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27화 (127/150)

127화: 차라리 내가

타악-!

맞부딪친 두 개의 죽도로부터 대나무 특유의 속이 빈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하윤이 성큼 앞으로 걸어 나오며 교차해 있던 성현의 죽도를 자신의 죽도로 내리친 까닭이다.

누르기보다는 강하게 두들기는 식.

그녀의 성정이 드러나는 듯한 공세였다.

이어.

“히야앗-!”

날카로운 기부림을 내지르며 손목치기!

튕겨 올라온 죽도를 하윤은 손목의 힘만으로 제어하여 곧바로 공격을 이어나간 것이다.

공세에서 격자로 아주 잠깐의 지체도 없이 이어지는 공격은 놀랍도록 위협적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막기 힘들 만큼.

하지만 지금 그녀의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성현이었다.

“······.”

스윽-

성현은 굳이 두들겨진 죽도를 세우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늘어뜨린 채 부드럽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뿐.

정확히 하윤이 좁혀든 거리만큼 다시 거리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손목을 노리던 하윤의 격자는 덧없이 허공을 갈랐다.

허무하리만치 간단한 회피!

그렇게 자신의 공격이 간단히 파훼 되었음에도 하윤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녀는 곧장 공격을 이어나갔다.

마치 성현이 피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았다.

벌써 몇 번이나 성현을 상대했던 그녀는 한 번의 공격만으로 성현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처럼 쉽게 뚫는 게 가능한 방어였다면, 이미 옛날옛적에 무너뜨렸을 테니까.

하여 자신의 공격이 허망하게 빗나갔음에도 그녀의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그대로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계속해서 친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그마저도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이길 때까지 치고 또 친다.

그것이야말로 임하윤의 검도이기에.

“히야아앗-!”

기부림을 내지르며 짓쳐 드는 하윤!

그녀의 죽도는 쉴 새 없이 기술을 토해냈다.

좌, 우, 정면의 머리부터, 오른 손목과 왼 손목, 오른 허리와 왼 허리, 더해서 목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유효 격자 부위들을 노리는 날카로운 격자들이었다.

놀라운 건 연달아 기술을 내는 와중에도 모든 격자의 기검체 일치가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연계라 해서 앞선 기술을 단순히 ‘거쳐 가는’ 용도로만 내는 게 아니라, 그 또한 허용해서는 안 될 위협적인 공격으로써 내질렀다는 이야기다.

단 한 번의 공격도 가벼이 볼 수 없도록.

만약 연계 공격의 교과서가 있다면, 그녀의 연계가 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타악! 타닥! 타아악!

빠르고, 강하고, 매섭다.

작년보다 더 강해진 하윤의 격자는 폭풍처럼 성현을 몰아쳤다.

“······.”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네.’

유려한 궤적을 그려내며 질주하는 죽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현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과연 미래의 검도 여제라고 할까.

대련할 때마다 더 나아지는 하윤의 성장 속도에는 그마저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괜히 백성호와 비견되는 인재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는 성현의 영향으로 더 강해진 상황.

장담하건대, ‘전’의 이맘때쯤 그녀보다 지금의 그녀가 훨씬 더 강하리라.

몇 년 후 그녀가 검도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가는 게 기대가 될 지경이었다.

‘전’에는 끝끝내 일본을 꺾지 못하고 개인전 준우승 4회, 단체전 준우승 3회에 머물렀었는데, 이번에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일단 여기에 집중하자.’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성현이 죽도를 들었다.

하윤이라는 이름의 폭풍을 맞이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버드나무와 같은 방어였다.

거친 폭풍은 딱딱하고 올곧은 나무들을 부러뜨릴 수 있을지언정 부드럽게 휘어지는 버드나무는 꺾을 수 없으니···.

그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몰아쳐 오는 격자들을 유연하게 흘려냈다.

이는 하윤을 상대함에 있어 굉장히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죽도와 죽도가 맞부딪치며 생기는 반동을 적절하게 제어하여 더욱 빠르고 강한 격자들을 내지르는 것이 그녀의 특기!

한데 지금 성현의 방어는 정면에서 그녀에게 맞서기보다 힘을 죽이고 흘려내는 것에 중심을 두었고, 이건 다시 말해 그녀의 장점을 묻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일종의 상극이라고나 할까.

‘이걸 뚫어내야 해.’

하윤의 눈이 몹시 진지해졌다.

그녀가 성현에게 대련하자고 제안한 이유가 바로 이걸 상대하고 싶어서였다.

승룡기 검도 대회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성현의 방어는 이전까지 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해 있었다.

안 그래도 뚫어내기 벅찼던 방어가 더 발전해서 왔다는 것에 기가 찼던 것도 잠시.

이걸 돌파한다면 자신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달은 그녀는 성현에게 더 잦은 대련 요청을 했던 거다.

바로 지금처럼.

물론, 그게 쉬울 리가 없다.

애초에 하윤은 이전에 성현을 상대할 때도 열에 일곱은 방어를 뚫어내지 못하고 패배했었다.

게다가 그나마도 성현이 아직 과거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고, 이제는 열에 아홉은 막혀서 지곤 했다.

한데 성현이 그보다 더 발전했다면?

“도저히, 뚫을-, 수가, 없잖아···!”

하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검도는 굉장히 강렬하고, 보는 이를 매혹시키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 중 가장 명백한 게 바로 체력이었다.

이길 때까지 친다는 건 상대보다 명백히 더 많은 횟수의 격자를 시도한다는 뜻이고, 그 모든 게 체력 소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개는 이처럼 지치기 전에 상대를 무너뜨려 승리를 얻을 수 있지만······.

“진짜, 무슨, 말도 안 되는, 방어야-”

······아까도 말했듯, 상대는 성현이었다.

