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편수 손목
*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선 이후로 단 한 번도 위기를 겪은 적 없는데 혹시 방심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과거, 그러니까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성현이 세계 검도를 정복하고 지배하기 시작한 지 몇 년이 훌쩍 지났을 무렵.
기자 한 명이 그에게 저런 질문을 던졌었다.
언뜻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다 느껴지는 질문이었지만, 당시의 성현이 검도계에서 지녔던 위상을 안다면 영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야말로 정점이었으니까.
검도라는 스포츠의 꼭대기에 선 괴물!
국제 대회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뒤, 그걸 몇 년간 이어 왔으니, 방심되지는 않는지 물어볼 만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성현의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아뇨, 전혀.
그건 조금의 가식도 없는 진심이었다.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성현은 절대, 절대 마음을 놓지 않았다.
뭇 사람들은 정상에 오른 그를 보며 떠들어 댔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적을 꺾은 지금, 이제 누구도 성현을 막아 세울 수 없을 테니 곧 열정이 고갈되어 매너리즘이 올 테고, 그때야말로 그가 정점에서 내려오는 시점일 것이라고.
정말이지, 성현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기에 지껄일 수 있는 망발이었다.
위를 추구하는 자는 아래를 보지 않는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바쁜데 뒤를 살필 시간이 대체 어디 있으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는 성현이 멈추는 일은 존재할 수 없고, 당연히 상대가 누가 되었든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걸 비정상적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에 미친다는 건 본래 그런 것이다.
오랜 세월 오직 하나의 화제에만 골몰한 이가 제정신이기를 바라는 게 잘못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성현은 자신의 앞에 선 64강 상대를 바라봤다.
이름이 신재준이었던가.
그럭저럭 유명한 학생 선수였다.
물론 김규호나 백성호, 정철 같은 전국구 유망주 수준은 아니지만, 그거야 뭐.
특기는 손목-머리의 연계.
빠르게 다가서며 질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에 꽤 많은 숫자의 학생 선수들이 패배했더랬다.
성현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상단세에 손목부터 시도한다는 건 굉장히 무모한 일이었으니까.
사실, 그걸 제외하고도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이는 명약관화했다.
그런데도 성현의 얼굴은 그저 담담할 따름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전’부터 그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절대로 긴장을 풀지 않았다.
늘 최선을 다할 뿐.
방심은 없다.
“···시작!”
두 선수를 번갈아 바라본 주심이 이내 단호한 어조로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성현이 언제나처럼 칼을 꺼냈다.
모두가 불꽃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기세를 끌어 올렸다는 뜻이다.
그는 상단세를 사용할 때 자신이 내뿜는 기세가 상대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승리에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그가 택한 건 당연하게도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차분하게 호흡을 내뱉으며 아주 조금씩, 발가락 끝만으로 바닥을 쥐어 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느릿하지만 분명한 전진.
아마 신재준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성현의 모습이 커져 가는 것처럼 보이리라.
그걸 그는 압박감 때문이라 생각하겠지.
맹렬히 타오르는 기세가 눈을 속이는 것이다.
그게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성현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다.
“···으억!”
바로 지금의 신재준처럼.
어느새 성현이 코앞까지─어디까지나, 그가 느끼기에─다가온 것을 깨달은 신재준이 식겁하며 비명을 토해 냈다.
동요한 나머지 몸이 굳어진 게 눈에 보였으니.
그건 성현의 앞에서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 될 빈틈이었다.
사실, 성현의 앞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검도에는 오래전부터 허용해서는 안 될 세 가지 순간이라는 게 존재했다.
이를 간단히 격자 기회라 부르기도 하는데, 각각 움직이려는 순간, 공격을 막아 낸 순간, 그리고 동요하는 순간을 말했다.
신재준은 어느새 위험 거리까지 다가온 성현을 보며 마지막, 그러니까 동요하는 순간을 내주고 말았다.
기회를 노리던 상대에게 자신을 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내줬다는 의미다.
그걸 가만히 넘겨 줄 선수는 아무도 없으리라.
성현 또한 그랬다.
“하아아압-!”
성현의 입에서부터 토해지는 사나운 기부림.
들어 올렸던 죽도가 마치 벼락이 아래로 내리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른손은 탄력만을 살린 채 손잡이를 놓고, 왼손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죽도의 위력을 키웠다.
그야말로 교과서에 실릴 법한 편수 손목의 완성이었다.
타악!
정교하게 설계되어 이루어진 공격을 동요를 드러낸 신재준이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은근히 대비하고 있던 편수 머리도 아니고 편수 손목, 그것도 몸이 굳어진 틈을 이용한 일격이었으니···.
주심을 비롯한 심판들은 백색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고, 신재준은 뭘 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한판을 빼앗겼음을 인정해야 했다.
64강에서도 여전히 승리를 위해 성현에게 필요했던 건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후우우-”
가볍게 한판을 따냈음에도 성현은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게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고,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그의 마음속에 방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상대의 모습을 살피는 그의 눈에는 오직 승리를 위한 추구만이 가득할 뿐.
그에 시합 대상인 신재준은 물론이요, 성현의 약점을 찾기 위해 시합을 보고 있던 많은 학생선수는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절망적일 만큼 강한 데다가 방심도 않는 괴물이라니.
