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내가 알던 분위기
‘진정한 사무라이’ 가토 카츠히토의 또 다른 별명은 ‘현대 일본 검도의 정화’다.
처음에만 해도 이 별명이 붙은 이유는 그의 특이한 가족 내력 때문이었다.
검도 7단 가토 타츠야와 6단 가토 히미코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사람에게서 어려서부터 검도에 대해 배웠고 이에 우스갯소리로 떠들었던 게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현대 일본 검도의 정화’라는 별명은 다른 의미로 바뀌어 갔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영재 교육과 맞물리듯 가진 바 재능이 폭발하며, 엄청난 상승효과를 만들어 냈기에.
카츠히토는 단순히 어느 정도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백만 수련자가 있는 종주국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그야말로 차세대를 짊어진 검도 유망주의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리하여, 분명히 농담 삼아 이야기하고는 했던 ‘현대 일본 검도의 정화’가 그를 상징하는 또 다른 별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독특한 이력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가토 카츠히토의 검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팔방미인(八方美人)’이었다.
본래 팔방미인에는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비유하는 뜻과 한 가지 일에 정통하지 못하고 온갖 일에 손대는 사람을 놀리는 뜻, 두 가지가 있지만, 카츠히토는 명백히 전자였다.
어딘가 특출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부족하지도 않은 완벽!
그것이야말로 카츠히토의 검도였다.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기 쉬운 검도였음에도 철저히 중도(中道)를 걸은 끝에 어린 나이에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야규신음류를 기반으로 한 검도 같은 독특함도, 이도 사용자라는 희소함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카츠히토가 3대 유망주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것만 봐도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약점이기도 하지.’
성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분명, 가토 카츠히토의 검도는 완벽하다.
그러나 상대를 꺾음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는 무예에서 완벽이란 늘 상대적인 법.
여태까지 카츠히토가 상대해 온 이들보다 그가 완벽했을지는 몰라도, 성현보다는 아니리라.
반백 년의 수련을 거친 성현의 검도는 완벽한 수준을 넘어선 상태!
경지에 오른 기술의 숙련도와 젊어진 육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금, 그의 검도는 실로 천의무봉(天衣無縫)하였으니.
‘더 완벽한 쪽이 이긴다면.’
그건 내가 될 것이다.
성현에게는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 쌓아 올린 실력에 대한 자신이었다.
“홍색, 백색! 인사!”
심판의 구령에 따라 허리 숙여 인사를 한 성현과 카츠히토가 시작 선에 선 뒤 준거까지 끝냈다.
준거(?踞)란, 시합 전에 상대와 마주한 상태로 잠시 앉았다 일어나는 행위를 말했다.
한국에서는 불필요하다 하여 폐지한 동작으로, 실상은 한국이 검도 종주국인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방금 말한 것과 같은 준거 금지나 청백기 사용─본래에는 홍백기다─등의 규정 변화, 요판 도복 금지 같은 복장 규제 같은.
그것들이 과연 효과적일지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리라.
각설하고.
마침내 시작된 주장전.
“······.”
검도의 오랜 격언에는 겨눔세를 보면 그 사람의 검도 실력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직접 겨뤄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말이 나올 만큼 겨눔세는 모든 검도의 시작이며, 기본이고, 근본이 되는 자세였다.
그런 의미에서 카츠히토의 중단세는 놀라우리만치 완벽했다.
자기만의 중심이 분명히 서 있기에 나아감과 물러섬이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공격과 방어가 마치 하나처럼 이루어지니.
실로 일본 3대 유망주의 수좌로 추앙받는 이다운 빈틈없이 완벽한 중단세라 할 만했다.
하지만.
“···으음.”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은 느끼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완벽이란 늘 상대적인 법.
카츠히토의 중단세는 분명 견고하여 지극히 완벽해 보였지만, 그 앞에 있는 이에 비하면 그 광채를 잃고 말았으니.
일찍이 과거로 돌아왔던 첫날에도 수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성현의 중단세다.
전성기의 실력을 되찾기 전에도 그러했었는데, 수련을 통해 기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린 지금, 그의 중단세가 얼마나 뛰어날지는 명약관화하다.
온전하게 세워진 중심.
미동조차 하지 않는 칼끝.
짙게 드리워진 호면 그림자 속, 불꽃처럼 타오르는 두 눈!
휘감고 있는 기운마저도 범상치 않다.
폭력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위압적인 기세가 사납게 뻗어 나와 카츠히토를 압박하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형상을 한 검(劍)!
성현을 표현하는 말로 그 이상은 필요치 않았다.
“이건, 지독한 반칙이군.”
미국 대표팀 감독, 크리스토퍼 피셔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반응한 건 옆에 선 채 멍하니 경기장 안을 바라보던 다른 감독이었다.
‘반칙’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듣고 본능적으로 되물었던 거다.
“···반칙이라뇨? 어떤 게 말입니까?”
“저 소년. 유망주 단체전에 나올 실력이 아닌데 나왔잖나. 그게 반칙이 아니면 뭔가?”
“으음- 그건···.”
“저 소년은 차라리 일반부에 나와야 했어. 그래야만 했다고. 젠장. 우리 애들이 괜히 기가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크리스토퍼 피셔 감독의 비아냥 섞인 중얼거림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주장전은 고요하게 이어졌다.
성현과 카츠히토, 두 사람 모두 기부림을 쉽게 내지르는 편이 아니었기에, 서로를 향해 침묵 속에서 서서히 다가간 것이다.
