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화 : 신화를 보았다
그 날.
회장기 검도 대회 남자 개인전을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신화를 보았다’라고.
*
성현의 첫 상대는 재전고의 주장, 김운이었다.
재전고는 빅 4 수준은 아닐지라도 꽤 강호로 인정받고 있는 학교로, 그곳의 주장을 맡은 김운 또한 고교 검도계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검도의 인지도는 대개 강함에서 나오는 까닭에 김운의 실력은 꽤 뛰어났다.
특기는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순식간에 뻗어 나오는 손목 치기.
상대가 미처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는 신속의 공격은 그를 강호의 주장에 올려두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그것도 어디까지나, 손목을 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
‘상단세라니.’
현재 한국 학생 검도계에서 상단세를 사용하는 이는 굉장히 드물다.
기껏해야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그마저도 실력 면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이는 상단세 자체가 방어를 도외시하며 공격을 추구하는, 굉장히 까다로운 겨눔세라는 특징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냥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이가 적은 까닭이 컸다.
애초에 검도계의 주류는 중단세다.
상단세는 굉장히 드물게 몇몇만이 사용하는 겨눔세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생 선수에게 상단세를 지도해줄 만한 이가 적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김운은 여태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다.
‘제대로 된’ 상단세라는 것을.
고오오오-
그저 자세를 잡고 있을뿐.
그래, 단지 그뿐이다.
한데 김운에게는 상대의 주위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대로 불타버릴 것만 같은.
상대는, 단순히 기세만으로 그를 압도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상단세.
이것이, 불의 자세···.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김운.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불꽃’이라는 두 글자였다.
사납고 흉포한 불꽃.
아주 맹렬하게 타올라 주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살라버리는, 그런─
“하아아앗-!”
분명히 말해서.
김운은 전혀 방심하지 않은 상태였다.
앞서 말했듯이 상단세는 방어를 도외시하며 공격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겨눔세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
첫 일격에 모든 것을 걸고 승리를 얻어내는 자세라는 이야기다.
다만, 그것은 다시 말해, 첫 일격만 막으면, 어쨌든 승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거다.
이를 김운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첫 일격만은 막아내어 반격을 취하기 위해서.
그러나.
타아악!
대비하고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맹화(猛火)라 부를 수 없으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번개처럼 성현의 내지른 죽도는 김운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가 채 죽도를 들어 올리기도 전에 벌써.
‘온다’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두들겨지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빠른 속도!
백성호라는 천재를 상대로도 늦게 발해 먼저 베는, 후발선제가 가능한 괴물이 바로 성현이다.
그런 그가 작심하고 첫 일격에 모든 걸 걸었다?
대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으랴!
“청색, 머리!”
유유히 돌아서는 성현을 보며 김운은 자신의 죽도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느리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자랑하는 손목치기도 엄청나게 빠른 공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너무 느려.’
차라리 자신이 멈춰있다고 해도 생각될 정도로.
이 시점에서 김운은 이미 깨달았다.
두 번째 판에서도 첫 판과 똑같은 전개가 이어지리라는 것을.
그는 상대의 첫 일격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상단세를 상대로 그건 패배를 의미했다···.
‘젠장.’
타아악!
“청색, 머리! 시합 끝!”
64강 경기 승리.
성현이 격자를 한 횟수는, 단 2회.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 기록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백성호조차 이긴 성현의 강함을 생각해본다면 너무도 당연한 승리였고, 상대도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긴 하지만, 어중간한 느낌이었으니까.
마땅히 이길 사람이 이겼다-
딱 그정도의 감상밖에 갖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첫 일격에 모든 걸 거는 상단세는 격자 횟수가 중단세에 비해 크게 적기도 했고.
“유망주 대회 때도 그랬지만, 어깨 너머로 배운 수준이 아니네요.”
이 때문에 관객들이 주목한 건 성현이 보여준 상단세의 숙련도였다.
상단세는 사용하는 사람이 적은 만큼이나 이를 가르치는 사람의 숫자 또한 적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신예의 상단세.
그것도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수준이니.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대체 누가 사사한 걸까요?”
“국내에서 상단 쓰는 실력자 중에 이성현과 연관된 사람이···.”
“아무도 없을걸요.”
“그럼- 설마, 독학?”
“······.”
“······.”
“설마요.”
“그렇죠?”
중단세야 그렇다 쳐도─물론, 절대 그렇게 할 수준이 아니지만, 여하튼 간에─.
상단세는 절대 홀로 피어날 수 없는 꽃이다.
반드시 토양이 되어 주고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이가 필요한 법.
한데, 성현의 근처에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누가 가르친 것일까.
관객들이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성현을 주시하는 와중, 시작된 32강 경기.
“청색, 머리!”
첫 번째 판, 일격.
“청색, 머리! 시합 끝!”
두 번째 판, 일격.
32강 경기 승리.
성현이 격자를 한 횟수는, 단 2회.
이전 경기와 합쳐도 고작 4회뿐.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경기에 격자한 횟수라 해도 적다 말할 그것이 무려 두 경기를 결정지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두 경기 결과이기도 했고.
심지어 이번에는 상대도 무명이었으니까.
경기 결과가 승리라는 것만 기억했을 뿐, 어떻게 승리를 거뒀는지는 신경 쓰지 않은 거다.
그들의 기대는 오직 이후에 있을 16강 경기에 쏠려 있었다.
참가한 선수가 많은 회장기 검도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강자들끼리 맞붙기 시작하는 건 16강부터였기 때문이다.
“용암고의 강찬울이라.”
“유망주 대회에서 대차게 깨졌었죠.”
“칼을 갈고 나선 건 보이는데, 글쎄요. 당장 최영준 선에서 정리당했었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저도 기대는 안 합니다.”
