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29화 (129/150)

129화: 다시 한번, 개막

춘계 전국 중 · 고등학교 검도 대회.

올해로 63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의 위상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일단 다른 걸 다 제쳐두고, 딱 대회 개최 횟수만 봐도 그렇다.

1958년에 시작되어 무려 육십 년을 넘게 존속해왔으며 예순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열린 대회에 더해서 더 말해 무얼 하랴.

그쯤 되면 실로 역사와 전통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테니.

또 다른 전국 대회인 추계 전국 중 · 고등학교 검도 대회가 작년 37회를 맞이했으며, 그 외의 학생 대회 중 가장 역사가 깊은 게 29회 회장기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사실상 한국 고교 검도의 끝판왕.

춘계 전국 대회는 그런 대회였다.

‘그래서 많이 보러 올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검도라이프의 네임드, ‘검맨’ 김동안은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웅성웅성.

“사람 엄청 많다-”

“원래 검도가 이렇게 인기 많았던가?”

“그러니까, 이번 대회 우승은 경중고일 수밖에 없다니까! 전력적으로 그렇다고!”

“호군고랑 금제고가 칼을 갈았다던데.”

“대회 언제 시작해요?”

“첫날은 남고부고, 이튿날이 여고부였을 걸.”

어디를 봐도 사람,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검도 팬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대회를 직관했었던 그조차도 처음으로 보는 인파였다.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승룡기 검도 대회 때도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일 합작으로 개최된 대회.

당연히 일본 관람객들도 많이 왔을 테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춘계 전국 대회는 온전히 한국 고등학교 학생선수들만 출전하는 대회고, 보러 오는 이들도 한국인들밖에 없다.

단지 검도 팬으로만─물론 업계인들도 꽤 있겠지만─ 서울특별시학생체육관을 만원 관중에 가깝게 채웠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최근 한국에서 검도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었다는 건 김동안도 알고 있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TV 뉴스다, 뭐다 하며 검도 관련으로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검도라이프가 떠들썩했고, 그는 그곳의 네임드 유저였으니.

하지만 인터넷으로 아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본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법.

“으햐, 사람 엄청 많네요-!”

“아, 도연 씨.”

“저쪽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다구요~ 하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하, 사람이 진짜 많긴 하죠.”

“뭐, 그래도 그럴 만은 해요.”

검도라이프 매거진의 기자, 권도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국가 교류전에서 국위 선양, 한일합작 승룡기 검도 대회에서의 우승! 그 덕에 현재 한국 검도 인기가 역대 최고라고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그 정도입니까?”

“네, 놀라울 정도예요.”

권도연은 단언했다.

기자인 그녀는 김동안 이상으로 검도의 인기가 오른 걸 체감하고 있었기에.

그러나 이내 그녀가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고교 검도 이야기지만.”

“으음.”

“물론 실업 검도 인기도 오르긴 했어요? 고교 검도가 받는 관심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라 그렇지. 뭐, 이것도 당연한 결과지만요.”

“···애초에 검도 인기가 오른 건 고교 검도의 활약 때문이니까요.”

대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한 스포츠를 응원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원래 그 스포츠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팬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 관심이 있었으니 제외.

답은 간단했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스포츠를 응원하게 되는 건, 그 스포츠의 선수가─혹은 선수들이─ 사람들이 알 만큼 크게 활약을 했을 때다.

그건 국가대표팀 같은 국위 선양 요소가 있을 때 더더욱 그랬다.

월드컵에 나서서 활약한 축구 국가대표팀.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피겨 스케이팅 선수.

세계 랭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테니스 선수.

이런 선수─혹은 팀이─ 나올 때마다 해당 스포츠의 인기는 갑작스레 치솟고는 했다.

현재 한국 검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교 유망주들은 국가 교류전에서 전승을 거두며 제대로 ‘국뽕’을 채워줬을 뿐만 아니라, 대놓고 한일전이었던 승룡기 검도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기상을 드높였다.

이러고도 인기가 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되려 이상한 일이리라.

“툭 터놓고 말해서, 그냥 이성현 선수 덕분이죠. 다른 유망주들도 활약하기는 했지만··· 이성현 선수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과 후가 완벽하게 다르니까요.”

“부정할 수 없는 말이네요.”

그리고 거기서 가장 두드러지게 활약한 게 성현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실상 홀로 검도의 인기를 쌓아 올린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심지어 고작 일 년 사이에.

정말이지, 놀라운 유망주였다.

“저 같은 기자한테는 굉장히 좋은 선수죠. 쓸 거리가 많아서 정말 끝내준다니까요.”

“하하! 저번에 한 인터뷰도 장난 아니던데요?”

“회장기 대회에 이은 두 번째 포고문이었죠.”

승룡기 검도 대회가 끝난 뒤의 이야기였다.

그때 검도라이프 매거진을 대표해서 나선 건 권도연이었다.

아마 이전에 인터뷰했었다는 점 덕분이리라.

거기서도 성현은 역시나 여지없이 입담을 발휘했고···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었다.

“이성현 선수는 여러모로 화제를 잘 만들어내고 키운다는 느낌이네요. 선천적인 스타? 물론 그것도 실력이 뒷받침해준 덕이겠죠.”

“아니었다면 입만 살았다고 욕먹지 않았을까요.”

“솔직히 좀 그렇죠?”

그렇게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득 저편에서부터 소란이 일어났다.

