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74화 (74/150)

74화: 찰스 웨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던 개막전의 결과는 한국의 승리였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으로는 일반부에서는 일본이 이기고 유망주 쪽에서는 한국이 이기며 1대1로 무승부였지만, 대체 누가 이걸 무승부로 받아들이겠는가?

검도에는 ‘시합에서 졌어도 주장전에서 이기면 자존심은 챙긴다’라는 말이 있다.

주장전이 그처럼 중요하다는 뜻인데, 한국은 패배한 일반부에서도 주장전만큼은 이겼고, 유망주 쪽에서는 완전 박살을 내 버렸다.

다시 말해, 패배했음에도 자존심은 챙겼다는 이야기다.

아예 이겨 버린 유망주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한국은 시작부터 거하게 도발을 하며 일본의 체면에 먹칠한 상황!

될 수 있으면 한국에 완승하며 응징했어야 하는 일본이었건만, 도리어 일반부에서는 주장전에서 지고, 유망주 쪽은 3대 유망주로 떠받들던 이들마저 대차게 깨졌으니···.

실질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한국이다,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경기가 끝난 두 팀의 표정만 봐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만 짓고 있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

반면.

“다음 경기는 어디더라?”

“미국이랑 헝가리.”

“음, 미국이라···. 이번에 존 클락 선수 나온다는 건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다음 상대 미국 아냐?”

“맞아. 그래서 잘 봐 둬야 돼.”

웃는 얼굴로 활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

두 선수단의 상반된 표정이 이번 개막 한일전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승리의 주역이자 일본 검도 팬들의 공공의 적이 된 성현은 실실 웃고 있는 한국팀 선수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기뻐할 만도 하지.’

한국은 한 번도 국제 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대체로 한국과 일본은 결승전에서 만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이 말은 곧 한국이 일본에 밀려 늘 준우승만 차지했다는 뜻이다.

그나마 한국이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미국이 일본을 꺾었던 제13회뿐.

항상 이렇듯 밀려나기만 하다가, 이제 겨우 일본에 한 방 크게 먹여 준 상황이니, 일반부 선수들이 기뻐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미국이라···.’

난간에 팔을 올리며 기댄 성현이 느긋하게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한창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미국과 헝가리.

두 개의 국가 대표팀 중에서 성현의 시선이 닿은 곳은 미국 대표팀이 있는 쪽이었다.

정확히는, 미국 대표팀 중에서도 뒤쪽, 유망주들 사이에 있는 한 소년을 바라본 것이었다.

“Let's do our best!”

““GO-!””

반짝이는 금발에 푸른 눈, 잘생겼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미모.

실제로 훗날 커서 유명한 미남 배우로 알려지기도 하니, 소년의 외모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성현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검도에 순수하게 미쳐 있는 그에게 보이는 건, 소년이 가진 잠재력뿐이었기에.

‘찰스 웨인···.’

찰스 웨인.

이십 년 뒤에는 미국 최강의 검도 선수로 우뚝 설 이의 이름이었고, 저 소년의 이름이기도 했다.

평소 검도를 좋아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검도를 시작한 찰스 웨인은 특유의 재능으로 금방 두각을 드러냈다.

미국 차세대 검도 유망주 중에서 그와 비교할 상대는 없다고까지 말해졌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성장하여 잘생긴 외모와 검도 실력을 바탕으로 배우 생활을 겸업하는데도 미국에서 그를 넘어서는 실력자는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뭐, 겸업이야 미국 선수들 대부분이 하는 거니까 제외한다 쳐도.’

한국이나 일본은 전업 검도 선수가 꽤 있다.

특히 대표팀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따로 직업을 갖지 않는, 말 그대로 검도에만 모든 걸 바친 이들로 구성되어 있고.

하지만 미국 선수들은 대개 따로 자신들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고, 검도는 따로 시간을 내어 수련하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2강인 일본과 한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대단한 점이지만···.

여하튼, 중요한 건 찰스 웨인의 실력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넘어 우승하게 만든 그 실력.’