그리하여 두 자루 죽도의 끝이 맞닿는 일족일도의 거리까지 도달했을 때, 비로소 칼끝으로 하는 공세가 시작되었다.
탁! 타악! 타닥!
치고, 두드리고, 꺾고, 휘감는다.
단순히 툭툭 건드리는 게 아니라,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작이 담긴 공세!
카츠히토는 자신의 검도가 괜히 팔방미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수준 높은 공세로 성현을 밀어붙였다.
본래 검도는 이기고 나서 친다고 할 만큼 ‘치기 전’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무예다.
예로부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방법으로 검도에서 전해져 오는 삼살법(三殺法)이라는 방식이 있을 정도로.
‘칼을 죽이고, 기술을 죽이고, 기를 죽인다’라고 하여 삼살법인데, 이 중에서 ‘칼을 죽인다’라는 것이 바로 공세를 통해 상대를 제압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카츠히토의 공세가 경지에 이르러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검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능력이었으니까.
팔방미인, 어느 하나 빠짐없이 뛰어난 그가 공세를 소홀히 할 리 없지 않은가?
‘전혀, 통하지 않는군.’
문제는 그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것이다.
상대의 칼끝을 죽이기 위해 공세를 걸던 카츠히토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무너뜨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상대는 마치 거대한 산과 같이 버텼으니까.
돌연 카츠히토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문구 중 하나였다.
‘부동여산(不動如山)···.’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이 하라.
이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경우,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상대에게는 이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가 손아귀가 뻣뻣해질 만큼 두드렸음에도, 상대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서서히 밀려난 건 그였다.
상대는 단 한 번의 공세도 없이, 아주 느릿하게 다가오는 것만으로 그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밀려서는 안 돼!’
그러나 아무리 발악하며 치고 또 쳐도 상대는 절대 흔들리지 않으니.
말라 죽어 가는 기분이라고 카츠히토는 생각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젊음을 얻게 된 ‘불패(不敗)’의 참모습이었다.
수십 년의 수련으로 완성된 기술이 강건하고 젊은 육체와 합쳐졌을 때, 상대는 칼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패배하게 되는 거다.
흡사 늪에 빠져 죽어 가는 것처럼.
“······.”
“······.”
어느새인가, 경기장은 고요해졌다.
모두가 피부로 와닿는 오싹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대로 죽도 한 번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느낄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위압감.
경기장 위의 성현에게서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빠드득.
“으아아아앗-!”
경기 시작 후, 처음으로 내질러진 기부림.
그 외침의 주인공은 카츠히토였다.
흔들리지 않는 성현에게 서서히 밀려나다 못해, 경기장 끝에 발을 걸치게 된 그가 결국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말라 죽을 바에는, 죽도라도 한 번 휘둘러 보겠노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발악이 아니다.
단 하나의 가능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검격!
강렬하고, 묵직하다.
본디 가벼웠을 터인 죽도가 마치 쇳덩어리처럼 느껴질 만큼.
“하아아앗-!”
그에 대응하는 성현의 대처는 지켜보고 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지 막아 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그 또한 마주 죽도를 휘둘렀던 까닭이다.
이미 공세를 통해 기세를 잡으며 유리한 상황.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텐데, 왜?
씨익.
“그렇게, 나와야지.”
오직 유망주들만이 웃었을 뿐이다.
특히나 짙은 미소를 머금은 건 백성호였다.
그는 회장기 검도 대회 결승을 통해서 성현과 겨뤄 본 바 있었고,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있었으니까.
머리를 치는 그를 상대로 성현은 허리치기를 시도했고, 분명 ‘늦게 발했음에도’ 먼저 쳤다.
후발선제(後發先制)!
죽도를 내지를 때 행하는 모든 동작.
발을 내디디고, 허리를 뒤틀고, 팔을 돌리는 그 모든 행위에 일말의 군더더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록 반 박자 늦게 내더라도 상대보다 반 박자 빠르게 칠 수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실로 터무니없는 이론이지만─
타아악!
─그것을 실현하였기에 괴물이라 불리는 것이다.
성현의 죽도가 먼저 자신의 허리에 닿았을 때, 카츠히토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가 진짜배기 괴물이라는 사실을.
한때 그와 대등했던 백성호를 밀어낼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그런 괴물.
“···백색, 허리!”
반쯤 홍색 깃발을 들어 올렸던 심판들이었지만, 끝내 그들이 외친 건 백색이었다.
누가 봐도 성현이 허리를 먼저 두들긴 데다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여유롭게 고개를 틀어 카츠히토의 공격을 흘려 내기까지 했으니.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패배였다.
“······.”
“······.”
힘차게 가토를 부르짖던 경기장은 고요해졌다.
경기 중간부터 시작된 적막은 마치 바윗돌처럼 겹겹이 쌓아 올려져 모두를 짓눌렀다.
정작, 가장 부담스러워해야 할 성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지만.
‘이제야 내가 알던 분위기가 좀 나는구나.’
‘전’에도 다른 국가를 상대할 때면 늘 그랬다.
어떻게든 이기라며 자국 선수의 이름을 목놓아 울부짖다가, 그가 여전한 모습으로 상대를 박살 내면 곧장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좌절, 대체 언제쯤 한국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성현의 존재에 대한 절망까지.
다양한 감정이 섞인 침묵이었고, 성현은 그것을 기꺼이 즐겼다.
“자아-”
‘어디 좀 더 해 볼까.’
이제 겨우 첫판이 끝났을 뿐.
두 번째 판이 남아 있었다···.
< 새싹 밟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