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한일전
국가 교류전에서 A조 경기가 갖는 의미는 제법 크다.
앞으로 3박 4일간 이어질 교류전의 시작을 알리는 시합이니만큼, 사실상 개막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데 A조 경기를 치르는 국가가 시작부터 거하게 도발을 던진 한국과 그로 인해 이를 박박 갈고 있는 일본이기까지 한다면?
모든 국가의 대표팀들이 A조 경기를 보기 위해 모여든 건 썩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 B조 경기가 잡혀 있는 이들은 A조 경기는 나중에 영상으로 돌려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 따위는 없었다.
말 그대로, 전부 모여서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검도인이 돼서 대체 어떻게 이런 재밌는 상황을 지나칠 수 있으랴.
현 검도계의 두 강자가 자존심을 걸고, 그것도 현세대는 물론이요, 미래를 이을 차세대까지 박 터지게 싸우게 되었는데!
“어느 쪽이 이긴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일본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에 있었던 세계 선수권 대회를 생각해 보면-”
“음, 확실히···.”
지켜보러 온 건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그건 각 국가 대표팀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장 주변으로 모여든 감독들은 누가 승리를 거머쥘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우세한 건 일본이 이길 것이라는 의견이었는데, 2년 전, 그러니까 2018년에 있었던 제17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비슷한 인원으로 출전했던 한국이 일본에 패배한 까닭이었다.
2년간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라고 놀고 있었을 리는 없다.
결국, 비슷한 수준의 성장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승리를 거머쥐는 쪽은 일본이다- 라는 것이 각국 감독들의 의견이었다.
실제로도 그들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홍색, 머리!”
“흐랴아아아-!”
일반부 선수들의 대결에서, 먼저 우세를 점한 것은 일본 선수들이었으니까.
중견에서 승리를 거머쥔 일본 선수가 경기장이 떠나갈 듯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아마도 그것은 시작 전에 있었던 도발에 대한 답변이리라.
결국 승리를 차지한 건 자신들이라는.
한국 일반부 선수들도 이를 아득바득 갈며 덤벼들었지만, 그렇게 쉽게 넘어서는 게 가능했다면 지난 십여 년간 세계 최강의 자리를 일본이 지켜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최종 결과, 2승 1무 4패로 한국 패배.
그나마 주장전에서 위대한이 일본 주장 야마모토 켄지를 상대로 2 대 1 승리를 거두며 체면치레에 성공한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젠장-”
패배가 결정되었을 때만큼은 항상 능글맞게 굴던 위대한조차 이를 악물었다.
아직도 한국은 일본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 검도의 숙원인 일본 격파.
그것이 한없이 요원하다는 사실이 새삼 뼈저리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위대한이 절망하였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였으니까.
쉽사리 넘어설 수 있는 벽이라면 지난 십수 년간 한국이 온갖 발버둥을 치지 않았으리라.
괴물같이 강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이쪽에도 괴물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이성현 같은.
‘저 녀석들이라면···.’
뒤로 물러서며, 위대한은 다만 바랐다.
성현을 비롯한 유망주들이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여 주기를.
한국이 일본을 넘어설 수 있다는,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는 게 가능함을 증명해 주기를······.
“드디어-”
“이번에 주장을 맡은 건 가토였던가?”
“‘일본 현대 검도의 정화’라···. 과연 어떻게 될는지.”
“참, 한국 선봉은 정철이었죠?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강한 축에 속한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들어 본 적 없는데.”
한국 일반부 선수들의 패배.
그게 A조 경기에 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다.
이원형 감독이 뒤따라 일본의 뺨을 후려갈기듯 인터뷰를 해서 그렇지, 진짜 시작은 유망주인 성현이었으니까.
일반부의 경기는 전초전에 불과할 뿐, 진짜 응징을 할 수 있는가는 유망주 단체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거다.
“······.”
여전히 뜨겁게 모여드는 관심 속에서.
한국 팀의 선봉, 정철은 천천히 경기장 중앙에 있는 시작 선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이 유망주 단체전의 첫 시작을 끊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만큼이나 몸 상태도 최고였다.
들고 있는 죽도가 지극히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일본의 선봉으로 나온 건 3대 유망주 중 한 명인 ‘야규의 후예’ 히사츠네 아츠시였고. 그가 항상 한 수 위의 상대라 생각했던 이였지만, 그마저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하여 시작된 선봉전의 결과는─
“시합 끝!”
