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16화 (116/150)

116화: 대상단세

시합 시작과 동시에 먼저 행동에 나선 건, 놀랍게도 성현이었다.

대다수의 경우에 항상 상대보다 늦게, 상대의 움직임을 본 뒤 움직이는 것을 택했던 그로서는 꽤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갑작스레 타돌을 시도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직전 경기에서 승타법의 이상향을 보였건만, 이번 경기에서 갑자기 아무런 근거 없이 상대에게 타돌을 시도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심지어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김규호인데.

따라서 성현이 한 행동은 아주 간단했다.

김규호의 미간을 겨누고 있던 죽도를 차분하게 머리 위로 들어 올렸을 뿐.

그러나 행동이 작다 해서 그것의 여파조차 작다는 건 아니다.

행동으로 따지면 겨우 죽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일에 불과하지만, 검도에서 그건 겨눔세를 바꾸었다고 말해졌으니까.

그랬다.

성현은 중단세에서 상단세로 겨눔세를 시합 시작 직후에 뒤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성현 선수! 갑작스럽게 겨눔세를 바꿨습니다! 중단세가 아니라 상단세입니다!]

[보통 처음 잡은 겨눔세로 시합을 진행하기에 이번에도 중단세를 쓰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르네요. 김규호 선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겁니다]

[그렇죠. 분명 중단세인 줄 알았는데 상단세니까요! 떠올린 설계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상황! 김규호 선수, 침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술렁-

“여기서 갑자기 상단세를···?”

“계속해서 중단세만 사용하려는 줄 알았는데.”

“히라와타 신지에게도 쓰지 않았던 상단세를···. 히라와타 신지보다 김규호가 더 강하다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한순간 크게 술렁이는 관객들.

그들은 성현이 갑작스레 상단세를 꺼내든 이유에 대해 고찰하며 수군거렸다.

이전까지 그가 쭉 중단세로 경기를 진행해왔을 뿐만 아니라, 성현의 상단세가 그만큼 특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 고교 검도는 중단세 이외의 겨눔세 명맥이 완전히 끊어지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모든 학교를 통틀어 상단세를 쓰는 학생들의 숫자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대회에 나설 만큼 실력 있는 이는 아예 없었으니까.

나름대로 대중적인 상단세조차 그럴진대, 그보다도 더 비주류인 이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사실상 단절되어버린 상단세의 명맥을 다시 이어낸 것이 바로 성현이었다.

당연히 특별하게 여겨질 수밖에!

곧 관객들의 눈은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서서히 ‘맹화(猛火)’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성현의 상단세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었다.

‘이건 어떻게 대처할 거지?’

성현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김규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상단세를 꺼내든 이유는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김규호였기 때문이다.

온갖 수단을 궁구하여 그를 쓰러뜨리려 하는 이.

상단세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처법을 가져왔는지 돌연 궁금해진 것이다.

그러한 성현의 미소에 대응하듯, 김규호 또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서늘한 미소였다.

‘그걸 기다렸다고.’

성현을 쓰러뜨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온 김규호다.

그런 그가 성현의 상징과도 같은 상단세에 대한 대처법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은가.

당연히 마련해둔 대처법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대상단세’라는 무기가.

아는 사람은 다들 달고 있겠지만, 중단세에는 오직 상단을 상대하기 위해 파생된 자세가 따로 존재했다.

물론 엄청나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다.

상단을 상대하기 위해서 중단세의 특징을 버리면 앞뒤가 뒤바뀐 꼴이 되기에.

그렇기에 대상단세는 상대의 미간을 겨누던 죽도를 좀 더 높이 들어 올려, 상대의 왼쪽 손목에서부터 이어지는 연장선을 틀어막듯 세우는 정도만이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단세에게는 제법 치명적이었다.

일반적인 중단세보다 더 높아진 죽도의 선혁은 언제든 상단세를 제압할 수 있는 ‘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편수 찌르기와 손목 치기가 가능해진다는 뜻!

