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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의 신-73화 (73/150)

73화: 새싹 밟기

첫 득점을 빼앗기고 난 뒤.

카츠히토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혼란이었다.

‘분명 내가 빨랐다.’

기술을 내는 순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비록 상대의 공세에 밀려나다 못해 장외 반칙을 범하기 직전, 발악이라도 하듯 떨쳐 낸 공격이었을지라도.

그렇기에 카츠히토는 성현이 막아 내고 다시 압박해 오는 게 아니라, 허리치기를 통한 반격을 택했을 때 승리를 확신했었더랬다.

직전까지의 상황이야 어찌 되었건 결국 그가 한발 앞서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일 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승부가 갈리는 검도.

거기서 반 박자 빨랐다는 건 사실상 승리를 거머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일반적으로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

하지만 정작 결과는 어떤가?

늦게 발한 상대의 기술이 먼저 벴다.

어째서 승리를 확신했을 때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과연, 그런 건가.’

천재라 불리는 백성호와도 대등한 재능을 지닌 카츠히토는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성현을 상대로 백성호가 그러했던 것처럼.

섬광처럼 번뜩인 그의 재능이 확실한 답 하나를 도출해 낸 것이다.

그 뒤에 남은 감정은 오롯한 감탄이었다.

모든 동작이 일말의 군더더기나 낭비 없이 이상적일 경우, 설령 늦게 발하더라도 상대보다 먼저 벨 수 있다─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는.

그것을 실제로 하라고 한다면 과연 가능할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당장 카츠히토 자신조차 몇십 년이 걸려서 수련해야 저런 미친 짓거리가 가능할지 감도 안 잡히는 판인데 말이다.

“후우우-”

‘계속 생각해라. 상대의 움직임이 무조건 나보다 빠를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카츠히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상황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백성호가 알았다면 한바탕 크게 웃었으리라.

회장기 검도 대회 당시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

술렁술렁.

먼저 시작 선 앞에 간 상대가 취한 겨눔세를 보았을 때, 카츠히토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었다.

방금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용들이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높이 들어 올린 두 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벼락처럼 치솟은 죽도.

이를 검도에서는 ‘하늘(天)의 자세’, 혹은 ‘불(火)의 자세’라 하였으니.

“상단세··· 라고?”

카츠히토가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켜보던 관중 대다수도 마찬가지였다.

성현이 중단세와 상단세, 두 개의 겨눔세를 모두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놓고 도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현은 일본은 물론 해외 어디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소졸(無名小卒)이었으니까.

기껏해야 한국에 관심 있는 검도계 관계자들의 입에서나 몇 번 오르내리는 정도?

게다가 설령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도 당황스러운 건 똑같았다.

‘중단세로 잘했으면서 굳이 상단세를···?’

심지어 어중간한 수준으로 잘한 것도 아니다.

검도 종주국의 3대 유망주를 공세만으로 압살해 버리고, 발악처럼 내지른 공격을 보란 듯이 반격해 득점을 하지 않았던가.

아예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해도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먹힐지 안 먹힐지도 알 수 없는 상단세라니!

성현이 두 개의 겨눔세를 모두 기가 막히게 쓴다는 것을 아는 이들도 그리 생각했을진대,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참으로 불 보듯 뻔한 노릇이라.

“-이익!”

일본 대표팀 감독, 가와무라 사부로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상대편을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한국 대표팀 감독 이원형을.

얼마나 일본을 무시하면 한낱 유망주 따위가 저런 짓거리를 하도록 내버려 둔단 말인가?

하지만 이원형 감독은 가와무라 감독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팔짱을 낀 채 담담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했다.

그는 성현의 상단세가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이룩한 신화를 직접 보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웃을 따름.

“······.”

물론 성현의 상단세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에게, 이건 그저 갑작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주심마저 곧장 시작 구령을 외치지 못하고 머뭇거렸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딱딱한 표정을 지은 주심이 외쳤다.

“···두 판째!”

주심의 짤막한 시작 구령.

그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다.

─불꽃이 타오른다.

세차고, 사납고, 거칠게.

주위에 있는 모두를 남김없이 태워 버릴 듯이.

중단세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이었다면, 상단세는 그저 불꽃이었다.

흉포하게 타오르는 불꽃.

‘맹화(猛火)’, 그 자체!

“······!”

뒤바뀐 성현의 기세를 가장 먼저 깨달은 건 상대인 카츠히토였다.

시작 구령이 들리기 전까지 잠잠했던 건 다만 인내했을 뿐이라고 외치듯이, 상대의 기세가 일변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동시에 그는 알아차렸다.

상대는 조금도 방심하고 있지 않음을.

오히려, 다른 겨눔세를 보고 마음의 틈을 드러낸 것은 자신이라는 걸 말이다.

‘집중해라!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상단세는 첫 일격에 모든 것을 거는 겨눔세.

다시 말해, 첫 일격만 막아 낼 수 있다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손잡이를 꽉 움켜쥔 카츠히토가 눈을 부릅떴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승부는 한순간에 날 테니.

“스으으으-”

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성현은 깊이- 아주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주 오랜만에, 과거에 그러했었던 것처럼.

제대로 된 ‘기부림’을 내질러 볼 생각이었기에.

기부림이란, 스스로를 격려하고 기력을 북돋아 기술에 담긴 힘을 키우며, 상대를 기로써 제압하여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외침이다.

검도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건만, 성현은 나이가 든 후에는 꼭 필요할 때 외에는 기부림을 삼갔었다.

