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07화 (107/150)

107화: 언더키 실업 검도팀

천씨 집안의 가족 식사는 고요하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각자 식기를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여타 다른 집처럼 가족끼리의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천씨 집안의 대들보이자 중심인 천병중 회장의 뜻이었다.

그는 밥을 먹을 때는 온전히 밥을 먹는 데 집중하고, 따로 가족끼리 이야기할 게 있다면 이후 후식 시간을 이용하라 못을 박아버렸다.

맨땅에서 언더키라는 국내 인지도 1위의 스포츠 브랜드를 세우며 말 그대로 홀로 천씨 집안을 일으켜 세운 이의 선언이다.

감히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으랴.

당장 집안 내에서 그와 같은 항렬인 가족들도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기에 천씨 집안의 가족 식사는 참으로 고적하게 이루어졌다.

“···잘들 먹었나?”

“예, 아버님.”

천병중 회장이 입을 연 건, 식탁이 모두 치워지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였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얼굴을 한 차례 쭉 훑어본 그가 말했다.

“조만간 언더키의 이름을 건 검도 실업팀을 창설할 생각이다.”

“······.”

“······.”

만약 성현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놀랐으리라.

‘전’의 언더키 검도 실업팀 창설은 한참 뒤, 그가 서른 살을 넘기고 나서야 이루어졌으니까.

앞으로 십 년은 넘게 흘러야 나왔을 이야기가 벌써 나왔으니···.

그것도 심지어 천병중 회장의 입에서 말이다.

본래 ‘전’에 있었던 언더키 검도 실업팀 창설은 천병중 회장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천씨 집안이 추진한 일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아예 천병중 회장 본인이 언더키의 이름을 지닌 팀을 갖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앞뒤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곳의 단장직으로 수아를 앉힐 예정이고.”

“수아를요?”

“단장이라니···.”

천씨 집안 사람들이 술렁였다.

이번만큼은 가만히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병중 회장이 손녀인 천수아를 아끼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그녀를 선수 후원기획팀 팀장에 앉히려고 손쓴 게 천병중 회장이라는 건 알만한 이들은 다 알았으니까.

물론, 그녀가 가진 바 능력이 부족했다면 천병중 회장이 먼저 쳐냈을 테니, 그녀 본인의 역량도 출중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한들 언더키의 이름을 가진 팀의 단장을 맡기다니?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게냐?”

“···아뇨. 없습니다.”

그래 봤자 천병중 회장이 눈 한 번 부라리는 것으로 입을 꾹 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천병중 회장의 권위는 천씨 집안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 수아가 기존에 맡고 있던 직책은···.”

“당연히 계속해야지. 아직 창설도 안 된 팀의 단장으로 발령하면 그건 좌천일 뿐이니.”

창설 예정만을 해뒀을 뿐, 아직 감독과 코치는 물론, 영입된 선수도 없는 상황.

지금 단장으로 발령내면서 선수 후원기획팀 팀장 직위를 빼앗는 건 누가 봐도 좌천에 가까운 인사 행정이었다.

아직 단장직에 앉는 게 훗날의 일임을 알게 된 천씨 가족들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곧 계산기를 두들겨 본 결과, 그들은 이게 딱히 반대할 만한 일도 아님을 깨달았다.

“으음-”

정규 리그가 있는 4대 스포츠─축구, 야구, 배구, 농구─면 모를까.

비인기 종목인 검도의 실업팀이다.

게다가 창설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검도에 대한 애정일 터.

딱히 사업적인 확장이 아닐뿐더러, 괜히 반대했다가는 괘씸죄로 천병중 회장에게 찍힐 가능성마저 있다는 이야기다.

비록 그 팀이 언더키가 브랜드의 이름을 걸고 창설한 최초이자 유일한 스포츠팀이 되기야 하겠지만, 천병중 회장의 검도 사랑은 유명하므로 아마 무탈하게 넘어가게 되리라.

대강 분위기가 진정되자,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신 천병중 회장이 말을 이었다.

“내가 그토록 검도를 좋아하면서 여태까지 언더키의 이름을 붙인 실업팀을 만들지 않은 이유를 아느냐?”

‘그러고 보니···.’

‘매일 검도를 보실 정도인데 대체 왜?’

“만들어봐야 최고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 그거야 쉽지. 문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천병중 회장은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천씨 집안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워낙에 검도광인 천병중 회장 아래서 자라다 보니 검도에 관해서 이래저래 주워들은 지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 세계 최강이자, 검도 종주국인 일본!

지난 세월 동안 한국 검도가 단 한 번도 국제무대에서 꺾은 적 없던 그곳을 이길만한 인재가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리라.

그러니 검도 실업팀을 만들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 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면 그저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천병중 회장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셨군요.”

“그래, 둘째야. 네 말이 맞다!”

천병중 회장이 어린아이처럼 들뜬 어조로 외쳤다.

“분명한 가능성을 보았다. 마침내 내가 공들여 만든 팀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거다!”

한껏 고조된 아버지를 본 아들들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처럼 불타오르는 천병중 회장은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걸 지난 세월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괜히 씨알도 안 먹힐 말로 미운털 박히느니 순순히 따르는 게 훗날에 더 도움이 될 터였다.

“수아야.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갑작스러운 천병중 회장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수아가 대답했다.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 것···일까요?”

“바로 맞췄다. 그럼 지금 한국 검도에서 그게 누가 될지 말해보거라.”

