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04화 (104/150)

104화: 입부 체험

우렁찬 인사와 함께 검도장에 들어선 은우와 서준이 빠르게 눈을 굴렸다.

지난 한 해 동안 광천고가 일으킨 돌풍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도장 안에는 제법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였다.

검도복을 입고 훈련하고 있는 이들 반, 사복을 입고 한쪽에 모여 앉아 있는 이들이 나머지 반.

전자가 현 광천고 검도부 부원들인 듯했고, 후자는 그들처럼 입부 체험을 해보기 위해 온 중학교 3학년들인 것 같았다.

한순간 모여드는 시선에 서준과 은우가 저도 모르게 움츠렸을 때.

“입부 체험 하러 왔니? 여기 명단 이름 옆에 표시하고 저쪽에 편하게 앉아 있어.”

“아, 네!”

“알겠습니다!”

여자 검도부 부원─은우와 서준은 몰랐지만, 그녀에게는 이하은이라는 이름이 있었다─이 웃으며 그들을 안내해주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두 사람은 재빠르게 하은이 내미는 명단에 표시한 뒤, 입부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보았다.

이곳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얼굴들을.

“어?”

“너희가 왜 여기에···?”

동조 중학교의 선봉과 주장인 김진우와 신영범!

은우, 서준과는 중학교 내내 최강 자리를 놓고 다툰 이들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던 거다.

사실, 그들이 오는 것 자체는 그리 문제 될 일이 아니었다.

광천고의 입부 체험은 중학교 3학년 전체─어디까지나, 검도부가 있는 곳에 한해서지만─를 대상으로 하여 공문이 발송되었었으니까.

하지만 김진우와 신영범은 본인들의 입으로 경중고로 간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으며, 광천고로는 갈 생각이 없다 못을 박았었다.

그래놓고 정작 먼저 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그냥 한 번 와본 거야.”

“그래. 염탐도 해볼 겸 해서···.”

그걸 본인들도 알고 있는지 김진우와 신영범은 눈을 피하며 누구도 믿지 않을 변명을 내뱉었다.

정작 본인들도 부끄럽다 생각했는지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은우와 서준은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이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두 사람이 여기에 온 게 상당히 놀랍고, 또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건 저들의 선택이니 그들이 뭐라 할 건 아니었으니까.

“광천고는 포기하는 게 좋을걸. 우리가 여기 오면 너희는 후보밖에 안 될 테니까.”

“개소리하네. 후보가 되는 건 너희겠지.”

은우의 말에 김진우가 사납게 쏘아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이를 드러냈다.

앞서 말했듯 재영 중학교의 선봉과 주장이었던 은우, 서준은 동조 중학교의 선봉과 주장인 김진우, 신영범과 중학 내내 라이벌 관계였다.

그것도 다른 학교는 모르는 그들만의 라이벌리가 아니라, 대부분의 중학교 검도부가 아는 대표적인 중학교 검도 라이벌!

굳이 고교 검도에서 찾아 비교를 하자면, 현재의 광천과와 경중고의 관계와도 비슷할 것이다.

단 하나뿐인 최강의 자리를 두고 겨루는 라이벌.

그것이 바로 재영중과 동조중이었다.

“추계 전국 대회 때 개발린 거 기억 안 나?”

“마지막에 한 번 이겼다고 뻐기기는. 그래 봤자 종합 우승 횟수도 딸리는 주제에.”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라는 말 모르냐.”

“승률을 봐야지. 왜 마지막 결과만 보지?”

중학교 3년의 전체적인 승률은 동조중의 김진우, 신영범 듀오가 우세했지만, 3학년 때의 대회에서는 재영중의 은우, 서준 듀오가 우세했다.

그들 사이에서 명확한 결판이라는 게 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서로를 향해 더욱 강렬하게 호승심을 불태웠다.

