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01화 (101/150)

101 화 : 고교 최강

*

“계속 몰아칩니다! 쉴 틈을 안 줘요! 정철 선수 숨 돌리는 시간조차 없이 밀어붙입니다! 이성현 선수가 이렇게 수세에만 몰려있는 건 이번 대회 처음 아닌가요?”

-와씨ㅋㅋㅋㅋ

-진짜 이기냐? 진짜??

-소년가장이 부원 줘팸ㄷㄷ

-정철이 진짜 잘하긴 하네요. 이성현하고 이렇게 비빌 줄 몰랐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정철 선수가 진짜 잘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성현 선수에 비교하면 약하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까 아니네요. 와-”

아이튜버 하온이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결승전 양상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그에게 시선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설마 했던 이변 앞에서 소란스레 떠들고 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4강에서 백성호마저 처참하게 박살 난 이후, 성현은 사실상 언터처블이 되었다.

학생 검도 수준에서는 감히 대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괴물이라는 인식이 완벽히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자연히 결승전에서 정철이 이길 수 있으리라 예측하는 이들도 적었다.

물론 정철의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현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비교적 왜소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여 우승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까지 이야기됐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승기를 잡은 쪽은 정철이었으니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아까 결승전 경기 보나 마나 뻔하다고 하신 분들 반성하세요!”

-ㅈㅅㅈㅅ 반성 중입니다

-이걸 왜 하온이 자랑함?ㅋㅋ

-내년에 정철 졸업 아닌가요? 실업 팀 어디로 가는지 정해졌나요?

-대학 진학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하온이 신나서 떠들어댔다.

아이튜브 영상각이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아예 그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재밌는 경기를 보게 되어 즐거운 까닭이 더 컸다.

그 또한 검도 팬 중 한 명이었으니까.

아이튜브 주력 컨텐츠를 검도로 택했을 만큼.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경기 영상이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큽니다.”

들뜬 와중에도 하온은 경기에 관한 해설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28강부터 지금까지 이성현 선수가 주도권을 내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도무지 답이 안 보이던 선수한테서 드디어 공략법이라 할만한 게 발견되었다는 뜻이죠.”

-공감합니다

-약간 설레발 같기는 하지만···

-백성호보다도 더 잘 싸우고 있는 건 팩트임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하온의 말처럼 성현은 128강부터 결승까지 총 여섯 경기를 넘게 치르면서도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내준 바 없었다.

모든 경기에서 흐름을 쥔 채, 상대가 어떤 대처법을 가져오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검도를 하여 일격에 쓰러뜨려 왔다는 이야기다.

그랬던 그가 몰아붙여 지고 있는 상황!

철옹성처럼 견고하던 성현에게 마침내 틈이 보였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정철이 행하는 방법이야말로 ‘괴물의 공략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니, 자연히 경기의 의미가 무거워질 수밖에.

-문제는 저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거죠;;

“맞습니다. 저렇게 계속 치는데도 도끼칼이나 개칼이 되지 않는 건 매우 어렵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성현 선수가 벌써 반격했을 거고요. 정철 선수의 실력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괜히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던 게 아니네요.”

한 시청자의 채팅에 하온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언뜻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 막 치는 거에 약하다고? 그럼 달려들어서 마구 후려치면 되겠네?’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건 검도 경기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지금 정철이 계속해서 몰아치는 와중에도 성현이 반격에 나서지 못하는 건, 정철의 공세가 그럴 기회를 잡기 힘들 만큼 뛰어난 연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방, 한방이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데, 그 사이에 거의 틈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정철의 공격이 장작패듯이 힘만으로 찍는 ‘도끼칼’이나, 이기려고 마구 휘두르는 ‘개칼’이 되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성현이 반격에 나서 흐름을 끊어버렸을 터.

이는 정철이 쌓아 올린 기본기가 그만큼 탄탄하다는 의미였으며, 지금 보여주는 방법을 누구나 쓸 수 있지는 않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이 방법으로 이길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성현 선수의 경기가 이토록 치열해진 건 개인전 중에서 이번이 유일하다는 거죠.”

그렇게 하온이 해설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경기는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폭풍처럼 연달아 공격을 가하는 정철과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꾹 참고 견디는 성현의 구도로.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중단세가 공격에 미친 것처럼 날뛰고, 정작 모든 겨눔세 중 가장 공격적이라는 상단세는 그걸 막아 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진짜 이러다 정철이 이기나?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솔직히 이번 대회 내내 정철 폼 장난 아니긴 했죠. 단체전도 전승했고 -그러면 진짜 대이변인데ㄷㄷ

“그럴지도 모르지만···.”

하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까지는 정철이 성현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현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식으로 대응에 나서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은 뒤집힐 수 있었다.

따라서 아직은 더 지켜봐야 했다.

아직 경기는 일 분 넘게 남았으니까.

“이성현 선수가 이토록 쉽게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런 하온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남은 경기 시간이 일 분 아래로 떨어졌을 때.

고요하게 기회를 노리던 괴물이 마침내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타악-!

정철이 기습적으로 시도했던 찌르기가 성현이 내민 손잡이 끝에 가로막혔다.

