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도발
일본은 검도 수련자의 숫자가 대단히 많다.
괜히 검도 종주국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단순히 검도를 배우고 있는 이들만 따져도 이백만 명이 넘고, 매년 초단 취득자는 이만 명을 훌쩍 넘겼으니까.
심지어 이 압도적인 숫자마저도 2010년 이후 수련 인구가 꾸준하게 줄어든 결과다.
아직 쇠퇴하기 전에는 검도 수련자가 오백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일본에서 검도가 얼마나 대중적인 운동인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만큼 검도 팬들의 숫자도 많았다.
대저 운동이란 실제로 하는 사람보다 지켜보고 응원하는 이들이 많기 마련.
검도 또한 그러했고, 수련자만 이백만 명이 넘는 검도는 팬의 숫자는 그 몇 배나 되었다.
말 그대로 몇백만 명의 팬이 있는 거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쯤 검도 관련 일에 종사하며, 특출난 성공을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 유망주들이 오는 게 오늘이었지.’
이 남자, ‘나카지마 다이치’야말로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중학교 때 선택 의무 과정을 검도로 택하며 처음으로 접한 뒤, 완전히 그에 푹 빠져서 검도 팬으로 활동했던 나카지마.
그러나 자신에게 검도에 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방향을 선회했다.
검도 선수가 아니라, 관련 업무 종사자가 되기로.
다양한 직업들을 거쳐 그가 비로소 자리를 잡은 건 스카우트를 맡았을 때였다.
스카우트.
보통 이는 스포츠에서 선수나 해당 종목의 전문적인 인력을 영입하는 행위, 혹은 그것을 업무로 삼는 직업의 명칭을 말했다.
실업 검도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활성화되어 있는 일본은 기업들이 직접 실업팀을 만드는 일도 흔했다.
그렇게 탄생한 실업팀에서 선수나 인력을 영입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스카우트다.
이백만 명이나 되는 검도 인구 중 재능 있는 이를 추리고 골라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그에 따른 직종이 따로 필요하였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스카우트가 된 나카지마는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유망주의 잠재력을 귀신같이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던 거다.
유망주의 재능을 마치 아우라처럼 보는 게 가능했고, 그것은 그에게 상당한 성공을 안겨 주었다.
찍는 족족 활약하니 그럴 수밖에.
심지어 현재 일본 3대 유망주로 불리는 히사츠네 아츠시와 히라와타 신지, 가토 카츠히토 중 앞선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주목한 게 그였으니···.
한국에는 ‘검맨 김동안’이 있다면, 일본에는 ‘나카지마 다이치’가 있다고나 할까.
‘과연 한국 유망주들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3대 유망주와 비교하면-’
나카지마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3대 유망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히사츠네 아츠시에게서 그가 본 것은 명가(名家)의 수련자였다.
야규신음류라는 옛 무술을 기반으로 한 검도를 구사하기 때문인지, 그에게서는 과거의 무예가 뿜어내는 짙은 향이 났다.
히라와타 신지에게서는 낭인을 보았었다.
늑대같이 굶주린, 강함을 추구하는 낭인.
특유의 사나운 성격과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도가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을 터.
마지막으로, 가토 카츠히토에게서 나카지마가 떠올린 건 사무라이였다.
갑옷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전장에 나갈 준비를 마친 사무라이 말이다.
‘진정한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 것이 나카지마였으니, 그가 얼마나 카츠히토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3대 유망주와 동급이라 평가받는 백성호가 제일 기대되는군.’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공항 내부에 있는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왔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살피던 나카지마는 곧 낯익은 얼굴 몇을 찾아냈다.
과거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활약한 덕에 기억에 남아 있었던 한국 선수들이었다.
이들이 나오고 있다는 건 이제 곧 한국 유망주들 또한 나올 때가 되었다는 뜻.
나카지마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아, 어디 한번 볼까.’
한 사람씩 모습을 드러내는 한국의 유망주들.
그들이 휘감고 있는 수준 높은 아우라에 나카지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짧게 깎은 머리의 어른스러운 소년과 냉정함 속에 열정을 숨긴 것 같은 소년 두 명이었다.
