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77화 (77/150)

77화: 뭐야, 이 괴물은

한국이 세 번째, 네 번째 상대로 만난 건 핀란드와 헝가리였다.

두 나라는 이렇다 할 강자도 특징도 없는,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였고, 결과 또한 그러했다.

앞서 상대했던 일본, 미국이라는 강자들과는 달리, 일반부 대표팀도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성현이라는 괴물이 떡하고 버티고 있는 유망주 대표팀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승리!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국가 교류전의 첫째 날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하여 한국 대표팀이 받아든 성적은 일반부 4전 2승 1무 1패, 유망주 4전 4승.

물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유망주 대표팀이 거둔 4승은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검도 종주국이자 현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일본,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쫓으며 호시탐탐 최강의 자리를 넘보는 미국!

두 나라를 상대로 하여 승리했다는 건, 이대로 성장할 경우 차세대 세계 최강은 한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으니까.

사실, 툭 까놓고 말하면 ‘가능성이 크다’라고 가볍게 말할 정도가 아니긴 했다.

왜냐고?

오늘 유망주 대표팀이 거둔 성적을 보라.

vs 일본 ? 7전 4승 2무 1패.

vs 미국 ? 7전 전승.

vs 핀란드 ? 7전 전승.

vs 헝가리 ? 7전 전승.

총 스물여덟 번을 싸워 스물다섯 번을 이기고, 두 번을 비겼으며, 한 번 졌다.

이 중 두 번의 무승부와 한 번의 패배는 현 세계 최강 일본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고, 미국과 핀란드를 상대로는 전승을 거두었으니-선봉부터 주장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압도적인 강함을 뽐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 미국, 핀란드, 헝가리라는 네 국가가 약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일본이나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헝가리도 호시탐탐 순위권을 넘보는 데다가─실제로 제16회 세계 검도 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핀란드 또한 상당한 강국이었으니까.

단지 그 모든 것을 넘어 한국이 강했을 뿐이다.

상상을 넘어설 만큼 압도적으로.

국가 교류전이 시작된 첫날에 검도계가 그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을 만큼 말이다.

─일본이 박살 났다!

─미국도 완전히 압살당했다!

─3대 유망주는 죽을 쒔고, 찰스 웨인도 손도 발도 못 쓴 채 졌다!

연달아 쏟아지는 충격적인 소식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검도계가 들썩거린 것도 어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망주 대표팀을 뽑아 보낸 한국 검도 협회조차 지금과 같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는데 더 말해서 무엇 하랴!

한국 검도 협회가 당황한 건, 설마하니 첫째 날에 일본과 미국을 박살 낼 줄 몰랐다는 놀라움에 가까웠지만, 그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여하튼, 속보를 들은 검도인들의 시선은 한국 유망주 대표팀으로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건─

“이성현? 얘는 뭐 하는 애야?”

“누구 아는 사람 없나?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모든 이변의 중심에는 이성현이 있어!”

──한국 유망주 대표팀의 주장, 이성현이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등장하여, 천재 백성호로부터 주장 자리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 3대 유망주의 수좌 가토 카츠히토와 미국 검도 차세대 슈퍼스타 찰스 웨인을 압살해 버린 이 어린 괴물이 주목받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성현에 대해 알게 된 검도인들은 사력을 다해 그에 대한 정보를 모았으며, 그럴수록 점점 더 경악하게 되었다.

올해로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사실?

그 또한 꽤 놀라웠지만, 사람들을 더욱 소름 끼치게 한 건 그의 경력이었다.

검도를 시작한 것이 중학교 3학년 무렵이라는 건, 다시 말해 이제 겨우 일 년밖에 검도를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경력 일 년? 이봐- 농담이겠지?”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을 보면···.”

“한국에서 개최된 방송국 대회가 첫 공식전이야. 당연히 우승했고.”

“그 전까지는 완전히 무명이었네.”

