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결심
‘내가 무슨 공격을 할지는 상대도 예상했겠지.’
상단세와 이도를 상대로 찌르기가 유리하다는 건 검도를 해 본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설령 저 둘을 직접 상대해 보지 않은 이들이라도 그렇다.
워낙에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보니 이도 사용자에 대한 대처법을 모르는 이들이 시도하는 건 대개 찌르기일 정도였으니까.
하여 찰스 또한 성현이 찌르기를 시도하는 걸 경계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상대가 경계하는 찌르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지만─
‘굳이?’
성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경계하고 있다 하여 막을 수 있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옳으니.
본래 ‘찌르기’란 그런 것이다.
막히는 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 공격.
다만 상대를 꿰뚫기 위해 내지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찌르기니까.
‘-꿰뚫는다.’
상대의 숨통을, 단번에.
성현의 두 눈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동작을 행함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검도의 기술이 그러하듯, 망설임은 찌르기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뿐이니!
머지않은 미래, 혹은 과거.
성현을 잠시나마 가르쳤던 위대한이 때때로 입에 담던 말이 있었다.
-기술을 내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냈다면 망설이지 마라.
‘세 번 생각해서 한 번 말하라’라는 고사성어 삼사일언(三思一言)에서 따온 그 말은 기술을 내는 것에 있어 가져야 할 주된 마음가짐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물론,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성현은 그 가르침을 한시도 잊은 적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찌르기는 항상 지독했다.
언제나 상대의 목을 꿰뚫는다는 일념 하나만 가진 채 내질러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타앗!
바닥을 강하게 딛는 왼발과 상대를 향하여 스치듯 나아가는 오른발.
자연스럽게 허리가 틀어지며, 오른손은 옆구리에 붙고, 왼손은 찌르기 위해 내뻗어졌다.
그리하여 상대의 목을 겨냥한 죽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치솟아 오르니.
그림으로 그린 듯한 ‘한 손 찌르기’였다!
마치 물 흐르듯이 이어진 일련의 동작.
더욱이 두려운 것은 이 연결 동작 사이에 어떠한 군더더기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건 단순히 동작 하나, 하나가 완벽한 것을 넘어─ 중단세에서 한 손 찌르기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완벽하다는 의미였다.
머리카락 한 가닥부터 발가락 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오롯이 찌르기를 위해서만 움직였을 때나 이러한 완성도가 가능할지 의문일 지경!
그리고 찌르기의 완성도란, 곧 속도다.
그런즉, 성현의 찌르기는 실로 신속(神速)이라 할 만했다.
찰나를 꿰뚫는 찌르기!
‘What the-’
시작부터 찌르기를 경계하고 있던 찰스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건 그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완벽히 내뱉지 못했는데, 중간까지 내뱉었을 때 이미 목을 향해 죽도 끝이 들이닥치고 있던 까닭이다.
소름이 끼칠 만큼 빠른 속도!
중단세에서 눈을 깜빡하고 뜬 순간, 이미 찌르기를 내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콰악-!
“-커헉!”
내지르는 것에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죽도가 무색하게도 찰스는 자신의 목에 틀어박히는 공격을 거둬 내지 못했다.
이도의 약점이 찌르기라는 걸 알고, 이미 그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동작조차 취하지 못할 만큼 경악스러운 찌르기였다!
“백색, 목!”
지켜보고 있던 심판 세 명이 일제히 백색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실로 마땅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방금 성현의 찌르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찌르기를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찌르기로 한판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는 하나, 이렇듯 완벽한 기술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크윽···. 흐으-”
휘청이듯 물러난 찰스가 순간적으로 틀어막혔던 숨을 내쉬었다.
찌르기를 당한 목 부분이 욱신거렸지만, 그런 통증 따위는 그에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것은 이미 익숙했으니까.
지금 찰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방금 그를 꿰뚫었던 찌르기였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야. 내가 순간적으로 드러낸 틈을 제대로 파고들었어.’
만약 단순히 빠르기만 했다면 찰스도 어찌어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현의 찌르기는 달랐다.
그를 완전히 꿰뚫어 버리듯 아주 짧은 순간 드러난 빈틈을 제대로 노렸다는 뜻이다.
모든 순간에 완벽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인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 해도 그렇다.
사람인 이상 영원히 호흡을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숨을 내뱉으며 몸의 긴장이 풀리는 때는 오기 마련.
물론, 그것을 노리는 게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찰스조차 의문이었지만···.
‘실제로 그걸 해냈으니까.’
실현해 낸 사람이 눈앞에 있는 이상, 가능성에 대해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리라.
“허억, 헉-”
“Are you okay?”
“후우- Fine.”
걱정이 담긴 주심의 물음에 대답한 찰스는 천천히 시작 선으로 가서 섰다.
단 한 번의 찌르기로 성현은 찰스에게 현재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실력 차이가 있음을 새겨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력하게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 경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자처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승산은 있어.’
첫판을 일방적으로 결정지은 신속의 찌르기.
아마 상단세에서 오는 첫 일격 또한 이와 비슷한 속도일 것이라고 찰스는 생각했다.
그가 이번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건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었지만, 관점을 바꾸면 또 이야기는 달라졌다.
한 번 겪었던 것과 같은 공격이라는 뜻이었으니.
무기력하게 당하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격을 다시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용하는 건 찰스 웨인이라는 유망주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따라서, 지극히 낮을지언정, 승산은 있었다.
‘좋아!’
하지만 찰스 웨인은 몰랐다.
오롯이 공격에 모든 것을 바친 상단세와 중단세의 공격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 이번에 성현이 내지른 찌르기의 위력은 실로 놀라웠지만, 그조차도 ‘불의 자세’라 불릴 만큼 공격적인 상단세에서 나오는 일격에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찰스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비로소 성현의 상단세를 마주한 직후였다.
