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61화 (61/150)

61 화 : 합숙 훈련

검도라이프 매거진 인터뷰.

이는 잡지의 본진이자, 검도 관련 최대 규모 커뮤니티인 검도라이프에서도 일약 화제가 된다.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에 선언한 ‘목표’는 거의 광역 도발 수준이었으니.

<광천고 인터뷰 요약>

<패기 보소ㅋㅋㅋㅋㅋㅋ>

<아, 이건 좀;;>

<경중고 이겼으면 가능한 거 아님?ㄷ>

<‘광천고가 고교검도계의 정점’ㄷㄷ>

역시나 사람들이 가장 주목한 부분도 그것이었다.

앞으로 있을 모든 대회의 우승.

삼 년간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던 경중고마저 입에 담지 못했던 걸 시원하게 내질렀잖은가.

성현의 선언을 두고 검도라이프는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다른 고등학교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쪽과 그저 목표를 높게 잡았을 뿐인데 왜 그러냐고 주장하는 쪽.

광천고가 욕 먹을 이유가 있나요?

글쓴이 : 호구왕(Lv.47)

앞으로 목표가 모든 대회 우승이라고 인터뷰 하나 한 것뿐인데···

목표를 뭐로 잡을지는 학생들 마음이죠 ^^;

전 오히려 패기 넘쳐서 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겠다, 잘하겠다, 이런 것보다 더 뚜렷하고 명확한 목표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보기 좋기만 해요

-학생선수니까 보여줄 수 있는 패기죠

-어차피 우리가 우승할 테니 다 덤벼봐라 하는 인터뷰가 보기 좋다고요?

ㄴ그걸 해낼 수 있느냐는 실력 문제잖아요

ㄴ만약 못하면 개쪽일 텐데 한 것만으로도 패기 넘치는 건 맞음ㅇㅇㄴ검도는 예의를 중시하는 무도인데 무슨;;

ㄴ목표 밝혔다고 예의가 없는 거에여?

-광천고 파이팅입니다!

학생선수에게 관대하다는 점.

그리고 처음으로 나온 타입의 선수라는 점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로 인해 커뮤니티의 의견 중 더 힘이 실린 건 후자였다.

언더키가 검도의 저변 자체를 크게 넓힌 후, 새롭게 유입된 팬들의 연령대가 젊다는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당당하게 모든 경기 우승을 선언하는 건 젊은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기에.

이만한 대리만족을 또 어디서 느낄 수 있으랴.

광천고를 응원하고 싶은 주관적 이유.txt

글쓴이 : 구두룡섬(Lv.35)

얘네들 보면 스포츠 만화가 떠오름

회장기 검도 대회 우승하는 과정부터 그럼

만화 보고 검도 시작했던 내 마음에 쏙 듬

-이건 ㅇㅈ이지

-팬이 안 될 수가 없음 ㄹㅇㅋㅋ

-저도 만화보고 검도 시작했는데ㅋㅋㅋㅋ

ㄴ전 드라마ㅎㅎ

ㄴ저도 만화요!

-주인공이 최종보스인 스포츠 만화ㅋㅋ

ㄴ백성호가 최종보스인 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최종보스-인터뷰도 만화 같긴 해요

광천고가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스포츠 만화 같다는 점 때문에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다.

게다가 스포츠에 굉장히 많은 ‘강팀팬’을 끌어들이기에도 매우 적합했다.

단체전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전에서는 주장인 이성현이 아예 새로운 신화를 이룩해버렸으니 말이다.

그것도 향후 몇십 년간 깨질 거라 보는 이가 없는 엄청난 신화를.

이에 따라 자연히 커뮤니티 여론이 광천고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중요한 건 다음 대회임ㅇㅇ

-ㄹㅇ 우승 못하는 순간 망함ㅋㅋㅋㅋ

-패기만 좋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듯

-다른 고등학교도 칼 갈고 있을텐데;;

-고교검도 진짜 꿀잼되버렸네 엌ㅋㅋ

그렇게 팬들의 막대한 관심과 흥미를 받는 광천고 남자검도부.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사람?”