─정철 머리 1점, 히사츠네 아츠시 손목 1점으로 무승부!
이는 지켜보고 있던 이들에게 상당히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겼다.
국내에서야 ‘소년 가장’이니, ‘무관의 제왕’이니 하며 별명이 붙은 정철이지만, 해외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런 이가 일본 3대 유망주로 불리는 아츠시와 무승부를 이뤘으니 당혹스러울 따름.
“······.”
하지만 정작 기적 같은 무승부를 이룬 정철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히사츠네 아츠시···.’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니까.
아츠시가 본색을 드러낸 건 정철에게 머리 1점을 빼앗긴 이후부터다.
그전까지는 적당히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만약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컸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이긴다.’
이를 악문 정철은 묵묵히 뒤로 물러섰다.
다음에 만날 그때를 기약하면서.
웅성웅성.
“히사츠네가 무승부?”
“3대 유망주가 저런 무명한테 막히다니.”
아츠시가 전력을 다했든, 아니든.
눈에 보이는 결과는 선봉전 무승부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무명의 선수가, 일본에서는 3대 유망주로 추앙받는 선수가 나섰는데도!
지켜보던 일본인 관객들이 웅성거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반드시 이기리라 생각했던 이가 겨우 무승부만 거두고 돌아온 상황에 조용히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그렇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이어진 2위전은 일본인 관객들을 안도하게 했다.
“시합 끝!”
“우아아아아-!”
“···젠장.”
일본의 사카이 다이고로가 머리 1점 승리.
강찬울은 시합 중반까지 상대와 대등하게 싸웠으나, 후반에서 무너지며 기어코 1점을 빼앗겨 패배하고 말았다.
명백한 경험의 차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생과 2학년생 사이에 있는 벽.
그것을 강찬울은 아쉽게도 넘어서지 못한 거다.
하지만 알 만한 이들은 다 알았다.
일 년 뒤였다면 결과는 반대였으리라는 사실을.
강찬울이 시합 중에 보여 준 재능과 가능성은 그만한 것이었기에.
“죄송합니다···.”
툭.
고개를 푹 숙인 강찬울의 등을 두들기며 지나간 건 다음 순서였던 영준이었다.
처음 회장기에서 맞붙었을 때만 해도 서로를 그리 좋지 않게 보았던 두 사람이지만, 정작 교류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가장 먼저 친해진 것도 이 두 명이었다.
이렇듯 말 없는 격려까지 해 줄 만큼.
“후우우-”
시작 선 앞에 도달한 영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몇십만 명이 넘는 일본 고등학교 학생 선수 중에서도 거르고 거른 일곱 중 한 명!
비록 3대 유망주는 아닐지라도, 무시해도 되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성현이라는 괴물에게 배우고, 정철을 동경하여 본받고자 했던 자신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백색, 손목! 시합 끝!”
이러한 영준의 자신감은 결과로 증명되었다.
2 대 1로 영준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강찬울의 패배로 인해 기울었던 저울을 도로 원상태로 되돌리는 1승이었고, 한국이 올리는 반격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내 목표는 백성호랑 이성현이라고.’
한국에서 중견으로 나선 김규호.
목표가 있으면 더욱더 불타오르는 그는 회장기 검도 대회 이후로도 고련을 거듭해 왔다.
백성호 한 명만을 목표로 삼았을 때 이상으로.
이전, 백성호만을 노리고 달렸을 때조차 빅4의 주장까지 올라섰던 김규호다.
잡아야 할 목표가 둘이 된 지금.
얼마나 크게 실력이 늘어났을지는 불 보듯 뻔하니.
‘그러니까, 너희들이랑 놀아 줄 시간은 없어!’
“-시합 끝!”
“으아아압-!”
2 대 0, 완벽하게 상대를 두들겨 패며 승리!
상대도 나름대로 이름 있는 일본 강호 고등학교의 주장이었건만, 김규호는 그게 뭐 어쨌냐는 것처럼 완전히 박살을 내 버렸다.
연달아 2승, 심지어 그중 한 번은 중견에서 승리를 거두며 한국 유망주 팀이 흐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거다.
심지어 이어진 5위 대결에서조차 무승부!
천재인 형을 따라잡고자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보상처럼, 백지호는 일본 유망주와 1대1로 비기는 것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늘 천재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동생이 비로소 크게 한 걸음을 내디딘 거다.
‘이걸로는 아직 부족해-’
물론, 본인은 전혀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정도로는 아직 형인 백성호에게 닿는 것은 물론이요, 그 위에 있을 이성현에게는 턱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까.
