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08화 (108/150)

108화: 우승하러 한 번 더

3월 25일 오전 6시.

성현은 검도장에 좌선한 채 상념에 잠겼다.

그건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그만의 버릇.

딱히 루틴이나 징크스까지는 아닌 이유는, 만약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런 행동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기에 한다─ 딱 그 정도였으니.

여하튼, 상념에 잠긴 성현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개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건 역시나 오늘부로 시작하게 될 한일합작 승룡기 검도 대회에 대한 것이었다.

당장 몇 시간 뒤에는 대회에 참가하여 시합해야 할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대회 우승···. 꽤 힘들겠네.’

성현이 생각하기에, 이번 승룡기 검도 대회에서 광천고가 우승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터였다.

예정된 난관이 지금 광천고 주전들에게는 제법 버거운 까닭이다.

만약 이 대회가 한국 내의 고등학교만 와서 치르는 대회였다면 그도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번 대회는 한일합작으로 개최되었고, 대회에 참가하는 64개 고교 중 절반인 32개 고교가 일본의 고등학교였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일본 고교 검도는 한국 고교 검도보다 평균적인 수준이 높으니.’

한국 고교 검도가 근래 들어 언더키의 지원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맞다.

더해서 한국 고교 검도 최정상, 그러니까 성현과 백성호 등의 인재들이 일본 고교 검도 최정상인 일본 3대 유망주에 비해 강한 것 또한 맞다.

하지만 평균적인 학생선수의 실력만큼은 일본 고교 검도가 우위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는 수련 인구수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였기에 한국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본은 검도 초창기부터 학생검도인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영향과 전통이 남아 검도는 아직도 중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선택 의무 과정 중 하나였다.

자연히 수련 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이처럼 많은 인구의 수련자가 있으면 자연히 평균 수준 또한 높아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정상 인재들의 수준을 보았을 때, 일본보다 한국이 더 높다는 게 신기한 일인 것이다.

‘지금의 광천고 주전들로 일본 고교 선수들을 뚫어내는 건 많이 힘들 거야.’

수민은 아직 모 아니면 도 상태.

흐름을 타면 엄청나게 활약할 수 있지만, 반대로 꺾이는 순간 속절없이 질 확률도 높았다.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영준을 비롯한 3학년 트리오의 실력이 물이 올라 있는 상태이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 고교 검도 내에서의 성적일 뿐.

평균 수준이 한국 고교 검도보다 높은 일본 고교 검도의 학생선수들을 상대로도 활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당장 한국 고교 검도 내의 강자들을 상대로도 반반 싸움을 하는 형편이니.

아마 일본 고교 검도의 강자들을 상대로는 꽤 많이 패배하게 될 터였다.

그 말인즉.

‘나한테 걸리는 부담이 크다는 뜻···.’

우승을 위해 성현에게 걸리는 부하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싫으냐고 묻는다면, 성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으리라.

오히려 그가 바라던 바였다.

한계에 내몰릴수록 그는 강해질 테니.

“가볼까.”

성현이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언젠가, 회장기 검도 대회를 앞두고 묵상했던 그 당시처럼, 한 자루의 검과 같은 눈빛이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차분하게 걸음을 옮겼다.

검도장 바깥에는 이미 다른 선수들이 그를 기다리듯 서 있는 상태였다.

“봐봐, 슬슬 나온댔지? 성현이는 대회 시작 전에 이렇게 십 분 정도 묵상하고 출발한다니까.”

대현이 새롭게 들어온 1학년 부원 둘에게 자랑하는 어조로 떠들었다.

은우와 서준은 마치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엿본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십 분간의 묵상에 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뭔가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본 성현이 피식 웃었다.

“그럼 가볼까요?”

“우승하러?”

“우승하러!”

*

한일합작으로 개최된 승룡기 검도 대회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검도 협회가 투자한 노력은 엄청나게 컸다.

비단 한일합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대회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대회를 하나의 기회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까웠다.

검도라는 스포츠에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

물론, 한국은 안 그래도 날아오르는 상황에서 더 큰 날개를 달기 위해서고, 일본은 죽어가는 검도에 숨을 불어 넣고 싶어 한다는 게 달랐지만, 여하튼 두 나라가 바라는 건 근본적으로는 같았다.

검도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통해 더 높은 인기를 얻고자 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한국과 일본 모두 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방송을 통한 중계 또한 그 영역 중 하나였다.

“전국에 계신 검도팬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2021년 한일합작 검도 대회 승룡기! 캐스터를 맡게 된 손지찬입니다.”

TV 화면 속.

날아갈 듯 경쾌한 음악과 함께 등장한 두 명의 남성 중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는 일찍이 S 방송국에서 주최했던 유망주 대회에서 해설로 나왔던 손지찬이었다.

검도계가 워낙 좁다 보니 중계진이 빈약한 면이 있었고, 그 때문에 전에 유망주 대회의 해설을 맡았던 그가 다시금 승룡기 검도 대회의 해설을 맡게 된 것이다.

그의 옆에 있는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해설로 함께 했던 성균관대 송학림 교수가 다시금 나섰다는 이야기다.

“해설로 성균관대학교 송학림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손지찬 해설님.”

“하하! 그렇네요. 유망주 대회 이후 다시 중계진으로 만나 뵙게 된 게 거의 팔 개월만인가요?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시간이 참 빠르죠.”