하윤이 모든 체력을 다 쏟아부을 때까지 공격을 시도해도 뚫어내지 못할 괴물.

끝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하윤과는 달리, 지극히 멀쩡한 안색의 성현이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전보다 훨씬 실력이 늘었네요. 하윤 선배.”

“···흐으,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겨우 호흡을 정돈한 하윤이 눈을 흘겼다.

그렇게 공격을 시도했음에도 한 번을 제대로 못 친 그녀에게 실력이 늘었다니.

놀리는 게 아니면 뭔가 싶었기에.

“아뇨, 진심이에요.”

호면을 벗은 성현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전보다 훨씬 기술이 날카로워졌어요. 연계도 빈틈없이 이어지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무덤덤하게 막던데.”

“겉으로 안 드러냈을 뿐이에요. 버릇이 돼서.”

“표정 숨기는 게?”

“네.”

표정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많다.

가장 간단히는 얼마나 지쳤는지부터, 더 나아가서는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까지도.

이 때문에 성현은 시합 중에는 늘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번에도 그러했을 뿐이었다.

“뭐, 그런 셈 치자.”

하윤이 피식 웃었다.

굳이 깊게 따질만한 사안도 아니었으니.

만족한 듯 살짝 웃은 성현이 슬쩍 그녀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머리─!””

잠시 이어진 정적.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부원들의 외침만이 도장에 울리는 가운데, 하윤은 옆에 앉은 성현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그 얼굴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 생겼네.’였다.

땀에 젖은 머릿수건을 둘러매고 있는 모습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니 말 다 했다 싶었다.

그러니 여자 검도부 부원들이 그를 보며 환호했던 것이리라.

─“왜긴. 네 이상형이 너보다 검도 잘하는 남자애라며. 딱 저놈이잖냐.”

문득 하윤의 뇌리를 스친 건 그녀의 아버지, 임정호가 했던 말이었다.

유망주 검도 대회 당시 임정호가 내뱉었던 그 말은 성현과 있을 때면 지금처럼 불쑥불쑥 멋대로 치솟아 오르곤 했다.

차라리 안 들었을 때가 더 속이 편했을 정도로.

괜히 이상형이니 뭐니 자꾸 떠오르니까 더 신경이 쓰이는 것 아니겠는가.

‘다 아빠 때문이야.’

괜히 아버지, 임정호를 탓해보는 하윤이었지만, 인제 와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들은 말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손목─! 머리─!””

수연이 성현을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검도부 부원은 아무도 없다.

남자부원들도, 더해서 여자부원들도 그랬다.

당연히 주장인 하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성현에게 호감을 품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연을 후배로서 아끼는 만큼 더더욱.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불쑥 떠오르는 건─

‘두 사람 아직 안 사귀잖아.’

─성현과 수연이 아직 사귀고 있지 않다는 사실.

두 사람이 만약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면 옛적에 연인이 되었으리라.

그러지 않았다는 건, 어느 쪽이든 아직 상대를 연인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고, 평소 행동을 보면 그건 성현일 확률이 높았다.

수연은 누가 봐도 좋아한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으니까.

그걸 모르려면 아마 칠십 년 동안 연애 한 번 안 해본 모태 솔로 정도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나라도-’

돌연 하윤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 싶었기에.

아끼는 후배가 좋아하는 사람을 빼앗으려 하다니.

주장으로서 할 행동이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아예 수연이랑 사귀었다면-’

“하아-”

한숨을 내쉰 하윤이 다시금 성현을 보았다.

그는 어느새 품에서 꺼낸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는 중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녀가 물었다.

“뭐 보고 있어?”

“아, 연락 온 게 있어서요.”

“연락?”

“네. 천수아 팀장님한테서.”

“천수아 팀장님이라면··· 혹시 그 언더키 후원기획팀 팀장님?”

“맞아요. 그 분.”

하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묘한 적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 없이, 그녀는 평이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그분이랑 평소에도 자주 연락해?”

“네, 뭐- 자주라면 자주죠.”

“흐음···.”

벌써 몇 년째 언더키의 후원을 받고 있는 하윤이었지만, 그녀가 후원기획팀 팀장과 연락을 나눈 건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다른 후원기획팀의 직원들과도 마찬가지였고, 그건 아마 그녀가 아닌 다른 학생 선수들 또한 똑같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지간해서는 연락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천수아가 유독 성현에게만 연락을 자주하는 이유는···.

‘···아니, 설마. 그럴 리가.’

하윤은 자신이 한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언더키 같은 대기업의 후원기획팀 팀장, 그것도 회장 손녀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고등학생에게?

과민한 반응이리라.

······분명히.

“근데 왜?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성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뭐 잡다한 이야기들 하는 거죠.”

“······잡다한 이야기를, 언더키의 후원기획팀 팀장님이랑 한다는 거지.”

“네? 음- 그렇죠?”

앞서 이야기했듯이.

학생 선수와 언더키 후원기획팀 팀장이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은 거의 없다.

설령 후원 요청할 물품이 있어서 연락을 한다 해도, 팀장이 아닌 그 아래 직원들을 통해 전하는 게 대부분이다.

강호인 광천고 여자 검도부를 이끌어 온 하윤은 그걸 잘 알았다.

그 말인즉.

‘저쪽이 성현이한테 접근해왔다는 건데.’

‘접근’이라는 단어 안에 안 좋은 낌새가 느껴진다고 하면, 과민한 반응일까?

하윤은 복잡미묘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대화로 그녀가 생각지도 못했던 가정이 떠오른 까닭이다.

후배인 수연을 생각해서 그를 포기했는데, 만약 옆에서 나온 다른 여자가 낼름 채간다면.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이제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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