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우승 축하
[광천고 검도부, 한일합작 승룡기 대회 우승!]
[한국 최강을 넘어 ‘한일 최강’으로! 더 나아가 ‘세계 최강’을 노린다!]
[‘17연승’ 이성현, 광천고 우승의, 주역]
[약소부에서 한일 최강까지··· 광천고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광천고의 승룡기 검도 대회 우승!
한일합작으로 개최된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꺾고 우승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론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심지어 꽤 거세기까지 했다.
유명 뉴스 사이트의 스포츠란을 반쯤 점령하다시피 하며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마치 어지간히 인지도 있는 인터넷 신문사라면 승룡기 검도 대회에 관한 기사 하나는 무조건 작성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건 참 기묘한 일이었다.
아무리 승룡기 검도 대회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검도 팬들 사이에서 이야기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대회를 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대회인지, 그리고 거기서 우승한다는 게 어떤 업적인지에 대해 알 리가 없었으니.
아예 승룡기 검도 대회가 개최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으니 말 다 했다.
요컨대, 절대로 언론이 이렇게 격하게 반응할 만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기사는 마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던 대회인 듯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뒤에서 손을 쓰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게 누구- 아니, 어떤 기업인지는 굳이 추리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비주류 종목인 검도를 위해서 이처럼 뒤에서 손을 쓸만한 기업은 한 곳뿐이었기에.
한국에서 가장 검도에 ‘진심’인 스포츠 브랜드 ‘언더키’ 말이다!
[공식전 전승? 이성현은 누구인가?]
[‘언더키’가 선택한 유망주··· 광천고를 이끄는 주장, 이성현]
[한국을 넘어 세계로, ‘세계 최강의 유망주’]
[한국 최강의 유망주 앞에 무릎 꿇은 일본 3대 유망주]
[‘언더키’에서 키운 비밀 병기, 드러나다]
슬금슬금 기사 제목에 ‘언더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건 분명했다.
물론 언더키가 아무리 손을 썼다고 한들, 이번 승룡기 검도 대회가 사람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가 적었다면 이러한 흐름은 얼마 못 가 사그라들었으리라.
관심을 받지 못하는 화제는 자연스레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법이므로.
하지만 언더키에게는 실로 다행스럽게도, 어필 요소는 넘쳐났다.
가위바위보도 패배해서는 안되는 한일전, 벼랑 끝에서 역전해낸 결승, 기어코 17연승을 거두며 팀을 승리로 이끈 ‘괴물’의 존재까지.
특히나 이성현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 핵심 요소였다.
승룡기 17연승은 물론, 그걸 포함해 공식전 전승이라는 신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도 거짓말하지 말라는 타박을 듣게 되는, 만화 속 최종보스 같은 인물이 바로 이성현이었으니···.
<누가 결승전 끝났다고 했냐>
<이성현 〉〉〉넘사벽〉〉〉 일본 3대 유망주>
<다른 애들이 다 고꾸라져도 혼자서 하드 캐리하는 클라스ㄷㄷ>
<강준피셜) 이성현은 실업에서도 탑 클래스>
<이번 결승 마지막 경기가 정신 나간 이유(이미지 주의)>
비단 시끌시끌한 건 언론만이 아니었다.
한국 유일의 검도 커뮤니티, 검도라이프에서도 마찬가지로 난리가 났다.
당연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다못해 김수민의 3연승이나 성현의 13연승 때에도 어마어마한 글 리젠 속도를 자랑했었는데, 결승전-우승 콤보가 그보다 못할 리가!