다른 입부 체험 대기자들은 그들의 실력과 라이벌리를 알고 있는지 더욱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 이걸로 다들 도착했네!”

얼마 지나지 않아 명단을 체크 하고 있던 이하은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신호로 하여 검도장에서 기본적인 훈련을 하고 있던 광천고 검도부 부원들이 하나둘씩 체험 입부자들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럴수록 체험 입부자들 얼굴에는 짙은 긴장감이 드리웠다.

이제 몇 달 뒤에는 함께 지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보다 나이 많은 고등학생 형, 누나─혹은 언니, 오빠─들을 보는 건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이었기에.

게다가 광천고 검도부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여러모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다들 반가워. 나는 광천고 여자 검도부 주장인 임하윤이야. 이쪽은 남자 검도부 주장인 이성현!”

“안녕-”

““안녕하세요!””

먼저 나서서 입을 연 건 임하윤이었다.

그녀는 괜히 몇 년간 광천고 여자 검도부를 이끌고 주장을 해온 게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체험 입부를 진행했다.

하기야, 매년 신입생들을 상대로 체험 입부를 진행해온 경험은 어디 가지 않았을 테니······.

“사실 오늘 체험 입부는 별거 없어. 그냥 이야기 좀 나누고, 훈련하는 게 전부니까. 아, 훈련도 같이 하고 싶은 애들만 하면 돼. 그냥 눈으로만 보고 싶다면 그래도 되고.”

““······.””

하윤은 그렇게 말했지만, 중학생들의 눈에는 함께 하겠다는 명확한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겨울방학 기간에 시간을 내서 입부 체험까지 하러 올 만큼 열정과 의지가 넘치는 이들이 기껏 와서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하윤이 어깨를 으쓱거린 뒤, 그들을 탈의실로 안내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일단 옷을 갈아입고 나와야 할 테니.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옷을 갈아입고 나온 뒤에 이어진 건 당연하게도 훈련이었다.

입부 체험을 하러 온 중학생 중 남자애들은 성현이 이끄는 남자 검도부 쪽에, 여자애들은 하윤이 이끄는 여자 검도부 쪽에 붙은 채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훈련 내용은 당연하게도 광천고 검도부가 매일 같이 진행하는 것들이었다.

각종 연격과 기본 기술 연습, 발 운용 연습 등.

‘확실히 빡세긴 한데.’

‘뭐랄까, 생각보다 별거 없네.’

훈련 내용이 빈약한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 정도면 굉장히 빡센 축에 속했다.

당장 은우와 서준을 비롯한 중학생들은 체력이 부족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어딘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단숨에 약소부에서 고교 최강의 자리까지 오른 광천고 검도부라면 뭔가 특별한 훈련을 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게 없으니 은근히 실망스러운 것이고.

비단 그런 생각을 한 건 은우와 서준만이 아닌 듯, 다른 입부 체험자들의 얼굴에도 비슷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슬슬 본격적으로 가자.”

그러나 그들의 실망은 섣부른 것이었다.

기본적인 훈련들을 끝낸 후, 비로소 입부 체험자들이 바라는 ‘특별한’ 훈련이 시작되었으니까.

광천고 남자 검도부를 강하게 만든, 강하게 될 수밖에 없는 훈련─ 바로 성현과의 대련이.

“이제부터는 대련을 할 건데.”

앞으로 나선 성현이 입부 체험자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대련의 상대가 누가 될지 은연중에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각자 오 분씩 시간을 줄 테니 최선을 다해서 실력을 발휘해 봐. 참, 당연한 말이지만 대련 중 빈틈을 보이면 나도 공격에 나설 거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누구부터 시작할래?”

“저부터 하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건 은우였다.

가장 먼저, 빠르게 손을 든 그의 모습에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부터 하자. 이름이 뭐야?”

“재영 중학교 3학년 김은우입니다!”

“김은우···?”

“네! 김은우입니다!”