천수아의 얼굴에 미미한 긴장이 어렸다.

지금의 질문이 단순하게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그녀를 단장에 앉히기 적당한지 시험하기 위함임을 깨달았기에.

만약 여기서 그녀가 한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천병중 회장은 자신의 뜻을 잘 헤아려 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 단장직에 앉히리라.

“우선, 현 실업 선수인 위대한 선수가 있어요. 훗날 코치, 나아가서는 감독으로까지 키워볼 법한 인재죠. 그럴 역량도 되고요.”

“감독이라···, 그래. 그리고?”

“이번에 대학에 진학한 정철 선수도 있죠. 작년에 한 꺼풀 벗은 정철 선수는 무관의 제왕이 아니라 제왕이라 불릴 만하니까요.”

“이 할애비가 눈여겨봤던 선수구나. 그리고?”

“백성호 선수도 빼놓을 수는 없죠. ‘천재’라는 별명이 그보다 잘 어울리는 선수도 없을 거예요. 현재 실력도, 잠재력도 엄청나게 뛰어나요.”

“가장 갖고 싶은 선수 중 하나지.”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는 선수의 명단.

천수아는 마치 이날만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선수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중에는 현역 실업 선수로 뛰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대학이나 고교 학생 선수로 뛰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만약 그녀가 말하는 대로 팀을 꾸린다면, 역대급 팀이 탄생하리란 건 분명했다.

앞으로 십 년은 거뜬히 검도계를 호령할, 그런 팀.

하지만 정작 천병중 회장은 그리 만족스러운 기색이 아니었다.

“한데, 이게 끝이냐? 그럼 이 할애비는 수아에게 좀 실망할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천수아가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말한 선수들은 확실히 영입하고픈 이들이긴 했으나, 그보다는 밑밥을 깔기 위해 말한 것에 가까웠다.

단 한 사람의 이름을 입 밖에 내기 위해 꺼내든 밑밥 말이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선수를 영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바로 이성현 선수를 영입하는 거예요. 한국 최고를 넘어서 세계 최고를 바라보려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필요하고, 이성현 선수가 바로 그런 선수니까요.”

최고는 최고와 함께해야 한다, 라고.

천수아의 말을 들은 천병중 회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래. 그게 바로 이 할애비가 바라던 답이다!”

세계 최고가 아니라면 팀을 만들지 않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몇십 년 동안 언더키의 이름을 건 실업 검도팀을 만들지 않았던 천병중 회장을 단 일 년 만에 바꿔버린 소년이 있다.

상식이라는 걸 모조리 박살 내며 고교검도를 넘어, 실업 검도에까지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는 주역, 바로 이성현이다.

백성호를 보았을 때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던 천병중 회장도 성현의 등장에는 기어코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성현이라면 한국을 세계 최고, 정점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이제부터 언더키 실업 검도팀을 만드는 데 힘쓰거라. 네가 바라는 대로 만들면 된다. 너희들은 수아가 협조해달라 하면 무조건 협조하고!”

““네, 아버님!””

호령하듯이 지시하는 천병중 회장 앞에서, 천수아는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안에는 거칠고 딱딱한 손이 잡혀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성현의 손이.

그때 느껴졌던 뜨거운 열기가 어쩐지 잊히지 않는 기분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으, 헉-”

비틀비틀 걸어온 은우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서준이 낄낄대며 웃었다.

본인이 앞서 겪었던 괴로움을 다른 이가 겪게 되는 걸 지켜보는 건 의외로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의 차례는 이미 지나갔으니 마음이 편한 탓이리라.

“죽···을, 헉! 것 같아악-”

“나도 그랬어.”

“으허-억···.”

“이걸로 땀이나 닦아.”

발버둥 치듯 호면을 벗은 은우에게 서준이 미리 꺼내두었던 수건 하나를 휙 던졌다.

머릿수건까지 온통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던 은우는 뽀송뽀송한 수건의 감촉에 파묻힌 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서준이 말했던 대로 땀을 닦는 건 불가능했다.

그럴 시간에 팔딱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기에.

그렇게 몇 분을 쉬었을까.

“으-아···. 이제 좀 살만하네.”

겨우 헐떡이던 걸 멈춘 은우가 몸을 일으켰다.

언제까지고 도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서준이 준 수건으로 흥건한 땀을 닦아낸 은우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방금까지 그가 있던 곳이었다.

검도부의 주장, 성현이 있는 바로 그곳.

“검도부 들어오고 나서부터 계속 생각하는 건데.”

“응. 말해봐.”

“성현 선배는 지친다는 게 뭔지는 알까?”

“글쎄다···. 최소한 우리를 상대로는 그런 걸 모르는 거 같으시던데.”

연달아 서준과 은우를 상대해준 성현은 이제 수민과 대련하고 있었다.

세 사람을 이어서 상대했음에도 그의 자세에는 일말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은우와 서준 두 사람에게는 썩 달갑잖았다.

성현의 대단함에 대한 질시라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에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불타오르면 더 불타올랐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워야 해.’

‘그래야 한 경기쯤은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은우와 서준은 승룡기 대회에 후보 선수로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성현에게 이미 전해 들었다.

혹여라도 기회가 된다면 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성현은 그 ‘기회’를 자신의 실력으로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는 법이다.

두 사람은 기회를 받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승룡기 대회를 2주 남긴 어느 날.

광천고 남자 검도부의 풍경이었다.

우승하러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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