앞으로 16년 뒤인 2036년에 개최될 제23회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

미국은 준결승에서 한국을, 이어서 결승에서 일본을 차례대로 쓰러뜨리며 처음으로 단체전 우승까지 거머쥐는 쾌거를 이뤄 낸다.

거기서 주장으로 나서서 전승하며 활약한 것이 바로 찰스 웨인이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일본 최강이었던 선수가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않았다는 뒷사정 같은 게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결과.

미국이 잠시나마 세계 최강의 자리를 거머쥐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으니.

“···흐.”

‘붙어 보고 싶었는데 잘됐군.’

다만 미국의 짧은 검도 전성기는 거기서 끝났다.

검도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검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찰스 웨인이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슬슬 배우 생활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였고, 최강의 선수를 잃은 미국은 이후 다시금 한국과 일본에 밀려 3위권을 맴돌게 된다.

성현이 비로소 재능을 깨닫고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서른셋부터였고, 검도 세계선수권 대회에 직접 출전한 건 24회부터였으므로, 그는 직접 찰스 웨인을 상대해본 적 없었다.

그저 영상으로 몇 번 보았을뿐.

그 사실을 늘 아쉬워하던 성현은 아직 개화하지 않았다 해도 미래에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선수와 붙을 수 있다는 게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Hm?”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도 느낀 듯 고개를 든 찰스 웨인.

그는 난간에 비스듬히 걸쳐 선 성현을 발견하곤, 살짝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훗날 영화배우로 데뷔한 이후에는 훈훈한 미소로 유명해진 웃음이었지만, 성현은 그 안에서 감출 수 없는 진한 투지를 느꼈다.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미래의 세계 최강이라 이건가.’

성현은 찰스 웨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당당히 마주했다.

일본을 쓰러뜨린 지금.

한국의 다음 경기 상대는 미국이다.

그 말인즉, 그의 다음 새싹 밟기 상대가 저 찰스 웨인이라는 이야기다.

참으로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냥, 뭐. 이것저것.”

자연스럽게 질문에 답한 성현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인가 다가온 수연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식 웃은 성현이 물었다.

“경기는 잘했어?”

“응응! 2 대 1로 이겼어.”

“잘했네. 같은 순서만 아니었어도 가서 응원해 줬을 텐데.”

“나도 응원 못 해 줬으니까 쌤쌤이지~”

남자부 경기와 여자부 경기는 굳이 따로 할 이유가 없기에 같은 대진표로 진행됐다.

즉, 한국 여자 대표팀 경기도 일본을 상대로 한 A조였으며, 남자 대표팀 경기처럼 이미 끝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결과는 남자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모두 비슷했다.

세부적인 성적은 조금 다를지언정, 일반부 선수들은 지고, 유망주 쪽에서는 이겼다는 점에서 특히.

“참, 이거 봤어?”

그렇게 말한 수연이 성현에게 불쑥 내민 건 그녀의 스마트폰이었다.

아기자기한 동물 케이스로 꾸며진 스마트폰.

그 화면 안에 비치고 있는 건 모바일 버전으로 만들어진 검도라이프였다.

“지금 검도라이프 완전 난리 났지 뭐야. 글 막 계속 올라오고 있어.”

“검도라이프가? 왜?”

“왜긴. 성현이 너 때문이지.”

그 말에 성현이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확실히 수연의 말대로였다.

‘이성현 인터뷰 전문.txt’, ‘유망주 단체전 승리ㅋㅋㅋㅋ’, ‘현재 일본 반응 번역’, ‘이성현은 전에 인터뷰 때도 싹수가 보였음 ㄹㅇ’ 등등.

국가 교류전, 특히 성현이 했던 도발과 그 결과에 대한 글이 게시판에 넘쳐나고 있었던 거다.

방금까지 그녀가 보고 있던 듯, 다른 탭에는 게시판 글 중 하나가 떠 있었다.

성현은 가벼운 호기심에 그것을 눌러 보았다.

현재 일본 반응 번역

글쓴이: 국뽕한사발(Lv.51)

2357: 이름 없음

4승 2무 1패?

3대 유망주는 개뿔

누가 저 머저리들을 일본 대표로 삼은 거야?

