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90화 (90/150)

90화: 가장 위험한 거리

검도에서 ‘거리’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물론 이건 단지 검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기 종목 대다수에서 거리를 재는 건 기초이면서도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복싱이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처럼 선수별로 선호하는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듯이 말이다.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 또한 그럴진대, 무기술인 검도야 더 말해서 무얼 하랴.

그렇기에 검도는 ‘거리’를 세 가지로 나누어 가르치며, 각각의 명칭은 먼 거리(遠間), 일족일도(一足一刀)의 거리, 가까운 거리(近間)이다.

이중 첫 번째인 ‘먼 거리’는 서로 상당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상태를 말했다.

처음 경기가 시작하고 시작 선에 섰을 때, 죽도끼리 맞닿지 아니한 채 유지되는 그 거리를 바로 먼 거리라 칭하는 것이다.

서로 접하지 않으니 당연히 칼끝으로의 공세는 불가능!

떨어져 있는 만큼 상대의 타격에서도 그럭저럭 안전하나, 반대로 자신의 타격이 닿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그런즉, 과감하게 몸을 날려 뛰어들지 않으면 기술이 성공하기 어려우므로, 타돌을 선호하는 이들이 주로 취하는 거리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일족일도의 거리’다.

흔히 검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거리로, 죽도의 끝부분이 교차할 수 있는 간격이다.

한 걸음 뛰어들면 상대를 타격할 수 있고, 반대로 한 걸음 물러서면 상대의 타격을 피할 수 있기에 붙은 이름이 일족일도(一足一刀)!

더불어 이 거리야말로 칼끝으로의 공세가 비로소 가능해지는 시점이기도 했다.

검도인들은 이 일족일도의 거리를 세 가지 거리 중 가장 치열한 거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심 싸움이 그 어느 거리보다도 지독하게 일어나는 까닭이었다.

생각해 보라.

두 사람이 중단세로 서서 죽도 끝이 교차하였을 때, 한 사람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의 검선은 중심에서 비껴가 있다는 뜻이다.

중심을 빼앗기 위해서 칼끝으로의 공세는 자연히 사나워질 것이며, 따라서 일족일도의 거리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이 바로 김규호가 성현에게 맞서기 위해 낸 답인 ‘가까운 거리’였다.

가장 치열한 거리라는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한발 더 나아간 거리.

여기까지 가까워지면 다가설 필요 없이 타격할 수 있으며, 설령 물러난다고 해도 쉽게 피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자그마한 빈틈조차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여 검도인들은 이 거리를 이렇게 일컬었다.

──‘가장 위험한 거리’라고.

“······.”

성현은 가늘게 뜬 눈으로 김규호를 바라보았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긴 했다.

왜냐하면, 근간 싸움에서의 핵심은 ‘수읽기’니까.

‘완벽한 기술’이나 ‘뛰어난 육체’보다도 상대를 읽어 내고, 언제 어디를 어떻게 칠 것인지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를 읽어 내는 것을 곧잘 해내는 김규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내가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은 요소지.’

성현의 약점을 찌른다면 반드시 찔러야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지난 대회의 경기들에서 성현이 가장 인상 깊게 보여 준 건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하나는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압도적인 기세고, 다른 하나는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완벽한 공세, 마지막 하나는 한 박자 늦게 공격을 시도하여 먼저 치는 이상적인 움직임이다.

즉, 상대를 읽어 내는 기술에서 뚜렷하게 무언가를 보여 준 적은 없다는 이야기!

김규호가 그 부분에 착안하여 근간 싸움으로 그를 끌어들인 것은, 앞서 말했듯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본의 아니게 함정을 판 셈이 돼 버렸네.’

다만 그게 과연 본인을 쓰러뜨리는데 적합한 선택인가를 묻는다면, 성현은 고개를 내저었으리라.

그가 깨닫고, 갈고닦아, 한국의 정상에 오르게 만든 재능은 ‘눈’이다.

압도적인 기세나 이상적인 움직임은 그 뒤에 그가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물일 뿐.