보통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리는 방법은 강자가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방심한 순간을 찌르는 거다.
하지만 강자가 방심하지 않는다면.
절대 마음을 놓지 않고, 승리에 취하지 않으며, 언제나 다음을 보고 있다면──
그러면, 대체 어떻게 이겨야 한단 말인가?
*
현장감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뜻하며, 대개 사진과 영상만으로는 전달 불가능한 무언가를 일컫는 데 사용하는 단어다.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중학교 3학년 듀오─ 김은우와 이서준은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지켜보는 성현의 경기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으로는 알 수 없는 현장감이 그득했기 때문이다.
꿀꺽.
‘이게 상단세를 쓰는 성현이 형이구나.’
‘단체전에서도 그랬지만, 진짜 장난 아니다.’
상단세를 사용하는 성현은 영상으로 볼 때와 직접 볼 때의 차이가 엄청나게 컸다.
비단 몇 배나 더 큰 압박감뿐만이 아니다.
존재감 또한 남달라서, 분명 네 경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중인데 관객들의 눈에는 오직 성현만 들어왔으니까.
이것이야말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으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직접 관람하러 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단숨에 승리를 거머쥐고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퇴장하는 성현에게서 관객들은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첫판 때 편수 손목 깔끔한 거 봤어?”
“당연하지. 와. 무슨 단두대 떨어지듯이 떨어지더라. 저걸 어떻게 막아.”
“나는 중간까지 편수 머리라고 생각했다니까.”
“나도 손목 꺾이는 거 보고 난 다음에 알았어.”
은우와 서준이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성현이 보여 준 경기의 수준이 지극히 높았던 까닭이었다.
그들도 64강 상대였던 신재준에 대해서는 알았다.
나름 강호로 분류되는 고등학교의 주장이며, 이름이 알려진 유망주 중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성현의 앞에서는 그런 건 무의미했다.
128강의 무명 학생 선수나, 64강의 유망주나 다를 바 없이 보였으니까.
“광천고에 가면 혹시 배울 수 있을까.”
“뭘. 상단세를?”
“뭐가 됐든 간에. 그냥, 음- 그랬으면 좋겠다고.”
“동감이야.”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금 광천고 입학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는 아이튜버 하온이 방금 전 성현의 경기에 대해서 감상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감상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앞선 128강 경기에서 한눈에 성현에게 매료되었던 하온답게 지독하리만치 경외로 가득 찬 말들만이 이어졌던 까닭이다.
“와, 진짜 미쳤다. 지금 64강까지 일격으로 전부 정리하고 승리한 거 아시죠? 이거 진짜 회장기 때처럼 말도 안 되는 신화를 이룩할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 저런 유망주가 나올 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는데-”
-이분 설레발은 필패란 거 모름?
-ㄴㄴ 이성현이면 설레발이고 나발이고 걍 이김
-대진표 보니까 8강에서 백지호, 4강에서 백성호, 결승에서 정철이던데 이번에는 실패할 듯 -믿음이 부족한 분들이 많네요ㅎㅎ
“그러게나 말이에요. 이성현 선수가 경기하는 거 직접 오셔서 보셨으면 믿음이 생기실 텐데. 영상으로 보는 거랑 직접 보는 게 완전 달라요. 한번 꼭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으실 테니까요.”
하온은 몇 번이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시청자 중 일부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는 이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이 어떻건 간에, 성현은 128강과 64강에 이어 한 경기씩 진행되는 32강, 16강 경기도 전부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연하게도, 한판에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루어 낸 성과였다.
거기까지 개인전 경기가 진행되고 나니 이제 성현이 신화를 또 한 번 이룩할 것이라는 의견에 부정적이던 사람들도 흔들렸다.
눈앞에서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주춤한 모습을 보이든가, 그도 아니면 상대에게 고전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기에.
그래도 끝까지 이번 대회에서는 모든 경기에서 일격으로 승리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긴 했다.
8강과 4강에서 백지호·백성호 형제를 만나게 되고, 결승에서는 현재 대학 입시 버프를 받고 있는 정철을 만나게 될 테니, 아직까지는 설레발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주장이었다.
지금 백씨 형제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를 말이다.
“또 전부 일격으로 쓰러뜨리고 있더라.”
이제 곧 시작될 8강 경기를 준비하는 백지호를 향해 백성호가 말했다.
비록 주어는 없었지만, 형제는 다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현재 추계 전국 대회 개인전에서 상대를 모조리 일격으로 쓰러뜨리며 올라오고 있는 건 단 한 사람, 성현뿐이었으니까.
그게 가능한 것도 성현뿐이기도 했고.
“조언 하나 하자면, 절대 공격권을 넘겨줘서는 안 돼. 그건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야. 먼저 이쪽이 치고 나가야 해.”
“···알고 있어.”
묵묵히 듣고 있던 백지호의 대답에 백성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기야, 성현의 상단세를 공식전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동생이니, 그보다 먼저 이를 알아차렸으리라.
성현의 상단세에서 내질러지는 일격은 한 번만 겪어도 그걸 깨닫게 만드니까.
죽도를 꺼내 든 뒤, 손잡이를 매만지면서, 백지호가 물었다.
“···형은 내가 이길 수 있다고 봐?”
< 편수 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