“한 시간 정도? 아니면 그보다 짧거나.”

“그래? 그럼 생각보다 금방 도착하겠네.”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예정되어 있는 3박 4일간의 합숙 훈련을 위해.

김만석 감독을 포함해, 성현과 주전들, 그리고 참가를 희망한 1학년들까지 함께였다.

“···언더키에서 버스까지 대절해주다니.”

“주전들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지?”

뒷자리에 몰려 앉은 1학년들은 앞에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속닥이며 떠들었다.

주제는 현재 그들이 타고 있는 버스였다.

언더키라는 국내 최고 스포츠 브랜드에서 나서서 버스까지 대절 해주는 건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이제 곧 대학 리그로 나아갈 정철은 물론이고, 이성현이라는 현시점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유망주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버스 몇 대쯤 못 빌려주겠는가?

“언더키랑 후원 계약 맺은 것만 두 명이잖아. 여자 쪽까지 하면 네 명이고.”

“그래서 이렇게 신경 써주는 건가.”

“성현이는 계약한 사람 중에서도 특급 대우를 해준다 그러더라고.”

“진짜?”

심지어 지금 가는 합숙 장소도 언더키 협찬으로 지원받은 곳이었다.

물론,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광천고 검도부에는 정철, 강수연, 임하윤까지 언더키와 후원 계약을 한 이들이 많고, 무엇보다도 성현이 있었다.

무려 네 명이나 되는 이들이 후원 계약을 했는데 합숙 훈련 지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언더키에게는 그럴 능력도 충분했고.

“호구도 언더키에서 준 거잖아. 그거 내가 알기로 천만 원 넘을걸?”

“미친, 천만 원?”

“백 만원만 되도 좋은 거 아니었냐.”

“내 거 중고에 삼십에 산 건데.”

천만 원이 넘는 호구!

언더키에서 성현에게 지원해준 그 물건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이슈가 되었었다.

그도 그럴 게, 겨우 학생선수에게 주기에는 과한 투자로 보였으니까.

몇몇은 아예 대놓고 비웃기까지 했었다.

감이 떨어졌다느니, 유망주에 눈이 돌아갔다느니 하며 언더키의 선택을 조소한 것이다.

회장기 검도 대회 개인전에서 성현이 앞으로 수십년 간 절대 깨지지 않을 위업을 세운 이후로는 그런 말도 싹 사라졌지만 말이다.

‘부럽다···.’

‘천만 원짜리 호구를 후원받다니.’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는 1학년들.

특히나 눈을 반짝인 건 다소 곱슬한 머리 모양과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김수민’.

아직은 부족할지 몰라도, 반드시 광천고 주전 자리를 얻고자 하는 의욕으로 불타는 이였다.

‘나도 언젠가는 꼭-’

다양한 상념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버스가 천천히 멈춰섰다.

드디어 예정된 숙소에 도착한 까닭이었다.

“와- 이게 뭐야.”

“장난 아니네.”

버스에서 내린 주전들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다름 아닌 감탄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숙소를 본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

규모도 규모지만, 고급스러움이 실로 남달랐다.

본래 갔었던 합숙소는 감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곳에 대한 모욕일 정도로.

“진짜 여기에요, 감독님?”

“음. 일단 주소는 맞는데.”

옆에 멈춰선 버스에서 내린 여자 검도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설이 훨씬 좋았으니까.

차라리 휴양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으리라.

“이걸 진짜 공짜로 빌려준다고? 뭐 잘못 안 거 아냐? 막 나중에 돈 달라 한다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근심 어린 김만석의 말을 중간에 뚝 자르며 끼어드는 여성의 목소리.

“숙소를 비롯한 합숙 장소는 어디까지나 언더키에서 지원하는 겁니다. 차후에라도 비용을 요구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성은 단호하게 김만석의 걱정을 잘라 버렸다.

비용 청구 같은 건 없을 테니 안심하라고.

‘응?’

버스에서 내리던 성현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이곳에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누구신지···?”

“소개가 늦었군요. 언더키 선수 후원기획팀 팀장 천수아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언더키’의 마케팅부 산하 선수 후원기획팀 팀장 천수아.

