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화 : 전승
캐나다전을 마지막으로 한국의 국가 교류전 2일 차는 끝을 맞이했다.
2일 차의 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승!
이틀 사이에 총 여덟 번, 다양한 국가와 겨뤘음에도 한국 유망주 대표팀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그건 다시 말해 첫날 그들이 세운 목표와 한결 더 가까워졌음을 뜻했다.
이대로 네 경기만 더, 아니 마지막 날에는 오전에만 경기를 치르고 오후에는 폐막식이 진행될 예정이니, 딱 여섯 경기만 더 이기면 전승으로 국가 교류전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누구도 차세대의 한국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사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여하튼.
‘국가 교류전 전승이라···.’
‘사실상 차세대 세계 최강은 한국이라 선언하는 꼴이 돼버리겠군.’
‘일본, 미국, 캐나다. 세 나라조차 막지 못한 한국을 막을 수 있는 국가가 있긴 한가?’
한국 유망주 대표팀의 일원들이 목표 달성이 성큼 가까워진 것을 느끼는 만큼, 국가 교류전을 지켜보고 있는 세계 각국의 검도인들도 이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계 최강인 일본을 무너뜨리고, 그 뒤를 바싹 추격하던 미국과 캐나다도 밟고 올라선 한국이다.
남은 국가 중에서 한국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가진 국가는 드물었다.
그 사실은 이어진 3일 차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3일 차, 한국 유망주 대표팀이 상대한 국가는 대만, 스웨덴, 이탈리아, 프랑스였다.
그리고 그들이 손에 쥔 성적은 4전 전승!
제17회 세계 검도선수권 대회 단체전에서 미국과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한 대만조차 한국이라는 폭거 앞에서 휩쓸려 나갔다.
하나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으랴.
내로라하는 국가들도 앞서 무너져내린 판국인데.
그저 한국 유망주 대표팀이 너무나도 강했을 뿐이다.
“여기서는 위에서 내리누르는 공세로 한 번 흔든 다음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음- 확실히 상대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으니까 그게 더 좋아 보이긴 해.”
“근데 그럼 이후의 공격에서 손해를─”
심지어 그들은 실시간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기까지 했다!
성현을 비롯한 유망주 대표팀 팀원들은 국가 교류전 전승이라는 목표 달성에 한없이 가까워졌음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모든 경기가 끝나면 다 함께 모여서 경기 영상을 보며 시합을 복기했고, 더 나은 선택은 없었는지 각자 의견을 내며 토론을 나눴다.
대개 주목받던 유망주가 허망하게 몰락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두 가지는 바로 부담감과 자만심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국 유망주 대표팀과는 거리가 너무 먼 단어들이었다.
성현이라는 괴물이 떡하고 버티고 서서 모든 주목을 받는 중인데 부담감을 가질 게 뭐 있으며, 마찬가지로 저런 괴물을 옆에 두고 자만할 시간이 어디 있으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성현은 유망주 대표팀의 중심을 꽉 잡고 있던 거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가 교류전의 마지막 날.
한국 유망주 대표팀의 전승 달성까지 단 네 걸음만을 앞둔 가운데, 일본무도관은 수많은 관객으로 바글바글했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만큼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국가의 사람들도 만만찮게 많았다.
이름부터가 국가 교류전인 만큼 여러 국가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들 또한 한국이 일으키는 파란에 주목하고 있었다.
과연 한국 유망주 대표팀의 파격적인 승리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어떻게든 1승은 빼앗아야 해.”
나직하게 읊조린 것은 일본 3대 유망주의 수좌라 불리는 카츠히토였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있는 한국 대표팀, 정확히는 그중 한 명에게 못 박힌 것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자신과 같은 3대 유망주가 아니라면 적은 없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상대, 이성현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뜬 카츠히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일본이 가진 세계최강의 이름을 우리 세대에서 무너뜨릴 수는 없으니.”
“이미 무너진 거나 다름없지만 말야.”
“······최소한 무승부라는 결과는 손에 쥐어야 한다는 거다.”
신지의 비아냥에 카츠히토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대답했다.
“이 치욕을 씻어낼 기회는 오늘뿐이야.”
“쳇,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신지가 혀를 차며 몸을 뒤로 물렸다.
카츠히토의 말마따나 최소한 무승부라는 성적을 거둬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날에 들어선 지금, 현재 일본이 기록한 유일한 패배는 한국을 상대로 한 1패뿐.
이를 완전히 지워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상대에게도 자신이 입은 것과 똑같은 상처를 입혀야만 했다.
차세대에도 일본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위한 기회가 국가 교류전 4일 차인 오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어째서 4일 차인 오늘밖에 기회가 없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현재 국가 교류전 참여한 국가의 숫자는 총 열넷.
그러니 각 나라당 총 열세 번의 시합을 하고 나면, 남은 세 번의 경기는 이미 했던 상대와 한 번 더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일본 유망주 대표팀이 노리는 건 바로 이 세 번의 추가 경기를 통한 복수전이었다.
‘추가 경기라···.’
카츠히토가 속으로 쓴웃음 지었다.
만약 국가 교류전이 검도 세계선수권 대회처럼 권위와 공신력 있는 국제 대회였다면 이야기는 달랐으리라.
추가 경기 따위는 없이, 한 번의 패배는 씻을 수 없는 수치로 남았을 터.
애초에 국가 교류전이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개최된 대회이기에 이러한 추가 경기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일본 유망주 대표팀에게는 행운이 따르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재경기에서, 반드시 이긴다!”