“그쵸? 음, 얼마나 버티려나···.”
성현의 16강 상대는 용암고의 강찬울.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성은 그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듣는 소년이었다.
이미 성현을 상대로 한 번 지기도 했거니와, 단체전에서 광천고의 중견 최영준을 상대로 패배한 탓에, 기대를 갖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저 분발하여 성현의 상단세가 지닌 위력을 드러내주기를 바랄 따름.
하지만, 그런 관객들의 기대는.
“청색, 머리!”
“청색, 머리! 시합 끝-!”
단 두 번의 격자에 산산조각 나버렸으니.
지켜보던 관객들은 끝내 할말을 잃고 말았다.
강찬울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막아내려 용을 쓰는 게 관객들의 눈에도 보였으니까.
다만, 그저 상대가 자연재해였을 뿐이다.
태풍이나 지진, 해일 같은, 결코 막거나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
이성현의 상단세는 딱 그러했다.
감히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자연재해.
첫 일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찌 경기가 이어질 수 있겠는가?
16강 경기 승리.
성현이 격자를 한 횟수는, 단 2회-
“······지금 깨달은 건데.”
그리고 이 시점에서.
관객들 중 눈치 빠른 몇몇은 깨달았다.
“이성현 경기 시간 엄청 짧지 않아?”
기묘하게도, 빨리 끝나는 성현의 경기를.
다른 곳은 이제 겨우 첫 번째 판의 승부가 가려질 때, 성현은 이미 경기를 마무리하고 상대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써 세 경기 연속으로 벌어졌으니 알아차리는 이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 진짜. 그러네.”
“아까도 다른 곳 경기할 때 혼자 끝내더라.”
“그거야 상대가 첫 공격을 못 막으니까─”
“─아.”
전율, 그리고 감탄.
허겁지겁 성현의 경기들을 되짚어본 이들이 느낀 감정은 그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64강 경기, 전부 첫 일격으로 끝났고.”
“32강 경기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지금, 16강 경기도···.”
모든 경기가 첫 일격에 끝났다.
어떤 상대도 감히 막지 못했기에.
회장기 검도 대회 개인전에 출전했다는 건, 그 실력이 학생들 중에서도 보통 이상이라는 뜻이다.
한데 그런 이들이 첫 일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연달아 패배하고 있었다.
심지어 강찬울 같은 이름 있는 유망주조차도!
“······허.”
이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논하는 이들은 없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현실의 가능성을 따져서 무얼 하랴?
이제, 사람들은 타오르는 듯한 기대의 눈으로 성현의 경기를 주목했다.
그렇게 시작된 4강 경기.
상대는 호군고의 주장, 김정현.
그는 빅 4의 주장들 중에서는 가장 방어적인 스타일의 검도를 구사하기로 유명했다.
상대를 간파하는 걸 잘하는 용암고의 김규호나, ‘스포츠 검도’의 장점을 살렸다 하는 금제고의 구영진과는 또 다른 타입이었다.
백성호?
완벽한 천재에게 스타일은 의미가 없으니 논외.
여하튼, 김정현은 그만큼 수비적인 경기 운영에 뛰어났다.
한 번 제대로 태세를 굳히면 백성호조차 쉽게 뚫을 수 없다고도 말해질 정도로.
“시작!”
그런 김정현이었기에 사람들은 기대를 품었다.
앞선 세 경기처럼 첫 일격에 경기가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성현이 세운 이 기묘한 일격 연승 기록도 바로 여기서 끝나리라고.
그리고 실제로.
“하아아앗-!”
“우오오-!”
김정현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성현이 내지른 격자에 정확한 순간에 반응을 드러냈다.
반보 가량 전진하며 죽도를 비스듬히 위로 들어, 성현이 내지른 죽도를 받아내려 했던 것이다.
완벽하기 그지없는 방어!
성현조차 거기에는 막히고 말 듯 보였다.
그리하여 일격 연승 기록 또한 깨질 터.
만약.
성현이 머리치기를 시도했다면─ 말이다.
타아악!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죽도의 타격음.
머리치기를 막아내기 위해 김정현이 들어 올린 죽도가 무색하게도, 성현이 노린 것은 허리였다.
제대로 ‘가르는’ 일격은 허리를 두들겼다.
사실상, 팔을 들어 올린 그 순간에 이미 결판이 났던 거다!
“-청색, 허리이!”
주심이 이제까지보다도 더 강렬한 외침을 토했다.
번쩍 들어 올려지는 청색 깃발 세 개.
성현은 기어코, 일격 연승 기록을 이어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는 이들은 알았다.
이번 승리에는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이제 저 상단을 상대하는 사람은 머리가 복잡해지겠네요.”
“네. 머리로 올지, 허리로 올지까지 맞춰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거에 실패한다면-”
“바로 패배. 끔찍하네요.”
성현의 첫 일격을 막을 능력이 있는 자.
그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머리인가, 허리인가.
머리를 막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면 허리를 막을 수 없고, 반대로 허리를 막으려 경계하면 머리를 막아낼 수 없다.
한순간의 선택이 패배를 좌우하는 이지선다!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상대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
상대를 완벽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눈’ 앞에서.
어찌 자신의 의도를 가릴 수 있단 말인가?
상단세를 취하고 있는 성현의 눈이 마치 불꽃처럼 타올랐다.
“청색, 머리!”
4강 경기 승리.
성현이 격자를 한 횟수는, 단 2회.
빅4 주장들 중, 가장 방어적인 스타일의 김정현조차 성현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경기는 결승전뿐.
그리고 거기에서.
“결국 이렇게 되네요.”
“뭐, 당연한 일이죠.”
백성호와 이성현.
두 사람의 천재가 다시금 격돌했다.
< 마지막 한 걸음 >