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화 : 그녀들의 싸움
남고부 개인전이 성현의 우승으로 끝난 직후.
곧장 여고부 개인전 또한 시작되었다.
“히야아앗-!”
“이야앗-!”
앞선 남고부와 마찬가지로 64강에서부터 시작된 여고부 개인전 경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컸다.
남고부 개인전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뒤, 전 경기 2회 격자 우승의 광적인 열기에서 벗어난 이들이 비로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직 광천고의 전설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남은 여고부 개인전마저 정복할 경우, 정말 네 부문 동시 우승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것도 학생 선수 출전 대회 중에서는 세 손가락에 꼽히는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백색, 머리! 시합 끝!”
“청색, 허리! 시합 끝!”
그렇게 쏟아지는 관심 속.
광천고 여자 검도부를 대표해 출전한 하윤과 수연은 파죽지세로 이겨나갔다.
64강을 넘어 32강, 그리고 16강까지.
단 한 번도 점수를 내주지 않고 연전연승!
안 그래도 광천고가 회장기 완전 정복이 가능한지에 대해 눈길이 모인 마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시원시원하게 이기며 올라가니 자연히 사람들 머릿속에서 ‘이거 가능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괜히 백성호랑 고교 검도계의 쌍두마차라 불렸겠어? 다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 그런 거야.”
“고1 때 강호 광천고에서 주장 자리를 맡았잖아.”
“이번 추계 대회 개인전 우승도 임하윤이었지.”
애초에 하윤은 학생 검도계에서도 유명인사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쌓은 경력이 그만큼 화려하기 때문이다.
입학 직후에 강호 광천고 여자 검도부의 주장을 맡은 건 이제 신기하다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
제1회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는 물론이요, 춘계 · 추계 대회 개인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여지없이 알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백성호와 함께 언더키 광고를 찍으며 유명해졌고.
“임하윤이라면 당연한 결과지.”
천재라 불리는 백성호와 능히 견줄 만한 재능.
거기에 특유의 호쾌한 검도까지!
이처럼 스타성 있는 인재인 그녀가 고교 검도 팬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연달아 이기며 4강까지 진출했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강수연, 얘는 좀 놀랍네.”
그들이 의외라 생각한 건 다름 아닌 수연이었다.
승승장구하는 건 임하윤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녀 또한 한 점도 빼앗기지 않고 연승으로 올라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중에 꽤 유명한 강자들을 만났음에도 말이다.
거기에 광천고 타이틀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이번 검도 유망주 대회 여자부 우승자라.”
“그래봐야 임하윤 하위 호환 정도 아닌가?”
“딱히 기대는 않고 있었는데···. 뭔가 굉장히 안정적인 느낌인 걸.”
고교 검도 팬들은 대개 고교 검도와 실업 검도만을 보는 이들이다.
그 말은 그 이하 나이대의 검도 대회는 잘 보지 않는 편이라는 뜻이고,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인 수연이 중학교 때 어떤 활약을 보였는지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기껏해야 제2회 검도 유망주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정도인데······.
‘2회 대회는 솔직히 별 볼일 없었지.’
‘쟁쟁한 애들은 전부 1회 때 나왔으니까.’
‘거기서 우승했다고 해봐야, 뭐···.’
1회 때 못 나온 어중간한 애들이 출전한 대회.
고교 검도 팬들에게 2회 검도 유망주 대회의 인식은 딱 그 정도였다.
물론 우승했으니만큼 꽤 실력이야 있겠지만, 지금처럼 파죽지세로 이기는 게 당연한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당연히 그들 눈에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애가 광천고의 개인전 멤버로 나오더니, 하윤 못지 않은 기세로 이겨나가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짧았다.
곧 그녀가 누구에게 검도를 사사받았는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강찬 선수 딸이라고? 그 대호 강찬?”
“와, 나 그 사람 경기 영상 자주 봤는데.”
“그럼 인정이지.”
강수연의 부친, 강찬의 이름은 검도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 준우승!
그건 아직 일본 검도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 검도에서는, 사실상 정점에 섰다는 의미였다.