<이성현 〉〉〉넘사벽〉〉〉 일본 3대 유망주>
글쓴이 : 뜨거운아이스커피(Lv.47)
국가 교류전 A조 경기
vs 가토 카츠히토 2대0 승리
승룡기 검도 대회 32강
vs 히라와타 신지 2대0 승리
승룡기 검도 대회 결승전
vs 히사츠네 아츠시 2대0 승리
보다시피 이성현은 일본 3대 유망주 세 명한테 단 한 점도 내준 적 없음
당분간 검도 한일전은 편안하게 볼 듯
-일본 3대 유망주(3명 다 짐)
-2대 떡 경기만 세 번ㅋㅋㅋㅋ
-셋이서 팀 짜서 덤벼도 못 이길 듯ㅋㅋ
ㄴㄹㅇ 그래봤자 6대0이잖아
-지금 일본 반응 보고 왔는데 겁나 ㅂㄷㅂㄷ댐. 쟤네는 진짜 일본 유망주 아니라고ㅋㅋ
ㄴ빨아줄 땐 언제고 이제와서ㅋㅋㅋㅋ
-걔네 환상의 유망주 만들어내는 중임ㅋㅋㅋㅋ
ㄴ나도 그거 봄. 3대 유망주보다 센 유망주 있다던데?ㅋㅋ
ㄴ아ㅋㅋ 일단 백성호부터 이기고 오라고ㅋㅋ
-팩폭, 멈춰!
한때 전 세계에서도 유명했던 일본 3대 유망주의 명성도 이제는 옛말.
성현에게 단 1점도 내지 못한 채 연달아 무너진─가토 카츠히토는 국가 교류전 때였지만!─ 세 사람은 한국에서는 조롱거리였고, 일본에서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건 그들 세 명이 지닌 바 실력에 비해 과도한 조롱과 비난이었지만, 어쩌랴.
한국과 일본 양국을 대표하는 유망주끼리의 대결에서 처참히 패배한 이상,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인 것을.
<강준피셜) 이성현은 실업에서도 탑 클래스>
글쓴이 : 칼가는선생님(Lv.81)
당장 일반부로 출전해도 최소 4강이래
만약 올해도 작년처럼 성장하면 실업 나올 때쯤에는 원탑 ㅇㅈ이라고ㅋㅋ
일단 확실한 건 학생 검도 수준은 아니라더라
백성호보다 더한 괴물이 나올 줄 몰랐다는데?
-실업 검도 선수마저 인정하는 어나더 레벨ㄷㄷ
-솔까말 지금 이성현 성적만 봐도 학생 검도 수준 아닌 건 딱 보임
ㄴ공식전 전승은 진짜ㅋㅋㅋㅋ
ㄴ만화 주인공도 이렇게 설정하면 욕먹음
ㄴㄹㅇㅋㅋ 먼치킨도 정도가 있지ㅋㅋ
-앞으로 개인전 우승은 이성현 고정일 듯
ㄴ단체전은?
ㄴ연승전 아니면 힘들걸. 이번 결승전에서 다른 애들은 다 죽 쒔잖아
-이성현 대학 감? 아니면 실업 바로 감?
ㄴ모름. 아무 말도 없던데
ㄴ졸업까지 2년이나 남았어요···.
ㄴ? 이제 2학년이에요?
-에이, 그냥 립서비스지 무슨ㅋㅋㅋㅋ
ㄴ강준이 뭔 립서비스를 해요;
승룡기 검도 대회를 보던 현역 실업 검도 선수 몇이 남긴 말이 새롭게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고교 검도계를 씹어먹고 있는 괴물이 실업 검도계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한 이들도 많았으니까.
대개는 “기대되는 후배다.”라든지, “앞으로 더 발전하면 무서울 것이다.”처럼 말했지만, ‘강준’ 같이 대놓고 지르는 이들도 몇 있었다.
그렇게 언론과 검도라이프 양쪽에서 난리를 피우니, 그 화제가 인터넷 커뮤니티로 번져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검도 라이프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도 승룡기 검도 대회와 그곳에서 우승한 광천고에 대한 글이 올라가며 빠르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대한 반응?
-역대급 재능충ㄷㄷ
-나 검도 좋아했네
-뭐가 됐든 한일전에서 이겼다니 편─안
-아ㅋㅋ 이런 재밌는 걸 지들끼리만 봤단 말야?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좋았다.
다른 건 몰라도 ‘광천고’와 ‘이성현’의 이름만큼은 사람들 뇌리에 깊숙이 남았을 만큼.
그리하여 많은 이에게 우승 소식이 알려지게 된 성현과 광천고 주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우승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다른 고등학교 주전들을 비롯한 사람들로부터 축하 세례를 받는 중이었다.
결승전 이후, 승룡기 검도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광천고 주전들이 쓰는 선수 대기실로 모여들며 벌어진 일이었다.
