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66화 (66/150)

66화: 모시러 왔습니다

현 세계 검도의 구도는 정말 간단했다.

한일 2강,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자들.

한국과 일본이라는 2강을 위에 두고, 그 아래로 여러 국가가 치열하게 맞붙는 중이라는 이야기다.

검도 종주국답게 늘 최강으로 군림하며 국제 검도 대회의 우승을 밥 먹듯이 차지하는 일본.

비록 일본에 밀려 늘 준우승을 차지하지만, 호시탐탐 목 끝에 칼을 겨눈 채, 찌를 기회만 엿보고 있는 한국!

한일 양국은 각 대회의 우승과 준우승을 맡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강력함을 뽐내고 있었다.

물론, 다른 국가들도 약한 건 아니었다.

비록 2강 구도를 시원하게 깨부숴 버리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국가들도 많았으니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

총 17번의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 중 준우승 2회, 3위 수상 7회라는 경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2강도 무시 못 할 강자였다.

일각에서는 한국, 일본에 미국을 더해 3강이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

실제로 13회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최강 일본을 꺾고 결승까지 진출하기도 했으니···.

다만 안타깝게도 죽을힘을 다해 일본을 꺾고 진출한 결승에서, 미국은 한국을 만나 패배하며 우승을 빼앗기고 말았다.

만약 거기서 한국마저 이기고 우승을 거뒀다면 2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미국뿐만이 아니다.

제2회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했던 캐나다, 제17회에서 단체전 3위를 차지한 대만, 정신 차리면 슬금슬금 순위권으로 올라오는 브라질까지.

이를 갈고 있는 국가들이 많을뿐더러, 그들 하나하나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만만치 않은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은 ‘우승 일본, 준우승 한국’이라는 결과를 넘어선 적은 없지만, 기회만 있다면 언제라도 2강을 짓뭉개려 할 나라는 수두룩하다는 이야기다.

제법 오래전부터 한일 2강이라는 뚜껑이 덮여 있는 용광로 안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터지기 직전이었다.

바야흐로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국가 교류전.

말로는 여러 국가의 친선을 도모하느니 어쩌니 해도 서로를 염탐하고 빈틈을 물어뜯으려 들 것이 뻔한 노릇이었으니.

더군다나 이번 국가 교류전에서는 성인만이 아니라 유망주들까지 참가한다고 결정되기까지 했다.

그 말인즉, 이번 국가 교류전에서 천적 관계가 성립되어 버릴 경우,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자연히 국가들은 이번 국가 교류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그건 현재 세계 최강의 왕좌에서 군림하고 있는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절대로 이겨야 한다는 거지.”

‘야규의 후예’, 히사츠네 아츠시(ひさつね あつし)가 담담히 말했다.

아츠시는 현대 일본 검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가 아니라,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병법검술(兵法?術) 야규신음류(柳生新陰流)를 수련한 특이한 소년이었다.

정확하게는 어렸을 적부터 야규신음류를 배웠고, 그 후 현대 검도에 입문, 이후 야규신음류의 특징- 정면에서 맞서지 않고 측면을 노리는 방식을 잘 녹여 내며 유망주로 이름을 떨쳤다.

그렇기에 ‘야규의 후예’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지만, 아츠시가 그리 불리는 것은 단지 야규신음류를 배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츠시의 별명에는 그가 훗날 야규 무네요시-야규 무네노리-야규 미츠요시의 검호 계보를 잇는 검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히사츠네 아츠시’라는 이름의 소년에게는 실로 그만한 실력이 있는 까닭이다.

일본 최강의 검객을 논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야규 미츠요시, 즉 ‘야규 쥬베’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마저 품게 만드는 실력!

“노인네들이 걱정만 많아가지고. 그래서 겨우 그딴 것 때문에 날 불렀단 말이야?”

아츠시의 말에 사납게 쏘아붙인 건 ‘무사시의 환생’이라 불리는 소년, 히라와타 신지(ひらわた しんじ)였다.

두 자루의 칼을 쓰는 이천일류(二天一流)의 시조이자 과거 일본의 유명 검호로 이름을 떨친 미야모토 무사시.

그의 환생이라 불리는 히라와타 신지 또한 길고 짧은 두 자루의 죽도를 귀신같이 다루는, 근래 학생 검도에서 보기 드문 이도 사용자였다.

