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화 : 매료
2020년 현재, 스포츠로서의 검도가 갖는 위상은 생각보다 높다.
원인이야 굳이 분석할 것도 없다.
모두 국내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라 불리는 언더키가 아직 1위의 자치에 올라서기 전부터 꾸준히 투자를 해온 덕분이니.
든든한 투자자의 존재로 인해 검도계에 질적 · 양적 팽창이 일어나며 저변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아니 분명히 시간이 흘러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 등재되고 나면 지금보다도 더 높은 위상에 올라서게 될 터였다.
스포츠에서 위상이라는 건 곧 인기이고,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국위 선양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
현재 검도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건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높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여타 비인기 종목과 비교하면 낫다는 의미일 뿐, 한국 4대 스포츠라 불리는 축구 · 야구 · 농구 · 배구에 비견될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애초에 축구 · 야구 · 농구 · 배구는 각각 K리그 · KBO리그 · KBL · V-리그라는 그럴싸한 프로 리그까지 존재하는 스포츠들!
아무리 위상이 높아졌다고 한들 검도를 비비려는 생각 자체가 우스운 일이니까.
지금까지도 검도는 프로 리그가 아니라 단일 대회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니 그에 맞먹기란 퍽 쉬운 일이 아니리라.
사실, 검도의 위상이 아직도 어중간한 수준에 머무르는 건 그 단일 대회 때문이기도 했다.
따로 프로 리그가 있어 중계권을 팔고, 그걸 기반으로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는 식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행위가 불가능했기에.
단일 대회를 중계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대회를 주관하는 곳은 기업, 방송국, 시청, 대학까지 실로 다양한데 언제 그걸 일일이 가서 계약하고 중계권을 손에 넣는단 말인가?
심지어 대회가 프로 리그처럼 일정이 주기적인 것도 아니었고.
아무튼, 검도의 위상이란 이토록 어중간했다.
집에서도 보고자 하는 사람들는 많지만, 정작 기업이 나서서 중계를 하기에는 까다롭고 귀찮은, 그런 어중간함.
그리고 바로 그 점에 착안해서 슬그머니 손을 뻗은 이들이 있었으니──
"어때요, 여러분들. 잘 보이시나요?"
-넹 보여요
-ㅇㅇ 잘 보임
-카메라 새로 샀다더니 화질 좋네
-솔직히 전에 건 너무 화질구지였음ㅋㅋㅋㅋ
──바로 검도를 주력 컨텐츠로 삼은 아이튜버였다.
개인 방송, 혹은 1인 방송이라 불리는 인터넷 방송국에서 검도 대회 중계에 나선 것이다.
대회를 주최하는 측에서도 이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권장하기까지 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라도 대회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개개인의 편차가 크기는 해도, 단순히 검도 라이프에 언더키가 영상을 올려주는 것 이상의 파급력이 있는 까닭이었다.
'단체전 때도 올 걸 그랬나.'
아이튜버 하온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어려서부터 검도 도장에 다닌 그는 실제로 검도를 하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재능이 있었고, 그보다 더 재능이 있던 건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쉽고 재밌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대회들을 중계 및 해설하며 그 재능은 완전히 꽃을 피워, 그를 꽤 큰 규모의 인터넷 방송인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삼천 명에 이르는 시청자가 그의 방송을 보고 있을 정도로.
"오늘은 남자 고등부 개인전이 진행되는 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체전도 보고 싶었는데 일정상 못 온 게 너무 아쉽네요."
-단체전이 ㄹㅇ 머박이었다는데
-광천고가 우승했다면서요
-결승 4무는 진짜 전설이지
-검라(검도라이프의 줄임말)에 왜 아직도 단체전 경기 영상 안 올라옴···?
"뭐, 놓친 건 어쩔 수 없죠. 차후에 경기 영상 보면서 해설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이번 개인전에 대해서 짧게나마 설명을 드리자면─"
하온은 유창하게 현재 고교 검도계의 유망주들에 대해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지켜봐야 할 유망주는 이성현, 백성호 두 명입니다. 전부터 제 방송을 보셨다면 백성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굳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한국 유망주 중 원탑이었죠. 괜히 천재니 뭐니 하며 떠받들어진 게 아닐 정도로."