상단세를 상대로 찌르기를 시도하는 건 굉장히 유효한 방법이지만, 동시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대로 상단세를 쓸 줄 아는 이들이라면 찌르기를 손잡이만으로 능히 막고 걷어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찌르기를 시도한 이는 머리와 손목이 비어버리게 된다.

기회가 위기가 되어버리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

순간적으로 정철의 안색이 굳어졌다.

움츠러든 성현을 보고 기회라 생각해서 찔렀건만, 잘 짜인 함정 속에 뛰어든 꼴이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한 탓이다.

차라리 계속해서 머리와 손목, 허리를 노렸다면 모를까, 찌르기를 시도한 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든 것 같은 상황을 만들고야 말았으니.

“하아아앗-!”

성현은 시합 시작 이후 처음으로 기부림을 내지르며 발을 굴렀다.

노릴 수 있는 부위는 많았다.

그가 찌르기를 가볍게 걷어내며 정철은 머리와 손목이 모두 노출되었으니까.

어디를 치든 이길 수 있으리라.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생각하겠지.’

굳어졌던 정철의 안색이 다시금 변화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성현에게 있어 찌르기가 그리 큰 약점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회장기 검도 대회 개인전 결승에서 백성호가 몸소 증명한 바 있었으니.

하여 그는 찌르기로 승리를 따내고자 하는 생각 따위는 애초에 갖고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가 바란 건 지금 이 구도였다.

마침내 이빨을 드러낸 괴물이 치고 나오는, 이 상황을 원했던 것이다!

‘머리···!’

정철은 재빠르게 몸을 빼내며 죽도를 들었다.

전력을 다한 찌르기가 아니었던 만큼 행동에 나설 여력은 충분했다.

그가 노리던 그대로의 그림이다.

이제 이걸 쳐내면서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면──

타아악-!

“···무슨?!”

오른쪽 허리로부터 느껴지는 충격에 정철이 비명 같은 외침을 토해냈다.

그는 단박에 깨달았다.

오른 허리, 혹은 역허리라 부르는 기술에 자신이 꼼짝없이 당했음을.

성현은 죽도를 순간적으로 들어 올리는 속임수 동작으로 그의 팔을 위로 들게 했고, 그걸 이용해 단숨에 역허리를 친 거다.

뒤늦게 주심이 깃발을 들며 외치는 소리가 정철의 귓가에 들려왔다.

“백색, 허리!”

““와아아아아-!””

또 한 번 기록이 연장되었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관객들.

정철은 그들의 환호를 한 귀로 흘리며 멍하니 섰다.

‘분명히 머리를 노리는 움직임이었는데.’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것일까.

완벽하게 속아 점수를 빼앗긴 상황에 정철이 넋나간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게, 찌르기를 미끼로 상대를 끌어낸다는 계획까지는 분명히 성공했는데, 결과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으니까.

역허리라니.

처음부터 상대를 속이려 하지 않고서는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기술이다.

그렇다는 건.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지 않고서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미래를 내다보는 듯이 예측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정철의 시선을 받은 성현은 무감정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

경기 시작 전부터 자신을 응시하던 시선이 정철은 새삼스럽게 오싹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저 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하하.”

‘정말로 괴물이긴 하구나.’

정철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 겨뤄보니 알 것 같았다.

이성현이라는 소년이 얼마나 괴물인지.

그것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었다.

두려움은 앞으로도 검도를 계속하다 보면 몇 번이고 부딪칠 것을 걱정하여 생기는 감정이었고, 안심은 그런 괴물이 앞으로 광천고 남자검도부를 이끌어 준다는 것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감정의 크기는 후자가 월등히 컸다.

‘광천고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삼 년간 지켜온 광천고 남자검도부를 맡기기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인재는 없으리라.

정철은 내심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 선에 가서 섰다.

이제 1점을 빼앗겼을 뿐이고,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그가 언제나 그랬듯이.

······기적은 없었다.

성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득점하며 결승전에서 정철을 꺾고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회장기 검도 대회에 이은 전국 대회 연속 우승!

모든 고교 검도 팬들에게 자신이 반짝하고 사라질 이가 아니라는 걸 이번 대회를 통해 똑똑히 증명해낸 것이다.

이제, 성현의 존재는 많은 고교 검도부 감독의 골치가 되리라.

올해로 고등학교 1학년인 성현은 졸업까지 앞으로 2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았으니까.

2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무력하게 우승을 건네줄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이 어린 괴물이 이끄는 광천고를 이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쥐어 짜내지 않으면 안 됐다.

사실상 광천고는 고교 검도 공공의 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체전 우승! 개인전 우승! 우승은 우리 광천고 거라 이 말이야!”

“우와아아아-!”

성현을 비롯한 광천고 주전들은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승을 기뻐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설령 누군가 이를 알려준다 해도 그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는다고 해도 실력으로 뛰어넘으면 그만이라는 걸 이번 대회를 통해 그들 모두가 깨달았기에.

그게 고교 검도 최강의 검도부가 보일 자세니까.

한일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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