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75화 (75/150)

75화: 이도

“성현아! 성현아!”

“···응?”

“슬슬 우리 경기 시간이야!”

“아. 그런가.”

집중해서 경기를 보고 있던 성현은 수연의 말에 난간에서 몸을 뗐다.

미국과 헝가리의 경기 이후, 계속해서 흥미진진한 경기가 이어지며 어느새 경기 시간이 성큼 다가온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기들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개막전을 장식했던 치열한 한일전을 본 각 국가도 뭔가를 깨달았는지, 친목 도모라는 원래 목적은 까맣게 잊고, 매 경기 세계 대회 결승처럼 혈투를 벌인 까닭이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유망주까지 참가한 이상, 국가 교류전에서 패배할 경우, 그 멍에를 다음 세대까지 짊어지게 된다─아마 다른 나라들도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리라.

그러니 저토록 경기마다 죽을힘을 다하고 있을 테고.

“이제 가자.”

“응응!”

아쉽다는 듯 눈길을 거둔 성현이 수연과 함께 대표팀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느긋하게 걸어가던 중, 수연이 말했다.

“참, 이번에 성현이 너랑 시합하는 애가 아까 그 죽도 겨눴던 걔 맞지?”

“응, 맞아. 찰스 웨인.”

“흐응-”

‘무슨 자신감이지?’

수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현의 실력을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일본 주장을 탈탈 털며 탈유망주급 실력을 지닌 괴물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아까처럼 보란 듯이 도발을 했다는 게 수연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

훗날 미남 배우로 유명해질 찰스 웨인도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씐 수연에게는 이름도 잘 모르는 누군가에 불과했다.

아마 성현에게 죽도를 겨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리라.

그녀는 자그마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에도 꼭 이겨! 응원할게!”

“그래, 나도 응원할게.”

“응응!”

성현에게 응원의 말을 남긴 수연이 자신을 부르는 여자 대표팀 선수의 외침에 쪼르르 달려가고.

홀로 남은 성현도 자신을 기다리던 유망주들 사이로 향했다.

훗날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를 선수와의 경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현재에는 두 나라가 서로 대등하나, 미래에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러했다.

일반부에서는 비슷한 실력으로 대등한 결과를 얻었지만, 유망주 쪽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이긴 까닭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일반부 대표팀이 미국 일반부 대표팀을 상대로 기록한 건 3승 3패 1무의 무승부!

본래 이런 경우, 다른 대회였다면 마지막으로 대표전을 펼쳐 승자를 가렸겠지만, 국가 교류전은 어디까지나 친목 도모를 위한 대회─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낸 의도는 그랬다!─.

따라서 대표전 없이 깔끔하게 무승부로 끝났고, 한국과 미국이 대등한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게 증명되었던 거다.

다만 이건 현세대에서 가장 강한 국가가 일본임을 다시금 알려 주는 결과이기도 했다.

일본을 상대로 패배한 한국이 미국과 대등하다는 건, 사실상 일본이 아직도 세계 최강급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본다면 이야기는 확 달라졌다.

유망주 단체전.

본래는 일반부 경기 이후 가벼운 이벤트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한일전 이후 어쩐지 본 경기가 되어 버린 이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을 쓰러뜨린 자신들의 강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미국 유망주 대표팀을 상대로 주장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전승을 거두었으니 말 다 했다.

압승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그야말로 완승!

한국 유망주 대표팀이 어찌나 강하던지 일본 유망주 대표팀이 재평가될 정도였다.

결과야 졌더라도 어쨌든 한국을 상대로 2승을 거두기는 했으니까.

심지어 이즈음 해서, 검도 업계의 관계자들은 다음 세대의 세계 최강은 한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했다는 뜻이다.

“미안, 주장. 져 버렸어.”

“괜찮아. 에이든. 잘 싸웠어.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된 거야.”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온 부장, 에이든을 찰스 웨인이 따뜻하게 반겼다.

에이든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고 받아주는 찰스를 감명받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찰스의 입장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 또한 없는 법.

여태껏 에이든의 실력을 봐 온 찰스는 그가 ‘천재’라 불리는 백성호를 이길 수 있다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에이든과 백성호 사이에는 결코 넘지 못할 벽과 같은 실력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여 에이든의 패배를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고, 지금처럼 여유롭게 웃을 수 있었던 거다.

“찰스, 이길 수 있겠어?”

“저 녀석 진짜 장난 아니던데-”

“너희들 지금 찰스 못 믿는 거야? 찰스는 천재야! 이길 수 있다고!”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우왕좌왕하는 팀원들을 보며 찰스가 빙긋 웃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야. 결과는 그다음이고. 다들 알고 있잖아.”

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

그들을 향해 다시금 씩 웃으며 “갔다 올게.” 하고 말한 찰스가 경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이든이 부장전에서 지고 온 이상, 남은 경기는 그가 출전할 주장전뿐이므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라···.’

문득, 찰스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팀원들에게 내뱉었던 말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부터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는 주제에 팀원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려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영화배우라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 이후, 그는 자신이 어느 한쪽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음을 깨닫고 있었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고나 할까.