-나왔다. 백성호바라기!
-얘는 백성호를 너무 좋아함ㅋㅋ
-근데 검도 좀 아는 사람이면 백성호를 찬양 안 할 수가 없음···. 한국 검도계의 희망이었다고···.
-ㄹㅇㅋㅋ
"그리고 이성현은 바로 그 백성호 독주 체재였던 고교 검도계를 박살 내며 등장한 신성입니다. 전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백성호랑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의 유망주가 고교 검도에 나올 줄이야. 얘를 사람들이 괴물이라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역시나 가장 먼저 나온 건 성현과 백성호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저 두 명이야말로 현재 고교 검도를, 나아가서는 한국 검도를 대표하는 유망주들이었으니까.
이들을 빼놓고서는 고교 검도에 대한 이야기가 불가능할 만큼.
지난 국가 교류전 이후 외국에서조차 한국 검도 유망주에 대해 논할 때 반드시, 그리고 무조건 언급하는 이름이었으니 말 다 했다.
"심지어 이성현은 보기 드문 상단세 사용자예요. 그렇다고 중단세를 못 쓰냐? 하면 그것도 아니죠. 천병중 회장이 이성현을 보고 '중단세는 대해와 같고, 상단세는 맹화와 같다'고 표현한 건 아는 사람들는 다 아는 이야기고요."
특히나 길게 이어진 건 성현에 대한 설명이었다.
성현이 고교 검도에 끼친 파급력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성현은 갑툭튀했다고 밖에 못 말하겠음
-강찬 선수한테 배웠다고 하던데
-기초만 가르쳤다고 했을걸요. 애초에 경력이 이제 이 년째인데···.
-ㅁㅊ 이제 검도 시작한지 2년째라구요?
"놀랍게도 사실입니다. 중3 때 강찬 선수한테, 이제는 관장님이죠? 강찬 관장님한테 배우기 시작해서 고1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아마 상단세는 독학으로 보이는데···. 진짜 미친 재능입니다. 솔직히 백성호 이상의 천재가 아닐까 싶어요."
-ㄷㄷㄷㄷ 왜 괴물이라 불리는지 알겠네
-검도 경력 오 년차인 나는 오 초만에 질 자신이 있음-인생 불공평! 제꼬삼!!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했어? 뭐 이런 ㅅㅂ
하온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놀라움이야말로 그가 성현을 조사하며 느꼈던 감정이었던 까닭이다.
그야말로 완전체 같은 존재였다.
검도 실력부터 외모, 나이까지 모든 게 다.
"거기에 더해서 주목할 만한 유망주는 이성현과 같은 광천고인 정철과 최영준, 백성호와 같은 경중고에 동생이기도 한 백지호, 용암고 주장 김규호도 있고─"
그외에도 정철, 최영준, 백지호, 김규호 등 이름 좀 날린 유망주들에 대한 설명이 막힘없이 이어졌다.
나름 검도 중계 및 해설을 주력 컨텐츠로 삼는 아이튜버답게 학생 검도로 대표되는 아마추어와 실업 검도로 대표되는 프로 씬을 모두 통달해 있는 덕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는 하온의 장점 중 하나일 뿐,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건 경기를 중계할 때였으니······.
"추계 전국 대회의 개인전은 128강부터 시작이라 16강까지는 한 번에 네 경기씩 치르거든요. 그래서 모든 경기를 다 중계할 수는 없으니,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유망주들 위주로 진행하겠습니다."
-ㅇㅋㅇㅋ
-아ㅋㅋ 딴 경기 보고 싶으면 직관하라고ㅋㅋ
-다른 경기는 아예 못 보나요?
-ㄴㄴ 검도라이프에 올라와요
이어진 경기 중계에서 하온은 자신이 규모 있는 인터넷 방송인이 된 이유를 여지없이 증명해냈다.
"천웅고의 임원철 선수랑 비재고의 김선정 선수의 경기입니다. 제가 알기로 임원철 선수는 죽도눌러 머리를 굉장히 유용하게 쓰는데─"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쉽고 간단한 해설!
