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10화 (110/150)

110화: 하위호환

광천고의 첫 경기 승리.

화제가 안 될 수가 없는 일이다.

애초에 승룡기 검도 대회가 한일합작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주목을 받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치러진 경기인 데다가, 경기 내용도 내용이었으니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김수민이라는 새로운 주전이 3연승을 거두며 광천고를 승리로 이끌 거라 대체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상대가 약했던 것도 아니다.

호쿠토 고교는 과거 전국 고등학교종합체육대회, 간단히 인터하이에 진출한 적도 있을뿐더러, 옥룡기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펼친 곳이었다.

나름대로 강호로 분류되는 고교이므로, 상대를 흠집 삼아 3연승을 깎아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이 수민에게로 쏠리는 역할을 했다.

<광천고에서 새로운 상단세 나왔네요ㄷㄷ>

글쓴이 : 호구왕(Lv.49)

김수민이라고 2학년인데

호쿠토 고교 상대로 3연승 해버리네요

이번이 광천고 주전으로 나선 첫 경기라던데 이 정도면 와···.

내년이 기대됩니다ㅎㅎ

-호쿠토가 호구였던 거 아닌가요?

ㄴ오··· 라임···

ㄴ호쿠토 작년에 인터하이 본선 진출했던 곳임. 여기가 호구면 일본 고교 80퍼는 호구임

ㄴ거기 상대로 3연승은 진짜 쩌는 거

-정철 나가고 광천고 망하나 했는데

-비밀 무기인가ㄷㄷ

-얘 상단세 쓰던데 이성현한테 배운 거겠죠?

ㄴ십중팔구는 그럴듯요

ㄴ근데 둘이 살짝 느낌이 다르던데

ㄴ원래 겨눔세라는 게 똑같은 걸 배워도 사람마다 다른 법임

그리하여 밝혀진 바, 수민은 어딘지 성현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이를테면, 중학교 3학년 때나 돼서 검도를 시작했다든가, 이전까지는 중단세를 쓰다가 갑자기 상단세로 바꾸었다든가 하는 것들.

물론 더욱 충격적인 등장 이후 고교 검도를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정복해버린 성현과는 아직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 라고 할 정도였지만.

-이성현 ver.2?

-이성현 마이너 버전ㅋㅋ

-다운그레이드 버전이 맞지 않냐?

-같은 학교에 같은 자세, 이거 완전 하위호환 각 아님?ㅋㅋㅋㅋ

···두 사람이 현재 같은 학교이며, 겨눔세 마저 같다는 점은 수민에게 ‘이성현 하위호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에 충분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누군가에게 비교되는 일을 썩 달갑잖게 받아들였으리라.

심지어 그게 하위호환이라는, 명백히 대상보다 낮게 취급하는 명칭일 경우에는 더더욱.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수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시합이 끝난 후, 커뮤니티 글을 읽어보다 그에 관해 보게 된 수민의 반응은─

‘내가 성현이랑 비슷하다고? 하위호환이라 불릴 정도로? 와- 이런 고마운 칭찬을 다···.’

“으히히-”

─이렇듯, 보통 사람의 감성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었으니까.

계속 히죽거리는 거로도 모자라 해당 댓글들을 캡처까지 하는 수민을 본 대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위호환이라는 말이 좋아?”

“네. 엄청 좋아요!”

“으음. 난 그거 약간 좀 그렇던데.”

“성현이 하위호환이면 좋은 거죠. 십 분의 일만 성현이랑 비슷해도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 아닌가요? 성현이는 고교 최강이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거 같기도?”

“왜 네가 설득되고 있냐.”

수민에게 있어 성현과 비슷하다는 말은 칭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까닭이다.

지금의 그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만들어내고, 아무것도 아닌 선수로 고교 주전도 되지 못했을 그를 이곳까지 이끈 게 성현이었으니.

시합 중 수민이 성현의 말만을 남기고 자신을 비워버린 건 다 그래서였지 않은가.

