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34화 (134/150)

134화: 다크호스

‘젠장.’

청원고 검도부의 감독, 정진철 감독은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합을 앞둔 지금, 과연 준비한 것이 먹힐 것인지 알 수 없어 무척이나 긴장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중심에 선 감독으로서 동요를 드러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왜냐하면, 감독인 그가 흔들리는 순간 청원고 검도부 주전 모두가 흔들리게 될 테니까.

감독의 불안은 선수의 불안으로 전염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잘 준비한 전략마저도 실패할 가능성이 생긴다.

작년 한 해 동안 준비해온 모든 걸 허망하게 날려 먹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라도 평온함을 가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준비해온 것들을 믿자.’

청원고가 올해를 노리고 작년을 통째로 투자하여 준비한 대책은 엄청나게 많다.

전국 대회에 나올 다른 검도부 주전들을 철저히 분석하는 건 물론이요, 그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한 뒤, 선수들이 각기 맞는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렸으니까.

이는 학생 검도보다는 실업 검도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어느 게 옳다고 단정적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당장 청원고에 필요한 건 실적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였으니.

실제로 결과를 내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래, 여태까지는 잘 먹혔잖아.’

32강과 16강에서 청원고는 준비해온 전략에 더해, 출전 순서를 유동적으로 바꿔가며 상대 검도부를 완전히 고꾸라뜨렸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제법 강하다고 평가받던 배전공고였는데, 단 한 번의 패배도 범하지 않은 채로 5승 2무로 완승!

일 년의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들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뜻이었다.

이를 통해 춘계 전국 대회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8강, 베스트 8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니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준비는 완벽했다.

더할 나위 없이.

그런데도 이렇듯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필시 상대가 광천고이기 때문이리라.

‘아니, 불안해하지 말자. 광천고도 대비했잖아. 분명히 전략은 먹혀.’

정진철 감독은 머릿속으로 광천고 주전들에 대해 정리한 것들을 떠올렸다.

현재 고교 최강의 타이틀을 가진 광천고 주전들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분석을 한 상태였다.

그들이 선호하는 기술부터 시작해서, 경기 운영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허를 찔렸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느냐까지도.

오죽했으면 김수민이 승룡기 검도 대회 이전 다른 대회에 나갔을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을 정도!

그때에는 상단세를 쓰지 않았기에 별 의미 없는 행동이 되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1학년 듀오를 제외한 모든 주전을 완벽하게 분석했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선수들에게 숙지시켰다는 점이다.

그게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고교 최강 광천고도 이전까지의 상대처럼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이성현만 빼고.’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이성현이 바로 그 예외였다.

정진철 감독을 포함해 청원고 전력 분석팀의 일원들도 이성현에 대해서는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알면 알수록, 도저히 답이 없다는 사실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약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성현에게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 개의 겨눔세를 사용하는데도 그랬다.

중단세일 때는 그저 압도적이고, 상단세일 때는 상대하기조차 두려울 지경이니···.

어설픈 전략 · 전술이 먹힐 상대가 아니다.

그것을 깨달은 정친철은 괜히 안 될 일에 매달리느니, 그냥 포기해버렸다.

광천고를 상대할 때는 이성현이 출전할 주장전과 대장전을 무조건 패배한다고 가정하고 전략을 구성했다는 이야기다.

‘이성현은 확실히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강함이다. 검도부 전체의 강함은 아니야.’

그게 바로 정진철 감독이 광천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지금의 광천고 주전들은 이성현과는 달리 강하긴 하지만 공략할 부분이 많았다.

명백한 구멍인 1학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선수들에게는 부족한 부분이 뚜렷하게 존재했다.

그들이 단점을 메우기보다는 장점을 키우는 방식으로 실력을 빠르게 늘린 까닭이다.

이 단점을 철저하게 물고 늘어지며 몰아붙인다면, 전체적인 실력은 좀 부족한 청원고 주전이라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으리라.

그럼 이야기는 끝이다.

단체전은 먼저 4승을 거두면 끝이니까.

하지만, 정진철 감독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지난 승룡기 검도 대회 이후, 성현의 손길이 닿은 광천고 주전들의 변화가 얼마나 급진적인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그런 시간을 보냈던 광천고 주전들이다.

이번 춘계 전국 대회를 통한 성장을 제쳐두고서도 그러했다.

── │ 광천고 │ 청원고

선봉 │김 수 민│김 민 재

2 위 │김 은 우│정 수 호

3 위 │이 서 준│성 시 원

중견 │최 영 준│안 도 진

5 위 │손 대 현│박 신 억

부장 │조 윤 호│이 영 범

주장 │이 성 현│김 진 호

‘좋아! 일단 출전 순서 저격은 성공했다!’

혹시나 광천고가 순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하던 정진철 감독이 티 나지 않게 한숨 돌렸다.

출전 순서를 원하는 대로 구성했으니 남은 건 선수들이 잘 해내기를 기도하는 것뿐.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까지 선수들의 노력을 지켜봐 온 그는 충분히 그들이 광천고 주전들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민재야. 잘할 수 있지?”

“네, 감독님!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가서 이기고 와라.”

“알겠습니다!”

정진철 감독이 선봉 김수민을 대비하여 준비한 선수는 김민재라는 소년이었다.

청원고에서 가장 방어가 뛰어난 주전.

확실히 김수민은 상단세 특유의 공격성이 살아있지만, 김민재라면 충분히 그것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상단세를 대비한 훈련까지 꾸준히 하기까지 했으니까.