그런 인물의 딸이라는 정보는 강수연에게로 향했던 시선에서 의아함을 싹 씻어냈다.
수연이 4강에 진출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올라갈 만한 이가 올라갔다- 뭐,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담담히 경기를 보던 관객들은 곧 수연과 하윤, 두 사람이 4강에서마저 승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잠깐, 이러면-”
“사실상 누가 이기든 광천고가 회장기 네 부문을 제패한 거잖아.”
“허- 결승전을 광천고끼리 치를 줄이야.”
“모르는 새에 광천고에 무슨 일 있었나?”
회장기 여고부 개인전에서 벌어진 내전.
그것도 올라가는 도중이 아니라, 결승에서 일어난 상황이라 더욱 놀라웠다.
물론 같은 학교 내전이 이른 시기에 일어나지 않도록 대진표 양 끝으로 흩어놓는다지만···.
결승까지 올라가는 건 별개의 이야기였으니까.
“결국, 이번 회장기의 유일무이한 승자는 광천고가 되는 건가.”
단체전, 개인전.
어느 하나도 넘겨주지 않는 폭군.
제29회 회장기 검도 대회는 그야말로 광천고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자 검도부도, 여자 검도부도 강해.”
“공학 중에 이렇게 둘 모두 강한 검도부가 나올 줄은 예상도 못했는데.”
그렇게, 사실상 대부분의 관객이 여고부 개인전을 끝난 거나 다름없이 생각할 무렵.
단 두 사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결승전의 주인공, 하윤과 수연이었다.
‘그래. 수연아. 네가 올라올 거라 생각했어.’
하윤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린 채 앞에 선 상대, 수연을 바라보았다.
개인전이 아직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그녀는 자신의 상대가 수연이 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날이 늘어가는 실력을 직접 봤다.
당연하게도, 수연 이외의 사람이 결승에 올라올 수 없음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기대하고 있었다.
‘제대로 붙어보자고.’
대련과 시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 경기에 걸려 있는 게 너무 차이나니까.
하물며 일반 경기도 아니고 결승이다.
우승이 걸려 있는 이 시합이야말로, 서로의 실력을 겨뤄보기에 가장 완벽한 무대였다.
하윤이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건.
‘하윤 선배.’
수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있어, 하윤은 동경하는 선배이고, 뒤따르고 싶은 주장이며, 언젠가 넘어야 할 목표다.
한 번쯤 전력을 다해 겨뤄보기를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 개인전, 그것도 결승에서 만났다는 건 어떤 운명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한 번 제대로 승부를 내보라는 운명 말이다.
‘이기는 건 저예요.’
심판을 사이에 둔 채 자세를 잡은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선 · 후배가 아니라, ‘적’을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개인전이란 원래 그런 법.
선 · 후배라도 개인전에서는 적일 뿐이다.
자신이 쓰러뜨려야만 하는 적!
“시작!”
“-히야아앗!”
주심의 외침과 동시에.
선공을 취한 건 하윤이었다.
후웅-!
세찬 기부림과 함께 내질러지는 격자.
죽도가 허공을 가르며 묵직한 파공음을 냈다.
그렇게 머리를 노리는 그녀 특유의 강렬하고 호쾌한 일격을-
타악!
수연은 가볍게 막아세웠다.
코등이 싸움을 하기 위해 바짝 붙은 두 사람은 말없이 시선을 주고 받았다.
오직 적의만이 가득한 시선을.
누가 지금 그녀들을 그토록 절친하게 지내던 선 · 후배라고 생각하겠는가?
“이야아앗-!”
“히야아앗-!”
기부림과 함께 이어지는 격자.
죽도가 가차없이 서로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같은 학교, 같은 부라고 봐주는 건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의 기세는 그것이 뚜렷하게 느껴질 만큼 거칠고 사나웠다.
‘쟤네 사이 안 좋은가?’
‘광천고 여자 검도부에 불화설 같은 게 있었나.’
관객 중 일부는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으니···.
수연과 하윤, 두 명이 얼마나 격한 경기를 벌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우야, 살벌한 거 봐라.”
“평소에는 그렇게 붙어다니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런 거겠지. 난 오히려 저게 맞다고 봐.”