물론 진짜 검도 해설에 비하면 전문성 면에서는 다소 떨어졌지만, 하온은 그것을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진행했다.
오히려 자신이 아는 바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해설에 비해서는 훨씬 괜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몇 경기가 진행되었을까.
[168강 E조 경기가 곧 진행됩니다. E조에 배정되신 선수분들은 경기장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E조!"
-E조에 누구 있음?
-ㅇㅇ 이성현이 E조임
-ㅇㅎ! ㄱㅅㄱㅅ
"자, 드디어 제가 무조건!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던 유망주, 이성현 선수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는데, 놀랍게도 이 선수는 올해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모든 경기를 일격에 끝내며 우승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경기 일격 승리.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성현이 세운 신화는 아직까지도 회자될 만큼 검도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작은 대회도 아니고 회장기다.
한국의 쟁쟁한 고등학생 유망주들이 모두 출전하기까지 했고.
그런데도 첫 일격에 모조리 때려눕히는 건 누구도 상상한 적 없는 영역에 있는, 말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업적이었다.
하온이 괜히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칭송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과연 이번 개인전에서 그럴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되네요!"
시청자들이 흥분한 하온의 모습에 'ㅋㅋㅋㅋ'로 채팅창을 도배하고 있을 무렵, 성현과 그 상대가 될 신명고의 박명준은 경기장에 마주 섰다.
"······."
"······."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마치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극히 무덤덤한 표정의 상현과 딱딱하게 굳어진 채 풀어질 줄 모르는 표정의 박명준.
누가 더 긴장하고 있는지 뻔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짧은 인사 후, 마침내 겨눔세를 취할 때가 되자, 하온이 간절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상단세···! 제발 상단세···!"
-상단세겠지? 그렇겠지? 제발~
-일격필살 보여주라ㅏㅏㅏㅏ
-솔직히 상단세 안 쓰면 에바임. 암튼 에바임
그런 그들의 기대가 통했음인가?
성현은 천천히 자신의 죽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불의 자세라 불리는 상단세!
현 고교 검도에서 마치 성현의 상징처럼 되버린 그것을 첫 경기에서부터 꺼내든 것이다.
그렇게 성현이 자세를 잡는 순간, 한 차례 경기장이 술렁인 것은 결코 하온과 시청자들만의 착각이 아니리라.
'와. 저게 대체 무슨-"
지금까지 수백, 수천 명의 넘는 숫자의 검도 선수를 보아온 하온이다.
그이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고.
시선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존재감, 피부가 저릿거리는 위압, 심장을 움켜쥔 듯한 기백까지.
도저히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죽도를 내리칠 것만 같아서.
"시작!"
하온의 생각은 주심이 구령을 외치는 순간, 더욱 확고해졌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성현은 그나마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온전히 불꽃으로만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경기 상대인 박명준이 움츠러든 게 멀리서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하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 사람의 형상을 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으니 어찌 겁을 먹지 않을 수 있으랴.
"으, 으아아앗!"
발작과도 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달려든 박명준.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던 성현이 움직인 건,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졌을 때였다.
"하아아압!"
단호한 기부림.
그리고 그보다 더 단호한 일검.
하늘을 찌를 듯 세워졌던 죽도는 채찍처럼 휘어지며 박명준의 머리를 내리쳤다.
어떤 반항도 허락하지 않은 준엄한 신의 분노였다.
어설프게 달려들던 이에게는 대적조차 불가능한.
타아아악!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성현의 죽도가 박명준의 호면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박명준이 내질렀던 죽도는 성현에게 스치지조차 못했으니···.
성현이라는 불꽃에 완전히 불타버린 박명준은 마치 잿더미가 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색, 머리!"
주심이 하얀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하지만 하온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담담히 물러선 채 다음 판을 준비하는 성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기에.
영상으로 볼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현장감 때문일까?
그에게는 마치 성현이 검의 신처럼 느껴졌다···.
"쩐다···."
검도를 주력 컨텐츠로 삼는 유명 아이튜버 하온이 성현에게 매료되는 순간이었다.
< 편수 손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