천재들의 영역에 비집고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백지호에게 만족은 있을 수 없었다.
“으음-”
“차세대의 한국은··· 정말 강하군요.”
예상을 뛰어넘는 한국 유망주 팀의 약진에 모두가 당혹스러워했다.
대부분 잘해 봐야 일반부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으로 결과를 낼 것이라 했었는데, 까고 보니 완전히 다른 결과였으니까.
3대 유망주가 있다는 일본을 상대로 부장전과 주장전만 남긴 지금, 2승 2무 1패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아직 두 시합이 남았고, 거기에 3대 유망주 중 남은 두 명, ‘무사시의 환생’과 ‘진정한 사무라이’가 출전하니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천재’ 백성호와 일본 3대 유망주를 눈 아래로 보던 이성현이 나가는 상황!
‘이거 설마···.’
‘아니, 아니겠지.’
슬그머니 부정적인 생각이 일본인 관객들에게 감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과가 결과였으니···.
“흐음-”
다음 순서는 부장전.
한국에서는 ‘천재’ 백성호가, 일본에서는 ‘무사시의 환생’ 히라와타 신지가 나서는 경기였다.
백성호는 느긋한 걸음으로 나아가며,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길고 짧은 두 자루 죽도를 든 히라와타 신지를 바라보았다.
한일 교류에 가장 많이 참여했던 백성호이니만큼 신지와 붙어 본 경험도 있었다.
과연 일본 3대 유망주다.
백성호조차 그리 감탄했을 만큼 강한 이였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네.’
성현이라는 진짜배기 괴물을 만났었기 때문일까?
한때는 자신과 대등하게 여겨졌던 상대가 이제 더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심판이 시합 개시를 알리는 외침을 내질렀음에도 아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혹시 자신이 너무 상대를 얕보는 게 아닐까 하여.
“크아아압-!”
그러나 몇 차례 합을 나누었을 때.
백성호는 깨달았다.
깨닫고야 말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다시는 자신이 일본 3대 유망주를 대등하게 생각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진짜배기 괴물을 상대한 뒤, 그를 목표로 삼아 버린 이상, 이들에게 발목을 붙잡힐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실에 약간의 안타까움과 진짜 괴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불타오르는 것 같은 호승심을 느끼며, 백성호는 죽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여기서 놀고 있을 시간은 없어.’
“하아아앗-!”
휘두르는 일격은 상대가 아닌 그 너머.
빨리 자신을 따라오라 손짓하는 괴물을 향해.
선명한 궤적을 그린 죽도가 상대의 호면 머리를 정확하게 두들겼다.
심판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깨끗한 한판!
“백색, 머리!”
‘···이 자식!’
두 개나 들고 있던 죽도가 무색할 만큼, 깨끗하게 빼앗긴 한판 앞에서.
히라와타 신지가 느낀 건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호면 너머로 보이는 무감각한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시선뿐만이 아니다.
그걸 포함한 모든 것이 말하고 있었다.
‘너는 내 적수가 아니다’라고.
‘이, 개 같은, 자식이!’
그것이 신지를 지독히도 격분토록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를 분노케 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방금 백성호가 내지른 일격을 막아 낼 길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대체 어떻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등했던 상대다.
어렴풋하게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 그랬었는데-
“백색, 손목-! 시합 끝-!”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린 백성호와 두 자루 죽도를 축 늘어뜨린 신지.
대비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관객석이 조용해졌다.
부장전을 마친 지금, 이로써 3승 2무 1패!
설령 일본이 주장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유망주 팀의 단체전 패배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으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유망주 팀의 결과다.
일반부 팀에서는 이미 일본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지탱할 유망주들이 힘을 못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최강의 자리가 확고하더라도, 훗날에는 그게 아니리라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까.
‘최소한 주장전에서라도 이겨야 해!’
‘입만 살아 나불대는 놈이라는 걸 증명해 줘!’
““가토! 가토! 가토!””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응원의 외침.
일본의 주장을 맡은 가토 카츠히토를 열렬하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무도관 내에 울려 퍼졌다.
‘진정한 사무라이’ 가토 카츠히토가 상대 팀 주장을 완전히 짓뭉개서 체면치레라도 하기를 바라는 제창이었다.
“······.”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을 한 귀로 흘려 버리며.
성현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었다.
마음은 고요하고, 정신은 평온하니.
운명처럼 정해진 승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 내가 알던 분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