2358: 이름 없음

방금 경기 영상을 봤어

그냥 수준 차이가 났다고밖에 못 말하겠더라

2359: 이름 없음

>>2357 너, 나, 그리고 우리

유망주 목록 보고 무조건 이긴다고 했던 거 잊지 마

2360: 이름 없음

그래도 일반부는 이겼으니··· 는 얼어 죽을!

2361: 이름 없음

그 도발했던 녀석은 어떻게 됐어?

최소한 걔는 이겼지? 그렇다고 말해 줘, 제발

2362: 이름 없음

>>2361 (>_< )( >_<)NO

2363: 이름 없음

너희들이 그렇게 물고 빨던 카츠히토는 2 대 0으로 졌어 어제 다 이긴다고 도발했던 그 한국 유망주한테

심지어 다른 3대 유망주도 잘한 건 아냐

아츠시만 무승부고 신지는 백성호한테 졌으니까

일본은 망했어

??(??Д`?)??

2364: 이름 없음

카츠히토··· 믿었는데···

2365: 이름 없음

일본 3대 유망주가 1무 2패? 농담이겠지?

누가 꿈이라고 말해 줘

-엌ㅋㅋㅋㅋ 현실 부정잼ㅋㅋㅋㅋ

-17회 세계 선수권 때 일본 애들 인터뷰하던 거 생각나서 웃기네요└저도 그때 복수하는 거 같아서 웃음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ㅋㅋ

-인터뷰 패왕이네요 진짜ㅋㅋㅋㅋ

-장하다, 이성현, 일본을 네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렴.

“흐음-”

대충 내용을 읽은 성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기야, 자국의 유망주가 패기 있는 인터뷰를 했다고 싫어할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그가 차라리 도발이라 해도 좋을 만한 인터뷰를 한 뒤, 정작 경기에서 비참하게 깨졌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테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한일전이기까지 했다.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되는 한일전!

거기서 일본의 자존심을 꺾고 완벽하게 승리를 거뒀으니 자연히 반응이 우호적일 수밖에.

“···대표팀 언니들도 좋아하시더라. 이번 인터뷰. 패기가 보기 좋다고.”

“그래?”

무심하게 대답하는 성현을 보며 수연이 속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삼켰다.

여자 대표팀 숙소에서 성현을 두고 나온 이야기들은 그녀가 언급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좀 더 노골적인··· 이야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걸 굳이 그녀의 입으로 전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수연은 입을 꾹 닫고 가만히 미소짓기로 했다.

“······.”

“······.”

두 사람이 별다른 대화 없이 함께 서 있는 사이.

미국과 헝가리의 대결은 쭉쭉 진행되었다.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는 미국의 압승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뒤를 잇는 강팀인 만큼 헝가리가 넘어서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었으므로.

일반부는 5승 2무로 완승.

그리고 이어진 유망주 쪽에서도 4승 1무 1패로 막 주장전에 들어서고 있었다.

“하아아아─!”

타아악!

“홍색, 머리!”

과연 미래에 잠시나마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이라고나 할까.

미국 유망주 팀 주장으로 나선 찰스 웨인은 헝가리의 주장 샌더 페테르를 거의 농락하듯 이겼다.

일본 3대 유망주 중 한 명인 ‘무사시의 환생’ 히라와타 신지처럼 이도를 사용하는 그는 놀랍게도 샌더 페테르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샌더 페테르 또한 나름대로 한 국가의 유망주들을 대표해서 나온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인 것이다.

웅성웅성.

그렇게 유망주 주장전까지 미국의 승리로 끝나며 모든 경기가 마무리된 후.

찰스 웨인이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들고 있던 죽도 중 긴 쪽으로 관객석 한쪽을 보란 듯이 가리킨 것이다.

바로 성현이 있는 그곳을.

“하하.”

죽도의 끝을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고, 그 앞에 선 성현은 소리 내어 웃었다.

성현의 귀에는 찰스 웨인의 들리지 않는 외침이 분명히 들려 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너다.’라는, 그 선전 포고가.

< 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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