대회가 진행 중일 때나 적이지, 그렇지 않을 때는 꽤 친한 사이였으니.
개중에는 이번 대회에서도 제법 치열하게 겨뤘던 용암고의 김규호와 강찬울도 끼어 있었다.
“결국 우승했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승팀한테 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 그나마 다행이야.”
김규호의 농담에 성현이 가볍게 웃었다.
잠시 동안 웃으며 떠들던 김규호는 곧 강찬울을 데리고 퇴장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승 축하를 위해 다른 학교 선수들도 계속 찾아오다 보니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그 뒤로도 여러 학교의 선수들이 광천고의 우승을 축하하러 왔다.
경중고의 백씨 형제가 찾아온 건 그 인원이 거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무렵이었다.
“와, 나름 늦게 왔는데도 바글바글하네.”
백성호가 대기실 가득한 선수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축하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할 것을 대비해서 일부러 느지막이 왔음에도 아직도 대기실이 붐비는 것을 보고 질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본 다른 선수들이 슬쩍 물러나며 길을 터준 까닭이었다.
이는 딱히 누군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선수들이 자연스레 그리하였을 따름.
승룡기 검도 대회에서 성현과 백성호가 보여준 경기가 그만큼 인상 깊었기 때문이리라.
그 경기를 보고 난 검도 팬이라면 누구라도 성현과 백성호의 팬이 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성호 형이랑 지호도 왔네.”
“뭐,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우승 축하한다는 말은 하고 싶어서.”
“당연하다니···.”
“용암고랑 우리 이기고 올라갔으면 무조건 우승해야지. 당연한 거 아냐? 안 그래?”
“음음- 맞는 말이야.”
백성호의 말에 백지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형제의 말에 성현은 물론이고 광천고 주전들도 피식 웃고 말았다.
딱히 재밌는 농담을 한 건 아니지만, 워낙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백성호나 마찬가지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백지호의 모습이 퍽 우스웠던 탓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우승 뺏겼지만, 전국 대회 때는 이야기가 다를 거야.”
광천고 주전들을 바라보는 백성호의 눈동자 속에서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지칠 줄 모르는 투지로 이루어진 불꽃이.
씩 웃은 그가 덧붙였다.
“그때는 연승전이 아니니까.”
“······아니라도 이기는 건 우리야, 성호 형.”
잠시 침묵하던 성현이 답했다.
설령 자신이 단 한 순서 밖에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우승을 거머쥐는 건 우리- 광천고라고.
그의 말에 다른 광천고 주전들의 표정에 사나운 투지가 어렸다.
백성호와 백지호 못지않은 투지였다.
이번 대회 내내 거의 성현의 발목만 잡았던 그들은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 찬 상태였고, 백씨 형제는 그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뭐, 그때 가서 보자고.”
“그때 가서. 좋지.”
어깨를 으쓱거린 백성호가 백지호와 함께 대기실에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하 인사를 건넨 다른 선수들도 자리를 비웠을 즈음, 광천고 여자 검도부 선수들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가장 선두에 수연과 하윤을 앞세운 채 대기실로 들어왔다.
““우승 축하~!”
“감사합니다.”
“땡큐, 땡큐!”
성현은 문득 수연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그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응원해준 덕분에 힘이 나더라.”
““오오-””
“저게 그거지? 네 응원이 힘이 됐어?!”
“와우- 4연승한 성현이가 저러니까 설득력 오져.”
어째서인지 숨 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수군거렸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성현은 곧 신경 쓸만한 대화가 아님을 알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무시했다.
수연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고─그게 누구 때문인지는 생각하지 않는 게 딱 성현의 한계였다─.
“내일은 내가 응원할게. 오늘 받았던 만큼.”
“-응! 나도 열심히 할게!”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을 보며, 성현은 마주 웃었다.
과거로 돌아오며 많은 것이 마음에 들었고, 또 기대되었지만, 가장 그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건 수연과 나누는 이런 대화였다.
‘전’에는 부족한 실력에 날을 세우느라 하지 못했던 응원조차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달가웠던 까닭이다.
하여 성현은 더욱 환하게 미소지었다.
‘전’과 다른 현재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끼면서.
세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