강인한 인상의 중년 남성, 송학림 교수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함께 유망주 대회의 중계를 맡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어느새 반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러있어 놀랍다는 듯이.

그에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손지찬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빨리 뵙게 되었네요. 전 작년처럼 유망주 대회에서나 만나 뵙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이번 승룡기 검도 대회가 이례적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렇습니까? 마침 잘 됐군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승룡기 검도 대회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예, 이 승룡기 검도 대회는-”

미소를 거둔 송학림 교수가 여전히 딱딱한 목소리로 승룡기 검도 대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한국 검도 협회에서 일본의 옥룡기 검도 대회처럼 연승전 방식의 대회를 만들려 했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게 승룡기라든가.

대회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날 즈음, 일본에서 함께 개최하자는 요청이 들어와 대회 규모를 키우고자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든가 하는 것들을.

마지막으로 차후 이 대회처럼 많은 대회가 생겨나 검도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는 사족으로 송학림 교수는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렇군요! 한국 검도 협회에서 먼저 대회를 만드려고 했다는 사실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 한국 검도 협회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건 작년 고교 검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검도의 입지가 크게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많은 변화라 하심은?”

“몇 년간 이어지던 강호 네 곳, 빅4라고 하죠? 여하튼 빅4 구도가 끝나고, 새롭게 광천고가 고교 최강으로 우뚝 섰습니다. 또한, 백성호로 대표되던 남고부가 이성현이라는 신성의 등장으로─.”

송학림 교수가 그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빠르게 입을 놀렸다.

광천고로 대표되는 작년의 돌풍은 고여 있던 고교 검도계에 활력을 크게 불어넣었는데, 심지어 그 변화는 고교 검도계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간에 고교 검도를 널리 알리며 검도라는 종목이 한층 더 입지를 쌓게 만든 것이다.

이는 평생 검도를 수련하며 검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송학림 교수가 보기에 참으로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더 많은 검도 팬들에게 이를 알리고자 이처럼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침 저희가 중계해드릴 한일합작 승룡기 검도 대회의 첫 경기가 바로 그 광천고의 경기인데요. 상대는 일본의 호쿠토 고교입니다. 송학림 해설께서는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손지찬 캐스터가 적당한 부근에서 이야기를 끊어내며 물었다.

언제까지고 작년 고교 검도에 대해서만 말하게 둘 수는 없기에.

자연스러운 화제 변경에 정신을 차린 송학림 교수가 다시금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와 자신의 예측을 이야기했다.

“으음···. 아무래도 광천고의 상황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광천고의 상황이요?”

“네. 분명 광천고가 작년에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고교 검도 최강의 검도부가 된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3학년이 졸업하기 전, 세대교체가 되기 전의 일이니만큼 지금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크게 약해졌을 수도 있죠.”

“반대로 전력을 보존했을 수도 있고요?”

“네, 맞습니다. 만약 후자일 경우 호쿠토 고교는 수월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요컨대, 과연 광천고가 정철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는 예측이었다.

하기야 무조건적으로 1승을 챙겨주던 정철의 무게감은 실로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승룡기 대회가 한국 고교 검도 대회처럼 출전 선수가 일곱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부디 광천고 남자 검도부의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졌기를 바라야겠군요. 자, 그럼 경기 화면 보시죠.”

손지찬 캐스터의 말과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중계진들을 비추던 카메라에서, 경기가 펼쳐지는 잠실 학생 체육관 내부를 찍고 있는 카메라로 전환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개최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2021 한일합작 승룡기 검도 대회’라 쓰인 현수막과 똑같은 문구가 일본어로 쓰인 현수막이 벽면에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광천고와 호쿠토 고교의 주전들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도.

── │ 광천고 │ 호쿠토 고교

선봉 │ 김 수 민 │ 타카바타 코가

2 위 │ 손 대 현 │ 우키타 코시로

중견 │ 최 영 준 │ 니우 아츠지

부장 │ 조 윤 호 │ 마에케 히데아츠

주장 │ 이 성 현 │ 쿠니스에 치에오

“광천고 대 호쿠토 고교, 호쿠토 고교 대 광천고! 선봉으로 출전하는 건 김수민 선수와 타카바타 코가 선수입니다.”

“으음, 광천고에서 택한 건 김수민 선수군요.”

“아시는 선수입니까?”

“김수민 선수는 작년 광천고의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홀로 참가한 다른 대회에서 자주 우승을 했을 만큼 실력 있는 선수입니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타카바타 선수와도 충분히 싸워 볼 만한 실력이 있죠.”

“그렇군요! 과연 새롭게 주전으로 나선 광천고의 김수민 선수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아니면 타카바타 선수가 저력을 발휘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중계진이 공개된 출전 순서 명단을 통해 이야기하는 사이, 경기 준비가 끝났다.

그 말인즉, 김수민과 타카바타 코가가 시합을 펼치기 위해 주심을 사이에 둔 채 온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이제 인사가 끝나고 겨눔세를 취하기만 하면 시작하는 상황!

그리하여 마침내 두 사람이 죽도를 들어 올렸을 때.

“어엇?”

“···아니?”

지켜보던 중계진들이 기묘한 탄성을 내질렀다.

눈먼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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