딱히 자신의 기를 북돋울 필요를 덜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화로 인한 쇠약은 기부림을 내지를 힘조차 아끼게 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 ‘맹화’ 시절에는 달랐다.

당시의 그는 불처럼 타오르는 기백만큼이나 거세고 묵직한 기부림을 내질렀었다.

하늘과 땅을 떨어 울릴, 그런 포효를─

[우-오-오-오-오─!]

도대체 누가 그것을 일개 소년의 몸에서 나온 외침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성현이 내지른 기부림은 무도관 내부의 웅성거림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포효만으로 모두를 압도한 것이다!

상대였던 카츠히토마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든 그 순간.

성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타올랐다.

‘-온다!’

후우우웅-!

왼발이 스치듯 나아가고, 그에 맞춰 왼팔 또한 쏘아진 화살처럼 뻗어졌다.

죽도가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며 휘둘러진다.

내리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생기는 눈의 착각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 한 올조차 낭비 없이 모든 힘을 다해 기술을 내지를 때만 나올 수 있는 신속(神速)의 일격!

카츠히토에게는 움직였다 생각했을 때, 이미 눈앞에 도달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벼락처럼.

‘아차-’

비로소 카츠히토는 깨달았다.

자신의 대처가 얼마나 안일하였는지를.

내지르기 전이라면 모를까.

한번 내지른 뒤에는, 절대 막을 수 없다.

그는 첫 일격을 흘려넘길 각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최소한의 기회는 있었으리라.

‘애초에 기회조차 주면 안 됐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타아악-!

성현의 죽도는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카츠히토의 머리를 두들겼다.

죽도가 호면을 내리치며 울려 퍼진 타격음.

그것은 일본 3대 유망주가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차세대 세계 최강의 자리를 한국이 가져갔음을 의미하는 소리였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머뭇거리던 심판들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그들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한들, 이처럼 명확한 승패를 뒤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백색, 머리! 시합 끝!”

““······.””

“우와아아-!”

정적만이 가득한 일본무도관.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라고는 오로지 한국 대표팀의 환호성뿐.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성현은 무덤덤하게 카츠히토와의 인사까지 마치고 가벼운 걸음으로 경기장을 나섰다.

어딘지 넋이 나간 것 같은 카츠히토가 비척대며 물러났지만, 성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새싹 밟기다.

즉, 극복하는 건 어디까지나 저들의 문제였다.

만약 극복한다면 그의 적수로 성장하는 거고, 아니라면─

‘버리면 그만이지.’

세계는 넓고 인재는 많다.

당장 이십 년 뒤에 일본 최강이라 불리는 이만 해도, 현재 3대 유망주로 추앙받는 세 명 중에서 나오지 않았으니까.

성현은 느긋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한국 대표팀으로 다가갔다.

“진짜 박살을 내 버렸구나!”

“끝내줬어!”

“거기서 상단세를 꺼내네. 이 사악한 녀석!”

유망주 선수들은 물론, 일반부 선수들까지 성현에게 다가와 축하를 건넸다.

마치 국제 대회라도 우승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기야,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완전히 박살을 내 버렸으니···.

심지어 주장전 포함 4승 2무 1패!

일반부는 졌을지언정 유망주 단체전에서는 대승을 거뒀으니 한 방씩 주고받은 데다가, 어제 했던 도발까지 생각하면 이쪽의 판정승이었으니까.

“······.”

“······.”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일본 관객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일반부에서 승리하면 뭐 하겠는가.

거기서도 주장전은 졌을 뿐만 아니라, 정작 대놓고 도발했던 이성현은 이기지도 못했는데.

유망주 단체전 성적에서 이겼다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으니.

더욱이 그들을 실망하게 만든 건 일본 3대 유망주로 추앙받던 세 명이 보여 준 결과였다.

아츠시가 그나마 무승부를 냈을 뿐.

나머지 두 명은 한국 유망주들에게 패배했으니까.

그것도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완패.

“설마 일본 유망주들이 이렇게 대패하다니.”

“차세대 한국은 굉장히, 무시무시하군요.”

한쪽에 모여있던 각국 대표팀 감독들의 얼굴이 진중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선봉의 정철, 중견의 김규호, 부장의 백성호.

마지막으로 주장의 이성현까지.

만약 시기만 잘 맞는다면 현 한국 최강인 위대한까지 함께할 수도 있고.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의 단체전은 다섯 명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만큼, 이들 다섯이 제대로 팀을 꾸린다면 그야말로 최강의 팀이 구성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각국 대표팀 감독들은 전율했다.

‘일본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도 옛말이 될지도 모르겠군.’

특히나 대표팀 감독들이 주시한 건 성현이었다.

중단세와 상단세, 두 가지 상반된 겨눔세에서 모두 경지에 달한 괴물.

이번 카츠히토와의 경기에서 그가 보여 준 모습은 차세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예약해 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성현이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것조차 믿기지 않았다.

성인이 되기까지 몇 년이나 남은 소년.

지금부터 괴물인 저 소년이 커서는 얼마나 더한 괴물이 될 것인가···.

상상으로도 오싹해지는 기분이지 않은가.

‘다음은 누가 되려나.’

관객들이나 감독들, 선수들의 반응에도 성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겨우 그런 것에 일일이 영향받을 나이는 옛날옛적에 지났기에.

대신, 그가 집중한 건 앞으로의 일이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될 국가 교류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

미리 밟아 두어야 할 ‘새싹’들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 찰스 웨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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