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화 : 왕좌
“흐음···.”
국내 최대 규모의 검도 커뮤니티, ‘검도라이프’의 네임드 ‘검맨’ 김동안은 턱을 매만졌다.
그가 깊은 생각에 빠지면 곧잘 나오는 버릇으로, 그만큼 이번에 쓰는 글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었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유망주가 유망주다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한국 고교 검도계에 던져진 충격과 공포.
하늘이 내린 천재를 먹어치운 괴물.
광천고 주장 ‘이성현’.
그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수많은 유망주를 분석해온 김동안조차 꽤 힘겨웠기에.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지금 느끼는 힘겨움은 여태까지 그가 유망주들을 분석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점이었다.
‘참, 경력을 정리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메모장.
그 안에 쓰여 있는 내용들을 보며 김동안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손으로 써놓고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간추렸는데도 그러했다.
S 방송사 개최 검도 유망주 대회 남자부 우승.
한국검도 협회 주관 제29회 회장기 검도 대회 남자부 단체전, 개인전 우승.
국가 교류전 유망주 대표팀 출전 및 전승.
이게 검도 경력 겨우 일 년의 고등학생 선수가 이룬 업적이 맞단 말인가?
대회를 나갔다 하면 우승에, 국가 교류전이라는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까지 하다니.
차라리 무슨 만화 속 주인공의 수상 경력이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을 지경이었다.
‘실력은 더욱 그렇고.’
심지어 실력은 그보다 더 말이 안 됐다.
중단세와 상단세, 두 가지 겨눔세를 모두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물론, 그 모두가 소름 끼칠 정도의 숙련도가 있다.
과거 남자 학생 검도에서 최강이라 불리던 ‘천재’ 백성호조차 두 겨눔세에 모두 무너지고 말았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스읍.”
‘이걸 유망주 분석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백성호도 유망주라 불릴 영역을 넘어선 게 아닐까 아리송하던 중이다.
한데 그보다 몇 배는 더한 괴물이 나타났으니 김동안으로서는 자연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분류상으로는 유망주가 맞긴 하지만, 성현을 단순히 유망주로 분리해버리면 다른 유망주의 판단 기준이 너무 높아져 버리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아예 일반부 선수로 넣어버리기도 모호하고···.
“어쩐다.”
혼잣말을 내뱉던 김동안은 자연스럽게 검도라이프 사이트에 접속했다.
지금처럼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런저런 글들을 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게 좋은 방법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번 분석 대상인 성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어디 보자-’
국가 교류전이 끝난 지 어언 일주일.
학생 검도는 물론, 실업 검도까지 아무런 대회가 없는 지금은 일종의 소강 상태라고 봐도 좋았다.
물론 그렇다 해서 이야기할만 내용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장 얼마 뒤부터면 학생 검도 대회 중 최대 규모와 인지도를 지닌 대회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니까.
바로 추계 전국 중 · 고등학교 검도 대회가!
직접 본바, 게시판들은 역시나 그 이야기로 바쁜 상태였다.
‘뭐, 당연한 일인가.’
이번 추계 전국 대회는 고교 검도 팬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대회의 위상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거기에 얽혀 있는 줄거리가 너무나도 매력적인 탓에 가까웠다.
회장기에서 숨겨왔던 이빨을 드러내며, 약소부에서 한순간 고교 최강의 자리까지 오른 광천고!
그들은 과연 선언했던 대로 모든 대회 우승 행보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패배하여 삼 년간 견고히 지켜왔던 고교 검도계의 패권을 빼앗긴 경중고의 복수는 이루어질지.
더불어 한순간에 뒤처져 버린 나머지 빅4, 호군고-금제고-용암고는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고 그 이름 채로 사라지는가, 그도 아니면 계속해서 도전을 계속하는가도 빼놓기 힘들다.
큰 줄기만 놓고 봐도 이러니, 고교 검도 팬들이라면 이번 추계 전국 대회에 환호할 수밖에.
김동안조차 평소에는 유망주 보는 맛으로 봤던 대회였건만, 이제는 저들이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할 지경이었으니.
“음?”
게시판들의 글을 쭉 훑어보던 김동안의 눈에 들어온 건, 수많은 추천이 박힌 글이었다.
제목은 <광천고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굉장히 향후가 불안해지는 제목이었지만, 쓰여 있는 내용은 나름대로 꽤 정확한 분석이었다.
더불어, 김동안이 주의 깊게 본 것은 글의 마지막에 넣어진 광천고 주전 개개인에 대한 짤막한 평가였다.
광천고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글쓴이 : 강약조절(Lv.41)
‘광천고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이에 대해 알아보는 건 정말 간단한 일이다.
광천고는 이미 내로라하는 강팀이 되었으므로, 그들의 과정과 결과만 살펴보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변했는지, 또 어떻게 변했는지.
아마 답은 필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괴물’ 이성현의 등장.
검도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 학생선수의 등장에 관해 논한 이들은 많으므로, 필자는 이성현이 광천고에 끼친 영향에 관해 쓰고자 한다······
(중략)
······현재 광천고 주전에 대한 짧은 평을 마지막으로 이만 글을 줄인다.
선봉 정철 : 한때의 소년 가장. 그러나 짊어진 짐의 무게를 내려놓은 지금의 그는? 감독들은 추계 대회 선봉 자리가 고민 좀 될 것이다.
2위 손대현 : 별 볼 일 없던 약소부의 2위가 이토록 강해질 줄 누가 알았으랴. 폭발적인 성장만큼이나 폭발적인 타돌이 장점인 선수.