“누가 아니래? 그냥 놀랍다는 거지.”
“아, 그건 인정. 싸웠다고 생각할 거 같긴 해.”
먼저 경기를 끝내고 관람하던 광천고 남자 검도부원들의 평 또한 관객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느끼는 놀람이 더 컸다.
평소 하윤과 수연은 서로를 끔찍이도 아끼는 선 · 후배였으니까.
지금처럼 미친 듯이 싸우는 모습은 쉽게 상상되지 않을 만큼.
“성현아. 네가 보기에 누가 이길 거 같아?”
“하윤 선배요.”
영준의 질문에 성현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하윤이가 이긴다고? 왜?”
“흐름을 쥐고 있는 게 하윤 선배니까요.”
“흐름이라.”
“애초에 저렇게 치는 거로 승리를 추구하는 건 하윤 선배의 특기잖아요.”
생각해보면 그랬다.
상대를 쉴 틈 없이 두들겨 승리를 얻는 타승법.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윤의 특기였으니.
지금 여고부 결승처럼 서로를 두들기는 것에서 하윤을 따라올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수연이 그에 응한 것은···.
‘흐트러졌구나.’
성현은 수연의 흔들림을 꿰뚫어 보았다.
아마 동경하던 선배와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음에 평온을 잃은 것이리라.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좀 더 잘 싸울 수 있었을 터인데···.
“아무나 이겨라-! 광천고 파이팅-!”
“광천고 파이팅-!”
그리고, 경기는 성현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서로를 계속해서 두들기는 난타전 끝에,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하윤이 기어코 2점을 따내며 승리를 차지했던 거다.
그 와중에 수연도 죽을힘을 다해 반격해 1점을 얻어냈지만, 그뿐이었다.
검도는 먼저 2점을 내면 이기는 스포츠였으니···.
처절한 혈투 끝.
우뚝 선 승자는 하윤이었다.
“수연이 너, 엄청나게 발전했네.”
“···그래도 선배한테는 미치지 못했어요.”
“당연하지. 주장이 돼서 쉽게 질 수는 없잖아.”
“다음에는 꼭 이길 거예요.”
“기대할게.”
짝짝짝짝.
서로를 꼭 포옹하는 두 사람.
그들을 향해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져내렸다.
두 사람이 보여준 뜨거운 승부욕이 관객 모두를 매료시킨 까닭이다.
이미 광천고가 우승했으니 설렁설렁 보려던 이들마저 자세를 바로 하게 만들 만큼, 투지 넘치는 경기였으니까.
그렇게 여고부 개인전마저 끝!
[곧바로 시상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관객 여러분들은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시작된 회장기 검도 대회 시상식은, 실로 기묘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진행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협회에서 주관하는 만큼 그쪽은 지극히 정상적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에 대한 답은 정말 간단했다.
[남고부 단체전 우승, 광천 고등학교]
[여고부 단체전 우승, 광천 고등학교]
[남고부 개인전 우승, 광천 고등학교 이성현]
[여고부 개인전 우승, 광천 고등학교 임하윤]
시상을 받는 이들.
단체전과 개인전 시상이 이루어졌음에도, 시상대에 선 이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대개 시상식은 단체전 수상 이후, 상을 받은 팀이 모두 내려간 뒤 개인전 수상을 진행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단체전 수상도 광천고, 개인전 수상도 광천고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고부, 여고부 가릴 것 없이 전부.
개인전 우승 시상 때는 성현과 하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받으면 그만이었다!
“허어-”
“쩐다···.”
“진짜 미쳤네.”
이 기묘한 시상식에 관객들이 감탄을 토해냈다.
광천고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기에.
남녀 구별 없이 단체전, 개인전 전부 우승.
전설적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 어느 고등학교가 저렇듯 시상대를 자신들의 것처럼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사정을 모르면 한없이 기묘하게 보이는 시상식마저 끝났을 때.
“안녕하세요. 광천고 여러분. 검도라이프 매거진의 권도연이라고 해요. 잠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부드럽게 웃는 얼굴의 여성, 권도연이 광천고 주전들을 향해 다가왔다.
< 포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