.

아직 학생인 백성호가 거기에 도달했다는 건, 지금 그가 당장 세계 무대 일반부에 나선다 해도 우승을 노려봄직한 실력이라는 거다.

일개 고등학생일 뿐인 소년이.

이것이 백성호.

이것이 ‘하늘이 내린 재능’!

‘훌륭해.’

성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것은 훌륭하다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의 미소가 아니었다.

사납게 번뜩이는 눈빛만 봐도 그건 분명했다.

차라리 잘 자란 사냥감을 바라보는 사냥꾼이라 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눈빛.

‘정말로, 훌륭해.’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치켜든 죽도가 상대가 그려내려 하던 궤적을 짓뭉갰다.

그에 백성호는 황급히 자세를 바꾸며 새로운 가상의 궤적을 그려내려 했지만, 성현이 멈추지 않고 죽도를 앞세운 채 나아갔다.

계속해서 앞으로.

백성호가 어떻게든 그려내려 한 궤적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짓밟히듯 사라졌다.

‘어떻게?’

백성호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수 싸움에서의 패배는 현실에서의 결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걸 알았다.

하지만 어떤 동작을 취하고, 무슨 궤적을 그리든 성현이 다가오는 것을 저지할 수 없었다!

끔찍하리만치 공포스러운 상황.

도저히 막아 세우는 게 불가능한 패배가 다가오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건 얼마나 극심한 압박감일까.

“하아아압-!”

성현이 기부림을 내뱉은 건 백성호의 무게 중심이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이번 격자를 막아내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린 백성호는 우선 물러나 태세를 추스르려 했고, 그는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이유가 없었으니.

동시에, 그가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훅 줄어드는 거리.

백성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비록 수 싸움에서 손해를 보았을지언정, 이걸 막아낸다면 기회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든 막아 세우고 태세를 추스르면 반격의 기회는 있다.

그런 판단 아래, 그는 죽도를 치켜 세웠다.

‘머리? 아냐. 손목? 아냐. 허리? ─아니야! 그렇다면!’

백성호가 판단을 내리는 찰나, 죽도 손잡이를 쥐고 있던 성현의 손 중 하나가 떨어졌다.

다가서는 기세와 발 구름의 힘을 살리니 내뻗던 죽도가 순간적으로 급가속하며 다가섰다.

찔러드는 속도는 그야말로 신속.

등골이 섬뜩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빠득!

“─!”

이를 악물고 몸을 비튼 덕일까.

성현의 찌르기는 이번에도 목을 스치는데 그쳤다.

백성호 본인조차 피한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만약 반응 속도가 지금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느렸다면, 지금쯤 찔린 목을 부여잡고 컥컥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쨌든, 피했어!’

절호의 기회란 건 위기 속에서 쥘 수 있는 법.

성현이 한 공격을 한 번 회피한 지금이라면 그도 위협적인 공격을···!

오싹-!

‘무슨?!’

반격에 나서려 한 백성호의 생각을 갈가리 찢어놓은 건 본능이 외친 경고였다.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

그는 재빨리 뛰듯이 두 걸음 물러섰다.

반격할 기회라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진 뒤였다.

자신이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치려하는 건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도박에 불과했기에.

백성호가 의아함을 느낀 건 물러선 직후였다.

성현이 내지른 찌르기를 피했을 텐데, 어째서 위험을 느꼈는지 이해 못 한 까닭이다.

일단 본능이 내지른 비명에 따라 물러서기는 했지만 도저히 성현에게서 그럴 각은 없었는데?

‘지금도 그렇고.’

성현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본능이 경고한 것과는 다르게.

만약 그가 느낀 게 사실이라면 지금 달려들려고 하고 있어야 했을 텐데, 느긋하게 겨눔세를 고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본능이 보낸 경고를 믿고 물러선 백성호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그거, 너무 믿지 말아요.”

작게 속삭이듯 들려온 말.

백성호의 눈에 의문이 스치는 순간, 성현이 다시금 천천히 다가섰다.

물러서는 것으로 벌어졌던 거리가 다시금 좁혀졌지만, 백성호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믿지 말라고?’

적의 말이라고 무시하기에 성현이 여태 보여준 ‘길’이 너무나 명확했다.

그러나 그 말을 곱씹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충고를 건넨 본인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젠장.’

입술을 짓씹은 백성호가 눈을 부릅떴다.

다시금 눈앞으로 수많은 궤적이 생겨났다.

상대가 공격해 올 수 있는 궤적과 그가 지금 공격할 수 있는 궤적들이었다.

두 사람이 그려낸 궤적의 수는 비슷했다.

한쪽이 압도하는 일 없이,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성현이 움직이는 순간, 형편없이 밀렸어.’

이 대치가 언제 아까처럼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필사적으로 그려내는 궤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뭉개며 다가오는 성현의 모습을 백성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자신과 이성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그토록 크단 말인가?

‘아냐. 뭔가 있어. 내가 깨닫지 못한 뭔가가.’

그것을 알아내야 비로소 대적할 수 있으리라.

타승법, 승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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