무턱대고 부정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확실했다.

한국 네티즌 쪽에서 알아 달라는 것처럼 잘 정리된 내용을 은근히 뿌리기까지 해서 더욱더.

그런데도 전 세계 검도인들이 자신들이 잘못 알아본 것은 아닌지, 혹시나 한국 검도 협회에서 뿌린 잘못된 정보에 낚인 건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한 이유는 그게 너무나 터무니없던 까닭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약소부로 유명한 광천고등학교 검도부에서 본격적으로 검도를 시작하여, 고작 몇 개월 만에 방송국 개최의 대회에서 숱한 유망주를 쓰러뜨리고 우승!

주장으로서 광천고 검도부를 이끌며 회장기라는 한국 메이저 대회 중 하나를 완전히 정복하고, 그 과정에서 백성호까지 꺾으며 명실상부한 최강의 유망주 자리에 올랐다.

이후의 일은 굳이 말할 이유가 없으리라.

국가 교류전에서 일본과 미국 최대 유망주들에게 완승한 건 속보로 널리 알려진 상태였으니.

성현에 대해 알게 된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 문장은 이러했다.

““뭐야, 이 괴물은?””

상식을 벗어난 괴물.

이성현이라는 소년에 대해 간단히 정의하자면 아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재능이 있다고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당장 ‘천재’라 불렸던 백성호를 보라.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철저하게 수련을 거친 끝에야 모든 한국 유망주 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한국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일컫는 재능을 가진 백성호조차 그럴진대, 이성현은?

검도를 배운 건 고작 일 년.

소속된 검도부조차 유명한 약소부.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는 환경에 불쑥 튀어나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유망주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고 있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군.”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 그러니···.”

“허, 참- 기가 차는구만, 그래.”

“천재라는 말로 이게 설명이 가능한 건가?”

자연히 전 세계 검도인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검도 역사상 처음 보는,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당연한 반응이라 하겠다.

이렇듯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건 비단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주장인 성현만은 못할지언정, 한국 유망주 대표팀의 다른 유망주들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기에.

이들 또한 일본, 미국, 핀란드, 헝가리 4국 유망주들을 압도할 만큼 강했기에 4전 4승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단 하루 만에 각국 검도계 인사들과 검도 팬들에게 주목받게 된 한국 유망주 대표팀!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4전 전승이라. 놀랍네.”

“아예 전 경기 전승으로 끝내면 난리 나겠지?”

“다들 좋았어! 지금 페이스로만 쭉 가자-!”

···한껏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각국 유망주들을 알아보며 걱정했던 영준도, 은근히 긴장한 듯 보이던 정철도 지금만큼은 환한 표정이었다.

강찬울과 김규호, 백지호 또한 마찬가지.

지금의 결과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백성호와 성현, 두 사람뿐이었다.

“영준 형, 검도라이프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지금 게시판 거의 다 우리 얘기밖에 없더라. 뭐, 당연한 일이지만.”

강찬울의 물음에 영준이 씩 웃으며 답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 교류전이다.

국내 대회가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이 함께 출전하는 대회이니만큼, 여기서 이긴다는 건 한국이 사랑해 마지않는 국위 선양을 했다는 뜻!

심지어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는 한일전까지 이겼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국가 교류전의 본래 취지는 참여국들끼리의 친목 도모지만, 세상이 원하는 대로만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거 잘만 하면 뉴스까지 나올 거 같던데.”

“뉴스? 유망주 대회처럼?”

“그건 개최한 S 방송사에서만 하는 거잖아요. 이번에는 S, M, K 3사에서 다 나올걸요.”

“확실히 그럴 것 같긴 해.”

가만히 듣고 있던 김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검도가 이제 겨우 인기 종목으로 발돋움하는 중인 스포츠라 해도, 이 정도 성적이라면 뉴스까지 나올 확률이 높았다.