여느 때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테없는 안경을 쓴 그녀가 합숙을 위해 숙소로 온 그들을 마중나온 것이다.

“아, 언더키 팀장님이셨군요. 으음, 이렇게 좋은 시설을 공짜로 써도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부디 써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뭐, 우리야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건 회장님의 특별 지시입니다.”

현 언더키 회장 천병중.

역시나 이번 지원에도 그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회장님께서는 무조건 준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언더키에서 준비한 건 숙소만이 아니다.

따로 체력 훈련이나 근력 훈련을 진행할 수 있는 헬스장은 물론, 마룻바닥이 깔린 체육관까지 미리 대관해두기까지 했다.

이 3박 4일간 이어질 합숙 훈련에서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언더키가, 아니 천병중이 얼마나 광천고 검도부를 아끼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와, 씨. 이게 언더키 클라스인가?”

“결정했어. 나 오늘부터 언더키 제품만 쓴다.”

“나도. 무조건 언더키만 믿고 간다.”

"리다스고 뭐고 다 꺼지라 해!"

언더키에 대한 충성심을 불태우는 검도부 부원들.

이 정도로 후원하는 선수를 챙겨주는 기업은 흔치 않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른 기업들은 장비 지원 정도로 끝이었으니.

사실, 합숙 훈련까지 지원해주는 언더키가 유별난 것이지만, 그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성현 선수.”

김만석을 비롯한 검도부 부원들을 안심시킨 천수아가 향한 건 성현의 앞이었다.

그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았다.

만약 평소의 그녀를 아는 이가 봤다면 깜짝 놀랐을 모습이었다.

언제나 싸늘하게 가라앉은 표정만 짓던 그녀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열기로 가득 찬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회장기 검도 대회 개인전은 잘 봤습니다. 정말 훌륭하시더군요.”

검도 역사에 긋는 한 획.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던 그것을, 이 소년은 벌써 이루어냈다.

관람석에서 그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았던 천수아는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천병중의 핏줄이었다는 사실을.

검도 애호가의 피가 그대로 이어졌다는 걸, 그녀는 알아버린 것이다.

‘할아버지처럼 나도 이성현 선수의 검도에 완전히 반해버렸으니까.’

천수아는 알지 못했다.

‘전’의 그녀 또한 이와 똑같은 이유로 성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을.

“기대에 차고 넘치도록 보답받은 기분입니다.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천수아가 두 손으로 성현의 손을 그러쥐었다.

언더키에서 후원해준 호구를 전달할 때처럼.

손안에서 느껴지는 거친 딱딱함에 그녀는 못내 미소 짓고 말았다.

이 손이야말로.

고교 검도계에 신화를 써낸 손이기에.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성현은 흐릿하게 웃었다.

“아직 제대로 보여드린 게 아니라서요.”

“···네?”

“앞으로 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천수아는, 이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활짝 웃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그런 성현과 천수아의 대화를 남자 검도부 주전들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수아는 선수 후원기획팀의 팀장인데, 왜 저리 친밀해 보이는가.

‘설마···.’

“아, 안녕하세요. 천수아 팀장님!”

남자검도부 부원들의 생각을 단숨에 잘라내듯.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건 수연이었다.

그녀는 다소 다급해보이는 얼굴로 성현의 팔을 부여잡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순간적으로 천수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지만, 그건 정말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강수연 선수. 네. 안녕하세요.”

“그,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신가요?”

“합숙 지원 관련해서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잠깐 들렸습니다.”

“아아, 그러시구나.”

기묘하게도 시선을 교환하는 수연과 천수아.

그 사이에 낀 성현은 아무런 생각도 없어보였다.

한쪽 손은 천수아에게, 다른 쪽 팔은 수연에게 내준 상태로, 그저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

오히려 조마조마해하는 건 지켜보는 이들이었다.

‘이 긴장감 뭐야.’

‘회장기 결승 수준의 긴장감이 감도는데.’

‘와, 성현이 부럽다. 진짜 부럽다. 너무 부럽다.’

< 그 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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