감독의 신뢰 어린 시선을 받은 김민재는 당당한 걸음으로 경기장에 나섰고,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색 깃발이 들어 올려졌다.

······이번 경기에서 광천고가 받은 색깔의 깃발이었다.

‘어···?’

정진철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수민이 득점을 얻는 과정은 지극히 간단했다.

너무 간단해서 마치 경기를 하는 두 사람이 짜고 친 것처럼 보일 만큼.

상단세에서 머리치기를 시도할 것처럼 김수민이 페이크를 걸어 김민재의 팔을 끌어올리고, 훤히 드러난 허리를 가차없이 두들겼다.

만약 그걸 당한 게 자신의 선수가 아니었다면 정진철 감독도 박수를 보냈으리라 생각될 만큼 깔끔한 ‘역허리’였다.

‘김수민이 저 정도 실력이었나?’

정진철 감독은 청원고 경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검도부의 경기는 보지 못했다.

첫 출전에 긴장하고 있던 선수들을 달래랴, 상대 선수에 맞춘 전략을 설명하랴, 이래저래 바빴던 까닭이었다.

그랬기에 김수민이 지금 보여주는 강함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승룡기 검도 대회 당시 보았을 때보다 반 수, 아니 한 수는 더 위의 실력이었으니까.

물론 봤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으리라.

대회 당일에 전략을 수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 해서 선수들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지도 않을 테니까.

타아악!

“청색, 머리! 시합 끝!”

‘이런···.’

두 번째 득점까지 결정짓는 모습을 본 정진철 감독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광천고에서 주요 약점으로 판단한 선수는 김수민과 1학년 듀오, 은우-서준이다.

저 셋을 상대로 3승을 거두고, 3학년 트리오를 상대로 어떻게든 1승을 따내는 것으로 성현의 차례가 오기 전에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 청원고가 준비한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비교적 실력이 뛰어난 주전들을 앞쪽에 배치한 상태였고.

한데 그 계획이 초장부터 틀어진 거다.

이건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김수민에게서 1승을 따내지 못한 지금, 청원고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3학년 트리오를 상대로 2승을 거둬야만 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광천고가 고교 최강의 타이틀을 유지하는데 손을 보탠 그들에게서.

‘그래도 2위, 3위전에서 진 건 아니니 다행이야. 여기서는 무조건 2승을 거둔다!’

“수호야, 시원아!”

““네! 감독님!””

“2위와 3위는 무조건 이겨야 해! 알고 있지?”

““네! 감독님!””

“좋아, 너희를 믿는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 본래 중견을 맡았던 정수호까지 2위로 내린 상황.

여기서는 무조건 이겨야 했다.

만약 지기라도 하면 미래가 없는 수준이었으니.

하지만, 청원고에게는 안타깝게도 은우와 서준의 긴장은 두 번의 경기를 거치며 완전히 풀어진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서, 前 빅4 금제고의 주전과 정면으로 맞붙어 그럭저럭 잘 싸워냈다는 사실에 자신감마저 붙었고.

중학교 최강 듀오로 불리던 그들이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로 인한 후폭풍은 곧장 드러났다.

‘2무···라고?’

정진철 감독의 안색이 흐려졌다.

믿었던 2위와 3위가 무승부에 그친 까닭이다.

여기서의 2승을 바탕으로 흐름을 이끌어 가려던 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결과였다.

표정 관리조차 하지 못할 만큼.

중견 순서를 앞둔 상황에서 2무 1패라는 성적이 주는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지금부터 3학년 트리오를 모조리 이기지 못할 경우, 이성현이 시합에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아예 공략 불가, 나오게 되면 무조건 패배한다고 선언했던 이성현이!

그가 시합에 나서기 전에 결정 지으려 했던 계획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여기까지인가···.’

“감독님!”

속으로 암울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정진철 감독을 부른 건 주장, 이영범이었다.

지금은 이성현의 순서가 오기 전에 결판을 내기 위해 부장 순서로 내려가 있지만, 청원고의 주장이자 명실상부한 최강자가 바로 그였다.

그는 단호한 빛이 담긴 눈으로 정진철 감독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어보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다.

“음-”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이영범의 시선에 정진철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이 어떤 전략을 짜든, 결국 그걸 실행하는 건 선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탓이다.

때로는 선수를 밑고 맡겨야 할 때도 있는 법.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그는 깨달았다.

설령 여기서 무참히 패배한다 해도, 이번 시련을 딛고 일어선 청원고는 더욱 강해져있으리란 것도.

“좋아!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우리는 아직 진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도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아직 포기하지 마라!”

““네, 감독님!””

그러나 청원고가 4강에 진출하는 일은 없었다.

승룡기 검도 대회를 치르고 성현의 짐만 되었던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3학년 트리오는 명백히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청원고 주전들은 3학년 트리오의 부족했던 점을 찌르며 달려들었으나, 이 또한 역으로 그들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왔을 따름.

지난 지옥 훈련에 성현이 가장 신경 쓴 게 바로 약점을 메우는 것이었기에.

‘결국 이렇게 되는군.’

3학년 트리오에 이어, 이성현에게 완전히 박살이 나고 있는 김진호를 보며 정진철 감독은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춘계 전국 대회를 뒤흔들 것만 같았던 다크호스의 바람이 거대한 벽 앞에 멈춰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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