다른 비인기 종목 선수가 국제 대회에서 갑작스레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뉴스를 타며 유명해지는 일은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니까.

검도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비록 국가 교류전이 대항전 같은 진지한 대회는 아닐지라도, 전 세계 각국이 참여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기도 하고.

“···아예 국가 교류전 모든 경기에서 이기면? 그럼 더 확실하겠지?”

돌연 영준이 한 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국가 교류전에서 전부 이긴다?

그 말인즉, 유망주 한정일지라도 세계 최강의 자리를 노리자는 의미다.

만약 첫날 전에 그런 말을 했다면 꿈과 같은 이야기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미 일본이랑 미국도 이겼고.’

‘걸리는 거라고 해도 캐나다 정도?’

‘만약 일본이랑 다시 붙게 되었을 때 이길 수만 있다면-’

“-그러면, 완전 난리 나겠죠.”

강찬울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들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불타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방금 영준의 언급으로 이번 국가 교류전에서 더없이 확고한 목표가 세워진 까닭이다.

전 경기 승리를 통한 세계 최강 입증.

투기 종목의 선수로서 이보다 가슴 뜨거워지는 목표가 대체 어디 있을까?

‘보기 좋네.’

성현은 각오를 다지는 이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에게 개인전을 독식하고, 몇 년 동안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전’에도 얼마든지 했던 일이기에.

하지만, 단체전은 달랐다.

앞을 지켜주는 이들이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아무리 그라 해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나 올림픽이 연승전 방식이 되지 않는 이상, 그가 전부 이겨서 단체전에서 승리를 따내는 게 불가능하기에.

그러니 한국 유망주 대표팀의 일원들이 승리를 향한 열망에 불타는 건 그에게 있어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우우웅-!

‘음?’

[수연: 첫날 전승 ㅊㅋㅊㅋ~]

[수연: (토끼가 꽃가루를 뿌리는 이모티콘)]

갑작스레 울리는 진동에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수연에게서 톡이 도착해 있었다.

아무래도 숙소가 아예 갈라져 있으니 직접 찾아와 이야기하는 건 무리였기에 톡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 듯싶었다.

피식 웃은 성현이 답장을 보냈다.

[성현: 여자 유망주 대표팀도 전승이잖아]

[수연: 맞아ㅎㅎ]

[수연: (찹쌀떡이 브이를 만드는 이모티콘)]

[수연: 근데 다 선배님들이 다들 잘해 주셔서 이긴 거지. 내가 한 건 별로 없어]

스마트폰을 본 성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마지막 순서인 주장이기에 어깨너머로나마 여자부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수연의 활약상 또한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수연의 톡이 얼마나 겸손한 것인지도 알았다.

선봉으로 나가 연달아 승리를 거두며 흐름을 팀으로 이끌어 온 그녀는 분명 여자 유망주 대표팀 전승의 주역이라 할 만했으니까.

[성현: 수연이 너도 잘했어]

[성현: (곰돌이가 엄지를 치켜드는 이모티콘)]

[수연: ㄱㅅㄱㅅ~]

[수연: 내일 경기도 힘내자!]

[성현: ㅇㅇ]

“···음?”

다시금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성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인가 다른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 있었던 까닭이다.

굉장히 낯간지러워지는 눈빛이었다.

성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거 수연이 톡 맞지?”

“아, 네. 맞아요. 혹시 전하실 말이라도···?”

“아니, 그런 거 아냐. 그냥, 흠- 부럽다 싶어서.”

“네?”

“아무것도 아냐!”

두서도 없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영준의 말에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철이 끼어든 건 그때였다.

보기 드물게 짓궂은 미소를 띤 그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영준이 너도 빨리 하은이한테 톡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 으, 아, 아닌데요! ─자, 다들 내일도 힘내자! 파이팅!”

“···파이팅!”

노골적인 말 돌리기였지만, 다른 팀원들은 피식 웃으며 호응했다.

좋은 흐름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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