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70화 (70/150)

70화: 책임은 져야지

오만하기까지 한, 도발 그 자체였던 기자 회견.

그 반응과 여파는 실로 즉각적이었다.

“야, 성현아. 여기도 있다. ‘오만방자한 한국인 유망주’! 어후- 제목부터 장난 아니네.”

손에 신문을 든 영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러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닌 까닭이다.

그가 직접 찾은 것만 벌써 열한 번째!

잡지나 신문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검도와 관련 있다 싶은 곳은 죄다 성현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박아 놓은 상태였다.

옆에 쓰여 있는 문구도 대개 비슷비슷했다.

‘안하무인’, ‘오만함의 극치’, ‘건방진 유망주’, ‘경거망동’ 등등.

일본어를 쥐뿔도 모르는 영준이었지만, 하도 비슷한 한자를 많이 보게 되니 눈에 익어 이제는 곧장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을 지경이었으니.

‘뭐,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지.’

바로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영준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일본 대중 매체들이 보여 주는 반응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성현이 내질렀던 도발을 생각하면 이들이 발작하듯 기사를 쏟아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같은 한국인 유망주인 그가 보기에도 그러할 정도니, 일본인들이 어떤 감상을 받았을지는 뻔할 노릇이었다.

옆에 있던 김규호가 한숨과 함께 끼어들었다.

“인터넷은 더 난리야. 웬만하면 보지 마라.”

“인터넷? 너 일본어 잘해?”

“아니. 못하는데.”

“뭐야. 그럼 어떻게 봤어.”

“번역기 돌렸지. 근데 그것만 봐도 장난 아니더라고. 온갖 욕이 다 나오던데?”

김규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개를 돌린 그가 가만히 앉아 있던 성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덤덤한 얼굴.

볼을 긁적인 그가 물었다.

“혹시 도발한 거 후회돼?”

“아뇨, 전혀.”

성현의 대답은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 또한 익숙한 반응이었으니.

‘전’에도 일본 선수를 상대로 도발하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푸짐하게 욕을 먹었던 그다.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그리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제발 입 좀 다물어 달라고만 할 테니까.’

어느 순간, 성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본 검도 팬들은 방향을 바꾸었다.

도발적인 인터뷰를 할 때마다 욕하던 것에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애원하는 쪽으로.

그들 중에는 아예 체념해 버리는 이들도 많았다.

말로 내뱉은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겨 버리는 괴물 앞에서 좌절하고 꺾인 것이다.

분명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아니, 그렇게 만들어 주리라.

성현 자신의 손으로.

“크- 끝내주네.”

그러한 성현의 담담함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위대한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위대한이 유망주들이 머무는 숙소에 있는 이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쳐들어 왔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반부 선수들까지 모두 함께.

원인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테고.

“그래. 남자라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안 그러냐, 자식들아.”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위대한이 말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일반부 선수들을 향해서.

“대한이 형도 그런 깡 한번 보여 주시죠?”

“맞아. 맨날 말로만 패기 있게 인터뷰하라 하면서 정작 자기는 맨날 똑같이 열심히 하겠대.”

“오늘도 그랬던 거 같은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돌려쓰잖아. 저 형.”

···물론, 반응은 좋지 않았다.

위대한을 향해 우수수 쏟아지는 타박!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도 성현을 나쁘게 생각하는 기색은 전혀 어려 있지 않았다.

일본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도발했음에도.

그것이 못내 이상했는지, 영준이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도발했는데도 괜찮을까요?”

“그럼!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쟤네도 맨날 세계 선수권 할 때마다 우리는 상대가 안 된다느니, 세계 최강에 위협은 없다느니 하면서 도발하잖아.”

“다 업보지. 했던 거 그대로 돌려받는 거야. 자기들도 알고 있을걸.”

낄낄대며 웃고 떠드는 위대한과 일반부 선수들.

은근히 일본에 쌓인 것들이 많았음을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오랫동안 준우승만을 차지하며 이인자 자리에서 머무르던 그들은 대놓고 질러 버린 성현에게 호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도 잠시.

벌컥!

“······.”

문을 열고 들어온 딱딱한 표정의 이원형 감독을 보고 선수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위대한을 비롯한 일반부 선수들이야 성현의 패기에 감탄하고, 또 마음에 들어 하지만, 감독 또한 마찬가지라는 확신은 없었으니까.

한데 감독이 저렇듯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방에 들이닥쳤으니 침묵할 수밖에.

···위대한과 몇몇 선수들은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입술을 씰룩이고 있었지만.

“이성현.”

“네, 감독님.”

굳어진 표정, 그리고 차가운 어조.

이원형 감독은 매섭게 휘어진 눈으로 성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른 유망주들은 걱정의 눈빛이 되었다.

누가 봐도 혼내려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곧 이어진 말은, 그들이 생각했던 내용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아주 잘했다.”

“···네?”

“멋졌어! 기자 녀석들 당황한 표정 다들 봤나? 내가 다 통쾌하던데!”

이번 국가 교류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원형 감독에 대한 설명은 딱 한 줄이면 충분했다.

현 서울시청 검도 실업팀 감독.

즉, 이제는 대놓고 웃고 있는 저 위대한을 맡고 있는 감독이라는 이야기다.

언제 딱딱하게 굳어 있었냐는 듯, 활짝 웃는 얼굴의 이원형 감독이 성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쩐지, 방금 누군가가 했던 행동이 떠오르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캬- 감독님! 역시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위대한 너 이 자식. 후배가 이렇게 시원하게 내지르는데 넌 뭐 했냐! 너도 야마모토는 이제 내 상대가 아니다, 한번 딱 해 줘야지!”

“감독님 말씀이 옳습니다! 대한이 형도 패기 한번 보여 줬어야지!”

