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59화 (59/150)

59 화 : 교류전

*

Q. 광천고 남자 검도부의 차후 목표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A. 우승이다.

Q. 우승?

A. 그렇다. 우승이다. 다음 대회에서도, 추계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대회에서든 광천고가 우승할 것이다.

Q. 대단한 포부다. 분명 반기지 않는 사람도 많을 텐데, 이를 그대로 실어도 괜찮은가?

A. 물론. 우리는 계속 우승할 거고, 사람들은 이제 고교 검도계의 정점이 경중고가 아니라 광천고라는 걸 알게 될 테니 상관없다.

우리는 언제나 결승전에서 도전자를 기다린 뒤, 그들을 꺾어 우승자임을 몇 번이고 증명하겠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

검도라이프 매거진(2020. 08)

광천고 인터뷰 中

*

“하하하하-!”

한국 검도 협회 이사, 곽해수는 저도 모르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8월에 발행된 검도라이프 매거진, 그곳에 실려 있는 광천고와의 인터뷰가 유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대회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하다못해 저 경중고의 백성호조차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건만.

하지만 이미 첫인상이 워낙 좋게 박힌 까닭인지, 오만방자하다고도 볼 수 있는 발언조차 그저 자신감의 표출로만 느껴졌다.

“모든 대회 우승이 목표라. 그래, 이 정도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곽해수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후 세계로 나가 일본을 꺾을 인재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법.

국내에서 어영부영 있어 봐야 의미가 없다.

전부 박살 내고 올라서서, 그 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올릴 수 있어야 비로소 일본에 승리할 자격을 얻은 것이니까.

물론, 정작 성현은 자신의 입으로 일본의 ㅇ자도 꺼낸 적 없다.

그런데도 곽해수의 확신이 이토록 견고한 것은, 어차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겨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정점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꺾어야만 하는 상대라는 뜻이다.

‘이런 인터뷰를 할 정도라면 분명 세계 최고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터.’

그렇다면 굳이 더 말할 것도 없다.

본인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간에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과 대차게 붙어야 했으니.

현 세계 최강인 일본이 쉽사리 그 자리를 넘겨주려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성현은 언제고 일본과 결판을 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으음?”

옆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가 곽해수의 상념을 끊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른 협회의 이사였다.

강영기라는 이름의 사내는 영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읽고 있던 검도라이프 매거진을 책상 위로 툭 내던졌다.

“이건 포부가 아니라 자만심 아닙니까? 겨우 대회 한 번 우승했다고 이런 꼴이라니.”

“겨우 대회 한 번이라 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네만.”

다른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회장기다.

한국 검도를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 검도 협회에서 개최하고 주관하는 학생선수 대회.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도 추계 · 춘계 대회에 이어 학생선수 대회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인데, ‘겨우’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그냥 우승한 것도 아니다.

단체전에서는 삼 년간 이어진 경중고의 전설을 새로운 전설로 깨뜨리며 패권을 가져왔고, 개인전에서는 신화를 써 내렸다.

곽해수의 말마따나 별거 아니라고 무시할 만한 업적은 절대 아니었다.

‘강 이사의 손자가 용암고였던가?’

한데도 이성현의 인터뷰를 자만심으로 깎아내리는 이유야 뻔했다.

이번 회장기 대회에서 광천고를 만나 제물이 되어버린 첫 빅4 고등학교, 용암고.

그곳에 강영기 이사의 손자, 강찬울이 재학 중이었기 때문이리라.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보면 그저 대회 우승일 뿐이잖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앞으로 있을 모든 대회 우승? 이게 다른 고등학교를 무시하는 자만심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강영기의 말에 곽해수가 씩 웃었다.

자만심이 아니면 뭐냐고?

실로 간단했다.

“자신감.”

“네?”

“실력이 뒷받침된 당당함은 자신감이지. 광천고는, 그리고 이성현이는 이번 회장기로 그럴 수 있는 실력을 증명했네.”

“그게 무슨···.”

“모든 대회 우승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자네가 자만심이라고 했겠나? 그냥 비웃고 넘겼을 테지. 그러지 않았다는 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부정할 수 없는 논리였다.

반박할 여지를 찾지 못한 강영기가 찡그린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랬다.

모든 대회 우승 선언.

어디 이름도 안 알려진 고등학교 검도부가 했다면 그 또한 코웃음치고 무시했을 터.

한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됐네.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

손을 내저은 곽해수가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회의실 안에 모인 한국 검도 협회의 임원들을.

그 또한 이들처럼 임원 중 한 명이었지만,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로 한 끗 더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사실상 이들보다 한 세대 전의 사람이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이렇듯 모인 이유는 자네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국가 교류전··· 때문이 아닙니까?”

“맞네. 국가 교류전.”

국가 교류전.

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요, 미국, 캐나다, 유럽까지 참가하는 전 세계적 친선 경기를 뜻했다.

다만 세계 검도 선수권 대회와는 달리, 국가 교류전은 경기의 승리라는 결과보다는 다양한 이들과 겨뤄 실력을 키우는 과정을 중요시했다.

애초에 교류전에 참가한 국가의 팀끼리 한 번씩 번갈아 싸우게 되므로 우승이라는 명확한 목표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물론 그와중에도 승패를 따져 어느 팀이 우세하다고 확인은 가능하지만, 투기 종목인 이상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정확히는, 국가 교류전에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모였지.”

“일본이 제의했던 일이지요.”

현재 국가 교류전은 일정부터 참가 인원까지 모든 게 세세하게 정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전, 일본이 제의를 던졌다.