검도 한정으로 수민이 성현에게 가진 믿음은 ‘눈이 멀었다’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광천고와 호쿠토 고교의 경기를 시작으로 한 64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국 소속 32개, 일본 소속 32개 고등학교끼리 맞붙은 결과는,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라고 정리할 수 있으리라.

한국에서는 광천고, 경중고, 용암고를 비롯하여 과거 빅4였던 호군고, 금제고 등이 올라섰고, 일본은 인터하이 등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고교, 혹은 3대 유망주가 소속된 고교가 올라섰으니.

가장 먼저 경기가 끝난 광천고는 마치 관객처럼 그 과정을 관람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의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바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 고교 선수들의 대체적인 행동이었다.

“······.”

“······.”

“오우, 엄청나게 노려보네.”

“지금 일본에서 성현이는 사실상 공공의 적이니까 그렇지. 국가 교류전 때 기억 안나?”

“그때 좀 패기가 쩔긴 했지.”

“아하하···.”

“성현이 웃는 거 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거지? 자신감 보소~”

일본 고교 선수들은 마치 원수라도 보는 것처럼 성현을, 그리고 광천고 주전들을 노려보았다.

원인이야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작년에 있었던 국가 교류전.

그때 기자 회견부터 대놓고 일본 선수들을 도발했던 성현은, 유망주 대표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자신을 욕했던 이들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했다.

분명 그 영향이 아직 남아 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터.

“아, 그거 저도 봤어요! 그 전설의 기자 회견 말씀하신 거죠? 나중에 이원형 감독님도 같이 도발하신 거 보고 엄청 웃었는데!”

“저도- 그때 성현 선배 팬 됐습니다. 검도에서 일본 상대로 그렇게 당당하게 도발하는 건 처음 봤거든요···.”

서준과 은우도 일본에서 성현이 벌인 일은 알고 있었을 정도.

아마 그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검도팬이라 하는 사람 중에 그때 일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흔한 고등학생의 패기.jpg’, ‘이게 한일전 도발이지.’ 같은 이름이 붙은 짤로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기도 했으니.

그리고 그 일의 반향은 아마 한국보다 일본이 더 컸을 터였다.

세계최강으로 군림한 지 수십 년.

일본 검도는 이제 세계최강의 자리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해져 버렸다.

3대 유망주의 존재로 인해 필시 다음 세대도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던 상황에서 바로 그들이 손도 못 쓰고 패배하고 만 것이다.

성현은 그 충격의 중심지에서 모든 어그로를 끌어들였고.

‘그건 그냥 일본 애들 좀 자극해서 실력 좀 내게 하려는 거였는데 말이지.’

반짝거리는 동경의 시선을 보내오는 서준과 은우를 보며 성현이 볼을 긁적였다.

일본 검도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유망주라든가, 앞으로 한국 검도의 숙원을 이룰 사람 같은 이야기는 사실 그에게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뿐이다.

일본을 도발한 건 그를 위한 방법 중 하나에 불과했고,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 따위는 없다는 이야기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입 다물고 있었지만.

“음, 슬슬 다시 저희 차례겠네요. 대기실로 들어가서 준비들 하죠.”

““네, 주장!””

“네, 주장!”

“아니, 선배님들 왜 갑자기 존댓말로···.”

성현이 당황하여 몸을 비트는 틈을 타, 3학년 트리오가 낄낄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작년보다 친분이 쌓였기 때문인지 틈만 나면 농담을 하는 3학년들의 모습에 성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게감 있던 정철이 사라져서인지 어쩐지 짖궂음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청색, 머리! 시합 끝!”

그 사이, 성상고와 나카노 고교의 시합이 끝났다.

승리를 가져간 건 나카노 고교였다.

이 또한 시합이 시작하기 전부터 성현이 예상했던 결과였다.

성상고는 광천고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색이 없는 일반 고교였지만, 나카노 고교에는 일본 3대 유망주인 ‘진정한 사무라이’ 가토 카츠히토가 재학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카노 고교 자체의 전력도 우위인 데다가, 성상고에는 가토 카츠히토를 막을 만한 인물도 없는 상황.