[지금 김규호 선수의 자세가 일반적인 중단세와는 약간 다른 느낌인데요]

[대상단세군요. 죽도 끝을 좀 더 높이, 미간이 아니라 상단의 손목을 겨눔으로써 더 위협적인 공격과 수월한 방어를 할 수 있게 하는 자세입니다. 아무래도 이성현 선수의 대비책으로 준비해온 수단 같네요]

[호오, 그렇군요. 상단세를 대비한 자세라. 과연 이성현 선수의 상단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시합입니다]

‘대상단세라···.’

성현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고교 검도, 나아가 한국 검도에서 대상단세의 요령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상단의 숫자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그에 대한 대응법이라 할 수 있는 대상단세도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까닭이다.

그것을 배워왔다는 건, 김규호가 얼마나 노력해서 그를 상대할 준비를 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반증이기도 했다.

충분히 기회를 줄 수 있을 만큼.

‘어디 한 번 해봐.’

‘간다-!’

한순간, 김규호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아주 작은 틈을 보았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빈틈을.

그는 그것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으랴아앗-!”

강렬한 기부림과 함께 굴러지는 발.

까딱거리듯 흔들리던 죽도가 김규호의 의지에 따라 조금의 지연도 없이 빛살처럼 뻗어 나왔다.

기본적으로 대상단세는 죽도의 선혁이 일반적인 중단세보다 높다.

따라서 목을 향해 찌르기를 내지를 때는, 일반적인 중단세보다 한층 더 빠르고 날카롭게 쏘아내는 게 가능한 것이다!

[김규호 선수의 찌르기!]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쐐액-!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짓쳐 든 김규호의 죽도를 보며 성현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굉장히 훌륭한 찌르기였다.

만약 겉으로만 대상단세를 흉내 낸 것일 뿐, 그 안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격자!

여차하면 반격하여 득점을 노리려 했던 성현조차도 단숨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만큼이나 노련하고 매서운 찌르기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내가 맞는다는 건 아니지.’

대비하고 있는 성현을 꿰뚫을 만큼 엄청난 찌르기는 아니었다.

성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매단 채, 반보 옆으로 나서며 허리를 비틀었다.

단지 그것뿐.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규호가 내지른 찌르기는 성현의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목 옆을 허무하게 꿰뚫고 지나갔기에.

찰나, 성현과 김규호의 시선이 교차했다.

‘훌륭하지만, 거기까지야.’

‘이걸로는 안 되는··· 건가!’

[이성현 선수가 여유롭게 피해냅니다. 빠르게 물러서는 김규호 선수!]

[빈틈을 잘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훌륭했습니다. 이성현 선수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칭찬할 만합니다]

다시금 대치하는 두 사람.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단 한 번의 공방이었지만, 성현과 김규호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쏜살같이 내지른 찌르기도, 그것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피해낸 회피도, 모두 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잠깐 주의를 돌린 사이 한판이 결정되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관객들의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현은 언제나처럼 기세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서서히, 하지만 강렬하게.

누구나 알 수 있도록.

“──.”

성현이 공세에 통달하였다는 건, 비단 중단세일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상단세일 때의 그 또한 마찬가지다.

칼날 끝이 아니라 손잡이 끝으로, 몸짓이 아니라 기백으로 공세를 가한다는 게 다를 뿐, 담긴 뜻과 고절함만은 못지않으니.

스으으-

사람의 형상을 한 불꽃이 된 성현은 천천히 김규호를 향해 나아갔다.

발가락으로 땅을 잡아채듯이 쥐면서.

그것은 아주 미미한 움직임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무서운 행동이었다.

너무나 미세한 탓에 눈치채기가 쉽지 않고, 그로 인해 상대는 서서히 커지는 성현과 그가 뿜어내는 기백을 겹쳐 보게 되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격이 다른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설령 발가락만으로 거리를 좁힌다는 걸 눈치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중단세가 칼을 맞대지 않는 상단세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견제라고는 공격 뿐이기에.