국가 교류전에 성인들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훗날 그 나라의 검도계를 책임질 동량들 또한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차세대 유망주들이 함께 교류전에 참가함으로써 사이를 돈독하게 하고, 또 실력을 키울 계기로 삼자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일본놈들의 의도야 뻔하지 않습니까. 차세대 유망주들끼리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로 기선을 잡겠다, 뭐 그런 거겠죠.”

“그래서 거절하기로 했던 것 아니었습니까? 저놈들이 더는 젠체하지 못하도록.”

한국은 이러한 일본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었다.

물론 한국에 백성호라는 걸출한 천재가 나타난 것은 맞지만, 달리 말하면 그 이외에는 일본을 넘어설 만한 눈에 띄는 재목은 없었기 때문이다.

교류전은 분명 개인 대결보다는 국가별로 팀을 짜서 단체전 위주로 진행될 터.

백성호 하나만 믿고 가기에는 무리가 많았기에.

주장전 하나만을 겨우 이겨 체면치레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본이야 워낙 인재풀이 넓다 보니 세대마다 한둘쯤은 대단한 녀석이 나오니까요. 그걸 믿고 저런 의견을 낸 걸 겁니다.”

“당장 ‘무사시의 환생’이라든가, ‘야규의 후예’ 같은 별명을 가진 유망주들이 잔뜩 나타났으니···.”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도 그에 못지않네. 이번 회장기에서 그걸 확신했지.”

곽해수가 딱 잘라 말했다.

“남고부, 여고부 가릴 거 없이 다들 뛰어났네. 백성호나 이성현은 말할 것도 없고, 정철, 김규호, 강찬울, 백지호. 여고부에서는 임하윤과 강수연, 백라윤, 이채원, 김수진···. 정말이지, 황금 세대로구만.”

임원들이 저마다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이번 회장기 검도 대회는 상당한 화제가 되었던 만큼, 그들도 경기 영상을 찾아본 상태였다.

그리고 유망주들이 보여준 성장세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아무리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게 학생선수고, 유망주라지만, 회장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폭발적인 성장이라 하기도 모자랐으니까.

‘특히 정철이 그랬지.’

광천고의 소년가장이 이렇듯 우리에서 풀려난 야수처럼 상대를 찢어발길 줄 누가 알았을까.

비로소 힘을 드러낸 정철은 선봉 중 감히 비견될 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곽 이사님 말처럼 김규호나 강찬울, 백지호- 광천고의 최영준도 나쁘지 않았고.’

게다가 여고부도 상황이 좋았다.

백성호와 비견되는 강자 임하윤의 존재도 있고, 결승전에서 그녀와 대등하게 맞섰던 강수연도 눈여겨볼 만했으니까.

비록 파죽지세로 올라간 두 사람에게 밀리긴 했어도, 백라윤, 이채원, 김수진 같은 유망주 라인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백성호나 이성현?

두 사람은 아예 논외의 대상이었다.

이미 유망주라는 분류 안에 넣을 수 없는 이들을 이야기해봐야 무얼 하랴.

일본에 ‘무사시의 환생’, ‘야규의 후예’ 같은 이들이 있다면, 한국에는 백성호와 이성현이 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으니.

“선봉에 정철, 중견에 백성호, 주장에 이성현. 이렇게 셋만 해도 3승은 어렵잖아 보이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으음-”

“확실히···.”

“여고부도 마찬가지지. 선봉에 백라윤, 중견에 강수연, 주장에 임하윤. 그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3승을 챙길 수 있어 보이네만.”

슬슬 임원들은 혹하는 표정이 되었다.

5인 구성도 잦은 일반부 단체전과는 달리, 남고부와 여고부 단체전은 일곱 명으로 팀을 이루어 진행됐다.

따라서 3승을 미리 확보할 경우, 단 1승만 더 거두면 승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 유망주 라인을 봤을 때, 그건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간단하게 거수투표를 하도록 하지. 일본의 유망주 참가 제안을 받아들이는지. 동의하는 이는 손을 들어보도록 하게.”

곽해수가 말을 마친 뒤, 회의실에 있는 임원들을 차례로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좋네. 그럼 일본에게 답을 돌려주도록 하세나. ‘한국도 유망주들을 참여시키겠다’라고.”

국가 교류전에 차세대를 빛낼 유망주들의 참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후우우···.”

아무도 없는 침묵이 가득한 도장 안.

눈을 감은 채 좌선한 성현은 호흡을 고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연하게도, 검도에 관한 상념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겨눔세에 관한.

‘겨눔세라.’

상단세와 중단세.

만약 누군가 두 개의 겨눔세 중 무엇이 더 스스로의 본질에 가까우냐 묻는다면, 성현이 택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였다.

애초에 그가 아직 전성기일 당시에 사용했던 자세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상단세다.

‘전’의 성현은 상단세로 ‘맹화(猛火)’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한국 검도계를 제패하는 것을 넘어, 세계 검도 선수권 우승까지 이루어냈다.

따라서 상단세라는 겨눔세가 그의 본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 터다.

상단세가 본질이라면, 중단세는 무엇인가 하고.

‘사실 중단세는 상단세의 위력이 약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노화로 인한 육체의 쇠약.

성현이 중단세를 다시금 집어든 계기는 그것이었다.

하나 비록 그렇게 시작했을지언정, 그게 현재 그가 이룩한 중단세의 경지를 무시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나약해진 육체로도 ‘불패(不敗)’라는 별명을 붙게 해준 게 바로 그의 중단세였으니 말이다.

요컨대.

상단세가 본질과도 같은 불꽃이라면.

중단세는 그 불꽃으로 벼려낸 한 자루의 칼이다.

‘어느 것도 포기하기에는 아쉽다.’

그렇다면.

‘둘을 하나로 섞는 게 최선인가.’

< 다음 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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