한참이나 강한 나카노 고교가 이긴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내려다 본 성현은 나카노 고교 진영에 서 있는 이와 눈이 마주쳤다.

‘진정한 사무라이’ 가토 카츠히토.

일본 3대 유망주로 떠받들어졌지만, 국가 교류전에서 성현을 상대로 처참히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긴 그가 성현을 노려보고 있던 거다.

투지로 불타는 시선에 성현의 얼굴에 한줄기 호선이 그려졌다.

‘나카노 고교는 다른 이들도 강했지.’

광천고 주전들과 비교한다면, 근소하게나마 우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말인즉, 나카노 고교와의 경기에서는 성현이 나설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의미다.

아예 나설 필요도 없이 영준 선에서 정리되었던 호쿠토 고교와는 달리─물론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수민의 활약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튼─, 저들이라면 충분히 그를 끌어낼 만했다.

썩 나쁘지 않은 일이다.

성현의 입장에서는.

‘기대한다고.’

언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피식 웃은 성현은 느긋하게 몸을 돌렸다.

다음, 32강 경기를 준비할 시간이었다···.

*

[32강 첫 번째 경기!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김수민 선수의 3연승에 힘입어 올라선 광천고 대 배전공고를 꺾고 진출한 야나기가우라 고교입니다!]

[광천고야 작년 고교 최강에 올라선 학교니 다들 아시겠지만, 야나기가우라 고교는 다소 낯선 분들을 위해 소개해 드리자면, 일본 고교 중에서도 유명한 스포츠 명문 고교입니다! 야구, 축구는 물론, 검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죠]

[두 학교 모두 대단하죠. 그래서인지 더욱 기대가 되는 경기입니다]

시작되려 하는 32강 경기를 보며 두 중계진이 담담하면서도 힘 있는 어조로 말을 늘어놓았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한국 고교 검도를 대표하는 광천고와 일본 굴지의 스포츠 명문 야나기가우라 고교!

전자든, 아니면 후자든 우승권에 근접해 있는 강한 고등학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한국 최고의 유망주 이성현 선수와 일본 3대 유망주 중 한 명인 히라와타 신지 선수와의 대결도 이루어지겠죠?]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두 선수 모두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기는 선수의 팀이 승리를 가져갈 듯합니다]

더불어 경기를 보는 것에 있어 기대가 되는 건 두 학교의 강함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국가 교류전에서부터 시작된 성현과 일본 3대 유망주의 악연!

그게 어떤 식으로 한 번 더 매듭지어질지가 이번 경기를 통해 결정될 확률도 높았으니.

── │ 광천고 │ 야나기가우라 고교

선봉 │ 김 수 민 │ 아리미츠 키요타다

2 위 │ 손 대 현 │ 히치 유노

중견 │ 최 영 준 │ 히라와타 신지

부장 │ 조 윤 호 │ 쿠사기 젠야

주장 │ 이 성 현 │ 치카모리 토키치

[출전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천고 측에서는 64강과 같은 순서로 나왔는데요. 아무래도 이대로 쭉 갈 것 같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마 그럴듯합니다. 그에 반해 야나기가우라 고교는 다소 출전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본래 주장 순서였던 히라와타 신지 선수가 중견으로 나왔군요]

[으음- 이건 아무래도 앞서 출전해서 승기를 잡겠다··· 그런 의미 같죠?]

손지찬 캐스터의 질문에 송학림 교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주장인 히라와타 신지가 중견으로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경기 템포를 끌어올려 뒤에 두 사람을 두는 여유를 둔 채 성현을 상대하겠다는 전략일 터.

물론, 그게 유리할지는 알 수 없었다.

광천고가 잘만 버텨낸다면 야나기가우라 고교는 최대 전력인 히라와타 신지가 지친 상태로 성현을 맞이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자, 선봉 순서의 대결입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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