이름이··· 정철과 김규호라고 했던가?
‘각각 고교 3학년과 2학년. 소속 고교의 주장을 맡고 있군.’
그렇다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한 고등학교의 주장은 그 학교를 대표하는 실력자였고, 한국의 사정 또한 그러하다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한 가지 예상을 넘어선 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아우라가 예상보다 훨씬 강렬하다는 점.
3대 유망주급은 아닐지라도, 그 바로 직전 수준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걸어 나오는 소년을 보았을 때, 나카지마는 차라리 경악에 가까운 감상을 느꼈다.
‘백성호···?’
백성호의 이름과 얼굴은 이미 일본 검도계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다.
몇 번 한일 교류전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천재’라는 별명을 붙여 준 그의 재능은 검도 종주국인 일본에서조차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 나카지마가 백성호를 직접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즉, 그의 아우라를 확인한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이다.
“무시무시하군···.”
나카지마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태 보았던 그 어떤 유망주보다도 강렬한 기세!
심지어는 3대 유망주 중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카츠히토 이상이었다.
그는 몰랐지만, 이는 얼마 전 있었던 회장기 검도 대회의 여파 때문이었다.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성현을 상대로 완벽한 패배를 겪은 백성호는 성현이 보여 줬던 길을 고스란히 흡수했고, 그 덕에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
그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나카지마로서는 그저 백성호가 괴물처럼 느껴질 따름이었지만.
‘어쩌면 다음 세대는 한국이 최강의 자리를 가져갈지도 모르겠어.’
일본 3대 유망주가 분발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나카지마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려 했다.
백성호까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본 이상, 더는 공항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으므로.
그 순간.
오싹-!
“······!”
등골을 타고 오르는 소름.
알 수 없는 공포에 흠칫 놀란 나카지마가 반쯤 돌아갔던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두려움의 근원이 그곳에 있음을 깨달았기에.
그리하여 그가 본 것은 한 명의 소년이었다.
척 보기에도 ‘잘생겼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외모의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됐다.
저건 괴물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켜 먹어치우는 괴물!
검도계에 나와서는 안 될 그런 존재 말이다.
“···허어어.”
이번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진짜배기 괴물의 등장에 나카지마가 입을 쩍 벌렸다.
그는 주변에서 동료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럴 만한 정신이 없기도 했다.
당장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다른 사소한 걸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을까.
‘다음 세대의 최강은 한국이다.’
나카지마는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저 괴물을 꺾기 전에는, 이제 더는 일본은 최강의 자리에 서는 건 불가능하리라고.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
“왜 그래?”
“아뇨. 그냥 좀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서.”
“기자들 아냐?”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뭐, 상관없겠죠.”
볼을 긁적거린 성현은 앞서가던 영준의 옆으로 바싹 따라붙었다.
현재 그들이 가는 곳은 일본 검도 전문 잡지 기자들이 취재를 준비하고 있는 곳이었다.
왜 기자‘들’이냐면, 검도 관련 잡지가 단 하나 ‘검도라이프 매거진’뿐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는 검도 관련 잡지가 수 개는 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신문에도 검도 관련 소식이 심심찮게 날 정도였으니, 한국에서 온 검도 선수들을 취재하러 오는 건 여러모로 당연한 일이었다.
관련하여 미리 한국 측 검도팀에 양해를 구하기도 하여서, 성현을 비롯한 유망주들도 공항에서 짧게나마 기자 회견 비슷한 것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하지? 좀 떨린다.”
“전에 검도라이프 매거진이랑 인터뷰했을 때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때랑은 좀 다르지. 기자 숫자도 더 많고···.”
긴장되는 듯 손을 쥐락펴락하는 영준을 보며 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딱히 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러한 기자 회견은 제법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고 있을 때, 그는 해외로 나갈 때마다 이와 같은 기자 회견을 했었기 때문이다.
“흐음-”
“너는 뭐 생각해 놓은 거 있어? 분명 이번 교류전에서 갖는 포부 같은 거 물어볼 텐데.”
“네, 뭐. 적당한 거 있긴 해요.”
“진짜? 아- 뭐라 하지.”
