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00화 (100/150)

100화: 공략법

*

“그래서, 어떻게 하지?”

곤란하다는 어투로 말을 꺼낸 건 대현이었다.

광천고 남자 검도부의 2학년 트리오 중 한 명이자, 주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년.

이번 대회에서 금제고의 선봉과 당당히 맞상대하여 무승부를 이루어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그는 꽤 난감한 표정이었다.

“글쎄다.”

“으음-”

그리고 그건 다른 두 명의 2학년 트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단체전은 물론이요, 개인전에서도 16강까지 올라서는 등 현 고교 최강 광천고 중견으로서의 실력을 똑똑히 드러낸 영준도.

단체전에서는 금제고의 중견을 만나 패배했지만, 개인전에서 다시 그를 만나 승리함으로써 갚아준 윤호도 모두 난처해하는 중이었다.

말로 하지는 않았을 뿐, 3학년 현성과 경진 또한 같은 마음인 듯 보였고.

이들을 이토록 고민하게 만드는 건 간단했다.

“결승전에서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하냐?”

결승전에서 누구를 응원하는가.

성현이 4강에서 백성호를 꺾고, 뒤이어 정철 또한 4강을 돌파하게 되며, 추계 전국 대회 결승전은 광천고 내전으로 확정되었다.

이로 인해 대현을 비롯한 광천고 주전들은 전 주장인 정철을 응원하느냐, 아니면 현 주장인 성현을 응원하느냐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고민되네.”

“그러게.”

“···그냥 둘 다 응원하면 되지 않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 건 광천고 여자 검도부의 주장, 하윤이었다.

관객석에는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여자 검도부 부원들도 남자 검도부 부원들과 함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경기가 없는 여자 검도부 부원들이 남자 검도부 개인전을 응원하기 위해 왔고, 개인전에서 탈락한 이들과 자연스럽게 뭉치게 된 까닭이었다.

“그렇게 성의 없는 짓을 어떻게 해?”

“와, 하윤이 너 나빴다···.”

대현과 영준의 반응에 하윤이 눈을 끔뻑거렸다.

결승전에 광천고만 두 명 나갔으면 둘 다 응원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성의 없는 거라니.

대체 무슨 논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 그녀가 옆을 돌아보자, 주전 중 한 명인 이하은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대꾸했다.

“남자애들이 헛소리하는 거 하루 이틀 봐?”

정말이지, 단숨에 이해가 가는 설명이었다.

하윤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때, 이하은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우리야 둘 다 응원하면 되지. 누가 이겨도 어쨌든 광천고 우승이니까···. 아, 누구한테는 이야기가 좀 다르려나?”

그렇게 말하며 하은이 바라본 건 수연이었다.

순식간에 자신에게로 시선이 모여들자 수연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현과 그녀가 굉장히 가까운 사이라는 건 이미 검도부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하지만 수연은 발그레한 얼굴을 감추려 할 뿐, 끝끝내 하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여자 검도부 부원들이 깔깔거리며 웃은 건 물론이었다.

“···나, 방금 응원할 쪽을 결정했다.”

“···그래?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하, 오래간만에 모두 같은 의견인 거 같네.”

2학년 트리오는 슬쩍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정철 선배 파이팅-!””

저 부러운 자식을 조져 주세요-!

*

““정철 선배 파이팅-!””

우렁찬 응원에 정철이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퍽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던 까닭이다.

비록 체육관 안은 결승전을 앞두고 많은 관객이 떠드는 중이라 소란스러웠지만, 저 목소리를 구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몇 년간 동고동락해 온 부원들의 목소리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근데 왜 내 이름만···?’

뒤이어 성현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려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용한 걸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정철은 이내 피식 웃었다.

그가 아는 부원들이라면 보나 마나 별거 아닌 일로 저러는 것일 테니까.

아마 잠시 뒤 시합이 시작되고 나면 지금과는 달리 두 사람 모두 한꺼번에 응원해 줄 터였다.

그것이 그가 아는 광천고 남자 검도부였다.

“······.”

고개를 든 정철은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객석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기대와 열망이 담긴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회장기 검도 대회 때처럼.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한 적 없는 뜨거운 시선이었다.

문득, 약소부라는 딱지를 달고 있던 무렵의 기억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광천고는 조연조차 되지 못한 엑스트라였다.

결승전 무대에 지금처럼 나오기는커녕, 멀찍이서 부러워하며 바라보기만 할 뿐인.

그랬던 광천고가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결승전에 오르고, 전국 대회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우승을 두고 내전을 벌이게 됐다.

이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모두가 무시하던 약소부에서 이제는 고교 최강의 검도부라니.

‘성현 후배를 주장으로 삼기로 한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어.’

그저 하윤을 상대로 훌륭한 실력을 보여 줬다는 이유만으로 주장으로 뽑았던 성현이다.

그랬던 그가 선배들인 2학년들에게 검도를 가르쳐 주고, 직접 경기에서 하드 캐리까지 해 가며 광천고를 고교 최강의 자리에 올려 둘 줄이야.

물론, 그게 온전히 성현 혼자의 힘만으로 이루어낸 결과는 아니리라.

누군가 한 명이 멱살을 잡고 이끈다 한들, 다른 이들의 의욕이 부족하면 될 일도 안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성현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

실력으로 광천고 남자 검도부를 유지시키기만 해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던 정철에게 성현은 로또보다 더한 당첨 복권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시합은 시합이지.’