“아! 내가 뒤 순서였으면 질렀을 텐데!”

그 선수에 그 감독이라고 해야 할까.

‘전’에는 만나 본 적 없던 이원형 감독의 모습에 성현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마음에 드는 조합이었다.

위대한 선수도, 이원형 감독도.

“하지만, 그렇게 내지른 이상, 책임은 져야지.”

이원형 감독이 성현과 눈을 마주쳤다.

강한 힘이 담긴 눈빛!

비록 친선 도모를 위한 교류전일지라도, 한 국가의 대표팀을 맡을 만한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이겨야 된다. 반드시.”

도발에 대한 책임으로서.

이원형 감독이 요구한 건 승리였다.

하나 감독이 바라는 것은 결코 일반적인 승리가 아니었으니-

“압도적으로 이겨라. 내가 괜히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완전 박살을 내 놓으란 말이야.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박살 내 버리죠.”

성현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본에는 재앙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정작 일본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자, 그럼 휴식! 내일 대비해서 푹 쉬어 둬라! 괜히 딴짓하다 걸리면 알지?”

““네! 감독님!””

*

국가 교류전이 진행되는 장소는 도쿄의 일본무도관(日本武道館)이었다.

제1회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가 처음으로 치러졌던 장소이자, 근래에는 제16회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의 개최 장소였던 곳!

일본에서 국가 교류전이 열린 이상, 이곳을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한 권위가 있는 장소였으니.

“흐음.”

“여기도 오랜만이네.”

일본무도관에 성현을 비롯한 한국인 대표팀이 나타났을 때, 관객석에 있던 일본인들은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 왔다.

드러난 피부가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납고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하긴, 성현의 도발을 생각하면 저들이 야유를 보내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원형 감독이 어제저녁에 했던 인터뷰도 있었으니까.

-아까 이성현 선수가 했던 말을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하! 농담도 참.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옳은지는 결과가 말해 주지 않겠습니까.

시작부터 일본을 시원스레 후려친 이성현.

그 뒤를 이어 이원형 감독도 한번 대차게 붙어 보자며 뛰어든 것이다.

사과할 생각은 없다. 왜? 맞는 말이니까.

이원형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자면 그것이었고, 안 그래도 끓어오르고 있던 일본 여론에 불을 붙였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성현의 발언은 유망주 한 명의 의견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걸 대표팀 감독이 맞는 말이라고 싸고돈 것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관객석의 일본인들이 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볼 수밖에.

“크, 분위기 죽이는데.”

“적진이라면 이래야지.”

그런데도 일반부 선수들은 히죽거리고 있었다.

언제 이렇듯 일본의 뺨을 때리며 경기를 시작해 보겠는가.

관객들이 보내는 적의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검도를 하며 단련된 정신은 겨우 저런 것으로 꺾일 만큼 나약하지 않았기에.

성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니, 자연스레 유망주들의 어깨에 들어갔던 힘도 빠져나갔다.

누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음을 그들 또한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백성호처럼 처음부터 긴장 따위는 하지 않고, 좋다며 실실 웃고 있는 이도 있었지만, 그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교류전을 통해 참가한 모든 국가 간의 친목이 돈독하게 쌓이기를 바라며···.]

이후 진행된 짧은 개회식.

성현은 콕콕 찌르는 듯한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고, 곧 자신을 바라보는 세 명의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히사츠네 아츠시, 히라와타 신지, 그리고 가토 카츠히토!

일본인 유망주들 사이에 섞여 있는 그들이 하나같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눈으로 성현을 노려보고 있었던 거다,

“······.”

씨익.

성현은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그에 한층 더 시선이 날카로워진 건 물론이다.

다양한 적의가 교차하는 가운데, 마침내 개회식이 끝나고, 마침내 시작된 국가 교류전.

[한국은 A-1조입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대진표를 짜는 일이었다.

보통 규모가 큰 국제 대회의 경우, 시작 전날 즈음에 감독끼리 모여 대진표를 짜는 게 대부분이지만─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도 그렇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국가 교류전은 승패보다 친목 도모와 기량 상승을 우선시했고, 따라서 누가 이겨서 결승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전체적으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겨뤄 보는 만큼 따로 대진표를 미리 짜 놓지 않아도 됐던 거다.

“A-1조면 우리가 첫 번째인가?”

“맞을걸.”

“뭐, 나쁘지 않네. 끝나고 다른 나라 시합 구경하기도 편할 테고.”

한국이 당첨된 건 A조 첫 번째 자리.

국가 교류전의 개막을 알리는 시합이었다.

여기까지는 성현을 포함한 한국 대표팀들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 어느 조가 되든, 결국 3박 4일간 다른 모든 국가의 대표팀과 겨루게 될 테니까.

깜짝 놀랄 일은 일본의 조 뽑기에서 일어났다.

[일본은··· A-2 조입니다]

“어어-?”

“이게 이렇게 되네.”

마치 무슨 운명처럼, 일본이 한국의 상대인 A-2조를 뽑아 든 것이다.

국가 교류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거하게 도발한 한국과 그에 맞서 여론을 통해 열심히 한국 대표팀을 두들겼던 일본.

현재 세계 검도계를 양분하고 있는 2강이 시작부터 맞붙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자연히 그들에게 다른 국가들의 시선이 모였다.

안 그래도 제17회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의 우승팀과 준우승팀으로 관심이 높았던 데다가, 처음부터 신경전을 벌이며 주목받았던 두 팀이 개막 즉시 맞붙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 대표팀이나 일본 대표팀 또한 이러한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다소나마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는 가운데-단 한 사람.

‘좋은데.’

성현만이 새하얗게 미소지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듯이···.

< 한일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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