주먹을 꽉 쥔 카츠히토가 선언했다.
다른 유망주 두 명 또한 같은 심정이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느 일본 유명 농구 만화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문구처럼, 카츠히토의 선언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어진 세 번의 추가 경기에서 일본은 거짓말처럼 한국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려 20 퍼센트가 넘는 확률에도 불구하고.
첫날 첫 경기에 만났던 그 운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뤄냈구나. 전승.”
“그러게요. 처음에는 분명 그냥 농담 삼아서 했던 말이었는데.”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끝낸 뒤.
무도관의 수많은 관객을 돌아보며 정철이 환하게 미소지었다.
마지막 상대가 이미 압도적으로 이겼던 헝가리였던지라 이미 작금의 결과를 예상하였는데도, 이 순간이 되니 기분이 묘했다.
한국이 일본조차 넘어서 전승을 이루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국가 교류전의 결과일 뿐, 제대로 된 국제 대회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었다.
이번 국가 교류전은 일종의 국제 대회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그것도 현세대와 차세대를 아우르는.
정철을 비롯한 한국 유망주 대표팀이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축하한다, 이 녀석들! 차세대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고 아주 도장을 콱 찍었구나!”
더불어, 비단 기뻐하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원형 감독이 호탕하게 웃으며 유망주 대표팀 선수들을 하나씩 껴안았다.
그의 뒤에는 위대한과 일반부 대표팀 선수들이 마찬가지로 밝은 얼굴로 서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검도 공통의 목표는 일본을 상대로 국제적인 무대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이름은 가볍지 않았고, 일본의 높은 벽에 막혀 번번이 좌절했었는데, 비록 교류전일지라도 일본을 넘어선 것이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
[······이번 국가 교류전은 검도를 통해 국가와 인종은 상관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한국 대표팀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는 폐회식 때의 표정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제검도연맹 임원의 폐막 연설이 진행되는 내내 싱글벙글 웃고 있었으니까.
물론, 대부분 그들의 기쁨을 이해했다.
한국이야말로 사실상 이번 국가 교류전 최대의 수혜자였으니까.
국가 교류전의 폐막식은 대개 그러하듯이 짧은 폐막 연설 이후, 사진 촬영으로 이어졌다.
만약 대회 형식이었다면 중간에 시상식이 진행되었을 테지만, 무승부 상황에서 대표전조차 하지 않는 친선 경기에 그런 게 있을 리가 만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여전히 환한 얼굴로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대표팀 전원이 모여서 한 컷, 다시 일반부 대표팀만 모여서 한 컷, 유망주 대표팀만 모여서 한 컷, 감독과 코치진이 껴서 다시 한 컷···.
트로피가 없는 이상, 남는 건 사진 뿐이라, 다들 촬영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지금 여기서 찍는 사진이 한국 검도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만큼, 더더욱.
“성현아!”
“응?”
막 위대한의 손에 붙잡혀 사진을 찍혔던 성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언더키의 신상 반팔 저지를 입은 수연이 배시시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자연스레 가까이 다가선 그녀가 성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발랄하게 말했다.
“나랑도 같이 사진 찍자!”
“그럴까? 아, 근데 지금은 주성이 형이 먼저 찍자고 해서-”
“난 괜찮아! 나중에 찍지, 뭐! 일단 너희 둘이 같이 찍고 나서 찾아와라!”
일반부 대표팀 선수 중 하나인 신주성이 성현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방금까지만 해도 위대한이 계속 성현을 놔주지 않은 채 사진을 찍자, 뒤에서 찍어버리려는 표정을 했던 게 기억나지도 않는지 시원스럽게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그에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성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당연하게도, 성현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뭐지?”
“양보해주신 거잖아. 나중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뭐, 그런가. 암튼 사진 찍자고 했지?”
“응응!”
슬그머니 성현의 팔을 붙잡은 수연은 그들의 옆에 있던 사진사를 바라보았다.
앞서 위대한과 성현의 사진을 찍었던 사진사는 씩 웃으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성현은 왠지 저 미소가 방금 물러났던 주성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자세를 잡았다.
표정이야 어찌되었든, 사진사가 촬영만 잘하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두 분 좀 더 가까이 붙어주세요.”
“좀 더요?”
“네. 좀 더. 좋습니다. 찍겠습니다!”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거의 팔짱 끼는 것 같은 자세가 된 두 사람이 사진을 찍었다.
성현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지만, 이때 찍은 두 사람의 투 샷 사진은 검도라이프 매거진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장식하게 된다.
향후 한국 남녀 대표팀의 기둥이 될 두 사람의 사진이라면서.
더불어 언더키의 신제품 홍보에도 사용되며 정말이지 다양한 곳까지 퍼져나가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을 때, 수연이 원했던 그대로.
바깥 해자부터 메워간다는 그녀의 계획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었던 거다.
“······.”
사진 촬영까지 마친 성현은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본의 3대 유망주, 미국의 찰스 웨인, 캐나다의 프레데릭 피어슨, 그리고 각 나라의 주장을 맡았던 유망주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번 새싹밟기가 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전처럼 강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전보다 못해질 수도, 그도 아니면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서 돌아올 수도 있으리라.
단연코 성현이 원하는 건 그중 세 번째, 제일 마지막 상황이었다.
‘다들 더 강해져서 와라. 전보다 훨씬 더-’
시간을 거슬러온 성현조차 깜짝 놀랄 만큼.
그리하면 비로소 그가 밟고 올라서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성현은 그들이 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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