그건 대상단세라 해도 똑같다.

[대치하는 두 사람.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서로 한순간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순식간에 결판이 날 테니까요]

“──.”

“──.”

침묵 속에 고조되는 긴장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마침내, 성현이 행동에 나섰다.

스윽!

‘온다!’

누구보다도 빨리 성현의 움직임을 감지한 건 역시나 김규호였다.

경기 상대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매의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성현의 어깨가 미세하게 옆으로 움직이는 걸 본 순간, 즉시 죽도를 쥐고 있는 손목을 틀었다.

이어질 성현의 공격을 편수 손목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공격을 예측하고 한발 빨리 움직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막을 수 없기에 그의 선택은 적절했다.

문제는, 김규호가 읽어낸 낌새조차 성현의 공세였다는 점이다!

움직이던 성현의 팔이 아주 짧은 순간 멈췄을 때 김규호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속았구나, 라고.

“하아아압-!”

죽도를 옆으로 기울였다는 건 정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물론 무척 자그마한 틈이므로 그걸 뚫어낼 수 있는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하지만 감히 그 누가 성현에게 개인 기량에 대해 운운할 수 있겠는가.

성현은 빈틈을 찢어버리며 나아갔다.

강렬한 기부림, 맹렬한 발구름, 단호한 내지르기가 하나 된 격자!

타아악-!

“백색, 머리!”

주심을 포함한 세 명의 심판이 동시에 하얀색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누구도 반박할 여지가 없는 득점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확실하게 들어간 격자였으니.

점수 득점이 인정되자, 경기 행방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매섭게 들어가는 머리 치기! 선취점을 올린 것은 이번에도 이성현 선수입니다!]

[머리를 시도하기 직전에 한 공세로 김규호 선수의 반응을 끌어낸 것이 컸습니다. 김규호 선수는 편수 손목을 대비해서 그쪽으로 죽도를 세웠는데, 그조차 속임수였죠. 그렇게 생긴 빈틈을 단숨에 찢어버렸습니다]

[과연, 굉장히 노련한 득점이었군요!]

“·······.”

성현은 선취점에도 굴하지 않고 겨눔세를 취하는 김규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가져온 대상단세라는 무기도 그렇고, 아무리 쓰러뜨려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심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다 해서 져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김규호에게는 그게 더 모욕일 테니까.

다만 진심을 다해, 전력으로 쓰러뜨리는 것.

그것이 성현이 만족스러운 실력을 보여준 김규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대응이었다.

그렇기에 두 번째 판에서도 성현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김규호를 짓밟았다.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얼마나 처참하게 패배한다 해도, 김규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그를 향해 도전해 올 것이라는.

실제로 패배한 뒤 김규호가 성현을 바라보는 눈빛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본 절망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활활 타오르는 불꽃만이 있을 따름.

실력보다도 강한 의지란 이런 것이라고 김규호의 눈을 본 성현은 생각했다.

[6연승! 이로써 이성현 선수는 현재 승룡기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가 되었습니다]

[과연 몇 연승까지 이어질지가 기대됩니다. 지금처럼 한 경기당 2승씩 올린다면, 8강-4강-결승해서 총 6승을 더 올릴 수 있거든요?]

[12연승이라. 만약 가능하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성현의 연승 기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중계진들.

그러나 성현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했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성현은 하나무라 고교를 상대로 한 8강에서 3승, 경중고를 상대로 한 4강에서 4승을 올리며, 결승전을 앞두었을 때 이미 13연승을 기록한 까닭이다.

열 명을 이기면 올라가는 경기에서 일곱 명을 쓰러뜨렸다는 건 사실상 홀로 경기를 이겨냈다는 것과 같은 의미.

실력 및 체력의 한계로 무너져 내리는 팀을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려 결승전에 데려다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승룡기 결승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