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45화 (145/150)

145화: 마침내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김민재는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대치 상황.

무승부만 거둬도 결과적으로 승리라고 할 수 있기까지 하다.

그럼 그냥 이대로 버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 한구석에서 생겨나는 것도 당연했다.

상대의 노림수가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은 쉽사리 하기 힘드니까.

어느 누가 이기고 있는 쪽이 대치 상황만 만든 채 이대로 균형을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건 통해. 할 수 있어.’

노리는 건 아주 잠깐, 긴장이 풀렸을 찰나.

그것을 위해 주어진 경기 시간을 얼마나 사용하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많이 쓸수록 좋다.

점수를 빼앗기고 상대가 발악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어든다는 소리니까.

물론 그건 점수를 확실히 빼앗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김민재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윤호가 얼마나 강하던 방심하는 그 순간만 노린다면 충분히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끝에 가서 웃게 되는 자가 진짜 승자.

그리고 그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 되리라···.

“······.”

“······.”

김민재의 노림수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무승부를 노리는 척 시간을 끌다가 막판에 점수를 뜯어내는 전략을 바로 전 판에 대현이 써먹어 승리를 거둔 상황.

그걸 곧바로, 그것도 이기고 있는 쪽에서 써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설령 눈치챈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지고 있는 쪽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굳이 깨뜨리려 하지 않을 테니.

그러다 보면 결국 김민재가 바라던 대로 방심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일 초 만에 결판이 나는 까닭에 극한까지 집중해야 하는 검도 시합이라면 더더욱 한계는 빠르게 다가오리라.

‘이 흐름을 굳이 깰만한 녀석도 아니고.’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본다는 것.

그건 어떤 게 자신에게 이득이고 손해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김민재는 윤호가 중간에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다 해도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했다.

괜히 대치를 부수고 본격적인 싸움을 열면 본인에게 손해일 테니까.

실제로 그의 예상은 어느 정도 옳았다.

윤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재가 대치 상황을 길게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벽한 기회는 아닐지언정 충분히 격자를 시도했을 법한 상황에서도 소극적이니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처음에야 신중한 성격이구나 하고 넘어가도 그게 두 번, 세 번 쌓이다 보면 알아차릴 수밖에.

“······하.”

다만, 앞서 말했듯 김민재의 예상은 어느 정도만 옳았을 뿐이었다.

상황을 금방 눈치챈 것까지는 그의 생각대로였으나, 그 뒤 이어진 윤호의 반응이 예상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윤호는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자신을 향해 겨눠진 죽도를 내리누르며 격자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우랴아앗-!”

“······!”

타악-!

대치를 과감히 깨는 일격.

마침내 이뤄진 첫 격돌에 관객들이 술렁이고, 김민재는 놀란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분명히 냉정하고 침착하게 손익을 따질 줄 안다고 들었는데, 왜 가만히 있어도 무승부가 될 기회를 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김민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언뜻 차가운 성정인 듯 보이는 윤호지만, 그의 안에서는 뜨거운 투지가 타오르고 있음을.

그가 괜히 대현의 친구가 아니다.

그만큼 열정적이고 투지가 넘치는 면이 있기에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여태껏 잘 지낼 수 있었던 거다.

그런 그에게 무승부로 만족하라는 수작이 먹힐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자식-!’

‘지금이 기회다!’

윤호는 김민재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대를 배려하는 건 지금 이 시합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으니.

주도권을 거머쥔 그가 거칠 것 없이 움직였다.

이전보다 적극적이고 매서운 공세를 시도한 거다.

상대의 죽도를 두드리고, 휘감고, 밀쳐내고, 다시 두드리며 자기 마음껏 으르렁거린다.

마치 성현의 그것이 떠오르는, 실로 자유로우면서도 날카로운 공세였다.

이는 실제로 성현에게 배운 것이었다.

삼 학년 트리오 중에서 가장 성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는 영준도, 대현도 아닌 윤호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공세를 중요시하는 스타일이었기에 가장 많이 배우게 된 까닭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 윤호의 공세는 지난 일 년간 성현이 직접 손보고 가르침을 내린 물건이라는 이야기!

“크윽-”

주도권을 쥔 뒤부터 마치 벽처럼 느껴지는 윤호를 보며 김민재가 침음을 흘렸다.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는 거의 없다.

끽해야 김민재가 다소 앞서 있는 정도?

그런 상황에서 예상 못 한 반응에 더해 성현의 가르침을 소화한 공세로 윤호가 흐름을 타기 시작했으니···.

‘좋아,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입술을 꽉 깨문 김민재가 맞불을 놓았다.

이전까지의 어중간한 태도를 버리고, 다가서는 윤호에게 마주 나아간 것이다.

자신이라고 해서 못할 것 없다는 듯이.

그리하여 시작된, ‘가장 위험한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공세 싸움!

두 사람은 작은 틈을 만들어내기 위해 거침없이 위험을 무릅썼고, 그 치열함에 감화된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서로를 향해 겨눠진 총구가 언제 쏘아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끝이다.

누구 하나는 반드시 점수를 빼앗기게 되리라.

그리고 장담컨대, 그 순간은 찰나에 와서 찰나에 사라지게 될 터.

관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였다.

이윽고.

“윽···!”