“한번 우리가 다 이겨 버린다고 해봐. 어떤 반응일지 궁금한데.”
슥 끼어든 김규호의 말에 영주니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랬다가 무슨 꼴을 당하라고.”
“왜. 재밌을 거 같은데.”
“그럼 네가 해 보지 그러냐.”
“나는 좀 겸손한 성격이라.”
“나도 그래. 으음- 그럼 차라리 네 후배 시키는 거 어떨까?”
“네? 저요?”
김규호 옆에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강찬웅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반응에 다른 이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대기실에서의 대화와 일본까지 오는 비행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꽤 친분이 쌓인 게 눈에 보이는 대화였다.
그들 사이에 섞여 웃고 있던 성현은 이내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일본 애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역시 도발이 최고지.’
‘전’에도 그랬다.
인터뷰하며 적당히 장작만 넣어 줘도 활활 타오르던 게 일본 선수들이었으니까.
더 강한 상대와 싸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했던 성현은 일본 선수와 시합이 잡힐 때마다 이 방법을 써먹곤 했다.
검도라이프 매거진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본래부터 인터뷰를 굉장히 내키는 대로 하는 성현이다.
그런 그가 작정하고 도발 멘트를 던지는 거다.
일본 선수들이 뿔이 나서 달려들 수밖에.
이윽고 시작된 기자 회견.
통역사까지 미리 준비된 덕에 지체되는 일 없이 기자 회견은 쭉쭉 진행되었다.
우선 일반부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인터뷰가 진행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망주 단체전에 나설 선수 일곱 명의 차례가 왔다.
“이번 국가 교류전에 임하는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경계하는 선수가 있다면?”
“다들 강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츠시 선수랑 신지 선수, 그리고 카츠히토 선수입니다!”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서 진행된 이들의 인터뷰는 평범했다.
딱히 모난 곳 없이, 아주 무난하였으니.
특이한 질문과 답이라 해 봐야 백성호 때 있었던 한 번뿐이었으니까.
그마저도.
“유망주 단체전 선수 명단에서 주장을 1학년에게 줬는데, 이건 일본을 무시하는 겁니까? 나아가 다른 국가들도?”
─라는 질문에.
“준 게 아니라, 뺏긴 겁니다. 실력에서 밀린 거죠. 일본이나, 다른 나라를, 무시한 게 아닙니다.”
─하고 백성호가 잘 대답한 덕에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기자 회견은, 마침내 성현의 차례가 되었다.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갑자기 튀어나온 한국의 1학년 주장!
물어볼 것은 많고도 많았기에.
그중 운 좋게 지목된 기자가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일본 유망주 팀은 주장을 아츠시, 신지, 카츠히토로 하루마다 바꾼다고 합니다. 이렇듯 일본 3대 유망주라 불리는 세 사람을 차례로 상대하게 되었는데, 어떤 대처법을 세우셨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성현이 담담히 대답했다.
“아츠시 선수가 사용하는 이도는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긴 하지만-”
“저기! 이도 사용자는 다른 선수입니다만!”
“아, 이런.”
성현이 실수했다는 것처럼 빙긋 웃었다.
아직 나이 어린 유망주가 긴장하여 착각하는 일은 자주 있는 법.
대부분의 기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딱, 그때까지는.
“무사시 선수 같은 경우에는-”
“무사시는 별명이고, 실제 이름은 다릅니다.”
“물론 알고 있죠. 히라와타 가토.”
“히라와타 신지입니다.”
“아, 이런.”
볼을 긁적인 성현은 재차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말을 계속하자면, 제일 경계하고 있는 건 야규신음류를 기반으로 한 검도를 한다던 카츠히토 선수─”
싸늘한 침묵.
이제 슬슬 기자들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현이 단순한 실수로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의 반응을 본 성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또 틀렸나요?”
“······.”
“······.”
누가 봐도 뻔한 도발이었다.
비로소 자신의 의도를 깨달았음을 눈치챈 성현은 느긋한 어조로 선언했다.
지극히 오만하면서도, 고고하게.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누가 상대인지는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제가 전부 이길 테니까요.”
< 책임은 져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