은우의 이름을 들은 성현의 표정이 묘해졌다.

필시 ‘전’에 들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기억하고 있다는 건 나름대로 실력 있는 검도 선수였다는 뜻이므로.

하나 정작 은우는 성현의 반응을 깨닫지 못했다.

대련을 앞두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던 까닭이다.

성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고교 최강!

그런 이와 대련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

“가겠습니다!”

“그래.”“이야아아-!”

재빠르게 호구를 착용하고 나선 은우가 성현을 향해 기부림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성현은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고, 다른 입부 체험자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대련에 임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 분이 지났다.

“헉, 허억! 헉! 헉!”

“······.”

은우는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무릎 꿇은 채 숨을 헐떡였다.

반면, 성현은 담담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친 기색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누가 봐도 대련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것 같은 광경이었다.

‘압도적이다.’

‘으, 장난 아니네.’

입부 체험자들의 표정에서도 그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방적으로 진행된 대련에 그들은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실력 차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김은우라면 그들도 알 만큼 강한 학생선수이건만, 그런 이가 손도 발도 못 쓰고 박살이 나다시피 했으니···.

“기본기도 탄탄하고 공세도 훌륭해. 기회를 잘 노리기도 하고.”

은우가 숨을 가다듬기를 기다린 성현이 말했다.

자신에게 말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은우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아쉬운 건 상대가 함정을 파놓으면 쉽게 걸려든다는 점이야. 좀 더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해. 이 기회가 내가 만들어 낸 게 아니라면 더더욱.”

“생각하는 습관···. 이해했습니다!”

“그래. 이제 들어가서 쉬어.”

“네!”

자연스럽게 은우를 들여보낸 성현이 나머지 입부 체험자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다음은 누구냐?’라는 뜻을 담은 눈빛에 입부 체험자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가득한 얼굴로.

성현은 한 사람씩 불러내어 그들과 오 분간 대련을 진행했고, 대련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장단점을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까지.

성장 중인 중학생 검도 선수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내용이었기에, 그들은 지쳐 쓰러질 것 같이 숨을 헐떡이면서도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식으로 몇 사람이나 되었을까.

“와-”

“미친···.”

처음에는 빨리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기다리던 입부 체험자들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입을 쩍 벌리고 대련을 지켜보았다.

정확히는, 십수 명을 상대하고도 여전히 멀쩡해 보이는 성현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체력이 무한하기라도 한 건가.’

‘지치질 않잖아.’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연달아서.

그것도 일방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대련을 하면서도 저처럼 멀쩡해 보이다니!

물론 성현도 사람인지라 처음에 비하면 다소 지쳐 보이기는 했으나, 대련이 끝나면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리는 이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단지 '강하다'라는 정도로 설명이 되는 모습이 아니다···.

‘고교 최강’이라는 성현의 칭호가 그들의 머릿속에 깊숙하게 박혀 드는 순간이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성현은 담담히 대련을 진행해나갔다.

그리고 끝내 입부 체험자들 전원과 한 번씩 붙어보고 장단점을 말해주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한 번도 쉬지 않은 채로.

정말이지, 엄청나게 놀라운 실력에,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체력이었다.

그렇게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을 상대로 오 분간 대련을 진행하고 나니, 어느새 슬슬 입부 체험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호면을 벗어 옆구리에 든 성현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긴말하지 않을게. 광천고 검도부로 오면, 방금 같은 대련을 매일같이 할 수 있어.”

‘방금 그 대련을···.’

‘···매일같이 할 수 있다고?’

겨우 단 한 번의 대련이었지만, 이게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며 조언인지 깨닫지 못할 입부 체험자들이 아니다.

광천고 남자 검도부가 약소부에서 고교 최강이 된 이유가 지금 이 대련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그걸 매일같이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입부 체험자들을 보며, 성현은 진하게 미소지었다.

“선택은 너희의 몫이야.”

새로운 엔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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