3위 조윤호 : 죽마고우인 친구와 함께 성장 중인 그 기세는 매섭기 그지없다. 칼끝으로 하는 공세의 매서움도 마찬가지.
중견 최영준 : 선봉 정철, 중견 최영준. 광천고 에이스 라인은 참으로 든든하다. 튼튼한 허리 라인의 핵심이라 해도 무방할 듯.
5위 장현성 : 좋은 흐름은 잇고, 나쁜 흐름은 끊는다. 그야말로 5위의 정석.
부장 김경진 :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광천고의 언성 히어로. 정철이 없었다면 아마 소년 가장은···.
주장 이성현 : 현 고교 검도계의 가장 큰 돌풍. 일 년밖에 되지 않는 검도 경력이 되레 두렵다. 더 성장하면 얼마나 더 무시무시할까?
“으음···.”
끝까지 글을 정독한 김동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광천고 주전들에 대한 평이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다.
선봉부터 주장에 이르기까지, 짤막한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각 선수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이백 개 가까이 달린 댓글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공감이 간다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설레발이 심하다는 댓글이나, 내로라하는 강팀은 너무 간 거 아니냐는 댓글도 간간이 존재했다.
하긴, 이제 겨우 대회 하나를 우승한─비록 그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더라도─ 광천고이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이성현 선수에 관해서 만큼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네.’
다만 한 가지.
‘괴물’ 이성현에 대해서는 모두 생각이 같았다.
그가 억지로 트집을 잡기도 힘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국 내의 유망주들은 물론이요, 전 세계의 유망주들을 모조리 다 밟아둔 상태인데 뭘 더 증명하냐는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기까지 했으니···.
“중요한 건 단체전에서 다시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느냐, 인가.”
김동안이 게시판을 쭉 훑어본 결과.
이 주제만큼은 의견이 반반으로 갈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우승이 가능하다는 쪽과 안 된다는 쪽.
전자가 주장하는 건 광천고가 이미 회장기 대회를 통해 실력을 증명했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성장했을 테니 분명 이번에도 우승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반면 후자는 광천고가 설령 회장기 대회를 우승했을지라도 압도적인 건 아니었으며, 결승전조차 아슬아슬했다는 것을 근거로 우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의견 다 맞는 말이긴 해.’
그러니 더욱 이번 추계 전국 대회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설령 광천고가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경중고를 무너뜨리며 지난 삼 년간 이어졌던 경중고의 시대를 허물어뜨렸다고 해도, 왕좌까지 빼앗아 간 승리는 아니었기에.
전국 대회 우승 트로피라는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왕좌를 말이다.
이번 추계 전국 대회에서 광천고가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면, 비로소 사람들은 인정하리라.
아니,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광천고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하- 진짜 기대되네.”
괜히 등골이 오싹거리는 느낌에 김동안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번 추계 전국 대회가 기대돼서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던 까닭이다.
대다수 검도 팬들은 아마 그와 같은 심정이리라.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소강상태가 끝나고, 전국 대회가 시작되기를.
*
회장기 검도 대회를 제패한 직후의 인터뷰.
-“그러니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늘 마지막, 결승전에 서서 오는 이들을 맞이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꺾어 광천고가 우승자임을 몇 번이고 다시금 증명하겠습니다.”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때 성현이 했던 말은 단순히 모든 고등학교 검도부에 한 선전포고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누가 봐도 저것은 자신들이 왕이라는 선언이며, 자신 있으면 덤벼보라는 도발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 법.
저 도발은 광천고에 내리치는 채찍이자, 그들이 열정을 불태울 수밖에 없는 동기이기도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저토록 도발적인 언행을 해놓고, 결과가 형편 없다면 어떨까?
아마 광천고는 두고두고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터.
그걸 바라는 광천고 검도부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전부터 일반 부원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하하.”
추계 전국 중 · 고등학교 검도 대회를 겨우 열흘 남긴 날, 검도부를 쭉 훑어본 성현이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뜨린 건 바로 그래서였다.
성현의 기준은 생각보다 높고 까다롭다.
자신이 가르쳐줬던 이들에게는 더더욱.
한데 현 광천고 주전 중 누구도 그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단 한 사람도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완전히 발아했군.’
성현을 만족스럽게 하는 이는 또 한 명 있었으니.
바로 합숙 훈련 간 집중적으로 가르쳐줬던 1학년 김수민이었다.
자신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신경 써서 가르쳐줬고, 그 덕에 재능을 개화한 김수민에게 성현은 하나의 씨앗을 더 뿌려뒀었다.
‘관안’이라는 재능을 무엇보다도 더 확실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게 완벽하게 발아한 것이다.
“어, 어땠어?”
“훌륭해.”
“정말?”
“그럼. 내가 괜한 말 하겠어?”
“아자-!”
환호성을 내지르는 수민을 보며 성현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3학년이 졸업했을 때의 빈 자리를 채울 준비는 착실하게 되어가고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얼마 뒤에 있을 전국 대회뿐.
전국 대회 우승 트로피가 어떻게 불리는지는 성현도 알고 있었다.
고교 검도계의 왕좌.
그렇다면 그건 당연히, 왕이 가져야 할 물건이다.
경중고라는 옛 왕을 전설과 신화로 화려하게 치장된 반란으로 끌어내린 새로운 왕의 물건!
‘한 번 가볼까.’
우승하러.
< 전국 대회 개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