모두가 바라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팽팽하던 흐름이 끊어지는 순간.

급격하게 저울 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다름 아닌 윤호에게로.

실력 면에서 김민재가 다소 앞서 있음에도 이렇게 된 건 처음 윤호가 주도권을 쥐고 시작한 덕이 컸다.

그는 일순간의 허점을 찌르며 얻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기어코 득점을 할 기회까지 손에 넣고 만 것이다!

“우랴아앗-!”

“으아아앗!”

상대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무너뜨려 우위에 선 윤호와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김민재의 격돌.

서로를 노리고 이를 드러내던 죽도가 쏘아진 화살처럼 나아갔다.

윤호는 머리를, 김민재는 허리를.

서로 다른 부위를 노리며 휘둘러진 죽도는.

타아악-!

거의 동시에 청량한 소리를 내며 각자가 노리던 부위를 두드렸다.

그러나 윤호와 김민재는 자신의 격자가 성공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심판을 보는 것보다, 뒤로 물러서며 존심을 유지하는 것을 택했다.

검도에서 격자만큼이나 중요한 게 존심이다.

설령 더 완벽하게 격자에 성공했다고 해도 존심을 취하지 않으면 그게 인정되지 않기도 하니까.

두 사람 모두 그걸 잘 알았기에, 격자 후 곧장 서로에게서 떨어지며 반격에 대비함으로써 존심을 잃지 않았다.

그 뒤에서야 흘깃 확인했을 때.

“······!”

주심을 포함한 세 심판 모두 두 개의 깃발을 앞아래에서 교차하여 정지하고 있었다.

유효격자 판정의 기권을 뜻하는 몸짓으로, 심판 세 명이 모두 이러고 있다는 건 완전히 동시 타격이었다는 이야기다.

진검이었다면 윤호와 김민재, 두 선수가 같이 죽었을 것이기에 이겼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

““와아아아아-!””

“이게 동시타가 나오네!”

“크, 진짜 살 떨린다!”

“광천고 힘내라! 절대 지지마!”

“경중고 파이팅! 이겨라!”

보기 드문 경우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시합에 임하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우위를 점했음에도 점수를 떠내지 못한 윤호도, 이번 반격으로 어떻게든 점수를 따내려 무리했던 김민재도 무승부는 그리 좋지 못한 결과였기에.

‘···젠장.’

‘여기서 끝을 봤어야 했는데.’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치열하게 맞붙었지만, 어느 한 사람이 승기를 가져가는 일은 없었다.

서로 한 번의 득점도 허용하지 않은 채 경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건 연장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0대 0, 완벽한 무승부!

“시합 끝!”

그러나 심판의 선언으로 경기가 끝났을 때, 윤호와 김민재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윤호는 씁쓸하게나마 웃고 있던 반면 김민재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음울한 기색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장전에서 경기를 끝내지 못한 이상, 이제 이 경기의 승패는 주장전과 대장전에 달렸으니까.

그리고 그건, 결국 광천고가 원했던 대로 성현에게 열쇠가 쥐어졌다는 뜻이니.

윤호는 어쨌든 목적을 달성했고, 김민재는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미안하다···.”

“아냐. 잘 했어.”

시합을 끝내고 돌아온 김민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사죄한 건 그 때문이었다.

자신의 차례에서 끝냈어야 경중고가 편하게 우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괜한 수작을 부렸다가 본전도 못 찾은 꼴이 되어버렸잖은가.

다른 주전들의 격려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했다.

먼저 5위전에서 패배하고 들어온 심재경도 여전히 검게 죽은 얼굴이었을 정도니···.

“──”

보통 이쯤 되면 나서서 김민재를 위로해줄 백성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장전이 도래한 순간부터 그는 오롯이 건너편에 있는 성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서늘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예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이기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사과하려 다가서던 김민재마저 움찔하며 손을 거두고 말았을 만큼.

곧 정신을 차린 백성호가 그를 바라봄으로써 괜한 행동이 되었지만.

“-아. 민재구나.”

“···미안. 집중하고 있었나 보네.”

“괜찮아.”

백성호는 흐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어라 말하려던 김민재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꼭 이겨.”

“그래.”

짤막한 대답.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각오를 느낀 김민재가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지난 삼 년 동안 백성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본 김민재는 지금의 백성호는 가만히 놔둬주는 게 최선의 선택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김민재마저 그렇게 떠나자, 백성호는 비로소 호면을 뒤집어쓰고 끈을 묶기 시작했다.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손길로.

‘오래, 기다렸다고.’

용암고와의 4강 시합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쭉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갖 감정들을 억눌러 가면서.

그리하여 마침내 지금 이 순간이 왔다.

이성현과 다시 한 번 맞붙을 수 있는 순간이.

‘이성현의 유일한 라이벌은, 나야.’

백성호는 여기 모인 모두에게 증명할 생각이었다.

한국 검도, 넘어서는 세계 검도를 뒤집어엎을 이성현의 유일한 맞수는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김규호가 확실히 대단하긴 했지만, 결국 천재는 천재만이 상대할 수 있는 법이며,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라는 것을 말이다.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선 백성호가 맞은편에서 걸어나오는 성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음울하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 속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일찍이 성현과 처음 만났을 때,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던 바로 그 불꽃이.

검도에 미친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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