물론 미국 일반부 대표팀 선수들처럼 따로 직업을 두고 검도 선수를 겸업하는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루려면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이해했지만-

‘그게 과연 최선을 다한 걸까?’

돌연 그러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타고 난 천성이 그러한 까닭이었다.

찰스 웨인 본인은 몰랐지만, ‘전’에 그가 검도 선수로서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음에도 곧장 은퇴를 선언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검도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 정상에 섰으니, 이제 배우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기에.

“후우우-”

‘그러니 여기서 확인해야 해.’

팀원들이 이길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찰스가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대답했던 건 사실 말 돌리기에 가까웠다.

자신만 믿고 있는 팀원들에게 이길 자신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웠으니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는 자신이 없었다.

일본 3대 유망주 중 가장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가토 카츠히토를 완전히 박살 낸 상대다.

그런 이를 상대로 어떻게 승리를 장담하겠는가.

다른 사람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만큼 자신에게도 냉정한 찰스였기에, 이번 시합에서 그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성현을 보란 듯이 도발한 이유는 한번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짜 면모를 드러낸 강자를 상대로 지금의 자신, 찰스 웨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검도 선수와 배우를 겸업할 수 있는지를-’

요컨대, 가능성을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검도 선수와 배우 두 가지 길에 모두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인사!”

하지만 정작 상대를 마주한 이 순간.

찰스 웨인은 살짝 아까의 결정을 후회했다.

“······.”

눈앞에 있는 상대가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내리깔리는 정적 속에서 슬그머니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이성현이라는 선수가.

아직 카츠히토를 완전히 좌절시켰던 두 번째 겨눔세- 상단세조차 아니었음에도, 오싹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살면서 수많은 이들을 상대해 본 찰스조차 저렇듯 압도적인 기색의 중단세는 처음이었다.

‘괴물-’

검도를 하며 단 한 번도, 또 누구에게도 붙여 본 적 없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겨눔세를 취하는, 딱 그 하나의 행동만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니.

괴물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천재를 넘어서는 괴물-

‘이러니 가토 카츠히토가 그렇게 밀려났지.’

그저 죽도 하나가 겨눠졌을 뿐인데,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저대로 밀고 들어온다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찰스는 슬쩍 갈라진 입술을 축였다.

의문을 품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해내야만 했다.

무조건.

스스로가 바랐던 일이지 않은가?

“후아아아-!”

자신을 북돋기 위해 찰스는 기부림을 내질렀다.

두 자루의 길고 짧은 죽도를 들어 올린 그가 상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난생처음으로 상대하는 괴물을.

*

이도(二刀).

두 자루의 길고 짧은 죽도를 다루어 상대와 겨루는 이 방식은 상당히 강하다.

죽도 두 자루를 들었으니 두 배로 세다, 그런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논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도는 생각보다 강했다.

이도가 강한 이유 첫 번째는 생소함이었다.

중단세가 주류가 되고, 상단세마저 드문 현대 검도에서 이도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는 수준으로 만나기 힘들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이도를 상대해 본 경험도 그만큼 적다는 걸 의미했다.

대처법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라는 거다.

어떻게 상대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니 자연히 이도가 강할 수밖에.

이도가 강한 이유 두 번째는 특유의 뛰어난 방어 능력이었다.

한 손으로 막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건, 설령 공격하던 상황에서도 상대의 반격을 막아 낼 수단이 있다는 것이다.

아예 방어에만 전념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제대로 된 이도를 상대하는 이들은 ‘칠 곳이 없다’고까지 평가할 정도니까.

괜히 일본에서 한때 학생 검도에서 이도를 금지했던 게 아니다.

이도로 제대로 방어를 굳히는 방법만 안다면 몇 수 위의 상대와 비기는 것도 가능하고, 그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랬던 거다.

그런 이도를 훗날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선수가 사용한다면 어떨까.

‘흐음.’

성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상대, 찰스를 보았다.

짧은 죽도를 견제하듯 앞으로 내밀고, 긴 죽도를 언제든 내리칠 것처럼 들어 올린 모습.

역족에 역이도인 히라와타 신지와는 달리, 찰스는 정족에 정이도를 사용하는 이도 사용자였다.

따라서 그가 취하는 겨눔세 또한 전형적인 이도 사용자가 취하는 것이었고.

그러나 전형적이라 해서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지금 소도를 치워 내며 타돌한다면 대도가 머리를 쪼갤 테고, 반대라면 대도 대신 소도가 목을 찔러 들 터.

‘역시 이도는 상당히 까다롭네.’

물론 어디까지나 까다로울 뿐이다.

왜냐하면, 이도의 강점 중 하나인 생소함은 성현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전’을 통틀어 반백 년이 넘는 검도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수많은 선수들을 상대해 봤고, 그중에는 이도 사용자 또한 여럿이었기에.

대처법 따위는 이미 수도 없이 알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와서는 처음 상대하는 이도 사용자인지라 제법 까다롭게 느껴지긴 했지만, 딱 그 정도 감상에 불과했다.

“스으-”

이도를 상대로 공세는 크게 의미가 없으니.

필요한 건 그저 한 번의 공격뿐이다.

성현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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