맞은편에 있는 성현을 보는 정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성현의 활약에 힘입어 광천고가 날아오른 건 맞지만, 그에 보답한답시고 이번 경기에서 힘을 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이를 악물면 악물었지.

그게 성현에 대한 보답일 테니까.

[남자부 개인전 결승이 곧 시작됩니다]

“스으으으, 하아아아아-”

한 차례 크게 심호흡한 정철은 호면을 들어 올려 머리에 뒤집어썼다.

끈을 묶는 그의 손놀림은 억셌다.

그가 가슴 속에 품은 결의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모든 준비를 마친 정철은 죽도를 든 채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몸 상태는 어느 때보다 좋았다.

고교 최강의 검도부 주장에게 한 방 거하게 먹여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당당히 걸음을 내디뎌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 그가 자신의 앞에 선 성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 안에 같은 검도부를 보는 따스함은 없었다.

그저, 쓰러뜨려야 할 적을 보는 흉포한 적의만이 가득할 뿐.

“인사!”

“······.”

“······.”

묵묵히 주심의 구령에 맞춰 허리를 숙이는 정철과 성현.

하지만 그건 인사이되 인사가 아니었다.

본래 인사란 상대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지만, 지금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색은 도무지 존경의 뜻이 담겨 있지 않았으니까.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을 게 신기할 만큼 말이다.

그래서일까?

심판들은 물론이요, 관객들까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사이에 감도는 거칠고 무시무시한 공기를 깨달았다.

“뭐야, 저 두 사람 원래 사이 안 좋아?”

“조금 전에는 웃고 있던데···.”

“결승전에서 만났다고 싸우기라도 한 건가.”

보통 같은 학교의 내전이면 좀 더 둥근 분위기에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선·후배, 혹은 친구 사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경기장 위에 올라온 두 사람에게서 그런 분위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철천지원수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상대를 향해 투지와 적의를 불태우고 있으니, 관객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윽고, 마침내 시작된 시합.

“─시작!”

“크아아압-!”

파앗!

주심이 시합 개시를 알리기 무섭게 바닥을 박차며 달려든 이는 정철이었다.

특유의 거칠고 위압적인 기부림을 내지르며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과감히 타돌을 시도한 것이다.

안 그래도 195cm의 키에 근육이 많아 덩치가 큰 정철이다.

그런 그가 흉악하게 기세를 살려 달려드니, 옆에서 지켜보는 관객들조차 오금이 저리는 듯했다.

쐐애액-!

묵직한 파공성을 내며 휘둘러진 죽도 또한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아무리 근육과 체격이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검도라지만, 정철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 같을 지경!

그러나 정철은 죽도를 내지르면서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상대는 성현이다.

한때 고교 검도계를 호령한 천재마저 꺾은 괴물!

그런 이가 겨우 이런 인사치레 정도에 점수를 내주지 않을 테니.

그런 그의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상단세를 취하고 있는 성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도를 세워 정철의 공격을 막아냈다.

어차피 막힐 거라 예상했던 정철은 반격을 받지 않기 위해 바싹 붙어섰고, 자연스레 두 사람은 코등이 싸움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면금 사이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으나 속에는 검은 불꽃이 선명하게 타오르는 성현의 눈과 평소와는 달리 난폭해 보일 만큼 치뜬 정철의 눈이 마주쳤다.

‘쉽게는 당해 주지 않을 거다!’

“크아아압-!”

특유의 근력으로 성현을 밀어낸 정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죽도를 휘둘렀다.

타악, 소리를 내며 맞부딪치는 죽도!

이번에도 내지른 공격이 쉽사리 막혀 버렸지만, 정철의 표정에는 약간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것 또한 예상 안이었기에.

그는 계속해서 성현을 몰아쳐 갔다.

타악, 타아악- 타악!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이 보이지만, 굉장히 치명적인 연계가 이어졌다.

성현조차 이건 경시할 수 없는 듯, 반격하기보다는 천천히 막아 내며 기회를 노리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그건 다시 말해 경기의 주도권을 정철이 쥐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철에게도 이득만 있는 건 아니었다.

“──!”

팔이 비명을 지른다.

몇 번이나 구른 발은 얼얼하기까지 했다.

거친 움직임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등에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겉으로는 정철이 아무렇지도 않게 성현을 몰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몇 킬로그램이나 되는 호구를 입고 격렬히 칼을 휘두르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정철은 말 그대로 체력을 갈아 가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건, 성현에게 기회를 넘겼다가 허무하게 패배한 이들을 몇이나 봐 왔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진다!’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를 줄 성현이 아니다.

지금 손을 멈추면 분명 기회를 노리고 치고 나올 테고, 맹렬한 공격으로 지친 정철로서는 그걸 막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끝을 봐야 했다.

남아 있는 체력을 모두 쏟아부어서라도······!

“크아아아압─!”

타악! 타악! 타아악!

치고, 치고, 또 친다.

격렬하기 짝이 없는 정철의 공세는 성현을 수세로 밀어 넣은 채 빠져나올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그 모습에 경기를 지켜보던 학생 선수들의 눈이 빛났다.

답이 안 나오는 성현이라는 괴물의 공략법을 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기회를 내주지 않는 연속 공격-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성현을 쓰러뜨릴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고.

< 고교 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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