““와아아아-!””

“용암고다!”

“드디어 강호가 왔네!”

“힘내라, 용암고!”

빅4 체제에서부터 살아남아 탑3에 올라선 강호, 용암고가 입장한 것이다.

주장인 김규호와 차기 주장인 강찬울을 앞세운 그들은 보무도 당당히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검도 팬들은 그들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용암고는 국가 교류전에도 주장과 차기 주장 두 명이나 내보낸 학교인 만큼, 응원하는 이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용암고 이후로 속속들이 학교들이 입장했다.

검도 팬들은 유명한 학교들이 등장할 때마다─이를테면 전 빅4였던 호군고와 금제고─ 환호를 보냈지만, 용암고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아무래도 검도의 인기가 오른 계기가 바로 국가 교류전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와아아아아─!””

명백하게 용암고 때보다 큰 환호성이 울렸다.

前 고교 최강 경중고가 백성호와 백지호, 백씨 형제 두 사람을 앞세워 나타난 까닭이다.

이전 학교들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의 환호!

그러나 경중고는 그럴만한 곳이었다.

창단 60년 전통의 강호이며, 작년 광천고에 꺾이기 전까지만 해도 삼 년간 전국 고교 검도 대회를 연패한 곳이 바로 경중고 검도부였으니.

“사람, 많네.”

“그러게.”

관객석을 쭉 둘러본 백성호의 말에 백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딱히 긴장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국가 교류전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해본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초에 관객 수가 많다는 것에 쪼그라들 만큼 새 가슴도 아니었고.

그렇게 어지간한 강호들은 전부 들어서고.

이제 각 고교에 주어진 공간 중 비어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을 때.

“이제 슬슬 올 거 같은데.”

“큰 거 온다···.”

관객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들을 이곳까지 이끈 가장 큰 원인, 광천고가 등장할 무렵이 되었기에.

그러한 그들의 기대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선수 입장용 통로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와아아아아아─!””

現 한국 고교 최강의 검도부.

일 년 만에 약체에서 최강으로 올라선 검도부.

‘괴물’ 이성현이 이끄는 그들이 마침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껏 등장했던 그 어떤 고등학교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환호성을 배경음악 삼아서.

“광천고-! 이번에도 우승해라-!”

“광천고 파이팅─!”

“이성현! 이성현! 이성현!”

목소리를 높여 응원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당연하다는 듯 광천고 여자 검도부원들이 있었다.

“으아, 환호성 크기 봐···. 미쳤네, 진짜.”

“솔직히 나 좀 쫄았다.”

“너도? 나도!”

“저거 은근히 부담될 텐데.”

실로 ‘주인공 등장’이라 할만한 광경.

그걸 본 학생선수들이 수군거렸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나타난 것만으로 체육관 내의 주목을 모조리 가져가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음.”

광천고에게 주어진 자리에 도달한 성현은 마치 누군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렸다.

추계 전국 대회 당시, 본격적인 개회식이 시작되기 전, 다른 학교의 라이벌들이 찾아와 떠들었던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이쪽을 향해 다가서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준비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다르다 이건가.’

성현이 찾았던 이들은 다만 자신들의 자리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의 눈에 담긴 선명한 투지가 말하고 있었다.

‘승부를 내기 전까지는 말을 섞지 않겠다!’라고.

하기야, 이미 잡지 인터뷰를 통해 선전포고는 전해졌으니, 남은 건 전쟁뿐.

그렇다면 대화를 나눌 이유 따위는 없다.

저들 또한 그리 생각하는 것이리라.

‘재밌네.’

더불어, 이쪽을 노려보는 건 성현이 유망주라 인정한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선수들 대부분이 이쪽을 활활 타오르는 투지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사실상 광천고는 공공의 적이었다.

이곳의 모든 이들에게 적대를 받는.

“분위기 장난 아닌데.”

“다들 여기만 보고 있잖아.”

다른 광천고 주전들도 그것을 느낀 듯했다.

하긴, 저렇게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데 못 알아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움츠러든 쪽과 무덤덤한 쪽이었다.

전자는 1학년 은우와 서준이었고, 후자는 수민과 3학년 트리오였다.

아무래도 1학년들은 처음으로 겪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테고, 나머지는 작년 추계 전국 대회를 경험한 덕분에 담담한 것으로 보였다.

“광천고 검도부면 대회마다 이렇게 시선을 받을 테니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네, 선배님!””

영준의 조언에 은우와 서준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광천고라면, 현 고교 최강인 검도부라면 이런 주목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안 그러면 주전 자리를 지킬 수 없을 테니.

“올- 최영준-”

“뭐, 왜, 뭐.”

“아니, 그냥~ 후배한테 스윗하다 싶어서~”

능글맞게 웃는 대현.

영준은 언제나처럼 깐죽거리는 대현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고, 윤호는 애써 모른 척했다.

수민이야, 언제나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모습을 보며 1학년 두 사람은 더 긴장이 풀린 것 같았지만.

“자, 이제 다들 개회식 준비하죠!”

성현이 짝짝 박수치며 말했다.

어쩐지 추계 전국 대회 당시 정철이 상황을 정리했을 때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 곧 개회식이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광천고 주전들은 빠르게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아- 그럼, 지금부터 제63회 춘계 전국 중 · 고등학교 검도 대회 개회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춘계 전국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신이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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