김규호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그런 탓에 오히려 성현의 주 영역이라 자신할 수 있는 읽어 내는 싸움을 걸어 온 거다.

하지만 이를 딱히 그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 성현이 보여 준 모습으로는 그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쉽네.’

···라고.

성현이 생각을 정리하여 결론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눈 깜빡할 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의 ‘다른 생각’을 찔러 낸 건, 어디까지나 김규호라는 소년이 가진 재능이었다.

“으랴아앗─!”

의지에 찬 기부림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교차되어 놓여 있던 죽도를 쭉 내뻗는다.

상대의 칼끝을 제치면서 시도하는 머리치기!

거리가 좁혀진 만큼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으니, 김규호의 머리치기는 제대로 반응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매서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근간 싸움이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잡았다!’

김규호 본인도, 더해서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상념의 틈을 찌른 머리치기는 빨랐고, 무얼 하기 전에 이미 반 이상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반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그럴 터인데──

오싹.

‘무슨?!’

면금 사이로 드러난, 무겁게 가라앉은 눈.

약간의 당황조차 보이지 않는 시선에 김규호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쭉 돋았다.

빈틈을 제대로 찌른 한 수라고 생각했건만, 상대에게서는 낭패했다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검을 거둘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만한 여력을 남겨 두고 시도한 공격도 아닐뿐더러, 억지로 되돌린들 그 과정에서 내어 준 빈틈을 찌른 공격을 막지 못할 게 뻔하니.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를 악물고 죽도를 내뻗는 것뿐이다.

“──”

성현의 눈에 당황이 어리지 않은 건 정말이지 간단한 이유였다.

이미 모두 보고 있었으니까.

발을 구르기 위해 수축하던 허벅지 근육도, 죽도를 내뻗기 위한 어깨의 긴장도, 앞쪽으로 쏠리고 있던 무게 중심마저!

그 모든 것을 이미 간파하였는데 흐트러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아아앗-!”

성현이 행동에 나선 건 바로 그때였다.

그는 몸을 부드럽게 숙이듯 발을 구르며, 죽도를 작게 들어 올렸다.

노리는 건 머리치기를 시도하는 김규호의 손목!

상대적으로 동작이 작은 밑 손목 치기인 만큼, 죽도가 닿는 속도는 더 빠르다.

거기에, 후발선제라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을 실현시킨 성현 특유의 이상적인 움직임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답은 간단하다.

먼저 내지른 김규호의 죽도가 머리를 내리치기 전에, 들어 올린 죽도를 내리쳐 손목을 두들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 타악-!

연달아 울려 퍼지는 두 번의 타격음!

상황을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던 주심과 심판들이 일제히 하나의 깃발을 높이 치켜세웠다.

···성현이 달고 나온, ‘백색’의 깃발을.

지난 시간 동안 벼르고 별렀던 김규호의 칼이 허망하게 부러지는 순간이었다.

“백색, 손목!”

““와아아아-!””

우렁찬 구령에 뒤따르듯 관객들이 감탄 어린 환호성을 토해 냈다.

겹겹이 쌓아 올려진 긴장감을 한순간에 해소해 버리는 호쾌한 겨룸이었던 까닭이다.

이곳에 온 이들은 학생 검도 대회를 보러 올 만큼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었고, 그만큼 보는 눈도 뛰어났다.

그런 그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방금 성현과 김규호의 첫판은 수준이 높았다.

이번 시합이 학생 검도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으니.

“···어떻게.”

중얼거리던 김규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완전히 빈틈을 찔렀다고 생각했건만, 정작 나온 결과는 정반대!

자연스럽게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틈을 드러냈나? 아니, 아니야.’

상대가 드러냈던 틈은 아주 작은 데다가, 심지어 드러난 순간도 아주 짧았다.

김규호 본인조차 찌르고서 살짝 놀랐을 만큼.

성현이라는 강적을 맞이하여 온 신경이 바짝 곤두선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냥 놓치고 말았을 터.

그걸 노려 가며 틈을 드러내는 건 아무리 성현이라고 해도 무리이리라.