그중에서도 왼손에 대도, 오른손에 소도를 드는 역이도(逆二刀) 사용자로, 심지어 소도를 든 손 쪽의 발이 앞으로 나가는 역족(逆足)이었는데, 특유의 반항적인 성격과 ‘역(逆)’이 두 번 들어간 자세 덕에 기이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물론 흉포한 성격 탓에 신지를 꺼리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마저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내젓게 했으니···.

그건 히라와타 신지가 현 일본의 대표 검도 유망주 하면 세 손가락 안에 반드시 꼽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그분들도 다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이실 텐데.”

“자기네들 체면이 깎일까 걱정하는 거겠지.”

“아니, 그렇지 않아. 그리고 만약 그분들이 체면이 깎일까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건 분명 우리 일본이라는 국가의 체면일 거야.”

“하! 언제부터 저 뒷방 늙은이들 체면이 일본의 체면이 됐지?”

“말조심해, 무사시!”

“뭐? 무사시?”

신지가 아츠시를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야규신음류라는 고무술(古武術)을 익혀 일본 검도 협회의 높으신 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츠시는 그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아츠시가 내심 고까웠는데, 그가 혐오하던 자신의 별명을 이름처럼 부르기까지 한 것이다.

화가 치솟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이를 바드득 간 신지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히사츠네 아츠시.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날 무사시라고 부르면 널 죽여 버리겠어.”

흔치 않은 이도 사용자라는 이유로 ‘무사시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신지였지만,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혐오했다.

다른 사람에 빗대어 환생이니 뭐니 하는 것부터 짜증 났는데, 그게 하필 거의 가짜라 결론지어진 미야모토 무사시이기까지 한 까닭이다.

물론 대중들이야 그런 것까지 신경 써서 별명을 붙이지 않았겠지만- 그가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이해해 줘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

아츠시가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애초에 신지가 혐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무사시라 부른 그였으니까.

자신을 노려보는 신지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아츠시는 이 자리에 있는 마지막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카즈히토. 너는 어떻게 생각해?”

“······.”

가만히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던 소년- ‘가토 카즈히토(かとう かずひと)’가 그제야 아츠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정한 사무라이’, 가토 카즈히토.

그는 야규신음류라는 고무술을 기반으로 한 아츠시나 흔치 않은 이도 사용자인 신지와는 달리, 철저히 현대 검도만을 철저히 파고든, 이른바 정통의 검도 유망주였다.

누군가의 후예가 되기를 기대받거나, 혹은 누군가의 환생으로 빗대지 않는, 다만 홀로 오롯한 ‘진정한 사무라이’라는 별명은 그런 의미였다.

7단인 아버지와 6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어려서부터 검도를 배운 그는 ‘현대 일본 검도의 정화’라고도 불릴 정도!

아츠시처럼 독특하거나 신지처럼 희소하지 않음에도 항상 현 일본 검도 유망주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만 봐도 그의 가진 바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담이지만, 가토 카즈히토의 아버지 ‘가토 타츠야’는 이전에 한국에서 백성호를 잠시나마 가르친 적 있었다.

아주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가 이기면 다 해결될 문제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분들이 뭘 걱정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일본은 검도에서 언제나 최강이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세대에도 마찬가지일 거고.”

카즈히토의 딱딱한 대답에 아츠시가 빙긋 웃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신지가 아니다.

신지는 입가를 비죽이며 말했다.

“언제나 최강? 13회 때 미국에 지고 결승도 못 간 건 기억도 안 나나 보지?”

“······.”

“뭘 꼬라봐? 할 말 있으면 해 보든가.”

“-난 이만 일어나지.”

“어딜 가? 꼬리 내리고 도망치는 거냐?”

“개새끼와는 상종하지 말라 배웠다. 다만 그 가르침을 따를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즈히토가 신지를 잠시 내려다보다,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 걸음은 곧 멈추고 말았다.

가만히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던 아츠시의 말 때문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잊었네. 백성호, 이번에 있던 대회에서 졌다더라.”

“······!”

“뭐?”

이전, 백성호와 1대1로 무승부를 내며 그를 은연중에 라이벌로 여기던 카즈히토는 물론, 둘 모두를 자신의 밑으로 깔아보는 신지마저 크게 뜬 눈으로 아츠시를 보았다.

일본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는 카즈히토조차 비겼을 뿐인 상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은 그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던 까닭이다.

“상대는?”

“이성현.”

“처음 듣는 이름이군.”

“검도 경력 일 년 차니까.”

“···검도를 일 년밖에 배우지 않은 녀석이 백성호를 이겼다고? 헛소리군.”