“···나왔다.”
“진짜로 한 경기에 중단과 상단을 다 쓰다니.”
“저게 가토를 일격에 끝내 버렸다는 그-”
웅성웅성.
상단세를 취한 성현을 보며 수군대는 관객들.
그러나 그들이 떠드는 소리는 찰스의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따위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까닭이다.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서 시선을 뗄 수조차 없었으니까.
오싹-!
등골을 타고 쭉 끼치는 소름.
중단세를 취했을 때의 성현이 압도적이었다면, 상단세를 취한 성현은 살벌했다.
자세, 눈빛, 기백- 아니, 성현이라는 존재 자체가 모조리 ‘널 베겠다’라고 끊임없이 절규하며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만 시선을 떼도 베어지고 말 것이라는 공포.
찰스의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하-’
문득, 자신이 아까 전 했던 생각들을 떠올린 찰스는 기가 참을 느꼈다.
상단세의 첫 일격과 비슷한 속도?
낮을지언정 승산은 있어?
‘그거참- 우습지도 않은 소리였군.’
제대로 겪어 보지도 않은 주제에 정말이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견지가 아닌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찰스는, 곧 눈을 부릅떴다.
당장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상대에게 대적하고자 하는 마음뿐!
대단함에 감탄하는 건 복기할 때 해도 충분하다.
이를 악문 그가 굳건하게 바닥을 디딘 채, 길고 짧은 두 자루의 죽도를 들어 올렸다.
“후아아아-!”
입에서 토해지는 강렬한 기부림!
그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은 찰스가 성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두 자루의 죽도를 다루는 이도는 중단세보다 상단세를 상대하기에 유리한 면이 있었다.
이도 특유의 방어 능력 덕분이다.
첫 일격이 막혔을 때 중단세 이상으로 무방비하게 틈을 드러내는 상단세는 방어가 뛰어난 이도에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왼손의 소도로 첫 일격을 막아 내는 데에만 성공할 수 있다면, 오른손의 대도로 득점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으니.
그 말인즉.
‘한 번만, 한 번만 막아 내면 된다···.’
단 한 번만 막아 내면 이길 수 있다.
확실한 승리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거다!
찰스의 푸른 눈이 불꽃을 품고 타올랐다.
“──.”
“──.”
무도관에 슬그머니 내려앉은 적막.
성현과 찰스, 두 사람의 대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폭탄 두 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것처럼.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먼저 터지는 폭탄은, 성현으로 정해져 있음을.
찰스가 이도의 장점, 방어가 뛰어나다는 것을 버리고 굳이 상대에게 뛰어들 이유가 없으므로.
“끝났군.”
멀찍이서 지켜보던 카츠히토가 쓴웃음을 지은 건 바로 그래서였다.
성현의 상단세를 한발 먼저 상대해 본 그는, 성현을 이기기 위해서는 아예 공격 기회조차 넘겨 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시합 때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 그의 입가가 비뚤어졌다.
‘그건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검격이 아니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한 줄기 벼락.
혹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적을 불태우는 불꽃.
어느 쪽으로 묘사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한번 내지른 이상, 그 일격을 막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설령 방어에 뛰어난 이도라 해도 마찬가지.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초월적인 일격을, 좀 더 방어에 특화되어 있다 해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꽈아악.
“······.”
난간을 꾹 움켜쥔 카츠히토가 경기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경기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후우웅-!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구쳐 올랐던 죽도가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다.
죽도가 그려 내는 것은 다만 깨끗한 직선.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벼락이다···.
‘이런.’
그 앞에 서게 된 찰스는 뒤늦게서야 카츠히토와 같은 깨달음을 얻고야 말았다.
성현의 일격을 막으려는 행동에 대한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도가 방어에 특화되어 있건 없건, 그런 사소한 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공격은, 막는 게 불가능했다.
천재지변을 왜 천재지변이라고 일컫는가?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현이 휘두른 죽도에서 벼락이라는 천재지변을 떠올린 이상, 찰스가 그것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절대로.
‘지독하다.’
타아악-!
“백색, 머리! 시합 끝!”
“와아아아-!”
시합 끝을 알리는 주심의 외침에 관객석에서 작지만 분명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성현에게 적대적인 이들이라도 감탄을 내뱉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일격이었으니까.
곧 주변의 시선을 받고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감탄했다는 사실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찰스.”
“괘, 괜찮아?”
시합이 모두 끝난 뒤.
차분한 걸음으로 경기장을 벗어난 찰스를 맞이한 건 안타까워하는 표정의 유망주들이었다.
찰스는 그들의 앞에서 쓰고 있던 호구를 벗고 민낯을 드러냈다.
놀랍도록 상쾌한 그 표정을.
“다들 왜 그런 표정이야? 질 수도 있지. 오히려 잘됐어. 방금 경기로 결심이 섰거든.”
“결심이 서다니?”
어리둥절해하는 에이든을 보며 찰스는 웃었다.
경기 시작 전, 어쩐지 고뇌가 묻어나는 표정이 아니라, 온전한 즐거움을 담은 미소였다.
“검도 선수에 최선을 다할 결심.”
유망주들은 찰스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이해받고자 했던 말도 아니었기에, 찰스는 고개를 돌려 반대편- 한국 대표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 사이, 그를 박살 내 버린 성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괴물을 이기지 않고서는 절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지.’
찰스 웨인(Charles Wayne).
영화배우와 검도 선수를 겸행하며 잠시나마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선수가, 온전히 검도에 집중하겠다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 뭐야, 이 괴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