‘그럼 대체 어떻게 반응한 거지? 반응? 반응이 맞나? 마치 내가 무슨 공격을 할지 미리 알아본 것처럼 대응했는데.’

너무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듯 혼란스러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번에도 패배하리란 것 말이다···.

*

“하필이면···.”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린 건, 다름 아닌 백지호였다.

몇 달 전, 광천고와 경중고의 연습 시합에서 성현이 가진 눈에 의해 완전히 농락당했던 백지호는 김규호가 어떤 심정일지 대략적으로나마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의미로 보면 김규호의 타격이 더 클지도 모른다고 백지호는 생각했다.

그는 공세 단계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전부 봉인당했을 뿐이지만, 김규호는 한참이나 벼르던 기회를 반격당해 날려 버렸으니 말이다.

‘애초에 근간 싸움으로 가면 안 됐는데-’

직접 겪어 본바, 성현은 마치 미래를 보는 것처럼 상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니.

따라서, 수읽기 싸움은 이쪽이 무조건 진다고 봐야 했다.

자신의 패를 전부 내보이면서 하는 카드 게임에 승률을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하긴, 지금까지 성현이 저 녀석의 경기 영상으로 분석했다면 저럴 만하지.’

성현이 제대로 눈을 사용했던 건 회귀하고 얼마 안 있어 벌어졌던 경중고와의 연습 시합뿐이다.

그때의 시합 영상을 가진 건 오직 광천고와 경중고, 두 학교밖에 없으므로, 사실상 성현의 관안에 대해 눈치챈 이는 굉장히 적었다.

기껏해야 두 학교의 주전 선수 몇몇 정도.

김규호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게 그의 불운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거 같은데. 아쉽게 됐네.”

옆에 서 있던 백성호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백지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몇 달에 걸쳐서 준비한 한 수가 하필 성현이가 파 놓은 함정일 줄 누가 알았겠어.”

“함정을 파? 누가?”

“누구긴. 성현이 저 녀석이지.”

일부러 눈을 숨기고 다른 것들만 부각했던 지난 경기들만 봐도 뻔한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백성호는 동생과 생각이 다른 듯했다.

“그건 함정을 판 게 아니야.”

“아니면 뭔데.”

“그냥, 쓸 필요가 없었던 거지. 여태까지.”

“···쓸 필요가 없었다고?”

“응.”

짤막한 대답에 백지호는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걸 느꼈다.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여태까지 성현이 쓰러뜨린 유망주들의 이름들이었다.

김규호, 백성호, 가토 카츠히토, 찰스 웨인, 프레데릭 피어슨···.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미래를 대표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재능과 실력을 갖춘 대형 유망주들이다.

성현은 그런 그들을 압도적으로 쓰러뜨렸으면서, 자신의 무기까지 숨길 여력이 되었다고, 백성호는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코웃음 치고 무시할 만한 이야기였다.

만약, 그걸 말한 게 백성호가 아니고, 그 대상이 성현이 아니었다면.

백지호는 은근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내 이를 악물었다.

“어쨌든, 결승전 상대는 이걸로 결정됐네. 뭐, 사실 십중팔구는 이럴 거라 생각했었지만.”

“백 퍼센트가 아니네.”

“개인전이면 당연히 백 퍼센트였겠지만, 단체전이잖아. 성현이 혼자서 잘한다고 올라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긴.”

“그럼, 이제 가자. 다음 경기 준비해야지.”

백성호는 더 이상 볼 이유가 없다는 듯 돌아섰다.

이미 지난 몇 달간 준비했을 칼이 허무하게 막혔으니, 더 본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는 듯이.

거기에 더해서, 사실 시간이 얼마 없긴 했다.

다음 경기는 경중고와 상포고인 만큼, 출전 선수들인 그들은 지금부터 가서 준비를 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결승전 상대가 성현이 아니었다면 굳이 짬을 내서 보러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

두 판째가 진행되는 경기장을 힐끗 바라본 백지호는, 이내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떠나갔다.

< 최선을 다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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