“개소리하지 마.”

카즈히토와 신지의 의견이 아주 오랜만에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타박에 아츠시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사실이야. 영상도 있다고?”

“백성호도 무뎌졌나.”

“글쎄. 하지만 장담하는데, 영상을 본다면 절대 그런 말은 안 나올걸.”

잠시 생각하던 카즈히토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츠시가 툭 내던지듯 물었다.

“그래도 그냥 가는 거야?”

“···백성호가 누구에게 졌든 달라지는 건 없다. 이기면 다 해결될 문제니. 백성호든, 아니면 백성호를 이겼다는 녀석이든 간에.”

카즈히토는 뒤를 돌아보는 일 없이 방을 떠났다.

그렇게 뒤에 남은 두 사람 중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건 신지였다.

“쳇, 역시 시간만 낭비했네.”

그 말만을 남기고 신지 역시 퇴장.

홀로 남게 된 아츠시가 느릿하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턱을 매만지던 아츠시.

곧, 그의 입가가 흉악하게 찢어졌다.

평소의 사람 좋은 미소로 유명하던 그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악랄하고 비열한 웃음이었다.

“과연 어떻게 되려나···.”

*

[성현: 준비 끝?]

[수연: ㅇㅇ! 성현이 너는?]

[성현: 나도 끝]

[성현: 지금 바로 갈까]

[수연: (찹쌀떡이 출발! 하고 외치는 이모티콘)]

스마트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은 성현이 짐들을 챙겨 들었다.

옷가지가 담겨 있는 캐리어 가방의 손잡이를 쥐고, 다양한 생필품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등에 멘 것이다.

4일이나 진행되는 일정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짐이었는데, 죽도와 호구는 이미 언더키를 통해 보내 둔 덕분이었다.

‘슬슬 갈까.’

앞으로 3박 4일간 이어질 국가 교류전에.

“이제 가는 거니?”

“네, 어머니.”

“검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국가 교류전이라니···. 대회도 여러 번 우승하고···.”

어머니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성현을 보았다.

애정이 묻어나는 것만 같은 시선이었다.

하기야, 아들이 방송까지 하는 대회에서 우승하고, 연달아 다른 큰 대회에서도 우승한 뒤, 이제는 반쯤 국가대표가 되었다는데 어떤 부모가 잠잠히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처음 국가 교류전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반응이 참으로 엄청났었으니까.

“항상 아빠·엄마가 응원한다는 거 잊지 말렴. 만약 성적이 안 좋다 해도 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란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성현이 빙긋 웃었다.

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지만, 그가 국가 교류전에 참가하는 목적은 달랐다.

자라나는 다른 국가의 인재들을 새싹 밟기 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저번에 가서 보니까 잘하드만. 괜히 부담 주지 말아, 엄마.”

“얘는. 내가 무슨 부담을 줬다고···.”

“자랑스럽다 어쩐다 하는 게 다 부담이야.”

어머니를 제지하고 나선 건 성하였다.

그녀는 어느새 반쯤 국가대표까지 되어 버린 재능충 동생을 보며 입술을 비죽였다.

“빨리 가기나 해. 참, 지면 내 손에 죽는다.”

“성하 너, 성현이한테 부담 주지 말라더니.”

“이게 무슨 부담이야! 그리고 쟤는 전에도 이렇게 말했을 때 잘했어!”

아옹다옹하는 어머니와 누나를 본 성현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만 가 볼게요.”

“그래, 잘 다녀오렴.”

“가서 선물이나 하나 사 와.”

“어떤 거?”

“아무거나!”

그렇게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나선 성현.

이미 먼저 나와 기다리는 중이었던 듯, 옆집 앞에는 짐을 들고 있는 수연이 있었다.

성현이 나오는 모습을 본 수연의 눈이 언제나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성현아!”

“미안, 좀 늦었네. 혹시 기다렸어?”

“아니! 나도 막 나와서 문 두드리려던 참이었어!”

“다행이다.”

자연스럽게 수연이 든 가방 하나를 넘겨받아 어깨에 걸친 성현이 앞장서 이동했다.

마침 언더키 쪽에서 보낸 차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한 까닭이다.

척척 걸음을 옮기는 성현.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힌 수연은 “고마워.” 하고 작게 속삭이며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1층에 도달한 두 사람은 보았다.

“응?”

“아-”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동차.

그리고 그 앞에 선.

“-모시러 왔습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천수아를.

< 어떨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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